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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밀착종교 및 이단 시비-사회 및 해당 가족-피해 최소화-정통성 확립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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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541회 작성일 2013-03-0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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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한국교회, 정치권력과 밀착 끊어내고
시민의 광장으로 돌아와야”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기독교 사상’
국가권력과 교회
새로운 관계 설정 특집

모두들 종교와 권력의 분리를 얘기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생각 이상으로 밀착돼 있다. 교회와 권력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은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기독교 사상’ 최근호는 ‘국가권력과 교회의 새로운 관계설정은 가능한가?’ 특집에서 교회와 국가-정치권력의 관계에 대한 반성과 제언을 다뤘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교회, 이명박 정권과 동침하다’라는 글을 싣고 지난 5년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한국 교회의 다수는 (기독교 정권론을 내세우며) 이명박 정권창출의 주체 가운데 하나로 나섰다”며 “기독교 정권론이라는 것은 결국 대형교회의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했고, 이명박에게는 표를 모으는 선거전술의 한 방편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쫓겨나가고 희생되고 죽는 과정에서도 한국교회는 분노하거나 정치적 대안을 요구한 적도 없다”며 “한국교회는 낮고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를 따라 그렇게 자신의 삶을 밑바닥의 현실로 이끌고 가야 한다”고 했다.

장빈 목사는 “정치권력과 너무 가까워진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연합 기구들은 모든 정치권력과의 친밀한 관계를 시급하게 끊어내고, 시민의 공적인 광장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또 “너무 많아진 잉여 자산은 예수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줘야 한다”며 “(한국교회는) 모든 형태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다운 교회로 거듭날 수 없다”고 했다.

이훈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국장은 ‘박근혜 정부와 기독교의 관계 설정을 위한 제언’을 냈다. 그는 “해고라는 살인적 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터를 지켜줘야 한다”며 “정부에서는 부유하고 강한 기득권층을 설득해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것이 죽음의 시대를 건너게 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했다. 그는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친환경 정책, 사회통합을 위한 소통, 한반도 평화를 향한 통 큰 정부 등도 새 정부에 당부했다.

 
 
 
 
 
 
 
 
 
 
아래 내용은 저의 평소 견해와 다를 수도 있음에 유의하여
 
 
 
 
다음 글을 인내심 가지고 읽어 보시길
 
 
 
다소 조심스럽게 강추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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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나날들

 

 

 

 

그리고 이단은 탄생했다

 

 

 

 

 

등록 : 2013.03.03

[표지이야기] ‘다락방’ 이단 규정 철회와 신천지에 대한 범교파적 배격운동 등 ‘이단 논쟁’ 점입가경… 이단은 ‘종교적 진리’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할 수 있게 하는 ‘내적 타자’, 이단과의 평화로운 공존은 어떤가

