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는^^마루타를 잊었나? 및 이에 대한 反論(日本대사관)
페이지 정보
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753회 작성일 2013-05-31 07:25본문
[김진의 시시각각]
아베, 마루타의 복수를
잊었나?
[중앙일보]입력 2013.05.20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신은 인간의 손을 빌려 인간의 악행을 징벌하곤 한다. 가장
가혹한 형벌이 대규모 공습이다. 역사에는 대표적인 불벼락이 두 개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독일 드레스덴이 불에
탔다. 6개월 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이들 폭격은 신의 징벌이자 인간의 복수였다. 드레스덴은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의 복수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일본 군국주의에 희생된 아시아인의 복수였다. 특히 731부대 생체실험에 동원된 마루타의 복수였다. 똑같은 복수였지만 결과는 다르다. 독일은 정신을 바꿔 새로운 국가로 태어났다. 하지만 일본은 제대로 변하지 않고 있다.
2006년 나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적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기서 유대인 100여만 명이 가스실에서 처형됐다. 모든 게 끔찍했지만 가장 충격적인 기억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가스실 벽면에 남겨진 손톱자국이다. 독가스가 퍼지자 유대인들은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다. 고통 속에서 그들은 손톱으로 시멘트 벽을 긁었다.
다른 하나는 형벌 방이다. 겨우 한 사람 정도 누울 수 있는 방에 4~5명을 가둬두었다. 유대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지쳐서 죽어갔다. 그들은 손톱으로 벽면에 글자를 새겨두었다. 가장 많은 단어가 ‘god(하나님)’이다.
이들 폭격은 신의 징벌이자 인간의 복수였다. 드레스덴은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의 복수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일본 군국주의에 희생된 아시아인의 복수였다. 특히 731부대 생체실험에 동원된 마루타의 복수였다. 똑같은 복수였지만 결과는 다르다. 독일은 정신을 바꿔 새로운 국가로 태어났다. 하지만 일본은 제대로 변하지 않고 있다.
2006년 나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적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기서 유대인 100여만 명이 가스실에서 처형됐다. 모든 게 끔찍했지만 가장 충격적인 기억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가스실 벽면에 남겨진 손톱자국이다. 독가스가 퍼지자 유대인들은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다. 고통 속에서 그들은 손톱으로 시멘트 벽을 긁었다.
다른 하나는 형벌 방이다. 겨우 한 사람 정도 누울 수 있는 방에 4~5명을 가둬두었다. 유대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지쳐서 죽어갔다. 그들은 손톱으로 벽면에 글자를 새겨두었다. 가장 많은 단어가 ‘god(하나님)’이다.
나치 히틀러의 악행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영국과 미국은 드레스덴 공습을
결정했다. 군수공장이 있었지만 드레스덴은 기본적으로 문화·예술 도시였다. 르네상스 이후 자유분방한 바로크 건축미술이 꽃을 피운 곳이다. 3일
동안 폭격기 5000대가 폭탄 60여만 개를 투하했다. 화염 폭풍이 도시를 삼켰다. 시민들은 불에 탔다. 어른은 어린이, 애기들은 병아리처럼
오그라들었다. 모두 3만5000명이 죽었다.
만주 하얼빈에는 731부대 유적이 있다. 박물관에는 생체실험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실험 대상은 마루타(통나무)라 불렸다. 진공 속에서 몸이 뒤틀리며, 세균 주사를 맞고 서서히, 묶인 채 폭탄에 가루가 되면서 마루타는 죽어갔다. 최소한 3000명이 실험에 동원됐다. 중국·러시아·몽골·한국인이었다.
마루타 비명이 하늘에 닿은 것인가. 45년 8월 원자폭탄 열 폭풍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덮쳤다. 가스실 유대인처럼, 마루타처럼, 작두로 머리가 잘렸던 난징 중국인처럼 일본인도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방사능 피폭까지 합치면 모두 20여만 명이 죽었다.
