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인들이 예수믿는 사람에 개종
전도
…하느님 뜻
아니다”
등록 : 2013.02.13 20:17수정 : 2013.02.1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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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
인터뷰/ 정교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강압적 개종 재촉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것“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NCCK)에서 교단장들이 모일 때 유독 눈에 띄는 이방인이 있다. 정교회의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리스 조그라포스(53) 대주교다. 그리스 에게해 아이기나섬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외대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산타클로스처럼 긴 수염을 늘어뜨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점잖은 모습의 그가 최근 모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오는 10월 말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를 앞두고 교회협 김영주 총무와 준비위원장 김삼환 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현 회장 길자연·홍재철 목사가
△‘개종 전도 금지주의’ 반대 △종교다원주의 배격 등 4개항을 내세워 한 ‘공동선언’을 “쓰레기”라고 질타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공동선언’은 교회협 소속 다수 교단들과 에큐메니컬 진영의 반발에 부딪혀 파기돼 버려졌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정교회의 성격을 보여준 그를 지난 7일 만났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성니콜라스 주교좌대성당에서였다. 그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개종을 겨냥한 전도’의 문제점부터 조목조목 짚었다.
“한 학생의 아버지가 (개신교) 목사인데,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던 파트모스섬(그리스 에게해)에
선교를 하기 위해 갔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곳 주민들이 사도 요한 당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것을 네 아버지는
모르느냐’고.”
그는 “개신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 전도의 대상으로 삼고, 가톨릭이 정교회국가들에
정교회수도자 같은 복장을 하고 들어가 개종 전도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강압적으로 개종을 재촉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정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신자 수를 늘리기 위해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식의 전도를 금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원치 않는
이를 강압하지 않고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기다리시는 분이다.”
그는 개신교인들이 불상이나 단군상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그런 짓은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행위다. 그런 선전포고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이라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옥스퍼드대 교수 마다하고
1998년 한국행 결행
한국외대서 그리스어 교수
“일본인이
독일인 같다면
한국인은 그리스인처럼 정 넘쳐”
그는 민주적이면서도 일치를 이루는 정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내보였다. 가톨릭이 교황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개신교는 분열해 교단이나 개인이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은 데 반해 정교회는 자율권을 가진 각 나라의 정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시노드(공의회)를 통해 민주적으로 일치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톨릭의 경우 50년 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까지만 해도 전세계 모든 성당에서 라틴어로 미사가
집전된 것과 달리 정교회의 경우 이미 10세기 말에 슬라브지역에 전파된 초기부터 슬라브어 성서를 쓰고 슬라브어로 성찬예배를 드리도록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초기 성서인 ‘70인역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고, 사도 바울과 교부들의 글이 대부분 그리스어로 쓸 만큼 초대교회부터 그리스어가
보편언어였는데도 정교회는 다른 나라에서 그리스어와 그리스문화를 강요하지 않고 현지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는 전통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아테네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예술의 역사’를 공부한 그는 석굴암 불상에서 그리스 조각을
보고, 한국의 무속에서 그리스 신탁을 엿본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교수 초청을 마다하고 1998년 한국에서 뼈를 묻겠다고 한국행을 결행한 그는 “일본인이
독일인 같다면 한국인은 그리스인처럼 정이 넘친다”며 남다른 유대감을 내보였다.
