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마사토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일본쪽 공동대표(변호사)는 일본 정치권의 흐름은 평화헌법 개정 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일본의 여론은 아직 제9조의 개헌에 반대 의견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
[한겨레가 만난 사람] ‘야스쿠니 반대 운동’ 우치다 변호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우치다 마사토시(57) 변호사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일본어로 줄줄 외웠다. 의외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4·19 민중혁명’의 이념을 계승한다는 부분이었다. 민주주의 실현 과정을 기억하고 그것을 헌법에 담은 것이 부럽고, 일본인들도 그런 한국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헌법은 1947년 만들어져 아직까지 한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일본의 보수 우파는 그 헌법의 핵심인, 군대의 보유와 전쟁을 부정한 ‘평화주의’를 깨뜨리려 하고 있다. 우치다 변호사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이 헌법 제정으로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을 털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며, 그는 정반대로 평화주의를 실천하고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고쳐가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일본 정치권은 그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군대의 보유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자는 자민당은 16일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자민당보다 더 우익 색채가 짙은 일본유신회도 총선에서 상당한 세력을 얻었다. 일본 보수파는 ‘자주헌법 제정’을 앞세워 평화헌법의 굴레를 벗어버리려 하고 있다. 우경화하는 일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지난 5일 우치다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이번 총선에서 차기 총리 자리에 오를 것이 거의 확실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정식 군대로 명시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군대 보유를 헌법에 명시하자는 것은 일본의 보수 정치세력이 오래전부터 줄기차게 추진해온 길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거의 모든 후보가 헌법 개정을 주창했다. 자위대를 강화하고, 그 명칭을 국방군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국방군으로 명시하는 것은 단순히 자위대가 그 명칭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재군비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시아에 대한 관계에서는 매우 손실이 되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다고 본다.”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이들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인가? 일본을 어느 길로 이끌어가려는 것인가? “국가는 영토, 국민, 정부가 있어야 한다. 그들은 영토가 있으면 당연히 영토를 지키기 위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군대를 가져야 국가이고, 군대를 갖지 않은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 일본유신회 대표는 일본을 ‘미국의 첩’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사죄로 역사 청산한 독일에
주변국, 경계심 품지 않지만
난징학살 등 부정하는 일본
군대 보유땐 군국주의 우려 -군대를 갖고 뭘 하겠다는 것인가? “군대로 국경을 지킨다는 것이다. 국토가 1㎜라도 침해당하면 단호히 지키도록 국경경비를 강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경은 경비를 강화하고 막는 곳이 아니라, 타국과 교류하는 공간이다. 후지사와 슈헤이라는 작가가 쓴 <회전의 문>이란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남자들은 왜 국가니 천하니 시운이니 하는 것에 미치기라도 한 듯 몰두할 수 있는 것일까,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기세로 격론을 벌이거나 시를 읊으며 울 수 있는 것일까?’ 이 말을 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대개의 국가가 군대를 갖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도 군대를 가진 ‘보통국가’를 말한다. 일본이 군대 가져도 평화엔 아무런 악영향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군대를 갖는 것에 주변국이 경계감을 갖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역사 청산을 확실히 해서 그렇다. 그러나 일본의 사정은 다르다.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난징대학살은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 일본에 대해선 주변국의 경계감이 해소되지 못한다.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 시절의 국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보는 게 크게 이상하지 않다.” -일본 정치권에서 보수화, 우경화가 최근 급속히 진척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 경제는 오랜 기간 좋지 않다. 사람들은 갇힌 듯한 느낌을 갖고 있다. 