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전 충청도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부쳐진 편지는 과연 얼마나 걸렸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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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957회 작성일 2013-03-17 19:26본문
마리 니콜라 앙투완 다블뤼. 길고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우리 역사에 깊은 자국을 남긴 이름이다. 1845년 조선에 들어와 21년간 선교활동을 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한 프랑스인 신부. 수천명의 천주교인들과 함께 죽은 9명의 선교사들 속에 그의 이름이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은 뒤이은 병인양요의 원인이 된다.
이 책은 다블뤼 신부가 쓴 편지의 여정을 뒤쫓는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세계 어느 누구에게든 자기 소식을 전하는 일이 단 몇 초 만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150년 전, 나라 밖으로 소식을 알린다는 것은 길고도 험난한 일이었다.
다블뤼 신부가 조선에 온 지 15년이 흐른 1860년경, 그가 있던 충청도에서 파리로 보내는 편지는 짐꾼을 통해 서해까지 이동한다. 이때부터 긴 바다 여행이 시작된다. 조선 배를 탄 편지는 서해상에서 중국 어선과 만나고 이때 편지는 중국 어선으로 건너간다. 편지는 당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조계’였던 상하이로 향하고, 상하이에서 다시 상선이나 군함에 실려 홍콩으로 이동한다. 무역선을 타고 홍콩을 출발한 편지는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의 항구 도시 고아와 뭄바이를 차례로 거친다. 당시 고아는 아직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인도에선 영국의 식민 지배에 반대했던 인도인 병사들의 저항운동 ‘세포이 항쟁’이 막 진압된 뒤이다. 길고 긴 바다 여행은 이집트 수에즈 항구에서 잠시 쉬어간다. 당시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뚫리기 9년 전. 훗날 영국은 운하 보호 등을 이유로 군대를 파견해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가진 이 지역을 점령할 것이다. 편지가 거치는 곳곳마다 제국주의의 확장과 그로 인한 갈등·분열·전쟁의 위협이 읽힌다.
다블뤼 신부의 편지는 수에즈 항구에서 알렉산드리아항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한 다음 증기 우편선을 타고 마르세유로 향한다. 이제 여정도 막바지에 이른다. 마르세유에서 파리까지는 이미 우편 열차가 달리던 시대였고, 하루 만에 편지가 도착하는 일도 가능했다. 예를 들어 1862년 10월 조선을 출발한 다블뤼 신부의 편지가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때는 1년 가까이 지난 1863년 9월7일이었지만, 파리에 도착한 것은 바로 다음날인 1863년 9월8일이었다. 충청도에서 도보로 시작된 편지의 여정이 프랑스에 이르러 열차 운송으로 마감되는 데에서 조선과 프랑스 사이의 생활 속도의 차이, 근대의 격차가 느껴진다.
우표 한 장 안 붙이고 떠난 편지를 따라가본 역사 여행은 흔히 생각하는 시간을 종적으로 흘러내려가는 여행이 아니다. 이것은 세계를 동에서 서로, 동시대를 가로지르는 여행이다. 같은 시기 아시아는, 유럽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편지의 여행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지구 반바퀴를 도는 긴 여행은 48쪽짜리 책을 읽는 몇 십분 만에 끝나지만 150년 전 아시아 각국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여행은 길고도 흥미진진하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했지만 어른에게도 유익한 재미를 줄 책이다. 다블뤼 신부의 편지에 담긴 내용은 이 책을 읽을 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봉인해 둔다.
<구예리 기자 mar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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