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학 교수, 경제학 |
기고
한국 정부가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독자적인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핵연료 주기를 완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핵 보유 잠재력을 한 단계 더 높인다는 뜻도 담겨 있다. 후쿠시마 참사 이후 2년이 흘렀는데도 원전 의존도를 낮추는 ‘탈핵’ 전략을 버리긴커녕 군사 전용 위험성 및 경제성을 두고 논란이 뜨거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원자력정책 전문가인 장정욱 교수의 진단을 들어봤다. 세계각국 고속로 안 소듐 냉각재폭발·화재사고 안난 사례 없어
미국선 ‘플루토늄 무기화’ 우려도 2014년 3월에 완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 교섭이 순조롭지 못하다.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 권한을 요구하는 한국과, 세계적인 핵 비확산 체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견 대립이 주된 이유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기술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려고 개발된 것이다. 그런 만큼 애초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최근 양국은 협정 시한을 잠정적으로 2년 정도 연장해,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방식의 결과를 봐서 2년 뒤의 교섭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재처리 시설은 우라늄 농축 시설, 고속로와 함께 핵연료 주기(리사이클)의 핵심 시설이다. 미국의 아르곤국립연구소(ANL)가 개량한 파이로프로세싱 재처리 방식은 상업용 핵발전소(경수로)의 산화물연료가 아니라, ‘고속로’의 금속연료를 재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고속로에서는 경수로와 달리 초우라늄원소(TRU) 같은 불순물이 약간 섞인 핵연료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경수로의 핵연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 재처리 시설은 고속로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미국에 요구하는 이들이 이 고속로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분석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파이로프로세싱 방식의 재처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를 통해 사용후 핵연료에 포함된 우라늄 등의 자원을 최대 96%까지 재활용할 수 있고, 폐기물 최종처분장의 면적과 관리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재처리를 해도 핵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 주장에는 한계와 약점이 적지 않다. 첫째, 재활용률은 실제로는 최대라도 1.1%(플루토늄)밖에 되지 않는다. 96%라는 재활용률 수치에서 대부분은 핵분열을 하지 않는 우라늄238이 차지한다. 우라늄238은 우라늄 농축 과정에서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품질이 나쁜 것은 실제 사용될 일이 없다. 둘째, 파이로프로세싱 재처리를 하면, 사용후 핵연료 속의 100여 핵종을 완벽히 분리해내고 추출한 플루토늄 등을 고속로에서 연료로 사용함으로써 최종처분장의 관리기간이 직접처분 방식보다 100분의 1로 단축된다고 하는데, 이는 모든 가정이 100% 충족될 때의 이론적 수치일 뿐이다. 셋째, 한·미 양국의 갈등을 불러오는 가장 민감한 사항은 파이로프로세싱의 ‘핵 비확산성’의 정도에 관한 이견이다. 일반적으로 파이로프로세싱 방식의 재처리에서는 플루토늄이 다른 불순물과 함께 추출된다. 한국 정부는 핵분열을 방해하는 물질이 섞여 있어 핵무기 원료로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쓰이는 습식 재처리 기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과 기술이 더 필요할 뿐, 파이로프로세싱 재처리도 플루토늄을 단독 추출할 수 있어 핵 확산을 완전히 막는 기술은 결코 아니라고 미국은 보고 있다. 일본의 사례는 재처리의 경제성과 안전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재처리한 플루토늄과 우라늄238을 자원으로 재이용하려면 핵심 시설의 하나인 ‘고속로’가 필요하다. 고속로는 플루토늄을 원료로 사용하며, 핵분열 과정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감속하지 않음으로써 원자로 안의 우라늄238을 핵분열성 물질인 플루토늄239로 바꾸는 확률이 경수로보다 높은 원자로다. 그런데 일본의 고속로 몬주(원형로)를 보면, ㎾당 건설비가 경수로의 약 11배나 들었는데도 계속된 사고 및 고장으로 완공 뒤 약 20년이 흐른 지금도 시험가동조차 완료되지 못한 실정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건설되었던 고속로 가운데 냉각재인 액체 나트륨(소듐)이 폭발 또는 화재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사례가 없다. 고속로는 경수로와는 달리, 최악의 경우 핵폭발 가능성이 있고, 핵연료 속의 플루토늄 등의 강한 방사능 때문에 오염 피해도 최소 2배 이상 늘어난다. 오는 5월에 완공된다는 연간 10t의 처리능력을 가진 원자력연구원의 재처리 시험시설은 건설비로 330억원이 투입되었다. 이에 비춰 국내의 연간 사용후 핵연료 약 750t을 처리할 능력을 갖춘 시설이라면, 단순계산으로도 건설비가 최소 2조4750억원이 된다. 일본의 경우, 연간 800t 규모의 재처리시설 건설에 이미 약 23조원이 투입되었지만, 사고 및 고장 등으로 약 10년째 완공이 미루어지고 있다. 운영비 등까지 포함하면 재처리비용은 t당 최소 34억~100억원으로 추산된다. 100만㎾ 경수로의 건설비가 3조원 정도이므로 고속로 건설비는 30조원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재처리를 하여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장 등을 건설할 필요가 있으므로, 일본에서는 3만2000t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40년간)에 약 40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는 2012년 말의 누적량이 1만2000t을 넘었다. 핵연료 주기의 완성이 원전과 관련한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선전은 그만둬야 한다. 그리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무해화하는 방법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핵발전소의 확대를 끊임없이 추진하는 것은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이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학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