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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482회 작성일 2012-12-03 01:22

본문

 
 
 
ㄹ.된장 바둑 ,야생의 표범   서봉수 9단
 
 
 
만일 서봉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한마디로 조훈현은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바둑계를 조치훈과 함께
 
쌍두 마차로 쌍끌이로서 호령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조훈현은 한국에서 천하통일을 3번이나 하였지만,
서봉수에게 주요 대국에서 가끔 지는 바람에
가끔 지는 바람에
 
 
(사실900판을 두면 600판은 조훈현이 이기고 300판은 서봉수가 이기는 정도 였지만)
 
조훈현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상하여  그 서봉수를 완전히 제압한 다음
 
 
일본에 다시 가서  
 
일본을 조치훈9단과 함께 일본을 완전 제압할 심산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치훈-조훈현이 일본 바둑을 휩쓸거라는 소위 쓰나미가 능히 예상될 정도 였다고 합니다.
 
김인 9단도 함께 일본에 그냥 남아 3총사로서 활약을 했다면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일본 바둑은 한국인이 일찌기 거의 점령
 
했으리라 봅니다.
 
 
***최근 한국의 여자 프로 골퍼들이  합심하여 일본의 프로여자골프계를
 
석권하듯이 말입니다.
 
(사실900판을 두면 600판은 조훈현이 이기고 300판은 서봉수가 이기는 정도 였지만)
 
조훈현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상하여  그 서봉수를 완전히 제압한 다음
 
 
일본에 다시 가서  
 
일본을 조치훈9단과 함께 일본을 완전 제압할 심산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치훈-조훈현이 일본 바둑을 휩쓸거라는 소위 쓰나미가 능히 예상될 정도 였다고 합니다.
 
김인 9단도 함께 일본에 그냥 남아 3총사로서 활약을 했다면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일본 바둑은 한국인이 일찌기 거의 점령
 
했으리라 봅니다.
 
 
***최근 한국의 여자 프로 골퍼들이  합심하여 일본의 프로여자골프계를
 
석권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서봉수가 그의 일본 복귀를 늦추게 하는 선전끝에
조훈현을 아주 다행히도 한국에 머물러 있게 하였고
 
결국에는 천재 조훈현 덕분에- 한국 바둑은-당시 일본에 아주
 
무시당한 적이 많았는 데 -1989년 응씨배 세계대회에서의
 
조훈현 우승이후에는
 
한국을 다시 보게되었다고 하며
한국을 다시 보게되었다고 하며
 
나아가 그 이후 한국을 오랜동안 무시하던 일본 바둑은
 
아시아에서 점점 3류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20여년간 일본 바둑이 자국내 국제 타이틀인 후지쓰배 말고
 
다른 세계 주요 타이틀 전선에서 초반 대거 미끄러지는 대형사고를
 
수십차례 당하여 얼굴을 못들 정도이고 적지않은 일본 바둑의 시니어
 
클래스들이 자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서봉수
 
 
순수 국산 즉 일본 유학을 하지 않은 토종 프로바둑기사로서는
 
최초의 정상급 인물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조남철,김인,조훈현 및
 
국수전을 한두 차례 차지한 바 있던 윤기현 및 하찬석 국수도
 
일본 유학파였기에
 
 
국내에서의 토종 된장 바둑 서봉수 9단의 인기는 한시대를 조훈현과 함께
풍미하기도 하였습니다.
 
 
 
1972년 부터 혜성같이 등장한 서봉수 9단은
2단 시절 이미 최고 수준의 名人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74년 부터는 공군 복무를 위해 귀국한 조훈현과 함께
한국 바둑의 명승부 연출의 80년대를 장식하게 됩니다
 
서봉수는
 
특히 명인전에서 천하의 조훈현을 여러 번 물리쳐 명인전의 사니이
 
또는 서名人이라고 수십년간 호칭한 바가 있습니다.
 
 
 
2단 시절 이미 최고 수준의 名人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74년 부터는 공군 복무를 위해 귀국한 조훈현과 함께
한국 바둑의 명승부 연출의 80년대를 장식하게 됩니다
 
서봉수는
 
특히 명인전에서 천하의 조훈현을 여러 번 물리쳐 명인전의 사니이
 
또는 서名人이라고 수십년간 호칭한 바가 있습니다.
 
 
 
 
 
 
서봉수는 이미 10여년 전에 한국 최초의 1000승을
 
차지한 바 있을 정도로
 
대국의 수가 상대적으로 가장 많았으며
 
 
 
최근에는 서능욱 9단이 1,000승의 위업을 달성하여
최근에는 서능욱 9단이 1,000승의 위업을 달성하여
 
본인이 감격에 겨워할 정도 였다고 합니다.
 
