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준 검사 금품수수 의혹사건’ 수사를 총괄해온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경무관)은 15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검찰의 일방적 반칙을 양쪽의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가며 지금처럼 ‘또 싸우냐’는 식으로 덮어버리면 이런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다음날 인사에서 경찰수사연수원장에 전보 내정됐다. 인터뷰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토요판] 커버스토리
‘김광준 수사 총괄’ 황운하 수사기획관
좌천인사발령 나기 전 마지막 인터뷰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과의 인터뷰는 15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 5층 수사기획관실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특임검사의 지명으로 (검사에 대한) 경찰 수사가 무력화되고 있는데, 검사의 비리에 대한 수사를 검사가 수사지휘로 무력화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해법이란 게 있을 수 없다
태어나서는 안 될 특임검사
한창 커버려 되돌릴 수도 없고… 검찰은 이중수사 했지만
경찰은 이중수사 안 할 거다
대신 검찰 하는 걸 지켜보고
빼먹고 있는 부분이나
계좌추적 등을 진행하겠다 특임검사의 속도전 수사 가능했던 이유는… -수사팀의 분위기는 어떤가? “처음 수사를 시작할 때는 지금까지 성역화됐던 검사의 비리가 발견되기 때문에 의욕이 넘쳤다. 어떻게 수사를 할 것인지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다. 물론 검사가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여론의 지지를 받아가면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특임검사 지시로 이렇게 수사가 무력화될 거라곤 생각 못해서 허탈감, 침통함, 좌절감에 빠져 있다.” -김 검사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넘어갔지만 여론의 지지, 성역화된 검찰의 이미지를 알리는 데는 성공한 거 아니냐? “수사팀은 ‘특임검사가 뺏어가서 경찰이 수사를 못하게 됐구나’ 하는 국민들의 동정을 바란 게 아니잖나. 부패·비리 검사를 경찰의 손으로 수사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이다.” -검찰이 검사 수사에 개입할 거라는 예상이 가능했던 것 아닌가? “특임검사가 지명되지 않았다면 이런(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 단계에서 당연히 검찰이 수사를 방해할 거라고는 생각했다. 적절한 시점에 여론을 등에 업고 돌파하지 않으면 수사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수사 방해’라는 여론이 나오면 검찰이 함부로 (영장 기각을) 할 수 없을 테고, 경찰이 치밀하게 소명자료를 준비하면 (수사 방해를) 돌파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특임검사를 지명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나.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인데. 특임검사가 지명된 이후에는 수사가 완전히 벽에 부닥치겠구나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다.” -김 검사의 실명계좌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영장 발부 여부에 대한 자신이 있었나? “영장 신청은 소명자료, 필요성으로 판단하는 건데 그걸 갖췄으니 신청한 것이다.” -만일 기각된다면? “일단 기각 사유를 봐야 말할 수 있다.” -김 검사의 계좌에 대한 영장 신청 요건이 부족하며, 일부러 기각될 영장을 보낸 것 같다는 검찰 쪽 반응도 있더라. “검찰은 영장을 기각하려면 기각 사유만 이야기하면 된다. 아무리 이런 (검경 갈등의) 상황이라도 다른 수사기관의 영장 신청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 요건이 안 된다는 등의 모욕적인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김 검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검찰에 보안을 유지하기가 꽤나 어려웠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수사를 진행해왔나? “애초 검사의 비리를 작심하고 밝혀내겠다고 시작한 거면 수사가 안 됐을 거다. 