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정치적 몸살을 앓게 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보다 중국식 중앙집권적 권위주의가 더 효율적인 게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며
민주주의 바람도 주춤하는 추세다. 아랍의 봄은 표류하고,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권위주의 체제가 서서히 견고해지고 있다. 탈냉전 후
전세계를 휩쓴 민주주의 물결은
글로벌 경제위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퇴조기를 맞은 것일까. 전세계 민주주의 운동을 지원하며
북한 민주화 운동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는 칼 거슈먼(70) 전미민주주의기금(NED) 회장을 만나 글로벌 민주주의와 한국의 역할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4월 말 몽골에서 열린 민주주의공동체(CD) 회의 참석 후 5월 초 서울을 찾았는데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퇴조기를 맞고 있는
듯하지만 한국 등 아시아가 새로운 민주주의 운동의 거점이 될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피력했다. 인터뷰는 지난 1일과 3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몽골 방문 후 서울로 왔는데 몽골에서 일정은.
“4월 26∼29일 CD 회의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렸어요. CD 회의는 정부각료회의, 의회, 비정부기구(NGO)·시민사회,
기업, 청년·여성 등 5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는 NED 회장 자격으로 CD의 NGO·시민사회 회의에 참석해 민주주의
연대활동에 대한 얘기를 했지요.”
CD 회의는 미국의 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가 주도해 조직한
국제회의로, 국민들이 직접 비밀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나라들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0년 6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첫 회의를 연 뒤 2년마다 전세계 각국에서 열리고 있는데 2차회의는 2002년 서울에서
열렸다. 이번 7차 회의는 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됐다.
―몽골의 민주주의 이행과정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몽골의 민주주의는 아주 놀라운 수준으로 진전하고 있습니다.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1989년 민주혁명의 리더였던
인물입니다. 2009년 대선은 아주 어려운 선거였지만 몽골의 민주주의는 전진 중입니다. 전체적으로 민주적인 절차가 존중되고 있습니다. 광산자원이
많아 부패가 큰 문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에 대해선 자부심이 크더군요. 주목되는 점은 몽골이 키르기스스탄의 민주주의를 지원하고 미얀마에도
그 경험을 전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아시아 민주주의
네트워크(ADN) 형성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몽골은 이미 아시아 민주주의
네트워크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는 ADN이 아시아 각국의 민주주의 관련
단체를 연결하고 통합하는 기구라고 설명하면서 오는 10월 24∼26일 서울 민주주의 포럼 때
정식 발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아시아 지역 각 정부 간 네트워크와 의회 네트워크, 다양한 시민사회 포럼 등을 서로 연결하는
통합조직인데 국내에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동아시아 연구원, 한국인권재단, 한국여성정치연구원이 ADN 발족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시아 민주주의 확산 운동에서 한국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은 아시아 민주주의 확산운동의 허브입니다.
한국이 이미 ADN 설립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 역할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의 중심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NED가 북한인권 및
민주화 운동에 1990년대 중반부터 지원해왔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지.
“서울에 와서 통일부를
비롯해 북한 전문가들을 만나보니 김정은 체제 출범 후 탈북자들이 많이 줄었다고 하더군요. 2012년 탈북자가 그 전해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북한체제가 탈북을 아주 강력하게 저지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탈북자 문제는 북한 체제의 자신감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존재가 인공위성 사진이나 탈북자 증언 등을 통해 외부세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북한이 그것을 부정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그것도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니 몇 개는 폐쇄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치범 수용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아주 우려하고 있습니다.
재소자들이 더러는 다른 곳으로 배치되고 더러는 살해된 것으로 압니다.”
―요즘 중국 안팎에서는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는데 중국이 북한의 변화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십니까.
“중국은 글로벌 파워이지만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고 돈과
영향력 확장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세계에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변화도 원치 않습니다. 어떤
불안정 상태가 초래되는 것도 원치 않고, 남북한이 통합되는 것도 원치 않고 있습니다. 중국은 국제난민지원 협약에 대해 서명을 한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을 지속적으로 북한으로 송환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송환된 후 정치범 수용소로 가거나 살해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동시에 국제협약 위반입니다. 중국은 글로벌 파워로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제언이
많지만 중국 당국은 이 같은 국제사회의 호소를 무시하고 탈북자 강제북송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이 같은 행태는 NED와 아주 갈등을
빚는 대목입니다. 중국이 더이상 국제법을 위반하지 말도록 국제사회가 나서야 합니다.”
