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합편성채널에서 여성 대통령이 필요하다며 박근혜를 ‘간접’ 지지하던 상태에서 ‘직접’ 지지하고 나선 셈이다.
이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김지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어떤 의미에서는 ‘김지하 세대’라고도
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먼저, 김지하의 시각은 현실을 보는 하나의 극단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전에 이재오나
김문수가 여성 대통령은 안 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박근혜가 여성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나는 이를 단호히 반대한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즉 “여성이기 때문에 박근혜가 되어야 한다”고 김지하가 말한다면, 나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이 둘은 다른 것 같지만 동일한 두 극단적 사고다.
흥미롭게도 세 사람 모두가 박정희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이다.
한쪽이 여성이므로 박근혜를 반대하고, 한쪽이 여성이므로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사유양식은 똑같다. 우리가 무릇 분석을 한다고
하는 것은 한 사물이나 인간이 갖는 복합적 성격을 과도하게 단순화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적절히 고려하고 상이하게 위치짓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지하의 ‘여성이므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은 대단히 조야한 단순논리다. 한때 우리의 정신적 선배였던
김지하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로도 나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박정희 독재 시대의 ‘악마적 이분법’을 40년이 지난 지금 되풀이하자는 것은
아니다. 40년 전과 지금의 한국 사회는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 악마적 이분법(박정희=적=악, 반독재세력=동지=선)을 되풀이하는 것은 대선
승리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김지하는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름지기 40년 전의 ‘악마적 이분법’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자신은 바로 그러한 이분법을
벗어나서 미래지향적 가치인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예견적으로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한쪽 측면만을 보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 시대의 적과 동지가 40년이
지난 지금 동일한 모습으로 대립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가 전략적 특혜지원을 통해서 창출한 우리 사회의 계급적·사회적 기득권
세력과, 그와는 반대로 박정희 시대의 탄압을 뚫고 출현한,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갖는 대중의 각축은 박정희 이후 현재까지 전개되고 있다(물론
그 각축은 지그재그로, 혹은 일보전진-이보후퇴의 형태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선은 그러한 각축의 정치적 표현이며 그 두 주체가 어떤 관계를 맺는 사회로 갈 것인가 하는 ‘미래 구성투쟁’의 장이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가 출현한다면?
일정한 개혁정책이 취해지겠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가속화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더욱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며,
구체적으로 3월15일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이제 ‘불가역적인’ 것으로서 확산되면서 한국 사회경제구조 자체가 그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전면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지하의 시각은 역설적으로 과거에 얽매이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지하의 발언을 전해들으며, 착잡한 심정으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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