그런데 조희팔의 은닉자금을 수사하다가 김 검사의 비리가 튀어나온 것이라, 검찰이 이를 눈치 못 챌 수 있었다. 검찰은 (조희팔의 측근인) 강아무개씨의 돈이 최아무개씨의 계좌로 갔다니까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도장을 찍어줬다. 그런데 (경찰이) 최씨 계좌를 보니 김광준이란 사람에게 계좌로 돈을 이체한 내역이 있었다. 김광준이 누구(검사)라는 게 그 뒤에 확인됐다. 최씨를 불러서 확인해 보니 ‘이건 내 계좌가 아니라 김광준 거다’ 그렇게 확인이 된 거다. 최씨 계좌가 김씨의 차명계좌임이 확인될 때까지 검찰은 (검사의 관련 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검찰이 사전에 이를 알았으면 (수사가 여기까지) 진행되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여기까지 오는(수사를 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사실 (지난 8일) 언론에 보도되던 날, 2개 신문사가 (이 건과 관련해) 오전에 나에게 취재를 해왔다. 수사를 더 진척시켜야 하니 보도 시점을 일주일만 늦춰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두 언론사가 아닌 다른 방송에서 그날 보도가 나와 버렸다.” -검찰은 보도를 보고 수사 여부를 안 건가? 특임검사의 수사 속도를 보면 이미 내사를 해왔던 건 아닌가 싶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경찰이) 김 검사에게 돈 준 사람들 불러 조사하지 않았냐. 그 사람들은 다 김 검사와 특별한 관계니까 돈을 줬을 거다. 이들이 조사 뒤 바로 김 검사에게 알리고, 김 검사가 대검찰청에 자수, 보고한 거다. ‘경찰이 날 수사하고 있다’고. 김 검사가 대검에 자료를 갖고 가서 ‘돈을 준 건 맞지만 대가성은 아니다’라고 소명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특임검사의 속도전 수사가) 충분히 가능했다고 본다. (김 검사는) 대가성이 없다고 했지만, 경찰이 본격 수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검찰도 그때부터 심도 있게 감찰을 진행했다고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수사가 언론을 통해 크게 이슈화됐고….” -일부에선 검찰이 이 문제를 알고도 덮었다가 뒤늦게 특임검사로 치고 나온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던데. “확인되지 않은 언론의 의혹 제기성 보도지 경찰에서 나간 얘기는 아니다. 이미 경찰의 수사에 많은 진전이 있어 수사지휘하는 방식으로 대충 덮고 갈 수 없겠구나 판단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비록 여론의 뭇매를 맞더라도 검찰 고위 간부가 경찰 수사에서 구속되는 것보다는 ‘조직 이기주의’나 ‘사건 가로채기’란 비난을 받더라도 이를 수습하는 건 특임검사밖에 없겠구나 한 거라고 추론이 가능하다.” 특임검사 ‘의사-간호사’ 발언
개인 소양부족이면 모르지만
집단 우월의식이면 큰 문제
아직도 검경을 상하관계로 보나 조희팔에 대한 수사 통해
780억 정도 은닉자금 찾아
피해자 위해 자금 더 찾고
비호세력 수사도 계속할 것 조희팔 사망조작 가능성도 배제 안해 -특임검사 지명으로 수사의 손발이 묶였는데, 자체 수사의 ‘비장의 카드’는 없나? “지금까지 확인된 김 검사의 비리에 대한 수사는 특임검사가 다 하고 있다. 특임검사가 하고 있는 수사와는 별개로 또다른 비리가 발견될 수 있다. 제보나 범죄 첩보가 있을 수 있고…. 그 부분이 있다면 독자 수사를 할 것이다.” -특임검사의 수사보다 더 나간 결과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검찰과 경찰이 똑같은 조건에서 수사 경쟁을 벌이는 게 아니잖나. 검찰은 평지를 달리라 하고 경찰은 철인5종경기 하듯 산을 타고 수영해서 강을 건너 똑같은 거리를 가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거기서 어떻게 검찰 수사를 능가하는 결과를 내놓으라는 건가. 다만 주어진 여건 아래서 최선을 다하는 거다.” -김 검사 수사는 ‘조희팔 다단계 사기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조희팔의 생존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다. “(조희팔의) 사망 관련해선, 지난 5월 경찰의 발표 때 입장(2011년 12월19일 중국에서 사망)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일부 오해가 있다. 조씨 측에서 ‘조희팔이 죽었다’고 사망증명서를 경찰에 제출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의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다. 만약 조씨의 사망을 조작하려 했다면 (그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겠냐. 