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냉전>을 펴낸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 교수는
“냉전은 서구 국가들에는 ‘오랜 평화’를 의미했지만, 제3세계 국가들에는 잔인한 내전과 정치폭력의 시대를 의미했다”고 말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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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대학-^^권헌익** 서유럽과 아시아의 冷戰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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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528회 작성일 2013-06-22 09:13본문
책과 삶
ㆍ여전한 내전과 정치폭력…냉전은 과연 종식된 걸까
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는 이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시베리아로 현장 연구를 나갔다. 순록을 치는 퉁구스족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소련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사회주의를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족사회 같은 주제가 아니면 연구 지원을 안하던 인류학계의 관행 때문에 퉁구스 사회로 주제를 바꿨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1년6개월가량 살며 퉁구스 사회를 연구했다. 이곳에서 제도 공산주의가 원시 공산주의를 포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문제도 분석했다. 현장 연구를 끝낸 1991년 소련 체제가 와해됐다. 1993년 맨체스터 대학에 부임했을 때부터 ‘냉전의 종식’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17일 <또 하나의 냉전>을 출판한 서울 신사동 민음사 사무실에서 만난 권 교수는 “그때부터 ‘또 하나의 냉전’을 쓰기 위한 이론적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냉전이란 것이 한 시대성, 한 시간성만 갖고 있는 것인가, 왜 한 군데에서 냉전이 끝났는데 글로벌하게 냉전이 종식됐다고 이야기하느냐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거죠.” 흔히 냉전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강대국인 미·소 간 갈등을 가리키고, 냉전의 종식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후’로 여기는 학설과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권 교수는 서로 전면전 위협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냉전의 비유적 표현인 ‘상상의 전쟁’과 강대국 간의 ‘오래된 평화’는 미국과 유럽 중심의 지정학적 시각이자 ‘글로벌한 추상’이라고 말한다.
권 교수는 “냉전이 끝났다고 말할 때 누구의 냉전이며 냉전의 어떤 차원을 말하는지도 봐야 한다”면서 “냉전은 하나의 충돌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국만 해도 극히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한국전쟁을 겪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아프리카의 많은 신생국가와 라틴아메리카 여러 공동체들도 냉전 시기 잔인한 내전과 예외적 형태의 정치 폭력에 시달렸다. 권 교수는 “세계 냉전의 역사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해방공간에서 많은 공동체들이 겪었던 엄청난 불행을 포함하는 역사로 봐야 한다”면서 “냉전이라는 현혹적인 이름 아래 20세기 후반부에 활개쳤던 국가 폭력의 힘에 스러져 간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인간의 조건’을 강조하고, 가족 간, 공동체 안의 ‘관계’라는 화두를 중시했다. 그는 “양영희 감독이 조총련 가족을 소재로 만든 영화 <가족의 나라>를 봤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관계, 국제 정치의 힘이 가족의 관계 안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일본 내 한인 사회에서 친북 그룹의 자녀들은 식민지 때 비롯된 민족 불평등과 탈식민기의 정치적 분열이라는 이중적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가 이번 책과 <학살 그 이후>에서 베트남전 때 적군(미군) 편을 들었던 친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하고 고통을 겪는 베트남 주민의 문제를 다룬 것도 그런 이유다. 책은 이처럼 인류학적 방법론으로 ‘인간’을 드러낸다. “유럽사 같은 경우에도 초기에는 전투원들, 국가 중심으로 담론이 되다가 비전투원, 민간인 중심으로, 즉 ‘아래로부터의 역사’로 전개되는데 이는 유럽의 민주화 과정과 동일합니다. 