―중국에 대해 어떻게 압박을 가하는 게
효과적일까요.
“중국이 바뀔 때까지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지속적으로 변화를 촉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변화돼야 북한의 변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중국사회 곳곳에선 수많은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실제적으로 중국이 대변화의 시기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NED가 발간하는 ‘데모크라시 저널’에 최근
중국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논문이 11편 실렸는데 전체 필자들의 결론은 중국의 균형상태가 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처음으로 중국이 체제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변화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체제의 유연성이
이제 한계에 봉착하는 듯합니다.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점점 많은 정보를 얻게 되면서 대중적 시위나 항의 빈도가 급증하고 있고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직장을 얻지 못해 불만이 점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중산층들은
관료들의 부패로 아주 화가나 있는 상태인데 중국 부유층은 재산을 해외로 태연스럽게 빼돌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은 이미 국방비보다 국내
치안비용이 더 많은 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중국 자체가 아주 불안정한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중국이 점진적으로 평화적으로 변화하기 원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중국이 평화적인 체제변화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근거는.
“중국의 반체제인사들은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이 77그룹을 만들며 체제 개혁을 시도했던 것처럼 민주적 중국의 비전을
만들었습니다. 그 핵심인물이 반체제 인사 류사오보(劉曉波)인데 지금 수감 중이죠. 류사오보가 2010년 노벨상을 받을 때 내가 그 현장에
있었는데 그의 의자는 비어있었지요. 류사오보 이후 누구도 공개적으로 중국의 평화적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NED는 1990년대부터 미얀마와 북한에 대해 지속적인 지원을 해왔는데 미얀마는 변화의 대장정을 시작한 반면, 북한은
여전히 기존체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북한변화에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우리가 세상변화를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이상, 북한이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는 누구도 예측을 할 수 없죠. 북한민주화운동 지원사업은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됐으니 이제
겨우 15년 정도 진행된 것입니다. 15년 전과 비교해볼 때 북한의 전체주의적 체제가 약간 부식되기 시작한 것은 확실합니다. 탈북자
2만5000명이 한국에 정착했는데 이것은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당시는 완전한 침묵의 시대였습니다. 탈북자가 미
의회의 청문회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달라졌죠. 북한에 장마당이 수십 개 생기고, 휴대전화 이용자 수가 늘면서 정보의
소통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정보교환을 장마당을 통해, 휴대전화를 통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정확하게 봐야 합니다. 전체주의 체제는 겉으로 견고해 보이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것 같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아랍의 혁명을 보세요.
그 변화의 순간을 잘 봐야 합니다. 한 사회의 내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동력이 무엇인지 잘 봐야 합니다.”
―아랍의 봄에 대한
낙관론은 사라지고 이제는 비관론이 팽배한 상황인데.
“어떤 변화가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입니다. 중동은 자유민주주의
경험이 없는 지역입니다. 그런 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시행착오가 더 많을 것이고 시간이 더 필요하겠죠. 리비아의 경우 40년 철권통치를 해온
무아마르 카다피가 물러난 뒤 여전히 군벌들이 득세하고 치안이 부재하긴 하지만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집트의 경우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난 이후 민주화 혁명이 무슬림형제단 세력에 의해 하이재크되어 아주
유감입니다만, 리비아는 경이롭습니다. 어느 나라든 민주화의 길은 길고 험난했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1776년 독립이 된 후 1789년 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됐는데 그 이후 노예해방을 겪으며 남북전쟁을 치렀습니다. 많은 피를 흘린 내전이었는데 그 이후에도 흑백차별이 시정되기까지 100여
년이 필요했습니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멀고 험합니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도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얘기하면서 다시
몽골에서 겪은 감동적인 한 장면에 대해 얘기했다. 모든 이들이 실패국가로 비판하는 파키스탄의 민주주의에 대한 파키스탄 여성의
얘기였다.