그런데 알리지 않았다. 게다가 현지에 경찰을 보내 중국 공안에 알아보니 (사망진단서가) 가짜로 작성됐다는 정황을 찾아내지 못했다. 사망을 뒤집을 만한 정황과 결정적인 반증이 없었기 때문에 사망에 무게를 둔 발표를 했던 것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엄청난 조작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 조사하고 있다. 중국 공안에도 조희팔의 생존 여부에 대한 질의 공문을 보내놨다. 하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 -경찰은 김 검사 건 외에 조희팔과 관련한 수사도 계속 진행하고 있는 거냐? “(경찰은 이미) 조희팔에 대한 수사를 통해 780억원 정도의 은닉자금을 찾았다. 은닉자금 추적은 피해자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다. (은닉자금을) 계속 더 찾고, 이른바 비호 세력이 더 발견될 수 있으니 (수사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이번 사건이 검경 갈등으로 비화된 이후 ‘또 황운하냐’란 얘기가 있더라. “검찰에 악감정을 가져야 할 경험 같은 건 전혀 없다. 나는 줄곧 경찰의 일선 수사 업무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검찰의 부패와 권력 남용 등을 많이 체험했다. 또 범죄자에게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해 피해자를 돕겠다는 소박한 정의감을 갖고 일하는 많은 수사관들의 자존감과 명예감이 검찰에 의해 무너질 때가 너무 많다. 이 때문에 수사 업무를 떠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여기 남아서 수사관들의 자존감과 명예감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걸 택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말을 하게 되는 것뿐이다. 이건 내가 수사경찰로 존재하는 이유다. 더 크게 봐서는 경찰관으로서 존재하는 이유다.” -김수창 특임검사의 ‘의사-간호사’ 비유가 문제 됐다. “김수창 특임검사 개인의 발언에 그친다면 언급할 가치가 없지만, 검찰 조직 전체의 집단적인 인식의 단면이 노출된 것이라면 그것은 굉장히 큰 문제다. 특권의식, 권위의식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그런 우월의식이 경찰과 검찰의 충돌 원인이 돼왔다. 사실 이 비유는 2005년 수사권 조정 논의 때 나왔던 것이기도 하다. 당시엔 형사소송법에 경찰 수사권에 대한 근거 규정이 없었다. 간호사에겐 수술을 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2005년엔 이런 비유가 적절하진 않아도 법리적으로는 타당했다. 하지만 형소법이 개정된 지금, 경찰에겐 법적으로 수사할 권한이 있다. 김 검사가 지난해 개정된 형소법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갈등을 제도 개선을 해야만 풀 수 있나? “검사 개인의 소신과 양심의 문제이고 (제도의) 응용 문제라는 이들도 있더라. 검사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잘못된 법 제도에서 비롯된 일이다. 법과 제도라는 건 민주주의 제도가 그렇듯 불신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현재 우리나라 제도의 문제는 검사들의 권력 독점이다. 권력 독점은 부패와 권력 남용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일부 언론이 (김 검사 사건과 관련해) ‘비리백화점’이라고 표현하고, ‘김 검사 한 사람뿐이겠느냐’고 얘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직에는 문제 있는 사람이 5~10% 정도는 된다고 한다. 검찰 조직이라고 해서 (구성원들이) 모두 다 도덕성이 뛰어나다고 검증된 건 아니잖으냐. 그렇다면 (거기에도) 5~10% 문제가 있는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견제를 받지 않고 권력을 틀어쥐고 있으니 드러나지 않았을 뿐 더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밀양 경찰간부 검사 고소 사건’이 일어났던 지난 4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소속 이지은 경감이 대구지검 서부지청 앞에서 해당 검사의 경찰 조사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검찰의 ‘막말과 수사 중단 종용’에서 비롯된 경찰의 이 고소 사건은 검·경 수사권 대립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대구/뉴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