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마종기는 1939년 1월 17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여성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4년
가족이 모두 귀국해 개성에 정착, 이듬해 마종기는 개성의 만월국민학교에 입학했다. 1947년
가족이 모두 서울 종로구 명륜동으로
이사하고 마종기는 혜화국민학교 3학년에 편입한다. 그의 가족은 여기서 1965년까지
살았다.
1950년 봄 6학년이 된 마종기는 교내
신문에 처음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마산으로 피란가 월영국민학교에 편입한
마종기는 그 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 서울중학교 2학년 때 마종기는 평생의 지기가 되는 시인 황동규를 만난다. 같은 해 마종기는
제1회 ‘학원문학상’에 산문을 응모해 입상하기도 했다. 1954년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한 마종기는 문예반 지도교사로 있던 시인 조병화를 만난다.
문과반 학생이던 마종기는
과학 기술
공부를 권하는 친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진로를 바꾸고 1959년 연세대 의과
대학에 진학했다. 본과 1학년 재학 중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해부학교실’ ‘나도 꽃으로 서서’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1960년에 출간한 첫 시집 ‘조용한 개선’으로 제1회 연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마종기는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수련의 과정을 거쳐 방사선과 전문의가 됐다.
오하이오 의과대 방사선과 교수 시절 ‘올해 최고의 교수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부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 의사
생활에서 은퇴한 후에도 모교인 연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로 ‘문학과 의학’을 수년간 강의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꾸준히 한국에서 시를 발표했으며, 친구인 황동규·김영태 시인과 함께 공동시집 ‘평균율’ ‘평균율
2’를 펴냈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만 10년이 되는 해에 출간한 ‘변경의 꽃’을 시작으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하늘의 맨살’ 등의 시집을 꾸준히
선보였다. 또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등의 산문집과
가수 루시드 폴과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을 출간했다. 한국문학작가상, 미주문학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