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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쌍둥이 열전 및 50년대 스타 ^^위쌍숙키운 **목일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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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962회 작성일 2013-05-17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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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탁구 국가대표 선수로 이름을 떨쳤던
위쌍숙 및 위순자 자매를 키웠던 분을 기억하시나요?
**************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셔요∼

동요 ‘자전거’ 쓴 목일신님을 아시나요?

탄생 100주년… 산문-동요집 나와
윤이상이 곡 붙인 동요 4편 첫공개

1970년대에 목일신(가운데)이 정구대회 우승 트로피를 모아 놓고 자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목일신은 교사를 본업으로 하면서 동요작가, 정구 감독, 탁구 감독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소명출판 제공
photolink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셔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친숙한 동요 ‘자전거’를 작사한 동요작가
목일신(1913∼1986)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쓴 동요와 동시, 산문을 모은 ‘목일신 전집’과 ‘목일신 동요곡집’(소명출판)이 동시에 출간됐다.

목일신
전남 고흥 출신으로 1930년대에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으나
문단과 거리를 두고 작품집도 남기지 않아 오늘날 잊혀진 인물이 됐다.
그는 보통학교 5학년이던 1928년 동아일보에 동요 ‘산시내’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화여중고에 교사로 재직하던 1950년대에는
탁구선수이자 코치, 감독으로
위쌍숙,위순자 자매를 탁구 국가대표로 키웠고,
1960년에는 배화여중고 연식정구부 감독으로 동아일보 주최 제38회 여자연식정구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다.

목일신은 목사였던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다 동요 ‘자전거’의 가사를 지었다. 그가 쓴 ‘자전거’ 가사는 오늘날 널리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르다.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셔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찌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 어물어물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이번 전집과 동요곡집을 엮은 이동순 전남대 인문학연구소 교수는 “‘자전거’의 가사가 후대에 구전에 의해 자연스럽게 바뀐 것인지, 누군가가 개사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며 “목일신 선생은 가사가 바뀐 것을 다소 섭섭해했다”고 말했다.

동요곡집에는 목일신의 글에 작곡가 윤이상이 곡을 붙인 동요 4편이 처음 공개됐다. 곡목은 ‘푸른 수풀’ ‘해지는 강변’ ‘불어라 봄바람’ ‘빤딧불’로, 1930년대 ‘윤이상 동요작곡집’에 실렸으나 동요작곡집이 유실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목일신
중학교 2학년이던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한 달간 감방 생활을 했던 일화를 1974년 배화여중고 교지 ‘배화’에 남겼다.
한창 창작욕이 왕성하던 그는 감옥에 몽당연필 하나를 몰래 감추고 들어가 하루에 한 장씩 배급되는 휴지 조각 위에 작품을 썼다. 감방 안에서는 창문을 통해 하늘과 구름만 보였기에 ‘하늘’ ‘구름’ ‘꿈나라’ 등의 작품을 써서 출옥 후 동아일보에 발표했다는 일화다.
**************
한국의 탁구
한국에 탁구가 도입된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왔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1924년 1월 경성일일신문사(京城日日新聞社)가 주최한 탁구대회가 한국 최초의 공식 대회이며, 1928년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가 주최한 제1회 조선탁구선수권대회가 한국인이 주도한 최초의 대회였다.

1932년 7월 경성치과의학전문 탁구부의 최초 일본 원정, 1934년 계림탁구구락부(鷄林卓球俱樂部)의 조직 등은 한국의 탁구 발달사에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1936년부터 일본식(연식) 공 대신 유럽식(경식) 공을 사용함으로써 기술 향상을 한층 더 이룰 수 있었다. 같은해 제1회 전조선경식탁구대회에 등장한 최근항(崔根恒)은 국내대회 및 제5회 전일본탁구선수권대회 등에서 우승하여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1945년 9월 발족한 조선탁구협회는 1947년 9월 KTTA(Korea Table Tennis Association:대한탁구협회)로 개칭하고, 제1회 전국종합탁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1950년 4월 ATTF(Asia Table Tennis Federation:아시아탁구연맹)와 ITTF(International Table Tennis Federation:국제탁구연맹)에 가입하여 1952년 11월 싱가포르(Singapore)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 처음 참가하였고,
1954년 1월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경기단체로 가맹하였다.

