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의 역사-유라시아의 교차로
제임스 A. 밀워드 지음, 김찬영·이광태 옮김
사계절·3만8000원
파란만장의 역사-파미르 고원의 처마-신장지역 쟁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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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353회 작성일 2013-02-17 01:23본문
동서문명 교차로 ‘신장’ 둘러싼 파란만장 쟁탈사
등록 : 2013.02.15 20:33수정 : 2013.02.15 22:22
1933년 수립된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의 병사들.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은 1910~20년대 위구르 근대 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아 성립됐다. 그러나 민족적 정체성이 모호한데다, 중국·소련 등의 반대로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스웨덴 국립문서고 소장 |
실크로드 화려한 조명 걷어내고
선사시대부터 최근 위구르까지
복잡무쌍한 수천년 역사 재구성
정착민과 유목민이 치고받는 땅 빼앗기 싸움은 수천년 동안 중국 대륙의 북방과 서방에서 숙명처럼 되풀이된 역사였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란 틈새에서 서역 상인들을 끼고 이어진 교역과 신앙, 문화 교류는 오늘날 중국 문명을 살찌운 자양분이 되었다.
대국으로 굴기한 오늘날 중국은 이런 교류와 대립의 발자취를 중화민족이 역사를 포용하며 융합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오늘날 민족 분쟁의 불씨가 된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동투르키스탄)의 위구르족 항쟁은 그 파열음이다. 복잡한 다민족 역사를 민족주의 틀로 재단하려는 한족 중심주의 사관과의 충돌인 셈이다.
<신장의 역사-유라시아의 교차로>는 실크로드의 교차로라는 상투적 의미 속에 가려졌던 신장 지역 인문지리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사 권위자인 제임스 A. 밀워드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 책에서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의 처마 격인 신장의 지역사를 현미경 보듯 냉정하게 재검토하고 정리한다.
파미르 고원과 톈산 산맥 등에 둘러싸인 타림·투루판·중가리아 분지의 척박한 지리 조건을 배경으로 하여 선사·고대 시대부터 한·당 시대 몽골 제국기, 최근 위구르·한족 분쟁까지 무수한 쟁탈과 지배의 역사가 500여쪽에 펼쳐지고 있다.
중국사 역사지도를 보면, 한나라 이후 수당대에 이르기까지 중원 왕조들의 강역은 예외없이 서역으로 일컫는 신장 지역 변방 쪽으로 불룩하게 뻗어나간 자루 모양이다. 왜 이런 기형적 모양이 된 것일까. 유목민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안보 정책 차원에서 중국 왕조들이 집요하게 신장 진출을 꾀했다는 밀워드의 설명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흉노·위구르·돌궐(투르크)·카라키타이(거란) 등 북방 유목민들과 끊임없이 대립했던 중국 북방 왕조들은 서역인 신장을 공략해 유목민들의 경제·군사적 배후를 흔들려는 전략에 줄곧 매달렸다. 한나라는 장건의 서역행 이래 이광리·반초 등의 원정으로 흉노를 내쫓으며 타림 분지 북부의 투루판 등에 주둔병사들의 농장을 세웠다. 당나라가 돌궐·토번 등과 혈투를 벌이며 쿠차(쿠처)·카라샤르 등에 행정 거점인 안서사진을 경영한 것도 안보 전략이 우선 작용한 결과라고 지은이는 본다.
중원의 생산력과 보급시스템의 취약성 탓에, 직할 지배는 거의 불가능했다. 타림 분지에 퍼진 위구르·돌궐 등의 유목민 세력들과 복속 관계를 맺고 간접적으로 정치·경제적 이익을 좇는 형식을 취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신장 교역로 연변에 소그드족 상인 외에 중국 상인의 흔적은 매우 미미했고, 현지 정착도 부진했다는 당대 기록들을 근거로 제시한다.
한·당 시대 이후 중국은 토번·카라한조·몽골제국 등 이민족의 압도적인 세에 밀려 1000년 이상 신장에서 거점을 상실한다. 지배권 회복도 18세기 만주족 왕조인 청 제국이 유목 세력 준가르 일파를 토벌한 뒤 새 강역이란 뜻의 ‘신장’ 지명을 붙이면서부터였다.
밀워드는 투르키스탄 역사는 숱한 이민족 문화의 용광로였기에, 단순 민족주의 도식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신장에서 경제·문화 교류가 융성했던 평화의 시대는 어김없이, 다민족 공생이 보장됐던 중원 대륙의 분열기나, 투르크화한 당 왕조 또는 원·청 등 이민족 왕조 시절이었다. 반면 청 제국은 19세기 말 재정벌로 중앙 통치체계에 신장을 편입하고, 한족 중심의 유교 교육과 행정 편제를 강요하면서 민족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
20세기 초 소련의 간섭과 중국 본토 출신 군벌의 학정으로 이런 갈등이 더욱 확산됐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는다. 신장의 위구르인들 역시 30~40년대 두차례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웠지만, 신장 지역의 복합문화적 성격과 복잡한 이민족 정치사의 특징을 반영하지 않은 모순 탓에 단명에 그쳤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객관적 역사 기술을 시종 강조한 책이지만, 읽고 나면, 1000년 이상 신장을 지배했다는 중국 종주권론의 실체가 공허할 뿐 아니라, 다민족 정체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중국의 시각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되레 깨닫게 된다.
위구르·페르시아·아랍·중국 원어 문헌은 물론이고, 미국 등 서구의 연구서들과 일본 학자들의 저술 등을 세계일주하듯 섭렵하며 신장의 복잡다기한 민족교류사를 일일이 엮어낸 역사가의 박람강기가 느껴진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제공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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