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지난 23일 새벽 자택 부근인 북한산에 부인을 부축해 함께 오르며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부인을 위해 가곡을 불러주고 있다. 백 소장은 부인을 쉬게 하곤 나름대로 터득한 건강 다지기 몸놀림을 하고 있다. 큰 나무에 등을 쳤고, 뒷짐을 진 채 앉았다가 일어서고, 두 다리를 하늘 높이 번갈아 올렸다. |
[건강과 삶]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당하면서도 ‘팔팔’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백 소장이 공개하는 ‘특별한 건강 비결’을 알아본다. “거친 삶이지. 내게 무슨 건강이 있겠어.” 이제 팔십의 나이, 평생을 사회의 부조리와 독재, 그리고 통일을 위해 싸운 몸이다. 지금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게 하는 살을 찢는 고문에 대한 악몽이 생생하기만 하다. 고문의 짙은 후유증은 정신뿐 아니라 육체의 대부분을 괴롭히고 있다. 비가 오려고 하면 온몸의 관절이 욱신거린다. 특히 집중적으로 고통을 당했던 무릎관절과 고관절은 잠시도 편하게 앉아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기완(80·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선생은 ‘팔팔’하다. 사자후를 내뿜던 목청은 지금도 여전히 강하게 울린다. 아침마다 동네 산을 오르내리고, 서서 윗몸을 구부리면 손끝이 아니라 팔꿈치가 땅에 닿을 만큼 유연하다. 평생을 자신과 자녀를 위해 희생해 온 아내(김정숙)가 관절염으로 고생하자, 이제는 아내를 부축해 산을 오르게 할 만큼 건강하다. 지금도 하루에 서너건의 각종 시위 현장에 참가해 선봉에 서서 시위대를 격려한다. 비나리가 뭔지 알아?혼자서 응얼거리는 거야
세상을 향해 시를 읊조리지
정말 중요한 건 꿈이야
삶의 결단을 가능케 하지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너도나도 ‘건강’ ‘건강’ 하는데, 남의 삶과 세상, 자연까지 망쳐가며 제 건강만 보살피겠다고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라며 고개를 흔든다. 백 선생은 어릴 때 아버지와 고향인 황해도 은율에서 남하했다. 풍찬노숙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신발이 없어 맨발로 하는 그의 공차기는 운동화를 신은 선수들보다 강했고, 정확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8살 때 여학생을 강간한 미군을 상대로 맞짱 떠서 덩치가 큰 미군을 쓰러뜨린 일화는 그의 강한 다리를 증명하기 충분하다. “먼저 미군 놈의 주먹을 맞고 쓰러졌어. 이대로 지는 것은 비겁하게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어났지. 달려드는 미군을 한 발길질에 쓰러뜨렸지. 쓰러진 미군의 콧등을 짓밟으며 외쳤어. ‘마침내 한국애가 썩어 문드러진 양키를 꺾었구나’라고.” “나는 건강을 챙기는 게 아니고 내 건강을 망치는 것과 싸우고 있다”고 백 선생은 말한다. 첫째는 고문 후유증과 싸우는 것이다. 고문당할때 맞은 매의 생채기가 너무나 심해 “이봐, 아스피린 한 알만 주고 나서 또 때리면 안 돼”라고 말했더니, “이곳의 아스피린은 이거다”라며 더욱 때려 그 뒤 14년 동안 한 달 이상씩 입원하길 14번. 요새도 관절염과 신경통, 당뇨, 심장병, 위장 장애까지 겹쳐 여전히 유신 잔재와 싸우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부패하고 부도덕한 정권과의 싸움이고 셋째는 그릇된 주거환경과의 싸움이다. 몇 해 전 살던 집을 허물고 ‘시멘트 상자’인 아파트로 강제로 내쫓겨났다. 백 선생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독특한 노력을 한다. “꿈지락이야. 꼼지락은 손가락만 움직이는 것이고, 꿈지락은 온몸을 움직이는 것이지. 맨손 놀리기라고 표현하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 위에서, 점심 먹고, 또 자기 전 꼭 20분간씩 온몸의 관절과 근육을 운동시키지. 