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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초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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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820회 작성일 2012-10-02 10:10

본문

 
 
 
 
 
 
 
 
 
 
 
 
 
@제목 하토야마,
 
 
 
민비의 비명이 들리는가?
 
 
 
 
 
민비 살해는 일본의 국가 범죄
 
…자객 후손중 극소수는 4년 전 사죄
 
‘역사 直視’하려면 일본 정부 사죄 필요
 
 
 
경복궁에도 가을의 착색(着色)이 시작되고 있다.
 
북쪽 끝 건청궁(乾淸宮)에 들어섰다.
 
고종과 민비가 살던 곳이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민비는 옥호루에서 패륜무도(悖倫無道)의 칼에 쓰러지고 녹산 언덕에서 불에 탔다고 한다. 그녀 나이 44세였다.
 
옥호루 앞에 서니 왕비와 궁녀의 비명이 들려왔다. 담장 너머 녹산을 바라보니 왕비를 태운 연기가 맑은 가을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114년 동안 그녀의 한 맺힌 영혼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조선총독부와 주한일본대사관 위를 떠돌았을까.
 
아니면 현해탄을 건너 도쿄의 천황궁을 내려다 보았을까.


 


 
 
일본의 군대·경찰·외교관·낭인(浪人) 수백 명이 주권국의 왕궁에 난입해 왕비를 살해하고 시신을 태웠다.
 
 
비유하자면 유럽 어느 국가의 병사·낭인 합동부대가
 
 
영국이나 프랑스의 왕궁에 침입해 왕비를 척살한 것이다.
 
 
무리해서 비유하자면
 
 
중동의 어느 국가가 테러리스트 무리를 백악관에 침투시켜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를 암살하고
 
시체를 로즈 가든(Rose Garden)에서 불사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가해국 책임자들이 사죄 한마디 없이 114년을 버틸 수 있을까.
 
 


민비 살해는 육군 중장 출신인 미우라 고로
 
 
주한일본공사가 기획·지휘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인텔리 낭인’들이 자객이었으며(그 중에는 하버드 대학 출신도 있었다고 최근 밝혀진 바도 있음-옮긴이 주)
 
일본의 군대·경찰이 궁궐을 뚫었다.
 
 
대원군과 일부 조선군 훈련대가 난입에 가세했지만 이는 일본이 암살을 쿠데타로 위장하려 기획한 것이다. 전권(全權)대사였던 주한일본공사가 중심이었고 군대·경찰이 가담했으니
 
분명 일본제국의 국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일본의 ‘인텔리 낭인’들이 자객이었으며(그 중에는 하버드 대학 출신도 있었다고 최근 밝혀진 바도 있음-옮긴이 주)
 
일본의 군대·경찰이 궁궐을 뚫었다.
 
 
대원군과 일부 조선군 훈련대가 난입에 가세했지만 이는 일본이 암살을 쿠데타로 위장하려 기획한 것이다. 전권(全權)대사였던 주한일본공사가 중심이었고 군대·경찰이 가담했으니
 
분명 일본제국의 국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메이지 천황이나 이토 히로부미 총리대신이 문책할 거라 생각했다면 미우라 공사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일본 지휘부의 어떤 이가 민비 살해에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미우라는 본국이 자신의 ‘거사’를 추인할 것으로 확신하지 않았을까. 미우라는 이토 총리에게 사건 보고서를 보냈다.
 
 
이종각 前 동아일보 기자는 저서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에서
 
 
일본 외교문서 제28권 제1책에 있는 미우라의 보고를 이렇게 인용한다.
 
“우리 세력을 유지하고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득불 이렇게 하게 된 바 그 전후 사정을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미우라와 낭인 등 가담자 48명은 히로시마 감옥에 투옥되고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고
 
 
이 들중 다수가 출세가도를 달렸다.
 
 
 
대표적으로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는
 
14선 의원에 내무대신까지 지냈다.

 
14선 의원에 내무대신까지 지냈다.

 
 
이종각 前 동아일보 기자는 저서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에서
 
 
일본 외교문서 제28권 제1책에 있는 미우라의 보고를 이렇게 인용한다.
 
“우리 세력을 유지하고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득불 이렇게 하게 된 바 그 전후 사정을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미우라와 낭인 등 가담자 48명은 히로시마 감옥에 투옥되고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고
 
 
이 들중 다수가 출세가도를 달렸다.
 
 
 
대표적으로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는
 
14선 의원에 내무대신까지 지냈다.

 
14선 의원에 내무대신까지 지냈다.

 
직접 칼을 휘두른 자객들의 후손 2명이 2005년 5월 한국을 찾았다.
 
그들은 명성황후(민비)의 무덤·생가와 건청궁을 찾아 사죄의 절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일본 낭인 20여 명은 구마모토현 출신이다.
 
그곳에선 뜻 있는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어
 
주민에게 민비 살해라는 역사적 과오를 가르치고 있다.
 
이런 용기 있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일본이란 국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일왕이나 총리에서부터 정치인·관료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적이 있는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대부분 민비 사건을 다루지 않고 있다.
 
일본의 그 어느 국가지도자가 나서
 
“이웃나라의 왕비를 난자한 역천(逆天)의 죄를 자라나는 세대에 가르쳐야 한다”고 외친 적이 있는가.

 
 

1895년의 민비 살해는 韓·日의 차원을 넘어
 
 
어느 문명국가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세계史의 야만이다.
.
 