개신교의 이단 시비가 점입가경이다. 교단들 사이에 오가는 날선 공방에는 ‘사탄’ ‘마귀’ 같은 살벌한 언어가 난무한다. 시비의 발원지는 보수 교단의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다. 배타적 구원관 등을 이유로 거대 주류 교단으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았던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도총회(속칭 ‘다락방’)에 대해 한기총 지도부가 지난 1월 이단 규정을 철회한 것이 발단이었다. 금품 로비설이 불거졌고, 한기총의 핵심 교단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의 목회자들마저 지도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같은 교단 소속임에도 다락방의 이단 해제를 승인한 한기총의 전·현직 대표회장(홍재철·길자연)의 목사직을 박탈하라고 교단 쪽에 요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기총의 핵심 간부 입에서 “과거 다락방에 내려진 이단 판결은 정치적 이유에서 나온 ‘괘씸죄 이단’”이란 말까지 나왔다. 교계의 이단 판결이 그들 말대로 엄밀한 교리적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고백한 셈이다.
이단 판결, 엄밀한 교리적 기준이 아니었다
몸살을 앓기는 진보 교단도 예외가 아니다. 상대적 진보성을 견지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올해 부산에서 개최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대한 협조를 구하려고 반(反)WCC 성향의 보수교단 연합체인 한기총과 공동선언문을 채택한 게 사달이 났다. 선언문에는 △종교 다원주의 배격 △공산주의·인본주의·동성애 반대 △타 종교 신자들에 대한 개종 전도 허용 △성서 무오설(無誤說) 지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보수 교계가 진보·자유주의 성향의 신학적 흐름을 이단으로 몰아세우며 들이댔던 ‘감별 기준’들이다. 진보 개신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가 거세게 반발했다. 한신대·감리교신학대·성공회대 교수들의 비판 성명이 이어졌다. NCCK 가맹 교단이면서 과거 보수 개신교단에 의해 ‘비정통’으로 매도당한 아픔이 있는 한국정교회에선 ‘쓰레기 합의문’이란 격한 반응이 나왔다. 합의문에 서명한 김영주 NCCK 총무가 사죄하고 합의문을 무효화하는 것으로 파문은 진정됐지만, 보수 교회로부터 공공연한 이단 시비에 시달려온 비주류 교회의 신앙적 자존감은 다시 한번 상처를 입었다.
이단 판정을 받은 신흥 종파에 대한 배척도 눈에 띄게 강화되고 있다. 1960년대 개신교 신종파 운동에 뿌리를 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총회장 이만희)을 상대로 벌이는 범교파적 배격운동이 그 예다. 실제 지난 1~2년 전부터 많은 교회가 입구에 ‘신천지교인 출입금지’라는 현수막과 포스터, 스티커를 부착하고 대대적인이단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여기엔 은밀하되 공격적인 신천지 특유의 선교 방식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신천지 교인 신분을 숨긴 채 기성 교회에 출석하며 신도들을 빼가거나, 규모가 작은교회에선 핵심 교직을 장악한 뒤 교회 자체를 신천지 소속으로 바꿔버리는 식이다. 교계 안팎의 이단 공방과는 거리를 둬온 기독교방송(CBS)마저 ‘신천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지속적인 추방 캠페인을 펼칠 정도면, 이 신흥 종파에 대한 주류 개신교의 위기의식이 남다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단 시비는 교계 울타리를 넘어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기도 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신천지 연루설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이 벌인 진실 공방은 이단 논란의 정치·사회적 휘발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당시 온라인상에는 박후보가 신천지 교회와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고, 신천지 핵심 인사들이 박근혜 캠프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됐다. ‘새누리’라는 당명을 한자로 옮기면 ‘신천지’가 된다는 그럴듯한 풀이까지 덧붙여졌다. 새누리당은 “근거 없는 흑색선전”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소문의 배후로 민주통합당을 지목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당시를 떠올리며 “자칫 이단 시비에 민감한 보수 개신교인들의 표심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한국 개신교계의 잦은 이단 시비는 목회자와 신도들이 ‘이단’이라는 종교적 표지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실과도 연관돼 있다. 유달상 <기독교한국신문> 편집인은 “특정 교회나 종파가 교계 주류로부터 이단으로 한번 지목되면 교세 확장에 막대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소속 신자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마저 단절돼버린다. 심지어 자녀들의 혼사마저 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이단 시비에 휘말린 쪽은 어떻게든 그 굴레를 벗어나려 집요한 노력을 기울인다. 주류 교단의 ‘이단 감별사’들에게 로비를 하거나, 교단 실력자들과 접촉해 이단 해제를 청원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막대한 선거자금이 투입되는 교단이나 연합기구의 큰 선거를 전후해선 교계 안팎에서 ‘이단종파 자금 유입설’이 끊이지 않는다. 1970~80년대 ‘통일교 자금 유입설’로 주요 교단들이 분란을 겪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김학철 연세대교수 는 “이단이 없었다면 기독 교리의 집약이자 신앙고백의 기초인 사도신경도, 니케아 신조도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기독교가 세계 종교 로 스스로를 정립하게 만든 ‘거울’이자 ‘매개물’이 다름 아닌 이단 종파라는 얘기다.