그런 가운데 누가 지금의 상태를 깨고 갈 수 있느냐, 깨면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극우 색채를 띤 일본유신회를 만들었고,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와 손을 잡아 이번 총선에서 꽤 무게있는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젊은이들은 일본의 현재 상태를 깨뜨리려면 돌파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하시모토나 이시하라를 그런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그들이 일본을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애국주의는 호응을 얻기가 쉽고, 어떤 정책과도 연결될 수 있어서 위험성이 있다. 역사에서 배워야 할 텐데.” -한국인 눈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시절부터 일본 정치의 보수화가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시대가 고이즈미를 낳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는 나쁘고, 계층간 격차는 커지고, 희망이 잘 안 보였으니까.” -거꾸로 말하면 그들과 견해를 달리하는 일본의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국민에게 희망 있는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 것 아닌가? “그것은 지금 일본 사회만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도 정치적 구심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주의·애국주의를 활용했다. 국민이 그 민족주의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냉정히 상황을 보는 게 중요하다.” -총선과 관련한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민당 등 보수세력이 주창하는 헌법 개정이 언론에서 많이 거론은 되지만,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투표를 결정할 핵심 쟁점은 아닌 것으로 나온다. “언론이 많이 다루니 그게 핵심처럼 보이긴 하지만, 국민은 그렇지 않다. 문제는 헌법을 둘러싸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선거에서 이긴 세력이 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지지를 얻었다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 경제 오랜 기간 안좋아
국민들 “누구든 깨줬으면”
이시하라 등 극우주의자에
막연한 기대감 품는 경향 -일본 국민의 생각이 궁금하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평화헌법의 핵심 조항인 헌법 제9조에 대해서는 50% 이상이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9조에 대해선 그렇지만, 헌법의 다른 조항에 대해서는 어느 부분은 더 명확히 하는 것이 좋겠다거나 내용을 덧붙이는 게 좋겠다는 주장도 있다. 65년간 바꾸지 않았으니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헌법 제9조의 내용을 실현시키고, 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 개정과 관련해서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따로 설명하는 분류법도 생각해주면 좋겠다. 아무튼 개정문제가 단순하지는 않아서, 막상 국민투표를 하면 헌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국민들 사이에 9조를 지키자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정치권은 개헌론 쪽으로 확실히 기울어 있다. 제9조를 지키자고 적극 주장하는 세력은 공산당·사민당 등 소수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에서도 정치권의 생각과 국민의 생각 사이에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일본의 헌법 문제에서는 특히 차이가 큰 것 같다. “소선거구제의 영향이 크다.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를 한 사람 한명만 뽑으니 49%의 의견이 무시되기 쉽다.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언론이 표면적 현상만 이야기하고 있다. 아베가, 하시모토가 뭐라고 말했다는 식의 단순보도가 많다. 사안에 대해 논지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고 본다.” -자민당 지지율이 26%인데, 총선에서 차지하는 의석은 반수를 훌쩍 넘을 기세다. 개헌론자들은 의석의 힘을 중시할 것이다. 물론 일본 헌법은 고치기 어렵게 돼 있다.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래도 이대로 가면 5~10년 뒤에 실제 개헌이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4·19 민중혁명’ 이념 계승 등
대한민국 헌법전문 줄줄 외워
“일본인들도 한국 역사 알아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폭 넓어져” “중요한 것은 일본 국민의 생각이다. 헌법을 고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대외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현재 일본이 처한 문제가 과연 헌법을 바꿔서 해결될 것인가? 긴급한 문제는 원전, 계층 격차, 고용 문제 등이다. 그것은 결코 헌법에서 비롯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인과 얘기해보면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센카쿠열도 영유권 갈등에서 중국이 거세게 나오고 있다. 그런 상황이 국민들로 하여금 이시하라 같은 우파 정치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 같다. “바로 그렇다. 그러니까 결국 일본 한 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의 민주화가 없으면 일본이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다.” -상황은 좋지 않다. 국민간 감정이 나빠지고, 의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월 2차대전 당시 일본에 끌려왔다 희생된 중국인 유족들이 일본에 왔다. 그들 가운데 절반이 일본에 오기 전에 무섭다고 했다. 와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최근 독도 문제, 옛 일본군 위안부 배상 문제가 걸려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감정도 나빠졌다는 조사가 있다. “확실히 놀림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감정이 나빠지고, 각국에서 민족주의 기운이 커지면, 서로 교류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어려워진다. “자꾸 그렇게 가면 결국은 전쟁밖에 안 남게 된다. 