“몽골 민주주의공동체 회의 때 나는 아주 감동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시민사회
모임에 참석한 젊은 파키스탄 여성이 ‘한국에서는 파키스탄이 실패한 국가이고, 민주화 가능성도
없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진화 중이고 우리는 배우는 중이다. 그러니 기다려달라”고 하더군요. 그의 말대로 민주주의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를 통해 사람들이 배우고 민주주의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서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폭력 없이 문제를
조정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게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아마도 파키스탄 여성은 귀국 후 그렇게 민주주의를 주장하다가 피살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국민들이 그런 의지를 갖고 실천을 해나가려는 것, 그게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먼 여정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랍의 봄은 분명 역풍을 만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랍 예외주의를 얘기합니다. 아랍과 민주주의는 서로 조응되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아랍의 봄 물결은 그런 아랍에도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무바라크와 카다피, 바샤르 알아사드 등 아랍의
독재자들을 몰아낸 뒤 무엇을 할지가 물론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 변화의 싹은 트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이 물러난 뒤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에 대해 민주주의의 교육적이고 모럴적 측면, 경제제도적 측면,
금융적 기반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선 국제사회에서 지원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NED가 해온 일이고, 이제 한국도 여기에 함께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 퇴조기라는 지적도
있는데.
“글로벌 상황을 볼 때 민주주의의 확장기가 있고 퇴조기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현황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러시아도 점점 더 억압적인 권위주의체제로 회귀하고 동유럽지역은 물론 서유럽지역에서도
민주주의의 퇴행적 측면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중동 또한 마찬가지구요. 그렇지만 아시아 지역만큼은 예외입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20년 민주주의는 아시아에서 발전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아시아국가들이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시아가 민주주의 발전사에 아주 획기적인 시대를 열 것입니다. 특히 한국은 이미 1980년대에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준 나라이고 지속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만큼 민주화에 관한 인적 자원이나 경험이 많아 아시아 각국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할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민주주의의 글로벌 퇴조기 속에서도, 아시아의 민주주의에
대해선 낙관하시는 겁니까.
“앞으로 10∼20년 민주주의의 진보는 아시아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하고 이런
모멘텀이 유지된다면 세계로 확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5월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아산플래넘 2013의 마지막 섹션 ‘민주주의와 경제위기’의 패널로 참석해서도 아시아 민주주의가 세계의 모범이 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민주주의가 여러 문제를 갖고 있지만, 민주주의야말로 인류역사상 유일하게 정당성을 가진 합법적인
정치 제도입니다. 특히 민주주의는 위기에 탄력성 있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권위주의가 갖고 있지 못하는 점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위기를 맞았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며 해법을 모색하게 되지만, 권위주의 체제는 위만 바라보기 때문에
체제의 유연성이랄까 탄력성이 떨어지는 것이죠.”
―올해 70세인데도 여전히 현역으로서 NED를 이끌고 있는데 평생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민주주의의 향상을 위해 헌신하는 그 열정, 그 동기는 무엇인지.
“내가 뭘 하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자각에 따라
행동해온 것일 뿐입니다. 많은 혜택을 받은 미국에서 태어나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청년시절부터 했죠. 미국인들은 민주주의가
글로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789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어보면 민주주의는 미국적 특수현상이 아니라 글로벌세상에 전파돼야 하는
것이며 미국인들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나는 그 워싱턴의 이상을 실천하고 있는
거지요.”
―1960년대에 예일대, 하버드대
대학원 등 동부의 아이비리그를 거친 지식인으로서 평생 사회운동가로서 살아오셨는데, 인생에
영향을 미친 분이 있다면.
“미국인으로서 세상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자각을 갖게 된 몇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우선 부모님으로부터
그렇게 배웠고, 20대 때 흑인 민권운동가 바이아드 러스틴을 만나며 그런 신념을 굳혔습니다. 나는 학자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지만, 러스틴에게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 현장운동가로서, 활동가로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1960, 70년대 노동운동과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하던 활동가가 보수주의자인 로널드 레이건이 만든 NED에 초대 회장으로 부임한 것은 큰 전환이 아닐까요.
“NED는 커다란
지붕(big tent)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하는데 있어 보수냐 진보냐는 구분이 사실상 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과도 함께 일합니다. 나는 민주주의자입니다. 민주주의는 좌냐 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삶의 한 양식입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011년 별세했을 때, 아무런 형용사 없이 ‘민주주의자 김근태’라고
기록해 남다른 감회를 줬는데.
“민주주의자라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어서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 아래 뭉쳐야 합니다. ”
―한국 첫 여성지도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유럽도 이미 유럽 NED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이 한국판 NED를 만들면 한국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선도적으로 이룩한 국가로서, 아시아 민주주의의 코디네이팅 센터가 될 수 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2년 6월 8일 웨스트민스터에서 왜 우리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동적 연설을 한 뒤 NED를 설립했는데 박 대통령도 글로벌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노력했던
레이건처럼 아시아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한 일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박근혜 시대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 리더국가로서 그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인터뷰 = 이미숙 국제부장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