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3 19:15수정 : 2013.03.0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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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 정치부 기자 |
지난해 말 세종시에 12개 공공기관 4100여명이 이전하면서 지역간 균형발전 정책이 닻을 올렸다. 세종시에는 2014년까지 중앙행정기관 36곳 1만500여명, 연구기관 16곳 3300여명 등 공공기관 52곳의 1만4000명이 옮겨간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사업은 순조롭지 않다. 사실상 세종시에는 6개 공공기관 청사와 2만9000채의 아파트만 지어져 있다. 교통·상업·사무·교육·문화·의료 등의 기반시설은 거의 마련돼 있지 않다. 공공(대중)교통만 해도 시내버스는 운행중인 노선이 7개뿐이고, 택시는 고작 234대라 불러야만 탈 수 있다. 철도역도 없어서 버스로 20분 이상 걸리는 충북 청원군 오송역을 이용해야 한다. 자동차로도 경부·호남·천안논산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20분 넘게 가야 한다.
이런 문제가 생겨난 이유는 이 사업을 시작한 노무현 정부가 세종시를 굳이 ‘신도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애초 세종시 예정지역(중심지역)은 인구 1만여명이 살던 농촌지역이었다. 정부가 이 지역의 땅 7290만㎡(2209만평)를 5조원에 사들여 밀어버린 뒤 17조5000억원을 들여 새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공공기관 터는 51만6000㎡(15만6363평)면 충분한데, 그 141배의 땅을 샀다. 허허벌판에 새로 도시를 짓다 보니 대중교통도, 재래시장도, 대형마트도, 기업도, 대학도, 문화시설도, 종합병원도,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세종시만이 아니다. 역시 공공기관이 이전되는 김천·나주·대구·부산·서귀포·울산·원주·전주완주·진주·진천음성 등의 혁신도시 10곳, 도청이 이전되는 남악(전남)·내포(충남)·안동예천(경북) 등 새도시 3곳이 모두 이런 방식이다. 10개 혁신도시를 지으려고 4495만㎡(1362만평)의 빈 땅에 10조원, 3개 도청 새도시를 지으려고 3546만㎡(1075만평)의 빈 땅에 6조50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이들 14개 공공기관 이전 새도시가 도시 모습을 갖추는 데는 적어도 10~2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모두 39조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 14개 새도시가 ‘운 좋게도’ 자리를 잘 잡는다면 주변 도시들엔 재앙이 될 것이란 점이다. 과거 서울과 일산·분당의 관계처럼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경우엔 새도시와 기존 도시가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지방 도시들처럼 인구가 줄어드는 경우엔 한 도시의 발전이 곧바로 주변 도시의 쇠퇴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세종시와 대전·청주, 김천 혁신도시와 김천 구도심, 남악 새도시와 광주·목포는 경쟁관계가 되고 각종 지표에서 제로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새도시에 대한 집중투자로 기존 도시가 쇠퇴하면 정부는 기존 도시를 재생한다며 또 예산을 투입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방 광역시의 신-구 도심 사이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이런 딜레마를 만들지 않는 가장 좋은 방안은 공공기관 이전을 기존 도시의 재생과 연계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행정도시를 대전에, 혁신도시를 이전 도시의 구도심에, 도청 새도시를 이전 지역의 기존 도시에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사업들은 되돌릴 수가 없다. 14개 새도시는 결국 다음 세대에 큰 짐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하루아침에 허허벌판에 좋은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무지하고 오만하고 탐욕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살기 좋거나 경쟁력 있는 세계 도시 순위에서 지난 수십년 사이에 새로 건설된 ‘새도시’가 포함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좋은 도시는 새 건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역사와 사람들의 손길,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김규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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