누가 정통으로 공인받고 이단으로 단죄받는지는 헤게모니를 누가 쥐느냐에 따라 갈린다. 대체로 이단으로 몰리는 것은 소수파이면서 현행 질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쪽이다. 이런 이유로 종교학자들은 ‘이단’보다 ‘섹트’, ‘소종파’라 는 중립적 표현을 선호한다.
서울 정동의 한 교회 게시판에 신천지 신도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한국 개신교계는 2년 전부터 범교파적인 신천지 배척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개신교는 주인 없는 종교”
눈여겨볼 지점은 왜 개신교계에서 유독 이단 시비가 끊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부에선 교단(종단) 난립 문제를 꼽는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펴낸 종교단체 현황(2011년)자료를 보면, 소속 종단이 가장 많은 곳은 불교다. 265개나 된다. 개신교는 이보다 적은 232개다. 그럼에도 이단 논란의 빈도와 강도는 불교를 압도한다. 일반적 설명은 개신교 자체가 배타성이 강한 종교라는 것이다. ‘아브라함 종교’에 뿌리를 둔 유일신교의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같은 유일신교인 유대교나 이슬람에 비해 기독교, 특히 그 안에서도 개신교에 유달리 이단 논란이 잦은 이유는 쉬 해명되지 않는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진구 연구실장(서울대 강사)은 말한다. “이단 논쟁은 교리 해석을 둘러싼 갈등에서 파생한다. 그런데 같은 유일신 전통에 있더라도 유대교와 이슬람은 교리보다 행위(율법)를 강조하는 까닭에 이단 논쟁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 반면 기독교는 행위보다 교리를 중시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도 개신교, 개신교 중에서도 보수 교단에서 이단 논쟁이 격렬한 이유는 뭘까. 이어지는 설명은 이렇다. “가톨릭은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이 강조되고, 교황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위계구조 아래 통일성이 확보돼 있다. 하지만 개신교는 주인 없는 종교다. 성경과 교리 해석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독특한 역사와 전통에서 그 배경을 찾기도 한다. 김학철 연세대 교수(신약학)는 “이단 논란은 초기 기독교부터 있었고, 기독교의 역사 자체가 이단 논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부단히 출현하는 소수 교설(敎說)과의 대결·투쟁 속에서 자신의 신학과 교리 체계를 세우고, 신자 집단에 허용되는 신앙의 테두리를 정교화해온 게 기독교라는 것이다. 그는 “이단이 없었다면 기독 교리의 집약이자 신앙고백의 기초인 사도신경도, 니케아신조도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스스로를 정립하게 만든 ‘거울’이자 ‘매개물’이 다름 아닌 이단 종파라는 얘기다.
종교학자들은 이단 시비를 개신교 신학자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이단은 종교현상이자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장석만 종교문화비평학회장에 따르면, 정통과 이단의 구분법은 종교적 신앙집단뿐 아니라 세속적 정치결사나 이데올로기 집단에도 존재한다. ‘사문난적’ 시비로 들끓었던 조선 후기 성리학이나 ‘정통-수정주의’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20세기 마르크스주의, 현대 정당 안에서 벌어지는 허다한 ‘법통 다툼’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 집단 내부에서 누가 정통으로 공인받고 이단으로 단죄받는지는 집단의 헤게모니를 누가 쥐느냐에 따라 갈린다. 대체로 이단으로 몰리는 것은 소수파이면서 현행 질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쪽이다. 이런 이유로 종교학자들은 ‘이단’보다 ‘섹트’(Sect), ‘소종파’라는 중립적 표현을 선호한다.
양쪽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단이란 결국 ‘권력의 효과’이자, 권력을 지닌 세력이 ‘종교적 진리’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할 수 있게하는 ‘내적 타자(他者)’라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이단은 추방되거나 박멸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권력이 있는 곳엔 항상 이단이 존재할 뿐 아니라, 지배 관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선 없는 이단도 만들어내야 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중신학자 김진호 목사는 “이단 자체보다, 이단을 만들어내는 주류교회의 욕망을 분석하는 게 우선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주류 질서에 반항한 숱한 소종파가 ‘사탄’과 ‘이단’의 이름으로 정죄받아온 한국 개신교사를 봐도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할 시기가 1950~60년대다. 한국 교회에서 사탄론과 이단론이 가장 극성을 부린 때이자, 박태선의 전도관, 나운몽의 용문산 기도원, 문선명의 통일교 등 오늘날 이단시되는 개신교계 소종파의 원류들이 대거 출현한 시기다. 당시 한국 사회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살육의 후유증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기아와 질병, 자연재해가 사람들의 몸과 정신을 여전히 옥죄던 시절, 교계 안팎에 거대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인물이 나운몽과 박태선이었다.