 
 
서봉수9단은 특히 정치계 경제계 및 사회 고위층 인사와의 지도대국에서도  일체 조금도 여유를 주지 않는 등 그 악명(?)을 드높인 바가 있어서
 
 
 
약 12년 전에는 바둑 T.V. 케이블 채널에서
 
 
서봉수 2점 접바둑 코너를 준비하여
 
서봉수와 2점 접바둑으로 만일 이기면?
 
 
서봉수 2점 접바둑 코너를 준비하여
 
서봉수와 2점 접바둑으로 만일 이기면?
 
 
아마 6단의 정식 면장을 한국기원에서 준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뭇 아마 강호 제현들이 번번이 2점 접바둑에서
 
패퇴하였다고 합니다.
 
 
소감: 한국최초의 토종 바둑 서봉수 9단이 개인적인 불운을 딛고
다시 동갑나기 리이벌 조훈현과 함께
 
인생 후반부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길 고대해 봅니다.
 
 
 
ㅁ.이창호 9단
 
 
 
이창호 9단은 전북 전주 출생으로 부친이 금은방을 하여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여
 
3살 무렵에는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3등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7급 실력의 애기가이셨던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릴 적에 전주 시내의 유명한 기원을 기웃거리게 되었는 데
 
 
 
바둑 입문 1년만에 1급 실력으로 급성장하였고
 
당시 전주시내 아마 강자였던 이정옥 5단이 매일 지도하였고
 
그 이후 프로기사 였던 전영선 프로5단에게 그 실력을 점검받았으며
당시 전주시내 아마 강자였던 이정옥 5단이 매일 지도하였고
 
그 이후 프로기사 였던 전영선 프로5단에게 그 실력을 점검받았으며
 
전5단은 조훈현에게 부탁하여 그의 집에서 지도받는 수제자로
전5단은 조훈현에게 부탁하여 그의 집에서 지도받는 수제자로
 
입문하게 됩니다.
 
 
 
 
이창호
 
 
 
조훈현 다음으로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우게 되었으며
 
입단 3년뒤 부터는
 
각종 국내외 대회의 결승에 진출하여 조훈현의 수많은 타이틀을 야금야금
 
집어 삼키더니 드디어는 수많은 국내외 주요 타이틀을 거의 독식하여
 
 
조훈현 전성 시대를 마감시키는 새끼 호랑이로서의 위용을 아주 조용히
 
과시하여 내부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특히 세계 주요 타이틀 25회 획득은 앞으로 당분간
 
 
 
깨기 어려운 기록이 될 것이 확실시 됩니다.
.
 
 
 
깨기 어려운 기록이 될 것이 확실시 됩니다.
 
 
 
몇년전 그는 아마추어 5단의 강자이자 바둑신문 기자출신과 결혼하여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재산도 안전한 포석으로 잘 굴려
 
 
 
지금은 100억원 안팎의 재산가가 되어
지금은 100억원 안팎의 재산가가 되어
재산도 안전한 포석으로 잘 굴려
 
 
 
지금은 100억원 안팎의 재산가가 되어
지금은 100억원 안팎의 재산가가 되어
 
 
 
주변의 시샘을 사고 있다고 합니다.
 
 
 
주변의 시샘을 사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국제 주요 대회에서 준우승만 여러번 하여 그를 아끼는 바둑팬들들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를 바둑기사로 이끈 조부님은 그가 채 대성하기도 전에 안타깝게 작고하셨다고 합니다.
 
소감: 75년생인 이창호 9단이 2대 바둑 황제로서 후배인 천재 이세돌 및
 
박정환등의 신세대들에게 밀리는 인상입니다.  마음을 잘 추스려 다시
 
그의 제2의 전성기 시절을 기대하는 바둑팬이 적지 않는 만큼  다수의
 
바둑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기회가 오길 기대합니다.
 
 
 
3.끝맺는 말
 
 
 현대 한국 바둑계는 광복이후 조남철 선생 시대 그리고 60년대 후반
 
의 김인 9단 시대 및 70년대 조훈현-서봉수 양강시대 를 거쳐
 
80년대 조훈현 시대 그리고 90년대 이창호 시대를 거쳐
 
2000년대 이세돌 시대를 거쳐
 
2010년대 박정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봅니다.
 
 
89년 응씨배 조훈현 우승이후
 
한국은 20년안팎 세계 바둑계를 석권해온 일류 나라입니다.
 
 
 
이세돌이 잠시 주춤한 사이
 
중국은 이창호에게 세계 바둑결승에서 번번이
 
패해 그 트라우마가 심했던 마효춘 9단이 중국 바둑계의 어린 선수 지도
 
의 맹장이 되어 한국 타도를 부르짖고 있으며 
 
중국 바둑의 구리9단을 비롯하여 그의 후배 수많은 어린 중국 인재들이
 
이젠 황사 바람을 일으키며 한국 바둑을 아주 크게 위협하고 있는 실정
 
입니다. 
 
 
 
부디 우리의 바둑 천재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만리장성을 넘는
 
쾌거를 지속적으로 해주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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