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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울산 ^^^반구대 암각화--물속에 잠긴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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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501회 작성일 2013-06-15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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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문화유산인 암각화 수영을 할 수 없습니다”



기사입력 2013-06-13 





4월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을 방문한 무니르 부셰나키 유네스코 특별자문관. 오른쪽 작은 사진은 포르투갈 포스코아 암각화의 일부. 문화재청 제공
 부셰나키 유네스코 특별자문관

최근 문화재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다. 

10년 넘게 이어진 논란이지만, 문화재청과 울산시의 의견이 가파르게 대립하는 데다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반구대 논란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여름 우기가 다가오며 반구대는 또다시 물에 잠길 처지에 놓였다. 무니르 부셰나키 유네스코 특별자문관(70)이 동아일보에 특별기고를 보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비슷한 논란을 겪었던 포르투갈 포스코아 암각화 보존 사례가 한국인들이 반구대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알제리 태생인 부셰나키 자문관은 유네스코 사무총장보와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 사무총장을 지낸 세계 문화재계의 거물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국가훈장도 받았다. 

중국에 산재한 고구려 고분을 한민족 유산으로 규정하고, 숭례문 복원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온 친한파이기도 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포르투갈 포스코아 유적에 대한 이야기는 1991년 시작된다. 당시 포르투갈 정부는 오랫동안 검토한 끝에 코아 강 계곡에 있는 유적 인근에 댐을 건설하기로 확정지은 상태였다. 하지만 계곡을 조사한 결과, 수천 개의 사람과 가축 등이 그려진 암각화가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포스코아 계곡은 연구를 거듭할수록 고고학적 가치가 더욱 크게 대두됐다. 연구 과정에서 신석기는 물론 일부 구석기로 추정되는 암각화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포르투갈 학자인 넬슨 하반다 박사가 몇몇 암각화를 외부에 공개하자 이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서 선사암각화위원회를 이끌었던 장 클로드 교수는 “암각화 유적 보존이 유럽에서 그렇게 많은 관심과 열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무시한 채 1994년 댐 건설이 강행되고 있었다. 이는 포르투갈 내에서도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확산되자 포르투갈 정부는 객관적인 검증을 위해 ICOMOS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했다. 클로드 교수가 이끈 실사단은 현장을 방문해 ‘최소한 유럽 최대의 야외 선사미술 유적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댐 공사가 지속된다면 이런 암각화가 물에 잠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영국 타임스 등 해외언론마저 이를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후 포스코아 유적 보존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르투갈로 향했다. 당시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부문의 책임자로 있던 나를 비롯해 프랑스 건축공공사업연구센터의 알랭 부닌 소장, 국립역사기념물연구실의 자크 브루네 박사, 보르도대학의 수문지질학자인 필리프 말로랭 교수 등이 참여했다.

당시 국제실사단은 이례적인 만남을 가졌다. 리스본 대통령 궁에서 마리우 소아레스 대통령과 면담한 것이다. 소아레스 대통령은 포스코아 유적에 대한 유네스코의 가감 없는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보존의 중요성을 청취한 그는 “포르투갈이 부유한 나라는 아니지만 국민들은 선사 유적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 암각화 유산이 물에 잠기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포르투갈 중등학교에 배포된 슬로건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암각화는 수영을 할 수 없습니다(The Carvings can't swim).’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3주 만에 실사보고서를 작성해 포르투갈 정부로 보냈다.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우선 유적 연구 및 정보센터 마련을 위한 현장 박물관 건립이 제안됐다. 또한 코아 강 계곡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국립공원 건립이 이뤄질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문화관광 차원에서 유적을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댐 건설 취소로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할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포스코아 유적의 희귀성과 구·신석기 암각화의 존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네스코는 이미 1968년 ‘공공 또는 민간건설공사로 인해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권고’를 통해 세계유산을 현 상태 그대로 보호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댐 공사로 행여 계곡이 범람한다면 인류문화유산이 물에 잠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리는 1995년 “수몰 가능성이 있는 유적의 가치가 적절히 확립될 때까지 댐 건설 공사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유적의 중요성이 확정되는 대로 공사가 전면 폐기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포르투갈 정부의 결정은 유네스코 의견과 완전히 일치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업을 폐기한 ‘최초의 중대 사례’로 남았다. 

