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vs. 조국--어느 것이 먼저?--안중근 의사vs. 황사영(백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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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4,333회 작성일 2013-06-08 21:19본문
입력 : 2013.06.07 03:01
[재평가받는 천주교인 황사영·안중근… 교회, 聖人 전단계 '시복' 추진]
-신앙 위해 조국을 등진 황사영
조선말기 천주교 박해 심해지자 "정부 위협할 서양軍 보내달라" 1만字 넘는 편지 보내려다 처형
교계 "평등 실천하려한 개혁가"
-조국 위해 신앙을 거스른 안중근
'살인하지말라' 가톨릭 계율 어겨 교회에선 한동안 업적 외면받아
"일제 침략에 맞선 정당방위였다" 김수환 추기경 발언 뒤 復權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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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사영이 백서를 쓴 충북 제천 배론성지 토굴. /경향잡지 제공
◇황사영 : '반역자' 혹은 '순교자'
"네가 20세가 되거든 나를 만나러 오라. 어떻게 해서든 네게 일을 시키고 싶다." 16세에 진사가 된 신동 황사영에게 정조(正祖)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황사영은 출세 대신 신앙을 택했다. 겨우 움튼 조선 교회가 박해로 찢겨 나가자, 그는 충청도 제천 배론(舟論)의 토굴 속에 숨어들었다. 이때 가로 세로 약 62×40㎝의 흰 명주 천에 깨알같이 작은 해서체로 쓴 1만3384자의 편지가 베이징 주교에게 보내려다 실패한 '백서'다. "백성이 박해에 걸려 죽을 고통 속에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어 빨리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황사영은 박해 상황 등을 적은 백서 끝 부분에 ▲교황이 청나라 황제를 통해 외교적 압력을 행사케 할 것 ▲서양 군함 수백 척과 정예군 5만~6만명을 파견해 조선 정부를 위협할 것 등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았다. 체포된 황사영은 '반역죄'로 처형됐다. 당시엔 처삼촌 정약용조차 "나라에 대한 반역"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이런 황사영에 대해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천주교회는 지난 3월 황사영을 133위 순교자 시복 대상자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지난 1일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위 주최로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 심포지엄도 열렸다. 참여 학자·사제들은 황사영의 죽음이 '순교'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종교를 위해 나라를 버렸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지만, 당시 박해를 고려할 때 달리 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동균 신부(서울대교구 반포4동 본당 주임)는 "사회 구원, 민족 생존이라는 차원에서 백서는 하나의 인권선언서로, 황사영은 차별 극복의 평등 실천가, 전제 군주제를 비판한 개혁가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황사영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병란 도모이자 반역이라는 점은 사실"(박광용 가톨릭대 교수)이지만, "당시 조선의 천주교 탄압이 인간 존엄성과 공동 선(善)을 거스른 것이라면 황사영의 행위 역시 불가피한 저항으로서 도덕적 정당성을 재평가받을 수 있을 것"(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장 유경촌 신부)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1909년 11월 중국 뤼순 감옥, "천주교인이 어찌 사람을 죽이느냐"고 빈정거리는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孝雄) 검찰관에게 안중근 의사는 답했다.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한다면 그것이 더 큰 죄다." 안 의사는 자서전에 거사 성공을 위해 매일 아침 기도를 했고, 이토 사망을 확인한 뒤 가슴에 성호를 그으며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썼다. 하지만 당시 조선 대목구장 뮈텔(1854~1933) 주교는 "천주교인은 살인에 관계하지 않는다, 안중근은 신앙에서 이미 멀어져 있던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안중근에 대한 평가는 해방 직후인 1946년 노기남(1901~1984) 당시 주교가 안 의사 추모미사를 공식 집전하며 전환점을 맞는다. 1993년 8월에는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이 안 의사 추모미사 강론에서 "일제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구책으로 행한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 의거로 봐야 한다. 일제 치하 한국 교회 어른들이 안 의사의 의거에 대해 그릇된 판단을 내려 여러 과오를 범한 데 대해 연대적 책임감을 느낀다"고 언급하면서 재평가 움직임도 탄력을 받았다.
지난 3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안 의사 순국 103주년 미사에서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안 의사에 대한 시복 운동 추진을 공식화했다. 염 대주교는 "안 의사의 독립투쟁과 의거는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의 생애와 일치시키고자 노력했던 신앙의 연장이며,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모범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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