그는 서양문화의 원류인 그리스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그리스철학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으냐’는 물음엔 동의하지 않았다. ‘하느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기독교는 유일한 것이며, 그리스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그리스철학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예수께서 다른 지역으로 오지 않고, 이미 세계화한 그리스문화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지중해권으로
출현한 것은 그리스가 기독교를 받을 준비된 땅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대주교는 초기 교부 그레고리우스의 말을 빌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이 신이 되게 하기
위함이며, 하늘에 올라가 하느님과 함께하게 하기 위함”이라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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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정교회 신자는 그리스와 러시아 등 전세계에 3억명이 있지만 한국엔 서울·인천·부산
등 7개 교회와 2개 수도원에 12명의 사제와 3500여명의 신자가 있다. 1900년 러시아 선교사가 왔지만 러일전쟁, 일제, 한국전쟁 등으로
선교사들이 추방되거나 납북되는 수난을 겪었다. 1968년 니콜라스대성당이 건립되고 2004년 대교구로
승격됐다. | |
바벨탑 쌓지 말자…‘분가’하는
교회들
등록 : 2013.01.09 19:42수정 : 2013.01.0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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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 향린교회 담임 목사와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와 교인들이 6일 향린교회에서 분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 |
향린교회 성인 교인 400명 넘자
목사와 교인 80명 새교회로 보내
“몸집 커지면 부 집중돼 타락한다”
성장과 대형화보다
작은교회 지향
영동교회와 샘물교회 등도 앞장서
서울 중구 을지로2가 향린교회에선 6일 특별한 예배가 있었다. 새해 첫 주일과 창립
60돌을 겸한 이날 예배는 오랫동한 교회 가족으로 지낸 목사와 교인 80명을 ‘분가’(分家)시키기 위한 예식이었다.
향린교회는 이날 임보라 목사와 시무 장로 3명을 포함해 교인 80여명을 새로 여는 섬돌향린교회로 내보냈다.
교회 공동창립자인 안병무(1922~96) 박사의 분가 정신에 따라 1993년 홍근수 목사가 담임일 당시 성인 교인 500명이 넘으면 다른 교회로
내보내기로 한 ‘신앙고백 선언’에 따른 것이다.
분가는 교인 수가 늘어나면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채 지내게 되어 공동체성이 상실되고, 교회 건물 신축이나
증축에 헌금을 쓰고, 목회자가 교회 경영에 더 신경을 쓰는 ‘교회 대형화의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분가를 통해 교인들끼리는 물론이고
지역사회 및 작은 교회들과 더 깊은 유대와 연대로 교회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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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린교회 신자의 환송에 섬돌향린교회로 분가하는교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제공 |
향린교회는 지난해 성인 교인 수가 400명에 이르자 분가소위원회를 구성해
‘공동의회’를 열어 임보라 목사를 섬돌향린교회로 파송하기로 결의하고, 분가에 참여할 교인 자원을 받고 새 교회를 여는 데 따른 예산을 배정했다.
섬돌향린교회는 마포구 성산동 인권센터3층을 터전으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 이 건물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 당분간 성미산공동체의 ‘문턱 없는
밥집’에서 예배를 한다.
이날 ‘아름다운 헤어짐, 영원한 동행’이란 주제로 설교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린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 목사는
“몸집이 커지고 부와 권력이 집중되면 타락하기 마련이다. 생명체는 끊임 없이 자기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며 분가의 의의를
설명했다. 기존 향린교회에 남는 목사와 신자들은 예배가 끝난 뒤 길게 늘어서서 오랫동안 정든 모교회를 떠나는 목사와 신자들을 한명 한명씩 악수를
나누고 꼭 안아주었다.
섬돌향린교회 교인들은 “인간의 무한 성장과 팽창 논리를 거부하고, 예수가 삶으로 보여 준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성장과 대형화가 한국 교회의 지상 목표처럼 추구돼왔지만, 향린교회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이
교회는 이미 1993년 송파구 거여동에 강남향린교회를 세워 부목사였던 김경호 목사와 신자 12명을 분가시켰다. 강남향린교회는 성장해 신자가
불어나자 다시 김 목사와 일부 신자들이 투표를 통해 2004년 강동구 천호2동에 들꽃향린교회로 분가했다.
성장과 대형화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작고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는 곳이 향린교회만은 아니다.