다원주의적 교설을 펼치 거나(나 운 몽), ‘재림 예수’를 자처(박태선)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지만, 주류 교단의 배척 저변에는 평신도 출신 신비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교권 세력의 경계심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극단적 보수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의 주류 개신교는 극단적 소종파와 ‘안티 기독교’라는 안팎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서울 명동에서 한 개신교인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펼침막을 들고 전도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단죄받자 종교적 게토로 전락하기도
나운몽은 1954년 자신이 세운 한국 최초의 기도원인 용문산 기도원을 거점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열었다. 열광적 분위기에서 진행된 그의 집회는 신들림과 방언, 질병 치유 같은 신비체험이 속출했다. 전국에 제2·제3의 나운몽이 등장했고, 용문산과 비슷한 열광적 분위기에서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는 기도원도 곳곳에 들어섰다. 이즈음 박태선이 주도한 서울 남산과 한강 백사장 집회도 수십만 군중을 끌어모았다. 나운몽처럼 전국 각지를 돌며 연 그의 집회에도 신비체험이 넘쳐났는데, 평신도뿐 아니라 기성 교단의 목사들까지 몰려와 그의 안수기도를 받을 정도였다.
이들에 대한 주류 교회의 대응은 배척과 파문이었다. 종교다원주의적 교설을 펼치거나(나운몽), ‘재림 예수’를 자처(박태선)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지만, 이런 대응의 저변에는 평신도 출신 신비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교권 세력의 경계심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나운몽과 박태선에 대한 이단 판정에도 불구하고, 신비체험을 강조하고 신으로부터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꾸준히 등장했다. 잇단 이단 파문을 거치며 한국 개신교는 이단에 대한 규정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어나갈 수 있었다. 재림 예수나 메시아를 자처하는 자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기독론적 이단’ 외에, 공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교회에 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교회론적 이단), 직통계시를 받았다는 주장(성령론·계시론적 이단) 모두 이단의 범주에 포함하게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연구자들은 이런 개신교의 이단 규정이 신비주의에 대한 교권세력의 뿌리 깊은 경계와 공포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신비주의의 핵심은 ‘체험을 통한 신의 인식’이다. 문제는 신비주의가 확산되면 교권이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성경이나 교회라는 기관, 성직자의 권위를 통하지 않고 ‘신과의 합일’을 통해 신의 메시지를 직접 듣는 것이 신비주의의 요체인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신비주의는 자유주의와 함께 교권·교리주의에 대항하는 두 개의 강력한 흐름을 형성해왔다. 한국 개신교에서 유영모·함석헌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그룹이나 신비주의적 소종파 모두 보수적 교권세력에 의해 줄곧 불온·이단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신비주의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점은 그것이 항상 하층민이나 소수자를 사회적 지지 기반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신비주의는 속성상 교육 수준이 낮고 현세를 초월하려는 열망이 강한 사람들에게 흡인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비주의는 종말사상과 결합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에 등장한 대부분의 개신교 소종파 운동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소종파 운동이 활발하다는 것은 당대를 고통과 위기의 시대로 인식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실이 이렇다면, 이단 시비와 관련한 교계와 사회의 대응 역시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교회사)는 “성찰과 회개를 통해 기성 교회와 목회자가 영적 권위와 도덕적 지도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교회가 영성과 도덕적 건강함을 되찾으면 기성 교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서 동력을 얻는 문제적 소종파들도 그 호소력이 자연스레 감소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진호 목사는 “주류 교단의 경멸과 배척이 소종파들의 고립과 반발감을 심화시켜 건강한 발전 경로를 봉쇄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가 든 사례는 1960년대 박태선의 주도 아래 시작된 ‘신앙촌’ 운동이다. 고통받는 민중의 경제적 자립과 영적 구원의 열망을 받아안고 출발했지만, 교권 위축을 우려한 기성 교단의 배척과 공격에 맞서 폐쇄성을 강화하게 되고, 결국 소통과 갱신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자 교주의 카리스마가 지배하는 종교적 게토로 전락해버린 신앙촌의 전철을 되밟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증상은 좌절된 열망의 대체물”
