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북해 함대:100 여년전 청일전쟁 완패 및 *정승조 합참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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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780회 작성일 2013-06-08 18:46본문
입력 : 2013.06.07 03:01
동학혁명의 불길이 타오르던 1894년 7월 25일 아침.
고종의 요청으로 조선에 온
청나라 북양(北洋)함대 순양함 제원(濟遠)호는
아산 앞바다 풍도 부근에서
일본 연합 함대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조선을 삼키려는 욕심을 품고 서해로 북상하던 일본 순양함들은
선전포고도 없이 청 함대에 속사포를 퍼부었다.
제원호는 일본의 압도적 화력을 반나절도 못 버티고 달아났다.
그렇게 청일전쟁이 시작됐다.
▶북양함대는
'서양을 모방해 부국강병을 도모하자'는 양무(洋務)운동 세력이
해군을 근대화하려고 1881년 창설했다.
서해를 3등분해
북양함대가 산둥성 이북을,
동양·남양 함대가 각각 장쑤·저장성과 광둥·푸젠성 연안을 맡았다.
군함은 청 실세 리훙장(李鴻章)이 영국과 독일 조선사에서 사들였다.
북양함대는
당시 아시아 최강이라는 순양함 정원(定遠)·진원(鎭遠)호를 비롯해
군함 열여덟 척을 갖췄다.
▶리훙장은
웨이하이(威海) 앞 유공도(劉公島)에 훈련소를 세우고
영국·독일 군사 전문가를 불러 와 해군을 길렀다.
그러나 훈련은 허술했고 여러 나라에서 사 온 장비는 서로 규격이 맞지 않았다.
서태후는
해군 방위비를 환갑잔치와 이화원 대리석 유람선 만드는 데 썼다.
북양함대는
풍도해전 두 달 뒤
압록강 앞바다 황해해전에 열네 척이 나서 다섯 척을 잃었다.
일본 전함 열두 척 중 한 척도 격침하지 못했다.
이듬해 2월엔 웨이하이 함대 기지까지 공격당했다.
▶북양함대의 참패는 중국인에게 치욕으로 남았다.
바다가 뚫리면서 대륙도 일본군 군화에 짓밟혔다.
중국은 그 쓰린 기억을 새기며 개혁·개방 후 해군력 증강에 힘을 쏟았다.
작년에 러시아 항공모함을 개조한 랴오닝함을 선보인 것도 그런 집념의 산물이다.
랴오닝함이 소속된 곳이 북해(北海)함대다.
1960년 러시아 지원을 받아 출범한 북해함대는
북양함대로부터 이름과 작전 해역을 이어받았다.
수도 베이징 방어와
한반도 유사시에 동원되는 최정예 함대라는 점도 같다.
▶중국에서 한·중 군사 회담을 가진 정승조 합참의장이
그제 산둥성 칭다오(靑島)의 북해함대 사령부를 방문했다.
정 의장은 작전처 당직실 핫라인으로 우리 제2함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두 나라 군이 긴밀히 협력해 서해에서 함께 작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톈중(田中) 북해함대 사령관은
"한·중 해군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황해를
우정의 바다,
협력의 바다,
평화의 바다로 만들자"고 했다.
1세기 전 무기력하게 바다를 내줬던 두 나라 군의 다짐에서
역사의 역설(逆說)과 진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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