인류는 과거에 전쟁으로 여러 문제를 해결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옛날과 같은 짓을 또 반복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한번은 중국 텔레비전을 봤더니, 일본이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있어 놀랐다. 그걸 보면 사람들은 그대로 믿지 않겠는가. 얼마 전 내가 중국에 가려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중국에서 내가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중국인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해준 일도 있다. 극단적인 사례는 일부일 뿐이다.” 정치권 군 보유 등 개헌론 많지만
국민들 평화헌법 9조 유지 원해
센카쿠 등 영토문제 뒤로 미루고
공동으로 활용하는 지혜 살려야 -일본은 현재 국내총생산의 1%가량 방위비 지출을 하고 있다. 일본이 세계 3대 경제국이긴 하지만, 여기서 군사력을 크게 강화할 경제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일본이 중국 같은 군비확장을 하다간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붕괴할 것이다. 중국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군비확장을 하면 민중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이다.” -이대로 가면 중국과 일본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도 꽤 있다. “부분적인 충돌을 배제하기 어렵다. 일본, 중국 어느 쪽도 그것을 먼저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군비를 갖추고 있으면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물론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아시아 전체로는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은 매우 안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공존의 지혜를 살릴 수 있을까? “국경은 외부 사람의 진입을 막는 경비의 장이 아니라, 교류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독도, 센카쿠열도 모두 어느 한쪽으로 귀속을 확정하는 방식으로는 수습이 되지 않는다. 각국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갖고 있다. 영토문제의 해결은 뒤로 미뤄두고, 공동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지혜를 살려야 한다.” -센카쿠열도 문제와 관련해 중-일 국교 정상화 당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후세가 지혜를 살려 해결하도록 미뤄두자고 했다. 그게 서로의 약속 아니었는가? “미래지향적인 방향이란, 현재 상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아니라, 발전적으로 끌고갈 것인가다. 영토문제라는 건 결국 그 주변지역의 활용 문제가 아니겠나.”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 . 그것이 걱정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는 직접 전쟁은 경험 못했지만, 부모에게 많이 들었다. 체험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역사가 된다. 기억·체험의 세대가 역사의 세대로 바뀌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한 교류를 확대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일본이 평화헌법 덕분에 이렇게 혜택을 받았다, 이런 설명을 하신다면? “내가 어릴 적 상이군인을 많이 봤다. 어렸을 때 본 인상이라 아주 강하게 새겨져 있다. 왜 국가는 전쟁을 통해 저런 사람을 만들어내는가 생각했다. 1970년대 한국에 가서 상이군인을 또 봤다. 이들은 베트남전쟁 참전자들이었다. 일본은 전후에 상이군인을 더는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것은 헌법 9조 덕분이다. 평화는 군사력이 아니라 교류를 통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일 제국주의 유산 청산”
행동하는 ‘양심세대’ 지성 르포작가 가마타 사토시는 우치다 마사토시를 ‘행동하는 변호사’라고 정의했다. 1945년생인 우치다는 1960년대에 일어난 이른바 ‘안보투쟁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일본의 안전은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과 친구가 됨으로써 보장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005년부터 배외주의와 천황제에 반대하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의 일본쪽 공동대표를 그가 맡아온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변호사로서 그는 한국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구실을 하는 일본변호사협회 인권옹호위원회의 중심인물로 양심적인 행동을 하다 정치적 탄압을 받는 사람들을 많이 변호해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 시대 피해를 입은 한국·중국인들을 위한 변호 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전후보상 소송, 야스쿠니에 합사된 한국인 유족들이 낸 합사 철회 소송에서 원고쪽 변호인을 맡았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 독도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과 관련해 일본 시민 1200명이 낸 ‘영토문제의 악순환을 끊자’는 선언을 주창하고, 선언문 초안을 기초한 것도 우치다 변호사였다. 이영채 게이센여자대학 교수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이 먼저 제국주의 시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보상하여, 그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고 믿고 이를 위해 활동해온 마지막 양심세대”라고 그를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