‘신경증’에 대한 프로이트의 해석은 이지점에서 ‘이단’에 대한 경직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적절한 참조틀을 제공한다. 프로이트가 볼 때 자아가 형성되려면 인간이 지닌 리비도적 충동이 적절한 수준에서 억압·통제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식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불쾌한 표상과 기억들은 무의식을 형성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무의식의 성분들은 틈만 나면 의식의 통제를 피해 교묘하게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신경증의 ‘증상’이 그것이다. 따라서 프로이트에게 증상이란 ‘좌절된 소망 또는 억압된 열망의 대체물(대리표상)’이란 결론이 가능하다.
비슷한 방식으로, 제도화(문명화)된 종교와 이단의 관계를 파악해보는 것도 여러모로 흥미롭다. 사실 대부분의 종교학자들이 인정하듯,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나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희구하는 종말론적 충동은 인간의 원초적인 종교적 열망의 중요 부분을 구성한다. 하지만 이 열망은 길들여지지 않은 리비도적 충동과 같은 것이어서, 종교가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억누르고 걸러지지 않으면 안 된다. 방치할 경우 현실의 교권이나 세속 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압되고 추방당한 열정은 일정 조건(사회·정치적 혼란, 교권세력의 위축)이 형성되면 프로이트가 말한 ‘증상’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부단한 정죄와 박해 속에서도 출몰을 반복하는 소종파 운동이 그 증거다. 결국 ‘이단’이란 것도 제도화 과정에서 억압된 신앙적 열정이 느슨해진 검열과 감시의 틈을 비집고 반복적으로 귀환하는 ‘사회적 증상’의 한 형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단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신경증 환자”(프로이트)이듯, ‘호모 렐리기우스’(종교적 인간)의 운명에 순응하는 한, 우리는 모두 잠재적 이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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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상황이 극단적 소종파 만든다” [2013.03.04 제950호] [표지이야기] 장석만 종교문화비평학회장에게 이단에 대해 묻다…“요즘 개신교계를 보면 반항적인 소종파 운동이 나올 수밖에 없어” ▣ 이세영 싸이월드 공감
“소종파 운동의 발흥은 사회적 현상이다. 드러난 징후를 통해 사회를 읽어야지, ‘정통 대 이단’의 교리적 이분법에 휘둘려선 곤란하다.”
종교학자 장석만 박사(종교문화비평학회장)는 최근 한국 개신교계에서 일고 있는 이단 시비를 좀더 냉정한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사회의 도덕규범을 해치거나 명백한 범죄행위가 있다면 비판하고 단죄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특정 종교집단의 내부 분쟁에 정치권과 언론매체까지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여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야당에서 제기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신천지 교단 연루설이나,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했던 MBC 의 신천지 관련 보도를 염두에 둔 지적이다.
“경제적·심리적 박탈감 느끼는 사람 많아서”
» 장석만 제공
그는 정통과 이단의 구분을 ‘권력관계’ 문제로 본다. 힘을 가진 쪽이 정통이고, 이단·사이비로 단죄받는 쪽은 대체로 힘없는 소수 집단이기 쉽다는 뜻이다.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것은 궁극적으로 권력의 크기다. 이단도 힘을 가지면 정통이 된다. 기독교도 처음엔 유대교 안의 이단 분파였다. 개신교를 기초한 루터나 칼뱅 역시 가톨릭의 이단 아니었나.”
그가 볼 때 교계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왜 이단 시비의 표적이 되는 소종파 운동이 끊임없이 출현하는지에 대해 정직하고 책임 있게 성찰하는 일이다. “요즘 개신교계의 상황을 보면 반항적인 소종파 운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극단적 보수주의, 집단이기주의, 남의 비판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자폐성. 이렇게 극단적인 신앙집단이 개신교계의 압도적 주류로 자리잡은 경우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안팎에서 교권 세력에 대한 반감과 저항이 싹트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볼 때 소종파 운동의 등장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은 한국 사회의 상황이다. 그는 소종파 운동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사회·경제적 소외계층이란 사실에 주목한다. “소종파의 특징인 신비주의나 종말론에 어떤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겠는가. 돈도 힘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신앙적 열정밖에 없는, 당장 세상이 망해도 잃을 게 많지 않은 사람들이다. 소종파가 융성한다는 것은 경제적·심리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증거로 봐야 한다.”