그런 과정을 수렴해 정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권 교수는 책의 여러 곳에서 탈식민 비평을 비판한다. “기존 탈식민지 논의는 식민시대에서 양극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전개되는, 우리가 말하는 해방공간의 역사라는 것이 전혀 없어요. 냉전이란 것을 점점 더 유럽사람들처럼 상상의 전쟁이란 패러다임으로, 지정학적인 강대국의 게임으로 이해하지요. 탈식민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벌어진 양극 체제의 충돌, 내전이나 폭력을 주변화합니다. 기존 탈식민 이론은 탈식민지에 사는 사람의 공동체, 친족 문제를 관계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권 교수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두고도 “초기 냉전 형성과 탈식민지 역사가 만나는 부분을 그 토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아시아의 주된 정치적 긴장을 두고 ‘냉전 정치’가 아니라 식민 치하 경험에서 비롯된 인종적·종교적인 이유로 분석한 P R 쿠마라스와미 같은 학자도 비판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안보상의 이유로 각각 소련, 미국과 긴밀하게 유대하며 글로벌 수준의 핵전쟁의 지정학을 모방했는데, 이를 냉전과 별개의 것으로 본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탈식민 이론 비판의 연장선에 인종적 용인과 문화다원주의 문제도 들여다본다. 미국은 문화다원주의를 정치적 통합·변동의 수단으로 내세웠다. 소련도 문화적·언어적 다원성을 배려했다. 하지만 그 다양성은 정치적인 원 안에서만 인정하고, 그 밖의 것은 배제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도 일상어가 된 다문화라는 말을 두고, “다문화나 다원주의는 문화적 포용과 정치적 배제가 양면인 개념”이라며 “다문화를 하려면 정치적인 배제가 되는 상황을 깨치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하나의 냉전>이 <학살, 그 이후>(2006)와 <베트남전쟁의 영혼>(2008)을 잇는 3부작이라고 했다. 이후 작업이 정병호 한양대 교수와 함께 쓴 <극장국가 북한>(창비)이다. 권 교수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인간의 조건’의 틀로 조명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세계사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취지의 프로젝트를 끝냈다. 결과물은 내년 초 출판될 예정이다.
서울대 ‘글로벌 중견학자 초빙’ 프로그램차 한국에 머물던 권 교수는 지난 19일 영국으로 돌아갔다. 내년 봄에 다시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 [저자와의 대화]‘또 하나의 냉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권헌익 석좌교수
- 글 김종목·사진 김창길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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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헌익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는 이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시베리아로 현장 연구를 나갔다. 순록을 치는 퉁구스족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소련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사회주의를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족사회 같은 주제가 아니면 연구 지원을 안하던 인류학계의 관행 때문에 퉁구스 사회로 주제를 바꿨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1년6개월가량 살며 퉁구스 사회를 연구했다. 이곳에서 제도 공산주의가 원시 공산주의를 포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문제도 분석했다. 현장 연구를 끝낸 1991년 소련 체제가 와해됐다. 1993년 맨체스터 대학에 부임했을 때부터 ‘냉전의 종식’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17일 <또 하나의 냉전>을 출판한 서울 신사동 민음사 사무실에서 만난 권 교수는 “그때부터 ‘또 하나의 냉전’을 쓰기 위한 이론적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냉전이란 것이 한 시대성, 한 시간성만 갖고 있는 것인가, 왜 한 군데에서 냉전이 끝났는데 글로벌하게 냉전이 종식됐다고 이야기하느냐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거죠.” 흔히 냉전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강대국인 미·소 간 갈등을 가리키고, 냉전의 종식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이후’로 여기는 학설과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권 교수는 서로 전면전 위협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냉전의 비유적 표현인 ‘상상의 전쟁’과 강대국 간의 ‘오래된 평화’는 미국과 유럽 중심의 지정학적 시각이자 ‘글로벌한 추상’이라고 말한다.
