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제정 공포 축하행사 참석 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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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총동창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7,159회 작성일 2018-11-20 15:35본문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제정 공포 축하행사 참석 협조
일시 : 11월 22일(목) 17:00~18:00
장소 : 대전평생교육진흥원(옛 충남도청) 식장산 홀
초대의 말씀
가을이 깊어갑니다.
지난 11월 2일, 3·8민주의거가 국무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령으로 국가기념일로 확정 공포되었습니다.
대전 충청권에서는 최초인 3·8민주의거의 국가기념일 제정을 자축하는 행사로 대전광역시와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가 축하행사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꼭 오셔서 격려해주시고 민주화 사업에 지속적인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공포 축하행사에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공동의장 김용재(41회)·김종인
일시 : 11월 22일(목) 17:00~18:00
장소 : 대전평생교육진흥원(옛 충남도청) 식장산 홀
초대의 말씀
가을이 깊어갑니다.
지난 11월 2일, 3·8민주의거가 국무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령으로 국가기념일로 확정 공포되었습니다.
대전 충청권에서는 최초인 3·8민주의거의 국가기념일 제정을 자축하는 행사로 대전광역시와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가 축하행사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꼭 오셔서 격려해주시고 민주화 사업에 지속적인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공포 축하행사에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공동의장 김용재(41회)·김종인
3·8민주의거를 부언하면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대구에서 야당후보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는 것을 우려한 당국이 일요일임에도 등교를 강행하자 당시 경북고등학교와 대구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시위를 벌인 것이 학생운동의 효시가 되었고 이것이 바로 대구 2·28민주의거이다.
그리고 며칠 후 3월 8일, 대전고등학교 1, 2학년 학생(40회, 41회) 1,000여명이 학교 담장을 넘어 대흥동4거리를 지나 대전공설운동장으로 치달아, 운동장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기마경찰과 무장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며 쫓겨 시내 곳곳으로 흩어졌으며, 일부 학생들은 인동을 거쳐 대전역 중앙로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고, 도청을 지나 학교로 되돌아왔으니 이것이 바로 그 역사적인 3·8민주의거다.
그 여파는 바로 마산의 3·15부정선거 규탄시위와, 4·19혁명으로 이어져 결국은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는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단초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3․8민주의거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매우 의미 있고 뜻 깊은 역사적인 쾌거로 기록되어야할 내용이었다.
참고로 4.19혁명에 동참했던 대전고 출신으로 서울대 손중근(36회), 경희대 이기태(36회), 중앙대 고병래(37회) 동문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과 발포로 숨을 거두었다. 이 세분 동문의 희생은 전국 고교 출신 중 가장 많은 희생이었다.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대구에서 야당후보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는 것을 우려한 당국이 일요일임에도 등교를 강행하자 당시 경북고등학교와 대구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시위를 벌인 것이 학생운동의 효시가 되었고 이것이 바로 대구 2·28민주의거이다.
그리고 며칠 후 3월 8일, 대전고등학교 1, 2학년 학생(40회, 41회) 1,000여명이 학교 담장을 넘어 대흥동4거리를 지나 대전공설운동장으로 치달아, 운동장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기마경찰과 무장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며 쫓겨 시내 곳곳으로 흩어졌으며, 일부 학생들은 인동을 거쳐 대전역 중앙로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고, 도청을 지나 학교로 되돌아왔으니 이것이 바로 그 역사적인 3·8민주의거다.
그 여파는 바로 마산의 3·15부정선거 규탄시위와, 4·19혁명으로 이어져 결국은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는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단초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3․8민주의거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매우 의미 있고 뜻 깊은 역사적인 쾌거로 기록되어야할 내용이었다.
참고로 4.19혁명에 동참했던 대전고 출신으로 서울대 손중근(36회), 경희대 이기태(36회), 중앙대 고병래(37회) 동문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과 발포로 숨을 거두었다. 이 세분 동문의 희생은 전국 고교 출신 중 가장 많은 희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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