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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황규연--최근 인터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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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072회 작성일 2013-02-2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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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황규연, 샅바 놓고 지도자 변신
글 배병문·사진 김문석 기자 bn1906@kyunghyang.com
ㆍ“외로운 후배들 그냥 두고… 모래판 떠날 수는 없네요

허름한 다방 입구에 붙은
중계방송 벽보,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한 장사의 포효, 시루 속 콩나물처럼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 지난 19일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카페에서 그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장면들이다.

황규연(39). 씨름장사로 한 시대를 호령했던 그가 지난 11일 설날장사대회를 끝으로 샅바를 놓았다. 12살에 시작한 씨름이니 27년을 산 모래판과의 이별이었다.

어떻게 씨름을 하게 됐느냐고 묻자 “씨름요? 어릴 때 골목엔 늘 씨름하는 아이들로 북적거렸죠. 덩치 좀 있어 운동한다면 씨름하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어요. 전 이만기 키즈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다.


초등 5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씨름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것은 연신중 시절이었다. “씨름으로 꿈을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 하는 씨름이니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하지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잘하면 8강·4강에 오르는 정도. “신남중에 1m80짜리 거구가 있었어요. 제가 1m60이었으니 그
친구는 골리앗이었죠.” 골리앗과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황규연의 씨름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골리앗’이라 불렸던 김영현(전 LG증권)이다.

대학은 인제대로 갔다. 그곳에 씨름을 프로스포츠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만기 장사가 교수로 있었다. “이 교수님도 부르시고, 저도 원했고요. 무엇보다 들배지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죠.”

그는 이 교수로부터 들배지기를 연마했다. 1990년대 중반은
한국 씨름의 전성기였다. 팀만도 8개에 신봉민·이태현·김경수·김영현·백승일 등 기라성 같은 장사들이 용호상박의 치열한 타이틀 매치를 이어가던 시기였다. 2m17의 큰 키를 이용한 밀어치기로 모래판을 호령한 김영현, 힘과 기술을 겸비한 이태현, 근력으로 밀어붙인 김경수, 다양한 기술의 소년장사 백승일 등. 그들에 맞서 황규연은 들배지기로 승부를 걸었다.

그렇게 황규연은 1996년 거친 모래판에 들어섰다. “설날대회에서 데뷔했어요. 관중도 안 보이고, 아나운서 멘트도 들리지 않고, 한마디로 멍했죠. 첫 상대는 청구의 김형찬이었는데 키가 1m96인가. 힘 한번 못 써보고 하하. 처참이라는 말이 딱 맞죠.” 그 처참한 장면은 아버지가 녹화해 지금도 집에 보관 중이다.

이후 그는 특유의 유연성으로 상대를 차례차례 모래판에 뉘었다. 모래판에서 꿈을 이루던 즈음 외환위기로 팀이 줄줄이
해체와 창단을 반복하는 힘든 시절을 맞았다. 그도 세경에서 현대로, 현대에서 신창건설로, 다시 현대로 떠돌아야 했다.

황규연 씨름이 제대로 빛을 발한 것은 2001년. 그해 추석장사대회 천하장사전에서 골리앗 김영현을 3-2로 꺾으며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김영현·이태현과 3강 시대를 구가하던 황규연은 양쪽 십자인대가 모두 파열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통산 16번이나 꽃가마에 올랐다.

황규연은 그래도 시절 좋던 씨름판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 씨름판은 척박하다. 프로팀이라야 황규연이 몸담고 있는 현대삼호중공업이 유일하고, 국민의 관심도 멀어졌다.

그 많던 학교 씨름부·운동장 한편의 모래판은 대부분 사라졌다. 모래판이 사라지듯 장사들의 울림도 사라졌다. 천직인 씨름을 뒤로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김영현과 이태현은 격투기라는
정글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하나둘 모래판을 떠나고 어느 순간 혼자 남더군요. 정말 외로웠습니다.” 그에게도 격투기 쪽에서 유혹의 손길을 뻗쳤지만 거절했다. “뭐랄까요.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 씨름을 찾는 분들을 위해 나라도 모래판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이제 팀의 코치를 맡아 지도자의 길을 간다. “보셨죠. 여기 카페에 한참 있었지만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후배들에게 이런 상황을 물려주면 안되죠. 다시 씨름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해야죠.”

중앙대에서 석사까지 한 학업도 뒤로 미룬 그는 “어릴 때 장충
체육관에서 받은 이준희 장사의 사인을 아직 간직하고 있어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저처럼 꿈을 키우는 후배, 씨름을 보러 몰려오는 관중. 그런 날이 다시 오겠죠”라며 인터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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