권 교수는 “냉전이 끝났다고 말할 때 누구의 냉전이며 냉전의 어떤 차원을 말하는지도 봐야 한다”면서 “냉전은 하나의 충돌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국만 해도 극히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한국전쟁을 겪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아프리카의 많은 신생국가와 라틴아메리카 여러 공동체들도 냉전 시기 잔인한 내전과 예외적 형태의 정치 폭력에 시달렸다. 권 교수는 “세계 냉전의 역사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해방공간에서 많은 공동체들이 겪었던 엄청난 불행을 포함하는 역사로 봐야 한다”면서 “냉전이라는 현혹적인 이름 아래 20세기 후반부에 활개쳤던 국가 폭력의 힘에 스러져 간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책의 여러 곳에서 탈식민 비평을 비판한다. “기존 탈식민지 논의는 식민시대에서 양극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전개되는, 우리가 말하는 해방공간의 역사라는 것이 전혀 없어요. 냉전이란 것을 점점 더 유럽사람들처럼 상상의 전쟁이란 패러다임으로, 지정학적인 강대국의 게임으로 이해하지요. 탈식민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벌어진 양극 체제의 충돌, 내전이나 폭력을 주변화합니다. 기존 탈식민 이론은 탈식민지에 사는 사람의 공동체, 친족 문제를 관계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권 교수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두고도 “초기 냉전 형성과 탈식민지 역사가 만나는 부분을 그 토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아시아의 주된 정치적 긴장을 두고 ‘냉전 정치’가 아니라 식민 치하 경험에서 비롯된 인종적·종교적인 이유로 분석한 P R 쿠마라스와미 같은 학자도 비판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안보상의 이유로 각각 소련, 미국과 긴밀하게 유대하며 글로벌 수준의 핵전쟁의 지정학을 모방했는데, 이를 냉전과 별개의 것으로 본다”는 지적이다.
권 교수는 탈식민 이론 비판의 연장선에 인종적 용인과 문화다원주의 문제도 들여다본다. 미국은 문화다원주의를 정치적 통합·변동의 수단으로 내세웠다. 소련도 문화적·언어적 다원성을 배려했다. 하지만 그 다양성은 정치적인 원 안에서만 인정하고, 그 밖의 것은 배제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도 일상어가 된 다문화라는 말을 두고, “다문화나 다원주의는 문화적 포용과 정치적 배제가 양면인 개념”이라며 “다문화를 하려면 정치적인 배제가 되는 상황을 깨치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하나의 냉전>이 <학살, 그 이후>(2006)와 <베트남전쟁의 영혼>(2008)을 잇는 3부작이라고 했다. 이후 작업이 정병호 한양대 교수와 함께 쓴 <극장국가 북한>(창비)이다. 권 교수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인간의 조건’의 틀로 조명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세계사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취지의 프로젝트를 끝냈다. 결과물은 내년 초 출판될 예정이다.
서울대 ‘글로벌 중견학자 초빙’ 프로그램차 한국에 머물던 권 교수는 지난 19일 영국으로 돌아갔다. 내년 봄에 다시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냉전의 한반도, 내전과 정치테러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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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구(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에냉전은 내전과 정치폭력의 시대” |
한국과 3세계 국가엔 현재진행형
모두 국가폭력 비극적 경험 공유
제주도 4·3항쟁 공론화와 위령제
죽은자 기억하는 애도의 모범형태
1955년 12월
미국의 여론조사회사 갤럽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냉전’의 의미를 물었다.
조사원들이 ‘정답’으로 분류한 대답은?
ㄱ.열전이 아닌 것,
ㄴ.무기 없는 교묘한 전쟁,
ㄷ.강대국들간의 말싸움
등이었다.
다음은 ‘오답’으로 분류됐다.
ㄱ.한국에서처럼 많은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는 뜨거운 전쟁,
ㄴ.군복무중인 내 형제들의 목숨을 뜻함,
ㄷ.모두가 전쟁중인 곳…
권헌익(51) 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 교수는?
“후자의 대답도 실은 전혀 ‘오답’이 아니다”며
A) 유럽 및 북미의 서구 국가들한테 냉전은?
이전 시기와는 구분되는 ‘오랜 평화’를 의미했지만,
B) 비서구지역의
많은 탈식민 신생독립국가들한테 냉전은?
잔인한 내전과 정치폭력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였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또 하나의 냉전>(민음사, 원저는 2010년 미국에서 출간)에서
‘냉전’을 물리적 충돌이 없는 ‘초강대국 사이의 세력균형’으로 보는 시각을
서구중심 접근 방식이어서 이를 비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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