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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명작-성공-상류계층 결합의 속물(?) 교양이라는 데?-박숙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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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561회 작성일 2012-12-2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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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식민지 조선의 명작·성공·상류계층 결합이 낳은 


속물 교양, 현재도 다르지 않아”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ㆍ‘속물 교양의 탄생’ 낸 박숙자 교수





일제강점기 시절,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가장 널리 읽힌 책이었다. 19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 장발장처럼 박해받는 우리 처지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이태준의 소설 <사상의 월야>에는 <레미제라블>을 읽고 감격한 한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장 발장의 이야기에 천대받았던 지난날이 생각나 콧날이 저렸다고 했다. 

그런데 동시에 장 발장의 과거를 들춰내려 하는 자베르 경감에 대해서도 “엄격한 법의 옹호자로 인류사회엔 반드시 필요하다”고 칭찬한다.

<속물 교양의 탄생>(푸른역사)을 내놓은 박숙자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42·사진)는 이 지점에 주목했다. 


위고는 <레미제라블> 서문에서 분명 “법과 제도에 의해 인간의 사회적 자유를 통제한다면 … 글을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 인권이 법과 제도보다 우선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소년은 위고의 작품을 이렇게 읽었을까. 


지난 19일 만난 박 교수는 “오독은 이 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식민지 소년의 오독을 따라가는 일은 오늘날 ‘세계명작’에 열광하는 우리의 속물적 심리를 되짚는 과정이다.





박 교수는 먼저 소년이 읽은 <레미제라블>이 일본인 구로이와 루이코가 ‘희무정(噫無情)’이란 이름으로 번역한, 의역에 가까운 번안본이었음을 지적한다. 위고의 서문 또한 역자 서문에 끼워넣는 식으로 일부만을 소개했다. 


<희무정>을 저본으로 번안한 민태원의 <애사>에서도 또 다른 ‘오독’이 등장한다. 민태원은 <애사>의 중반부에서 “이야기를 이쯤에서 끝내고 싶다”고 말한다.


 “몇 십년 동안의 신산한 고생이 끝나고 비로소 원만한 경우를 만났다고 할” 지점에서 말이다. 자베르가 장 발장을 뒤쫓고, 장 발장이 결국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후반 부분은 그에게 “어렵고 무정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박 교수는 이렇듯 조선 사람들이 <레미제라블>이라는 ‘명작’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양심을 가진 근대적 개인의 탄생이라는 핵심 주제의식이 빠져 있다고 분석한다. 대신 손에 쥔 건 ‘가난한 소년의 성공 스토리’였다. 명작의 내용뿐만 아니라 명작 그 자체도 무엇보다 ‘성공’과 ‘상류계층’의 상징으로 소비됐다. 명작을 읽었다며 드러내보이는 ‘교양’은 “개인을 시민으로 키워내는” 본래적 의미의 교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시용 명품 핸드백처럼 ‘속물 교양’이었고, 당연히 학력과 자본에 비례했다.

이 시기부터 지식인들은 신문 지면에 등장할 때면 서재의 서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명작에 대한 과시욕구와 소장 가치가 더해지면서 장정과 제본 형태도 고급화된다. 양장본으로 출간된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은 누구나 책장 한쪽에 두고 싶어했다. 




이 ‘신조사판’은 조선·동아일보에 당시로선 파격적인 전면 광고를 냈다. 여름방학이 되면 신문마다 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했고, 세계 명작은 빠지지 않았다. 조선의 작가들은 자신이 ‘사숙(私淑)’한 작가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았다. 염상섭은 “서에 도스토예프스키, 동에 염상섭”으로, 최서해는 “조선의 고리키”로 비유됐다.




조선에서 문학은 그 자체로 ‘교양’이 되기보다 ‘속물 교양’을 취득하기 위한 도구였다. ‘명작’이라는 말 자체가 ‘fine work(좋은 책)’가 아니라 ‘famous work(유명한 책)’를 번역한 것이었다. 




“문학의 해방적 기능은 문학이 바로 이 세계를 재현한다”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그 재현된 세계 안에만 머물면서 문학을 현실에서 떼내 별개로 설명했다. ‘정상 국가’에 대한 욕구가 컸던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명작은 자본주의적 물질성장과 계급 상승, ‘근대’와 ‘서구’에 편입할 수 있는 도구였다.

박 교수가 책의 서두에서 “이 책은 내 독서 편력의 반성문”이라며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을 섭렵한 후 그 속의 한 구절을 교양의 증거로 제시했던” 기억을 털어놓듯, 지금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고전읽기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구호가 난무하고, 출판사들은 세계문학전집 출간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서울대 고전 목록’에 들어 있거나 특정 신문에 소개된 고전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른다. 우리는 그 책들을 씹을 새도 없이 허덕허덕 삼키기 바쁘다.

“명작을 자신의 삶 안에서 해석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인용하고, 과시하고, 소비하고, 소장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명작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찬탄할 필요는 없죠. 세계 명작을 모른다고 주눅들지 마세요. 자신의 삶 안에서 해석되지 않는, 이해되지 않는 명작은 아직은 자신에게 명작이 아닙니다. 명작은 읽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완성됩니다.”

박 교수는 스스로 자녀들의 학교에서 ‘필독서 리스트’를 버리고, 서로의 독서경험을 공유하고 참고하면서 책을 읽어간 경험을 들려줬다. “동네 사람들과 진행하는 책읽기 모임에서도 다음달부터는 그동안 ‘이게 왜 명작이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남들이 명작이라고 하니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터놓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어요. 



예컨대 누구나 명작으로 읽는 <위대한 개츠비>도 ‘미국의 소박한 현실을 그린 당대 문학에 불과한 것 같은데 그게 왜 명작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것은 박 교수가 1939년 학예사가 발간한 <원본 춘향전>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과도 맥락이 닿는다.


 당시 <춘향전>은 해외에까지 소개된 대표적인 조선의 ‘명작’이었지만 수십종의 다양한 형태로 발간되면서 심지어 ‘가부키 분장’을 한 춘향까지 등장했다. 



“사실 춘향전에 원본이 있을 수 없죠. 다만 학예사판은 민중들의 입담, 감성, 경험이 그대로 기록돼 있었어요. 명작이, 혹은 명작의 목록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이 들어 있었던 셈이죠. 민중들이 스스로 읽고 말한 것이 원본이고, 명작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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