불벼락은 국가를 개조하고 역사를 바꿔놓았다. 드레스덴 공습 25년 후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날이었다. 그 후 독일 대통령과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과거에 대한 추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 검찰은 최근 아우슈비츠 교도관을 지낸 90세 남성을 체포했다.
그런데 일본은 다르다. 어떤 지도자들은 침략 역사를 부인하고 망언으로 아시아의 상처를 들쑤신다. 신세대 정치 주역이라는 사람이 위안부는 필요한 것이라고 버젓이 말한다. 아베는 웃으면서 731 숫자가 적힌 훈련기에 올라탔다. 그 숫자에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있는지 그는 모르는가. 아베의 언행은 인류 이성과 양심에 대한 생체 실험이다. 이제는 아예 인류가 마루타가 되어버렸다.
아베는 지금 환각에 빠진 것 같다. 엔저 호황과 일부 극우 열기에 눈이 가려 자신과 일본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짧은 지식으로 인류의 길고 깊은 지성에 도전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의 행동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신에게도 자유가 있다. 마루타의 원혼(寃魂)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그래서 일본에 대한 불벼락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도 신의 자유일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본 칼럼에 대해 중앙일보 서경호 대변인은 "김진 논설위원 개인의 시각과 주장이며, 중앙일보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만주 하얼빈에는 731부대 유적이 있다. 박물관에는 생체실험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실험 대상은 마루타(통나무)라 불렸다. 진공 속에서 몸이 뒤틀리며, 세균 주사를 맞고 서서히, 묶인 채 폭탄에 가루가 되면서 마루타는 죽어갔다. 최소한 3000명이 실험에 동원됐다. 중국·러시아·몽골·한국인이었다.
마루타 비명이 하늘에 닿은 것인가. 45년 8월 원자폭탄 열 폭풍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덮쳤다. 가스실 유대인처럼, 마루타처럼, 작두로 머리가 잘렸던 난징 중국인처럼 일본인도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방사능 피폭까지 합치면 모두 20여만 명이 죽었다.
불벼락은 국가를 개조하고 역사를 바꿔놓았다. 드레스덴 공습 25년 후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날이었다. 그 후 독일 대통령과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과거에 대한 추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 검찰은 최근 아우슈비츠 교도관을 지낸 90세 남성을 체포했다.
그런데 일본은 다르다. 어떤 지도자들은 침략 역사를 부인하고 망언으로 아시아의 상처를 들쑤신다. 신세대 정치 주역이라는 사람이 위안부는 필요한 것이라고 버젓이 말한다. 아베는 웃으면서 731 숫자가 적힌 훈련기에 올라탔다. 그 숫자에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있는지 그는 모르는가. 아베의 언행은 인류 이성과 양심에 대한 생체 실험이다. 이제는 아예 인류가 마루타가 되어버렸다.
아베는 지금 환각에 빠진 것 같다. 엔저 호황과 일부 극우 열기에 눈이 가려 자신과 일본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짧은 지식으로 인류의 길고 깊은 지성에 도전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의 행동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신에게도 자유가 있다. 마루타의 원혼(寃魂)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그래서 일본에 대한 불벼락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도 신의 자유일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본 칼럼에 대해 중앙일보 서경호 대변인은 "김진 논설위원 개인의 시각과 주장이며, 중앙일보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김진의 시시각각] 아베, 마루타의 복수를 잊었나중앙일보(조판) 2013년05월20일(월) 오전 12:21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신은 인간의 손을 빌려 인간의 악행을 징벌하곤 한다. 가장 가혹한
형벌이 대규모 공습이다. 역사에는 대표적인 불벼락이 두 개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
중앙일보(조판)만
검색 관련기사보기
*******************
[반론 기고]'선과 악', 역사대화 가로막는다일본 내에서
제기된 비판을 진지하고 무겁게 받아들여
미치가미 히사시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이 보내온 기고문을 싣습니다. 편집자
이웃 국가와 감정의 마찰이 잦은 근본 원인은 ‘내가 상대방을 잘 안다’는 착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지만 실은 서로 잘 알지 못한다. 단편적인 이야기는 많이 알기에 ‘잘 알고 있다’고 믿어버리기 쉽다. 서울의 일본문화원을
방문한 분이 “일본에 문화가 있는 줄 몰랐다. 너무 멋지다. 가족을 데리고 오겠다”고 말했다. 도쿄의 한국문화원에도 같은 일이 있다. ‘이웃
나라에 훌륭한 문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8월 이후,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한국에서는 일·한 교류
이벤트가 중단된 일이 거의 없고 학생 자원봉사자는 예년보다 많이 몰렸다. 다른 이웃 나라에서처럼 일본 기업들이 시위로 공격당하는 일도 없었다.
