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잔치는 끝났다의 유명한 詩人^^최영미와 전두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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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887회 작성일 2013-06-13 21:28본문
입력 : 2013.06.13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시공사 전재국(54) 대표가
싱가포르에 개설했다는 페이퍼 컴퍼니의 이름은 '블루 아도니스'다.
시인 최영미(52)씨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는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라는 시가 있다.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소재로 소설을 준비 중인 시인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1992년, 그녀는 막 문을 연 시공사에 취직했다.
아직 등단 전이었고, 한 푼이 아쉽던 시절이었다.
대학교 4학년에 감행했던 결혼은 파탄 났고, 운동권 선배가 운영하던 출판사에서도 막 '짤린' 참이었으며, 집안까지 몰락했을 때였다.
등록금 때문에 홍익대 미술사학과 대학원도 휴학했는데,
한 선배가 출판사 취직을 제안했다.
'타도 대상'으로 불렀던 사람의 아들이
취직한 그 회사의 사장이라는 사실은,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고 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5월 광주를 겪었던 서울대 서양사학과 80학번.
그 시절 운동을 했던 이유가 누구 때문인데.
시인은 1980년을 지나 12년 세월이 흐른 후
1992 당시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했다.
"전두환 아들 회사에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ㄱ.나는 서른 살 실업자.
ㄴ.오라는 곳이 없다.
ㄷ.집안도 어렵고,
ㄹ.남자와는 헤어졌고,
ㅁ.월급은 절실하게 필요하다.
ㅂ.착잡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 언니에게 물었다.
시인의 형편을 알았던 선배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의 업무는 미술 출판 관련 기획이었다.
외서를 준비하면서 여러 명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홍익대 대학원과 운동권 친구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동갑내기였던 유시민 전 장관의 동생 유시주 희망제작소장도 있었다고 했다.
시공사에는 그렇게 8개월을 다녔다.
출퇴근하던 지하철에서,
출판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쓴
시편들로 그녀는 등단한다.
1992년 창비 겨울호였다.
386 학생운동 세대의 내면 풍경이라는 평가를 받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는 그렇게 탄생했다.
60~70%가 시공사 시절 쓴 시편이었다.
'아도니스'는 당시 출판사를 자주 찾던 (전재국 대표의) 친구에게
시인이 붙인 별명.
시집 발표 후 '아도니스'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때,
그는 영광이라며 자신의 친구와 함께 시인의 탄생을 축하했다.
어떨까.
이 삶의 아이러니가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를 옹호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타도 대상이었던 사람의 아들에게 월급을 받게 된 시인의 처지를 동정하는가. 물론 그것도 아닐 것이다.
단지 대의명분이나 거대담론만으로는 해결되거나 굴러가지 않는,
우리 삶 어느 순간을 도려낸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어떻게 독재자 아들의 돈을 받을 수 있느냐고 비난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생각 안 해봤어요. 하지만 그렇게 묻는다면?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나는 그때 정말 힘들었다고.
당신이 내게 쌀과 방세를 줄 수 있느냐고.
내가 존경하는 운동권 선배의 표현을 빌리면,
80년대는 내게 그 의미를 해독하지 못해 아직도 낯선 과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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