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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를 데려간 한화 한대화팀-10억원짜리 김태균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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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713회 작성일 2012-12-2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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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칼럼

김태균 "아내 김석류에게 큰 짐만…내가 나쁜 놈"

기사입력 2012-12-24 13:09
김태균은 올 한 해 희로애락의 정점에 있었다. 외부의 요인 신경 안 쓰고 마음 편히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1년 반 만에 일본에서 돌아왔지만 그한테 주어진 환경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겉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찬호 형도 떠나고, 현진이도 없고~’ 내년 시즌 한화이글스의 주장을 맡은 김태균(30)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화 마운드를 책임졌던 중요한 두 선수의 공백이 과연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태균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주장을 맡았다. 처음엔 강하게 고사했지만 선수들의 만장일치로 ‘완장’을 차게 됐다.
올시즌 김태균은 타율 3할6푼3리에 16홈런, 80타점의 성적을 남겼고 타격과 출루율로 2관왕에 올랐다. 시즌 중반까지 ‘신의 영역’이라고 부르는 4할 타율을 넘나들며 고감도 배트를 선보이면서 한화 공격의 첨병 역할을 맡았지만 부상과 컨디션 난조, 상대 투수들의 집중 견제가 겹치며 굉장히 힘든 한 시즌을 보냈다.
일본 진출 2년 만에 15억 원의 연봉을 받고 친정으로 복귀한 뒤 절치부심하며 한국에서의 완벽한 부활을 바랐던 김태균. 그러나 꿈의 4할도, 소원했던 ‘가을야구’도 혼자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2012년이 마무리되는 즈음에 김태균과 올시즌 마지막 ‘취중토크’를 가졌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굉장히 드라마틱한 시즌을 보낸 것 같은데….
“얼마 전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불우이웃 성금을 많이 냈다고 ‘사랑의 골든글러브상’을 주더라. 물론 의미있는 수상이었지만 선수이다 보니 성적과 관련된 상을 받고 싶었는데 봉사로 상을 받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시즌 중반까지 굉장히 좋은 성적을 냈고 4관왕(타율, 최다안타, 출루율, 장타율) 후보로 까지 거론되며 열심히 달렸는데 부상이 계속 되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거의 정신줄을 놔버렸다. 결국엔 2관왕(타율, 출루율)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때 좀 더 잘 해둘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김태균은 올시즌에 대해 ‘깨달음이 많았던 해’였다고 말한다. 이전에 있었던 선배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자신의 야구가 왜 이렇게 헤매고 있었는지, 자신이 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했던 한 해였다는 내용이다.)
-다시 돌아온 한화는 이전과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지난 2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의 인터뷰 때 코칭스태프부터 선수들까지 모두 바뀌어서 적응하기 힘들다고 얘기한 게 기억난다.
“그런데 시즌 중에 한대화 감독님이 그만두시고 시즌 후엔 김응용 감독님이 오시면서 코칭스태프가 또 바뀌었다. 그런 점에선 내년 스프링캠프 때도 또 적응기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일본 지바롯데와의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마음 편히 야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 와서도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개인 성적이 좋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일본 가기 전에는 한화가 꼴찌였어도 처음부터 꼴찌가 아니라 시즌 중반 넘어가면서 점차 하향곡선을 그렸는데 올시즌엔 아예 처음부터 꼴찌였으니까 밥맛을 잃을 정도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있었지만 2년 새 내가 팀 고참이 돼버렸다. 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년 만에 돌아온 한화는 김태균한테 낯설게 다가왔다. 선후배간의 격의 없는 분위기, 서로를 챙겨주고 아껴주는 돈독한 팀워크가 그리워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승은 못해도 상대팀에서 까다로워하고 두려워하는 한화의 색깔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려웠다고 말한다.)
김태균과의 인터뷰는 '취중토크'로 진행됐다. 그렇다보니 김태균의 솔직한 감성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정말 그랬을 것 같다. 김태균, 박찬호의 복귀와 영입으로 한화는 시즌 전까지만 해도 4강을 넘어 우승 후보로 지목됐으니까 말이다.