물론 소종파 중에는 공동체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음을 장 박사는 인정한다.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소종파 운동이 체제의 개혁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극단적 폐쇄성은 부패와 내부 폭력 같은 반사회적 일탈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과 징후만으로 소종파 운동을 반사회적이라 낙인찍고 배제·추방하는 것은 상황을 한층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장 박사의 판단이다.
“소종파의 정체성은 주류 질서에 대한 반감과 저항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억압하고 적대시할수록 신앙과 행동 방식은 더 폐쇄적이고 극단화되기 마련이다. 교계 내부에서 어떤 종파나 세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단죄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경계 바깥의 사람들까지 집단 내부의 결정과 기준에 영향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많은 사람들을 극단적 영성 추구나 종말론에 의탁하게 만드는 오늘의 현실 그 자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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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20명, 재림예수 50명 [2013.03.04 제950호] [표지이야기] 한국 소종파의 역사… 기독교 안에서 활동하다 주류 교회 배척 시작되면 경계 넘어서, 선지자 자처하다 말년엔 신의 반열에 올라 ▣ 이세영 싸이월드 공감
1927년 함경도 원산에 예수가 자기 몸에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났다. 원산 감리교회를 다니는 유명화라는 신도였다. 그는 여러 교회를 다니며 부흥집회를 인도했는데, 부흥회의 하이라이트는 예수의 영이 몸에 내린다는 ‘강신극’이었다. 전통 무속신앙의 신내림굿과 유사했다. 주위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백남주, 감리교 목사 이호빈·이용도 등이 모여들었다. ‘원산파’로 불리는, 한국 신비주의 소종파의 원류다.
주요 특징, 신비주의적 ‘신과의 합일’
이들과 별개로 ‘새주파’로 불리는 또 다른 신비주의 집단도 있었다. 1923년 입신 체험을 통해 예수와 대화했다는 여신도 김성도가 구심이었다. 새주파란 이름은 김성도의 추종자들이 그를 ‘새주’로 부른 것에서 유래했는데, 김성도가 죽은 뒤 ‘복중교’란 이름으로 1940년대까지 연명했다. 원산파와 새주파 모두 기성 교회들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됐다. 하지만 이들의 신비주의는 ‘이스라엘 수도원’을 세운 김백문을 거쳐 한국 개신교계 소종파의 선구가 되는 통일교(문선명)와 전도관(박태선)의 교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았다.
신과의 합일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신앙 행태는 지금까지도 한국 개신교계 소종파의 주요 특징이다. 2000년 문화관광부의 의뢰로 국제종교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 ‘한국의 종교단체 실태조사연구’는 개신교 계통 소종파를 크게 △신비주의 △종말론 △외국계 신흥종파 3가지 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것은 신비주의 계열이다. 신비주의 계열은 다시 △베뢰아아카데미(귀신론) 분파 △신비주의 기도원 분파 △직통 계시파 △전도관 분파 △장막성전 분파 △통일교 분파로 나뉘는데, 최근 개신교계가 대대적 배척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은 장막성전 분파에 속한다.
장막성전은 1960년대 경기도 과천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서울대공원이 들어선 막계동 일대가 이들의 ‘성지’다. 신천지 교회의 본부가 과천에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장막성전은 1966년 한국 소종파 운동 사상 가장 나이가 어린 유재열(당시 17살)이 세워 화제를 뿌렸다. 장막성전이란 이름은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15장 5절 “또 내가 이일 후에 보니 하늘에서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유재열은 1960년대 초부터 부모와 함께 서울 상도동의 호생기도원을 다니며 신비주의 신앙에 몰입했다. 1965년 예수의 계시를 받았다며 이듬해 ‘종말 심판의 피난처’라는 장막성전을 설립했다. 전성기에는 청계산 저수지가 있는 막계동 일대에 신도 2천 명이 모여들어 집단생활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조직 운영에 불만을 품은 내부자의 투서 때문에 사기죄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나온 뒤 교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1980년 기성 교단에 교회를 헌납하고 홀연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해 사업가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막성전의 등장과 분열, 신천지의 등 장 과 정)모든 것이 성경의 예언대로 실현됐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나 안상홍증인회 같은 교회도 나가 봤지만, 가장 성경의 계시에 부합하는 곳은 신천지라고 확신한다.” -신천지의 청년신도 임아 무개씨