좁은 감옥의 독방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익혔지. 그리고 아침밥엔 반드시 날된장 한 숟갈, 토마토 한 알, 미역이나 다시마 따위의 바다풀 한 조박을 꼭 먹어. 그리고 ‘비나리’야. 비나리는 혼자 응얼거리는 거야. 세상을 향해 시를 읊조리는 것이지.” 백 선생은 몸의 건강은 정신 건강과 하나라고 했다. 정신적 건강이 육체적 건강보다 중요하다며 자신만의 정신 건강 ‘비법’을 이야기했다. 그 첫째가 울고 싶을 때 실컷 우는 것이라고 한다. 재작년(2011년)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을 살려내자는 희망버스를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탄 것도, 쌍용차 노동자 싸움 등 노동 현장마다 찾아가는 것도 내심 울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란다. ‘펑펑’ 우는 것은 거짓으로는 안 된다.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울음이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한다고 믿는다. 지난해 8·15날, 맏딸(백원담 성공회대 교수)과 친한 가수 전인권이 낮에 전화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러주자, 전화기를 든 채 목놓아 울어 주변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또 침략과 억압·착취, 부정·부패, 변절·기회주의를 보면 참지 않고 노여워하는 것이 건강 비법이란다. 부정·부패를 보고도 참는 것은 인간적 도덕에 대한 반역이요, 반동의 미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야, 이것은 정말 중요한 부문인데,‘바랄’을 가져야 해. 바랄은 바로 꿈이야. 벌나비도 못 오르는 높은 산 바위틈에 핀 한 송이 진달래꽃, 그 진달래는 아직 캄캄한 새벽인데도 눈을 뜨고 높은 데 있다고 굽어보지도 않고 꽃잎만 활짝 열고 있어. 하늘의 나래 지친 별들에게 내려와 쉬라는 거지. 그러다가 결국엔 지지만 절대로 두려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아요. 왜, 꽃의 삶은 피었다 지는 것이란 걸, 결단할 줄 알기 때문이야. 그 결단 속에는 비록 쪼매난 꽃 한 송이지만 하늘의 별들을 생각하면서 살다가 지는 것, 그게 ‘바랄’인데 그게 내게 최고의 건강 비법이야.” 격정적인 목소리로 ‘바랄’을 이야기하던 백 선생은 그때를 되새겼다. “서빙고에서 고문당해 두 무릎은 마치 썩은 살구나무처럼 수박통만하게 부어 있고, 모진 구타에 나도 모르게 피똥을 싸버렸어. 희미해진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는데 ‘왱왱’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 추운 겨울 파리 한 마리가 나를 찾아왔어. 너무 반가웠지. 그 파리에게 ‘야 파리야, 내가 떨고 있지. 고문이 두려워서 떠는 게 아니야. 앙갚음하려는 분노에 떠는 거야. 네가 나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 좀 해주렴. 살아 있는 목숨이라곤 너밖에 없잖아’라고 말했어. 그리고 피똥을 손가락에 묻혀 벽에 써내려갔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탄생이었다. “요즈음 젊은이들, 허무주의에 병들어 가고 있어.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현대문명은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쪼개 세상을 종속시키고, 내 것이 없는 이들을 파편으로 만들어 종속시켜. 그게 허무주의의 모태야. 젊은이들이여, 이 썩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려 들질 마시라. 그것은 뿌리째 썩어 세상도 썩히는 썩물(몹쓸 병) 허무주의이니, 젊은이여, 그 허무주의를 깨트리시라. 그게 참된 건강이야.” ‘생명 아닌 것들에 맞서는 것이 생명의 창조적 건강’이라는 백 선생의 얼굴이 환해진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