“그런 팀이었는데 출발부터 바닥에서 맴도니까 내가 어떤 입장이었겠나. 야구는 개인이 강해야 팀으로 모였을 때 더 강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린 선수 개인이 약했다. 팀의 기둥 역할을 해줘야 할 고참들이 모두 은퇴하고 없는 탓에 가지들만 남아 중심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거린 셈이다. 시즌 치르면서 마치 나 혼자 무인도에 표류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치열한 시즌을 치르면서도 왜 이렇게 외로움을 느끼게 됐는지…, 나 혼자만의 생각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감정을 가진 듯 했다.”
-아무래도 시즌 막판에 한대화 감독이 물러나고 감독대행 체제로 가는 부분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시즌 마친 후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감독님께 정말 죄송했다. 모든 게 선수들 책임인 것 같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나 혼자 아등바등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몇날 며칠을 불면증으로 고생하며 고민해봤자 도움 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 그런 생각들이 4관왕에서 2관왕으로 끝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지도 모른다.”
-김응용 감독이 새로 오셨다. 그런데 선수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김태균 선수한테 ‘살 좀 빼라’고 말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나도 기사보고 처음 알았다. 감독님이 기자들한테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접적으로 나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어? 살이 많이 빠졌네’라고 하셨고, 그 얘기에 선수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어떻게 형한테 살 빠졌다는 말씀을 하시느냐고. 말이 되느냐’면서 말이다. 난 누가 하라면 안 한다. 내가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프로 선수가 몸 관리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만약 감독님이 나한테 살 빼라고 말씀하셨다면 난 오히려 체중을 더 늘렸을 지도 모른다.(웃음) 난 프로선수다. 프로답지 못한 자기관리는 결국 자신이 피해자다. 살 많이 뺀다고 다 우승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내가 체중 조절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당연히 감량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은 시즌 때보다 체중이 더 줄어들었다. 야식을 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김태균은 체중 조절보다 더 중요한 건 선수들한테 야구에 대한 절박함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 절박함이 없이는 야구가 ‘본업’이 아닌 ‘부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균은 올 해 그 절박함을 느꼈고, 내년에는 그 절박함을 몸으로 보여줄 일만 남았다고 덧붙인다.)
-팀 주장을 맡았다. 끝까지 고사하다가 막판에 수락했다고 들었다.
“정말 주장만은 안 맡고 싶었다.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난 평소에 선수들과 떠들고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 무게 잡고 큰소리치는 건 딱 질색이다. 더욱이 선후배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스타일이라서 주장을 맡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팀 분위기를 저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이왕 맡은 거 정말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주장 취임식(?) 때 이미 공표했다. 내가 막말해도 이해해 달라고. 나한테 이런 완장을 차게 했으니 그 책임은 선수들이 져야 한다면서 부탁했다.”
참으로 다양하고 많은 수의 별명을 소유하고 있는 별명의 절대 지존 김태균. 그러나 그의 마음에 드는 별명은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사진=연합뉴스)
-김태균과 별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같다. 운동선수들 중 최다 별명 소유자 아닌가. 약 500개 정도 되는 걸로 아는데.
“처음엔 내 별명을 보고 재미있어서 많이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겹다 못해 화가 난다. ‘김’이라는 성 씨 뒤에 아무 거나 붙이면 다 별명이 된다. ‘김질주’나 ‘김국민’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김도망’ ‘김고자’ ‘김사망’이란 별명에선 질려버렸다. 살아있는 선수한테 어떻게 ‘사망’이란 별명을 갖다 붙일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나한테는 왜 ‘바람의 아들’이나 ‘스나이퍼’ ‘라이언킹’ 같은 별명을 안 지어주나. 나도 근사한 별명을 갖고 싶다. 이 자리에서 부탁드린다. 내년 시즌에는 ‘김 시리즈’ 별명 말고 내 야구 스타일에 어울리는 근사한 별명을 지어 달라. ‘김주장’ ‘김두목’은 절대 사절이다.”