장막성전 기본 골격 그대로 신천지로
그가 떠난 뒤 장막성전은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무지개증거장막 등 여러 갈래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재열은 자신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가 있으며 14만4천 명에게 구원의 징표를 주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했는데, 성서 해석과 교리의 기본 골격은 핵심 추종자이던 이만희(현 신천지 총회장)를 통해 지금의 신천지에 고스란히 전승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월18일 만나 2시간 이야기를 나눈 신천지의 청년신도 임아무개(31)씨는 장막성전의 등장과 분열, 신천지의 등장 과정을 “모든 것이 성경의 예언대로 실현된 것”이라며 “기독교복음선교회(JMS)나 안상홍증인회 같은 교회도 나가봤지만, 성경의 계시에 부합하는 유일한 곳은 신천지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신천지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소종파들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존재와 함께 신비주의와 종말론적 흐름이 섞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진구 연구실장은 “예언서·계시록의 종말론과 민족주의적 선민사상이 결합해 재림예수가 한국에 온(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소종파에서 보이는 보편적 흐름”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이 형성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한국교회사 연구자인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교권화된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과 영적 체험에 대한 열망에서 싹튼 해방 전 신비주의 그룹이 전쟁의 참화와 극심한 빈곤의 경험 속에서 종말론적 계기와 만나고, 때맞춰 등장한 카리스마적 개인들이 이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등장한 소종파들은 처음엔 기독교의 카테고리 안에 머무르며 활동하지만, 교세가 늘고 주류 교회의 배척이 시작되면 점차 그 경계를 벗어나게 된다. 선지자나 성령, 재림예수를 자처하다 말년엔 스스로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다. 박태선(천부교)·안상홍(하나님의 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에 따르면 국내 소종파 지도자 중에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만 20여 명,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경우가 50명이 넘는다. 이 밖에 하느님의 부인이나 보혜사 성령, 혹은 성서 속 인물인 엘리야나 다윗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소종파 집단 안에서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가 절대화하다보니, 공교회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횡령이나 폭력, 추행 같은 문제가 외부로 노출되고 결국 사법권력의 개입을 부르는 경우도 빈번하다.
‘영체교환’ 교리에서 성상납·혼음 나타나
일부 소종파는 교주에 대한 성상납, 혼음 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1950년대 박태선의 전도관, 문선명의 통일교가 그랬고, 최근에는 JMS 여신도들의 나체 예배 동영상이 공개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초기 신비주의 소종파에서 나타났던 ‘영체교환’(일명 ‘피가름’) 교리의 유산으로 보는데, 신령한 존재의 성혈(聖血)을 나눠가짐으로써 죄와 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술적 믿음이다. 하지만 문제가 된 소종파들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거나 일부 열성 신도들이 벌인 해프닝이라 부인하고 있어, 그 실체에 대해선 추측이 구구하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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