일본인들은 이를 잘 모른다.
일본의 극히 일부에서 외국인을 배척하려는 언동이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국회에서 그런 언동은 “매우 유감이다” “타국 사람들을 비방중상하며 우리가 우월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결국은 스스로를 욕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총리는 청소년의 국제 교류와 여성의 활약도 열심히 추진한다. 이런 사실이 한국에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 즉 나는 잘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지혜는 어느 세상에서나 필요하다. 반대로 자신이 상대를 충분히 안다는 믿음, 선입견과 편견으로 비뚤어진 정의감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일이 가장 위험하다. 이웃 국가 간에는 서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쉽다.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지낸 글루크 박사는 말했다. “전승국도 패전국도 단순하고 자기중심적인 기억, 민족의 스토리를 원한다.” “역사는 기억에 져서는 안 된다. 폐쇄적인 민족의 기억이 아니라, 복잡한 사실을 다각적으로 보는 것이 역사다.” 이야말로 역사 인식의 핵심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한국 정부는, 전쟁 중의 잔혹행위에 대해 베트남에 공식 사죄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아버지를 악인을 만드느냐’는 반대 속에서도 영단을 내렸다.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은 명확하다. 아시아 각국에 큰 피해와 고통을 주었음을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분명히 했다. 이 또한 ‘아버지와 선조의, 국가의 명예를 더럽히는가’라는 비판 속에서였다. 아베 총리도 역대 내각의 입장 전체를 계승할 생각임을 국회에서 분명히 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부인한 적도, 한 번도 없다. 어떤 나라든 ‘민족의 영광’으로
역사를 보지 않고, 힘이 들어도 용기를 가지고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 기억에 지지 않는 길이다. 이는 결코 굴욕이 아니라 공정함과
용기를 가진 그 국가에 대한 평가를 높일 것이다. 유럽에서 역사대화가 진전된 것은 각국에 ‘민족주의적 역사 교육은 좋지 않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국 중심의 독선적·배타적인 관점이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실 파악을 그르치고 타국에 대한 반감을 조성할 위험을 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민족사관적 발상이 남아 ‘선과 악’으로만 보기 쉽다. 이것이 역사대화를
가로막는다. 그런 점에서 20일자 중앙일보에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신의 징벌이었다’라는 칼럼이 실린 것은, 유일한 피폭국인 일본으로서 절대 용인할 수 없으며 매우 유감이다. 단, 동시에 한국 정부가 그와 같은 인식은 한국 정부 및 한국 일반 국민의 인식과 차이가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점은 유념하고 있다. 1965년 이후 축적된 양국의 우호협력도 훌륭한 역사다. 일본은 앞으로도 겸허히 역사를 되돌아보고 인간의 고통을 아는 국가로 계속 있으면서 활력을 되찾아 대외교류와 발신을 강화할 것이다. 역사란 학교에서 배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가 땀 흘려 만드는 것이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도 말했다. “10년 후에는 오늘 일도 역사가 된다. 일·한의 한 사람 한 사람이 협력해 날마다 좋은 역사를 만들어 가자”고. 미치가미 히사시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