(김태균은 ‘별명’과 관련된 질문을 진짜 싫어했다. 술자리만 아니었다면 이 질문은 받아들이지 않고 패스했을 것이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야구 잘하는 선수한테 그의 바람대로 멋진 별명을 만들어줄 수는 없을까. 진짜 팬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영혼의 콤비’로 불렸던 류현진이 LA다저스에 입단했다. 누구보다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는 빨리 돌아와서 같이 우승을 일구자고 했던 놈이 내가 오니까 자기가 도망가 버렸다. 배신감도 들지만 어쩌겠나. 구단에 돈 많이 벌어주고 떠났으니 내가 고맙다고 해야지(웃음). 미국 가기 전에 영어 좀 배우고 가라고 잔소리 해댔는데 여전히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통역이 있으면 불편함이 없겠지만 항상 통역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나중엔 미안해진다. 나 같은 경우엔 통역한테 미안해서 혼자 다니다가 아예 선수들과의 소통마저 끊겼다. 그래도 현진이는 워낙 붙임성이 좋아서 잘 적응할 것이다. 생활면에서만 걱정될 뿐 실력면에서는 문제없다고 본다.”
-김태균한테 박찬호 선수는 어떤 존재였나.
“아주 귀찮은 존재? 하하, 본받을 부분도 많고 의지하고 싶지 않지만 하게 만드는, 아주 강한 에너지의 존재였다. 찬호 형이 정이 많다. 그러다보니 후배들을 잘 챙겼는데 그게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가면 조금씩 귀찮아지더라. 대전 집이 찬호 형과 위아래 집이었다. 하루는 밤늦게 누가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사람은 안 보이고 호박차만 놓여 있었다. 찬호 형이 놓고 간 것이었다. 또 하루는 한참 자고 있는데 찬호 형이 잠깐 내려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인상 제대로 구기고 형네 집으로 갔더니 홍삼 세트를 건네는 게 아닌가. 그거 내일 줘도 되는 건데 굳이 자는 사람 깨워서 줄 필요가 있는지를 물었다. 찬호 형 왈, ‘지금 바로 주고 싶어서’ 라고 말하더라. 영혼이 순수한 분이다. 후배를 조금 귀찮게만 안 하면 아주 좋은 동네 형이다(웃음).”
(김태균은 박찬호가 LA로 떠나기 전에도 종종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고 얘기한다. 정 많고, 후배들 잘 챙기고, 한국 야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했던 박찬호의 ‘야구 愛’에 대해 김태균도 많은 ‘느낌표’를 받은 것 같다.)
'영혼의 콤비' 류현진과 '야구 애'로 똘똘 뭉친 박찬호와 함께 한 김태균. 이제 세 명의 선수 중 둘은 팀을 떠나고 김태균 혼자 남았다.(사진=연합뉴스)
-선수 생활하면서 이승엽 선수를 신경 쓰거나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있나.
“어떻게 감히 승엽이 형 이름에 날 갖다 댈 수 있겠나. 라이벌? 승엽 형이랑? 말도 안 된다. 스물다섯 살 이전 까지만 해도 인터뷰 때마다 승엽 형의 기록을 뛰어 넘겠다고 호기있게 얘기했다. 그런데 나이 먹으면서 형은 내가 뛰어넘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주 큰 산이었고, 신 같은 존재이다. 특히 일본에서 생활하며 승엽 형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난 1년 반 하고 힘들다며 도망쳐왔고, 형은 거기서 8년을 버티셨다. 성적이 어떠했든 나랑은 ‘멘탈’ 자체가 다르다. 한 마디로 급이 틀린 분이다.”
-이대호, 추신수 선수랑은 동갑내기이자 고교야구 때 라이벌 관계였다. 지금은 두 선수가 해외파로 활약하고 있는데 솔직히 추신수하고는 그리 친하지 않다고 들었다.