손봉호 장로 등이 설립한 서울 영동교회가 한영교회와 일원동교회, 서울남교회, 분당샘물교회 등으로 분가한
것을 비롯해 정주채 목사가 서울 잠실중앙교회에서 용인 향상교회로, 김동호 목사가 동안교회에서 숭의교회로 분가했다. 또 여수 은현교회(최규식
목사)와 대전 새하늘교회(안덕수 목사)와 서울 동네작은교회(김종일·이민욱·최현락 목사), 성남성산교회(현상민 목사), 춘천 소양교회(이원호
목사) 등도 ‘분가한 교회’들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회들이 늘어가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유레카] 성경 무오설 /
곽병찬
등록 : 2013.02.04 19:20수정 : 2013.02.04 19:20
“믿습니까?” “믿습니다!” 근본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예배 중 목회자와 신도 사이에 많이 오가는 즉문즉답이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완전축자영감설) 성경은 일자일획도 오류가 없다(성경 무오설)는 절대적 믿음
위에 신앙을 구축하는 교회들이다. 예수의 처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 임박한 재림은 성경 무오설이 포괄하는 핵심 교리다. 유대인의
창세 신화와 종교, 역사와 전설을 담은 구약도 무오류이므로, 신약의 예수에 관한 종교를 이스라엘의 민족신 야훼의 종교와 결합시켰다. 그런데
구약을 보면, 우주 역사는 길어야 1만여년에 불과하다. 인류 조상 아담은 흙으로 빚어 만들었고,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탄생했다. 지구를
뒤덮었다는 노아의 홍수는 4000~5000년 전에 발생했다. 과학·역사적 사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근대 서구에서 성서를 신도의 삶과
신앙생활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되, 역사·문화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찾아야 하는 텍스트로 읽는 흐름이 우세해진 건 이런 까닭이었다.
근본주의 교회들은 이런 자유주의 신학을 이단시했다.
개신교 교파는 세계적으로 2만여개, 한국에만 200~25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성서 내용에
대한 해석과 그로 말미암은 교리, 전례, 교회제도 등의 차이가 빚은 결과다. 같은 교파라도 교회, 목회자마다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성경의
절대성을 주창하면서 실제에선 제각각 해석한 것이다. 이런 분열은 도그마를 강화하고 갈등을 부추겼다.
분열 속에서 예수 안에서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운동이 태동했다. 에큐메니컬 운동이다. 그 중심이
세계교회협의회다. 오는 10월 한국에서 세계교회협 총회가 열린다. 근본주의 교회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좌시할 리 없다. 성경
무오류설 등을 앞세워 정통·이단 시비를 거는 모양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한국교회 해묵은 신학논쟁 재점화…‘WCC 총회’ 쿠오바디스
등록 : 2013.01.30 19:53수정 : 2013.01.3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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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
‘기독교의 유엔’ 부산총회 9개월 앞
다원주의 배격·반공주의 등 4개항
준비위쪽-‘보수’ 한기총
공동선언
“교회일치 정신 버리고 암흑기 회귀
분단 치유 등 시대적 과제 논의 찬물”
기장·신학교수·단체 등 비판
잇따라
*쿠오바디스 : <어디로 가시나이까>
‘기독교의 유엔’이라는 세계기독교회협의회(WCC·세교협) 총회를 앞둔 한국교회에서 돌발적 사건으로 인해
신학적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
세반협 10차 총회는 오는 10월30일부터 11월8일까지 부산에서 전 세계 기독교회 지도자와 신학자 등
7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사건은 ‘부산총회 한국준비위원회’(준비위) 상임대회장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교회협) 김영주 총무가 지난 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전·현 대표회장인 길자연·홍재철 목사와 함께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종교다원주의 배격 △공산주의·인본주의·동성애 등 반대 △개종 및 전도 금지주의 반대 △성경
66권의 무오류성 인정 등 4개항을 담았다. 이 내용을 전제로 해 보수 쪽이 세교협 총회 개최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준비위는 보수 쪽이
세계적 행사에 재를 뿌리려는 것을 막고 행사에 동참하게 했다고 자위했으나, 이 선언이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정신을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교회협은 기장·통합·감리회·성공회 등 세교협에 가입된 4개 교단이 주축을 이룬 협의체다. 지난 17일 열린
교회협 실행위원회에선 세교협에 가입하지도 않은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무런 협의 절차도 없이, 에큐메니컬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선언에
동참한 김영주 총무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이 선언을 “쓰레기”라고 했고, 배태진 기장 총무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세교협 준비위와 교회협 관련 직책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김 총무가 눈물로 사죄하고, 교회협 의장 김근상 (성공회) 주교 등 의장단이 “협의회에서 그 선언을 논의한
적도 허락한 적도 없어 폐기란 말을 쓸 가치조차 없다”고 밝혔지만 비난은 그치지 않고 있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감신대 교수들, 한신대
교수들,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들, 에큐메니컬기독여성, 한국문화신학회, 기장 생명선교연대 등 각 단체와 교수들의 비판 성명도 이어졌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는 “공동선언문이 ‘복음에 반하는 사상’으로 간단히 정죄해버린 사안들은 앞으로 인류가
공동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성찰할 주제들”이라며 “세교협을 여는 목적은 이런 주제들을 함께 의논하자는 것인데 소수의 편협한 시각으로 소통을
차단하는 배타적·자기중심적 선언은 21세기 인류 보편의 지성과 함께 할 수 없는 반지성적 주장들”이라고 꼬집었다.