댐 건설에 반대해 암각화를 보존하려는 국내외 운동은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인해 포르투갈은 댐 공사에 들어갔던 1억5000만 달러(약 1700억 원)의 세금 손실을 부담해야 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포르투갈 국민은 그들과 세계 문화유산의 미래를 위해 이를 감수했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포스코아 유적에 대해 “계곡의 신석기 암각화는 문화발전의 여명기에 인류의 천재적인 창의성이 급격히 꽃피는 시기를 잘 보여주는 탁월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인류 초기선조의 삶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영적 삶을 탁월하게 조명하고 있는 암각화를 유네스코는 기꺼이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하나의 문화유산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함께 이를 보존해나갈 방법을 찾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하나만 기억하자. 암각화는 수영을 할 수 없다.












옹고집이 콘텐트다 ④ 반구대 암각화 사진가 김태관 씨


[중앙일보]입력 2013.06.13 00:34 / 수정 2013.06.13 09:06


비가 오나 눈이 오나 … 8년간 1000장 찍었죠





자신이 찍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 사진을 배경으로 선 김태관씨. 그는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이지만, 암각화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척에 살면서도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울산시 울주군 주민 김태관(65)씨의 집에서 선사시대 바위그림 반구대 암각화까지는 산길을 걸어 10~15분 정도의 거리. 1995년 암각화가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후에도 먹고 살기에 바빠 찾아가 보지 못했다.

 그가 암각화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3월 울주군 문화재 명예관리인으로 임명되면서다. “햇빛이 쫙 비칠 때 보니 바위 안에서 고래와 사슴, 호랑이가 춤을 추고 있더군요. 장관이었습니다.”

지척에 살아 명예관리인 임명

 그는 “내가 본 아름다움을 기록으로 남기리라”는 생각에 바로 1회용 카메라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바위그림을 주로 찍었지만, 나중에는 인근 풍경까지 시야가 넓어졌다. 그렇게 8년 여 찍은 사진이 1000여 장. 두꺼운 파일 4권을 빼곡하게 채웠다. 사진 속에는 다양한 표정의 암각화가 있다. 2000년 4월 가뭄으로 암각화 인근 흙바닥이 쩍쩍 갈라진 모습, 2002년 8월 홍수로 물에 완전히 잠긴 암각화, 그리고 눈으로 하얗게 덮인 한겨울의 반구대 등이다.

물에 잠기는 과정 수치로도 기록

 반구대 암각화는 인근 사연댐의 수위 변화에 따라 연중 5~6개월간 물 속에 잠겨 있다.

김씨는 암각화가 점차 물에 잠겨가는 과정을 수치로도 꼼꼼히 남겼다. 예컨대 2006년에는 6월 중순 이후 수위가 오르기 시작해 7월 10일 암각화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암각화를 제대로 보려면 빛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암각화에 햇빛이 도달하는 시간도 날짜 별로 정리했다. 2001년 3월 5일 오후 5시 10분부터 5분간, 3월 12일 4시 50분부터 30분간 암각화에 햇빛이 직통으로 들어왔다.


그는 “쓸 데 없는 짓을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전생에 암각화를 그린 신석기인”이라며 타박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1회용 카메라로 찍었지만, 나중에는 성이 차지 않아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장만하기도 했다.

 “저는 문화재 전문가도, 사진가도 아닙니다. 구도나 촬영기법 같은 것도 몰라요. 서툰 솜씨로나마 반구대를 매일 지켜보는 사람의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방치하나 … ” 화 치밀기도

 가장 당황했던 순간은 암각화가 물에 잠긴 줄 모르고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을 만날 때였다.

“그림을 보겠다며 이 멀리까지 온 사람들한테 ‘때를 잘못 잡았다. 지금은 물에 잠겨 있다’라고 말하기가 수치스러웠습니다.” 물이 빠지고 난 후 허연 물이끼를 뒤집어 쓴 암각화를 볼 땐 “이렇게 내버려둘 거면 국보 지정은 왜 했나” 싶어 화가 치밀기도 했다.

 올 들어 암각화 보호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그가 찍은 사진의 가치도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일부는 최근 출간된 『그림으로 쓴 역사책 반구대 암각화』(예맥)에 실렸다. 2008년 암각화 관리인을 그만둔 그는 요즘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 예전처럼 자주 반구대를 찾지 못한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훼손되는 모습이 보여 마음이 아파요. 논쟁만 하지 말고 하루 빨리 암각화를 지킬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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