“그렇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친해질 틈이 없었다. 그러나 나한테 큰 자극을 주는 선수다. 친구지만 멋있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대호도 마찬가지이다. 대호랑 한국에서 뛸 때 내가 잘하면 대호가 못하고 대호가 잘하면 내가 못 치고 그랬다. 그랬던 친구가 지금 일본에서 뛰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내가 경험해봤기 때문에 대호가 올시즌 일본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는데 잘 버티더라. 한 마디로 난 놈이다. 내가 예민한 성격인데 반해 대호는 털털하고 친근감 있는 성격이라 적응을 잘 한 모양이다. 그런데 대호가 너무 잘해서 내가 더 욕을 먹는 것 같다(웃음).”
-얼마 전 한화 후배 최진행의 결혼식 때 정근우와 함께 축가를 불렀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이벤트를 벌인 건가.
“내가 노래를 잘 하는 편이다(폭소). 원래 진행이 축가는 비밀리에 ‘진행’하려다가 근우가 방송 나와서 터트리는 바람에 비밀유지가 안 됐다.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결혼식하기 몇 시간 전에 근우 만나서 노래를 맞춰봤는데 근우가 정말 못 부르더라(웃음). 그래도 그 친구가 머리는 좋아서 ‘다행이다’를 ‘진행이다’로 바꿔 부르는 바람에 축가가 빛이 났다.”
-노래 잘 부른다고 자랑하는 선수는 처음 봤다.
“필요하다면 같이 노래방 가서 내 노래 실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웃음)”
김태균한테 아내 김석류 씨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어느 커플보다 세상의 관심을 '과하게 받았던 이 부부는 첫돌 지난 딸 효린이의 재롱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사진=일요신문DB)
-나중에 기회 되면 꼭 확인해보겠다(웃음). 아내와 관련된 질문을 해도 되겠나. 유명한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의 아내(김석류 씨)와 결혼하면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두 부부 사이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내가 유명 아나운서 출신이라 사람들의 질투어린 시선이 꽤 컸었다.
“사회 생활 열심히 하고 있는 아내를 ‘악의 구렁텅이’로 끌고 와서 커다란 짐만 안겨주었다(웃음). 나 하나 보고 일본까지 왔는데 임신 중에 지진의 악몽을 겪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고생만 했다. 또 나랑 결혼한다고 하니까 어찌나 욕들을 많이 하시던지. 돈을 많이 버는 선수와 결혼한다고 해서 왜 그게 비난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우리 둘은 행복했지만 나로 인해 아내가 더욱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많이 미안했다. 결혼 후에도 아내는 아이 키우며 줄곧 혼자 지냈다. 나야 좋아하는 야구한다고 바쁘게 살았지만 아내는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만 생활해야 했다. 아내의 주량이 맥주 한 잔이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혼자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 먹었다. 내가 나쁜 놈이다. 그래도 이제 돌 지난 효린이 보면서 아내도 나도 서로 위안을 많이 얻는다. 세상에서 우리 딸처럼 예쁜 아기는 처음 봤다(폭소).”
김태균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 대해 절절한 마음을 표현해냈다. 자신이 워낙 무뚝뚝한 스타일이라서 공개적으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거나 아내와 함께 공개석상에 서는 일을 꺼려하지만, 집에서만큼은 한 여자의 남자로 충실하게 생활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다하는 아내에게 절대적인 고마움과 신뢰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분위기가 ‘취중토크’라서 그런지 김태균은 평소 야구장에서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과감 없이 풀어냈다. 기자가 알아서 가려 써야 할 정도로 속마음을 꺼내보였다. 김태균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한화가 우승을 하게 되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 ‘새로운 도전’의 의미를 집요하게 물었지만 김태균은 ‘나중에’라는 말로 대답을 미뤘다.
김태균은 WBC 대표팀에 대해서도 기대와 희망을 부풀렸다. 기회가 주어진 만큼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아내가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어요. 이번에 잘해야 내년 한 시즌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내와 딸 효린이를 위해서라도 WBC에서 꼭 좋은 모습 보일 겁니다.”
WBC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는 김태균. 내년 한화의 주장으로 그의 역할은 더울 커질 것이다. 올 한 해 많이 아팠던 만큼 내년에는 그 아픔이 값진 결과물로 나타나길 바란다.(사진=일요신문 박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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