기장 생명선교연대는 “타종교에 대한 배려를 다원주의라고 한다면 절간에 들어가 땅 밟기를 하고 불상 목을
잘라야 하느냐,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면 사회주의권 내 정교회도 반대하는 것인가, 개종 전도 금지는 개신교·가톨릭·정교회가 교인 뺏기를 하지 말자는
것인데 교인의 수평이동을 계속하자는 것인가, 성경무오설 주장자들은 성서를 들어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데 기독교를 암흑기로 돌리자는 것이냐”고
물었다. 성서무오설을 어겼다는 데 대한 정죄가 발단이 돼 설립된 기장 쪽에선 “또 한 번의 교단 살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2월 4일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에큐메니컬 신학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인 생명평화마당 집행위원장 김영철 박사(통합 소속)는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신자들에겐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는 못하지만 학문적으로
폐기된 지 오래인 성서무오설을 고집해야 한다면 신학대학교 커리큘럼의 70~80%도 폐기되어야 할 것”이라며 “그동안 세계교회는 발전했는데
한국교회는 ‘합동’과 ‘통합’이 분열된 1959년의 신학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부산총회 준비를 위해 내한한 울라프 픽쉐 트베이트 세교협 총무는 29일 기자회견에서 “세교협과 관계없이
발표된 이번 공동선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전제하고 “부산총회는 세계교회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가고, 분단된
한반도의 분열과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화해의 사도적 사명을 감당할 것인지 등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에서 오랫동안 곪았던 신학적 화농이 터짐으로써 부산총회의 신학적 논의가 9개월 앞서 시작된 셈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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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극단적 보수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의 주류 개신교는 극단적 소종파와 ‘안티 기독교’라는 안팎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서울 명동에서 한 개신교인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펼침막을 들고 전도하고 있다. |
한국 소종파의 역사… 기독교 안에서 활동하다 주류 교회 배척 시작되면 경계 넘어서, 선지자 자처하다 말년엔 신의 반열에 올라
1927년 함경도 원산에 예수가 자기 몸에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났다. 원산 감리교회를 다니는 유명화라는 신도였다. 그는 여러 교회를 다니며 부흥집회를 인도했는데, 부흥회의 하이라이트는 예수의 영이 몸에 내린다는 ‘강신극’이었다. 전통 무속신앙의 신내림굿과 유사했다. 주위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백남주, 감리교 목사 이호빈·이용도 등이 모여들었다. ‘원산파’로 불리는, 한국 신비주의 소종파의 원류다.