같은 해 제3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경호(李慶浩)·위쌍숙(魏雙淑)이 혼합복식에서 우승,
1957년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여자개인전 우승과 준우승,
처녀 출전한 1956년 제23회 및 1959년 제2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단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또한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지금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Sarajevo)에서 개최된 제32회 대회에서 여자단체전을 석권하여 한국 구기 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하였다.

1984년 10월 ATTF(Asia Table Tennis Federation:아시아탁구연맹)에 가입하였다.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녀 모두 우승,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한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 남자개인 단식에서 금·은메달, 복식에서 동메달, 여자개인 및 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
스포츠] 이동윤 선임기자의 스포츠 인사이드 게재 일자 : 2011년 12월 28일(水)
스포츠계 쌍둥이 선수 실력에 우열 생기는 이유는?
형제 또는 자매가 같은 운동을 하는 경우는 비교적 흔합니다.
축구만 해도 여승원-동원, 하대성-성민, 남궁도-궁웅, 이상돈-상호, 이범영-범수 등등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쌍둥이는 드뭅니다.
축구에서 1970년대 김강남-성남 쌍둥이 형제가 태극마크까지 같이 달고 활약했던 것은 다들 아실 것이지만 그 외 다른 쌍둥이는 언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제가 잘 아는 종목 중 탁구만큼 쌍둥이 선수가 많은 종목은 없는 것 같습니다.
목포여중-이화여고-한국은행
팀에서 활약했던 위쌍숙
1950년대 여자 탁구
최고 스타였습니다.
위쌍숙에게는 역시 탁구선수인 위순자라는 쌍둥이 동생이 있습니다.
흔히들 ‘위쌍숙-위쌍순’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 잘 아는 분께 확인해 보니 동생은 순자가 맞답니다.
아마 쌍둥이라 ‘쌍’자 돌림으로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1960년대 배화여고-조흥은행에서 활약했던
신문자-명자도 쌍둥이입니다.
이들보다 약간 후배인 노선숙-후숙 자매 역시 쌍둥이입니다.
동덕여중·고에서 뛰었던 김계순-계선
한가락했던 쌍둥이 탁구선수였습니다.
안재형과 부산 영선초교-남중-광성공고 동창인
설진태-진기는 형제 쌍둥이 선수였고
인천여상을 나온
홍순남-난영도 쌍둥이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이들은 다 은퇴했지만 현역 선수도 있습니다.
대표 상비군인 박영숙(마사회)과 그 언니인 명숙(용인대 3년)
입니다. 둘이 한 팀에 있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죠.

쌍둥이 형제나 자매는 복식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
똑같은 외모 덕을 많이 봤습니다.
설진태-진기 형제 중 형은 이질 러버를 사용해 리시브가 좋았고 동생은 서브가 좋았답니다.
복식은 교대로 서브를 넣고 리시브를 해야 하는데 이들은 쌍둥이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형은 리시브, 동생은 서브를 전담했답니다.
둘의 외모가 분간하기 어려웠고 당시는 배번도 없을 때여서
둘은 심판을 속이기 위해 점수가 나면 환호하는 척하고
정신없이 서로 위치를 바꿔
상대 선수와 심판 모두 속아 넘어갔다고 합니다.
홍순남-난영도 복식을 할 때 두 번씩 리시브를 한 적이
있다고 현정화 감독이 이르더군요.
박명숙도 세계랭킹이 높았던 동생 덕을 볼 뻔 했습니다.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출전했는데 주최 측에서
동생 영숙인 줄 알고 세계랭커 대접을 해
예선 면제 혜택을 받았지요. 나중에 이를 알아차린 일본팀의 이의 제기로
예선을 치렀습니다.

상대 선수나 심판도 감쪽같이 속는 외모에 능력도 아마 비슷하게 태어난 쌍둥이지만
쌍둥이 실력에도 반드시 우열이 있습니다.
동생이 더 낫다는 속설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깔’이 있는 측이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결국 앞선다는 데 다들 동의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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