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대간 투쟁은 허구다!--서강대 전상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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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800회 작성일 2013-06-03 23:46본문
“세대간 투쟁은 허구다”
정년연장·기초연금 확대 뒤
지난해 대선에서 50대의 높은 투표율이 주목을 받고, 이후 기초연금 재원 확보, 60살 정년연장 등이 논란이 되면서 이른바 ‘세대 갈등’, ‘세대간 투쟁’이 국내에서도 주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른바 ‘세대투쟁’은 역사적·경험적으로 근거가 빈약하며, 기존의 불평등한 구조를 은폐하고 희석시키기 위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지난 10일 한국사회학회 주최 특별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 ‘연금을 둘러싼 세대들의 전쟁, 세대 커뮤니케이션의 탈영웅화?’에서 “세대가 사회적 불평등, 혹은 비형평성의 문제를 서술하는 중요 개념으로 부상했다”고 지적하고, 세대간 투쟁론의 문제점을 우리보다 앞서 세대 논란이 벌어졌던 서구의 경험을 바탕 삼아 분석했다.
전 교수는 ‘세대투쟁론’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테제들로 정리했다. “저출산 고령화와 조기 퇴직이 복지국가의 근간을 훼손했다. 이기적인 노인세대가 문제다. 노인들이 선거인, 정당 같은 이익단체 대다수를 차지함으로써 위협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는 현재 경제활동인구의 부담을 극적으로 늘린다. 노인세대는 복지국가에서 이익을 보고 젊은이들은 손해를 본다. 이제 곧 심판의 날이 도래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세대투쟁론을 반박했다. 세대투쟁론은 ‘다수의 피부양자가 소수의 부양자들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산업사회 초기 성인 부양자에 비해 어린 피부양자들이 많았을 때, 아이들이 생산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부양자들의 부담을 줄였던 것처럼, 노인들이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부양 의무가 심각하게 늘지 않을 수 있다. 고령자들의 상황은 서로 너무 이질적이어서 하나의 정치적인 단위를 만들 수가 없다. 국가가 고령자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고령자 우대인 것이 아니라 국가 지원이 없을 경우 그들을 돌봐야 하는 자녀세대들의 부담을 경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연금과 의료보험이 노령자에 대한 특혜라면,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받는 공교육도 다른 세대에 대한 차별이다. 전 교수는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현실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세대투쟁론은 빈약하고 공허하다”고 결론지었다.
전 교수는 이와 함께 세대를 활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변화했다고 지적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세대갈등은 새로운 미래냐, 과거의 보존이냐 같은 ‘역사철학적’ 문제를 둘러싸고 이루어진 반면,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투자수익률’이 중심이 되는 ‘교환적 세대계약’이 강조된다. 즉 “내가 준 만큼 달라. 만약 투자한 만큼 받지 못하면 계약을 파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태도인데, 이는 결국 공적 연금의 철폐·축소, 사적 연금으로의 대체 요구로 이어진다.
이런 세대투쟁론은 어떻게 공론장으로 입성할 수 있었을까? 먼저 ‘정치적 기업가들’(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담론 생산을 들 수 있다. 즉, “정치가나 전문가가 (자신들이) 뜻하는 어떤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사회적 현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해의 대립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1980년대 미국에서 ‘세대형평성을 위한 미국인들’(AGE)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하여 세대형평성 논쟁이 일어난 배경이다.
전 교수는 또한 독일의 정치학자 크리스토프 부터베게를 인용해 세대 문제는 불평등 문제를 희석하기 위한 ‘사회정책적인 데마고기(선동적 허위선전)’라고 말한다. “사회국가의 축소를 도모하는 세력이 ‘세대형평성’을 통해 자신들의 정책적 주도권을 정당화한다. 세대형평성 논의의 정치적 효과는 비단 사회국가의 축소뿐이 아니고 불평등한 권력, 재산, 지배관계 대신에 세대를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상정함으로써 기존의 불평등한 구조를 ‘은폐’하는 것”이라고 부터베게는 주장한다.
전 교수는 세대투쟁론이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 이유로 불명확성과 단순성을 꼽았다. “명확하지 않기에 온갖 것에 세대를 쓸 수 있다. 한 젊은이의 일탈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 세대’를 욕한다. 한 어르신의 실수를 ‘그 세대’의 모습으로 확대한다.” 전 교수는 “세대는 또 ‘우리’와 ‘그들’을 아주 단순하게 갈라준다. 불명확성과 단순성은 정치의 도구로 제격이다”고 세대론의 ‘매력’과 ‘위험성’을 지적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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