주요 특징, 신비주의적 ‘신과의 합일’ 이들과 별개로 ‘새주파’로 불리는 또 다른 신비주의 집단도 있었다. 1923년 입신 체험을 통해 예수와 대화했다는 여신도 김성도가 구심이었다. 새주파란 이름은 김성도의 추종자들이 그를 ‘새주’로 부른 것에서 유래했는데, 김성도가 죽은 뒤 ‘복중교’란 이름으로 1940년대까지 연명했다. 원산파와 새주파 모두 기성 교회들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됐다. 하지만 이들의 신비주의는 ‘이스라엘 수도원’을 세운 김백문을 거쳐 한국 개신교계 소종파의 선구가 되는 통일교(문선명)와 전도관(박태선)의 교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신과의 합일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신앙 행태는 지금까지도 한국 개신교계 소종파의 주요 특징이다. 2000년 문화관광부의 의뢰로 국제종교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 ‘한국의 종교단체 실태조사연구’는 개신교 계통 소종파를 크게 △신비주의 △종말론 △외국계 신흥종파 3가지 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것은 신비주의 계열이다. 신비주의 계열은 다시 △베뢰아아카데미(귀신론) 분파 △신비주의 기도원 분파 △직통 계시파 △전도관 분파 △장막성전 분파 △통일교 분파로 나뉘는데, 최근 개신교계가 대대적 배척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은 장막성전 분파에 속한다.
장막성전은 1960년대 경기도 과천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서울대공원이 들어선 막계동 일대가 이들의 ‘성지’다. 신천지 교회의 본부가 과천에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장막성전은 1966년 한국 소종파 운동 사상 가장 나이가 어린 유재열(당시 17살)이 세워 화제를 뿌렸다. 장막성전이란 이름은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15장 5절 “또 내가 이일 후에 보니 하늘에서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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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성전의 등장과 분열, 신천지의 등장 과정) 모든 것이 성경의 예언대로 실현됐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나 안상홍증인회 같은 교회도 나가봤지만, 가장 성경의 계시에 부합하는 곳은 신천지라고 확신한다.” -신천지의 청년신도 임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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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열은 1960년대 초부터 부모와 함께 서울 상도동의 호생기도원을 다니며 신비주의 신앙에 몰입했다. 1965년 예수의 계시를 받았다며 이듬해 ‘종말 심판의 피난처’라는 장막성전을 설립했다. 전성기에는 막계동의 청계산 저수지 일대에 신도 2천 명이 모여들어 집단생활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조직 운영에 불만을 품은 내부자의 투서 때문에 사기죄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나온 뒤 교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1980년 기성 교단에 교회를 헌납하고 홀연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해 사업가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막성전 기본 골격 그대로 신천지로 그가 떠난 뒤 장막성전은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무지개증거장막 등 여러 갈래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재열은 자신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가 있으며 14만4천 명에게 구원의 징표를 주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했는데, 성서 해석과 교리의 기본 골격은 핵심 추종자이던 이만희(현 신천지 총회장)를 통해 지금의 신천지에 고스란히 전승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월18일 만난 신천지의 청년신도 임아무개(31)씨는 장막성전의 등장과 분열, 신천지의 등장 과정을 “모든 것이 성경의 예언대로 실현된 것”이라며 “기독교복음선교회(JMS)나 안상홍증인회 같은 교회도 나가봤지만, 성경의 계시에 부합하는 유일한 곳은 신천지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신천지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소종파들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존재와 함께 신비주의와 종말론적 흐름이 섞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진구 연구실장은 “예언서·계시록의 종말론과 민족주의적 선민사상이 결합해 재림예수가 한국에 온(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소종파에서 보이는 보편적 흐름”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이 형성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한국교회사 연구자인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교권화된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과 영적 체험에 대한 열망에서 싹튼 해방 전 신비주의 그룹이 전쟁의 참화와 극심한 빈곤의 경험 속에서 종말론적 계기와 만나고, 때맞춰 등장한 카리스마적 개인들이 이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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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2: “교권화된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과 영적 체험에 대한 열망에서 싹튼 해방 전 신비주의 그룹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종말론적 계기와 만나고, 때맞춰 등장한 카리스마적 개인들이 이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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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등장한 소종파들은 처음엔 기독교의 카테고리 안에 머무르며 활동하지만, 교세가 늘고 주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