하토야마 총리눈(2009년당시)
 
(友愛)를 내세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본은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9일 한국에 온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민비 살해를 직시하고 사죄할 용기가 있는가.
 
이 대통령은 내년에 일왕의 방한이 이뤄질 것을 희망했다.
 
언젠가 온다면 나는 일왕이 경복궁에서 가까운 성북동 주한일본대사관저에 묵었으면 좋겠다.
 
 
민비의 비명이 들릴 수 있도록….
 
 
어느 문명국가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세계史의 야만이다.
 
하토야마 총리눈(2009년당시)
 
(友愛)를 내세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본은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9일 한국에 온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민비 살해를 직시하고 사죄할 용기가 있는가.
 
이 대통령은 내년에 일왕의 방한이 이뤄질 것을 희망했다.
 
언젠가 온다면 나는 일왕이 경복궁에서 가까운 성북동 주한일본대사관저에 묵었으면 좋겠다.
 
 
민비의 비명이 들릴 수 있도록….
 
 
*****
 

인물 정보

김진 신문기자 소속 중앙일보 (논설위원) 학력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신문학 석사 수상 2011년 제20회 대한언론상 논설논평부문 경력 2006.07~ 중앙일보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2004.01 중앙일보 정치전문 기자
2003.01 중앙일보 국제부 차장
2000.01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
위의 글은 명성황후 민비 시해 사건의
 
 
 
114주기를 맞이하여
 
2009년 10월초에 글을 올린
 
중앙일보 정치 전문 김진 기자의 글임을 참고로 알려 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 중앙일보 측 및 김진 기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북쪽 끝 건청궁(乾淸宮)에 들어섰다.
 
고종과 민비가 살던 곳이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민비는 옥호루에서 패륜무도(悖倫無道)의 칼에 쓰러지고 녹산 언덕에서 불에 탔다고 한다. 그녀 나이 44세였다.
 
옥호루 앞에 서니 왕비와 궁녀의 비명이 들려왔다. 담장 너머 녹산을 바라보니 왕비를 태운 연기가 맑은 가을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114년 동안 그녀의 한 맺힌 영혼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조선총독부와 주한일본대사관 위를 떠돌았을까.
 
아니면 현해탄을 건너 도쿄의 천황궁을 내려다 보았을까.


 
 
일본의 군대·경찰·외교관·낭인(浪人) 수백 명이 주권국의 왕궁에 난입해 왕비를 살해하고 시신을 태웠다.
 
 
비유하자면 유럽 어느 국가의 병사·낭인 합동부대가
 
 
영국이나 프랑스의 왕궁에 침입해 왕비를 척살한 것이다.
 
 
무리해서 비유하자면
 
 
중동의 어느 국가가 테러리스트 무리를 백악관에 침투시켜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를 암살하고
 
시체를 로즈 가든(Rose Garden)에서 불사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가해국 책임자들이 사죄 한마디 없이 114년을 버틸 수 있을까.
 
 


민비 살해는 육군 중장 출신인 미우라 고로
 
 
주한일본공사가 기획·지휘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인텔리 낭인’들이 자객이었으며(그 중에는 하버드 대학 출신도 있었다고 최근 밝혀진 바도 있음-옮긴이 주)
 
일본의 군대·경찰이 궁궐을 뚫었다.
 
 
대원군과 일부 조선군 훈련대가 난입에 가세했지만 이는 일본이 암살을 쿠데타로 위장하려 기획한 것이다. 전권(全權)대사였던 주한일본공사가 중심이었고 군대·경찰이 가담했으니
 
분명 일본제국의 국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일본의 ‘인텔리 낭인’들이 자객이었으며(그 중에는 하버드 대학 출신도 있었다고 최근 밝혀진 바도 있음-옮긴이 주)
 
일본의 군대·경찰이 궁궐을 뚫었다.
 
 
대원군과 일부 조선군 훈련대가 난입에 가세했지만 이는 일본이 암살을 쿠데타로 위장하려 기획한 것이다. 전권(全權)대사였던 주한일본공사가 중심이었고 군대·경찰이 가담했으니
 
분명 일본제국의 국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메이지 천황이나 이토 히로부미 총리대신이 문책할 거라 생각했다면 미우라 공사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일본 지휘부의 어떤 이가 민비 살해에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미우라는 본국이 자신의 ‘거사’를 추인할 것으로 확신하지 않았을까. 미우라는 이토 총리에게 사건 보고서를 보냈다.
 
 
이종각 前 동아일보 기자는 저서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에서
 
 
일본 외교문서 제28권 제1책에 있는 미우라의 보고를 이렇게 인용한다.
 
“우리 세력을 유지하고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득불 이렇게 하게 된 바 그 전후 사정을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미우라와 낭인 등 가담자 48명은 히로시마 감옥에 투옥되고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고
 
 
이 들중 다수가 출세가도를 달렸다.
 
 
 
대표적으로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는
 
14선 의원에 내무대신까지 지냈다.

 
14선 의원에 내무대신까지 지냈다.

 
 
이종각 前 동아일보 기자는 저서
 
 
자객 고영근의 명성황후 복수기』에서
 
 
일본 외교문서 제28권 제1책에 있는 미우라의 보고를 이렇게 인용한다.
 
“우리 세력을 유지하고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득불 이렇게 하게 된 바 그 전후 사정을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미우라와 낭인 등 가담자 48명은 히로시마 감옥에 투옥되고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고
 
 
이 들중 다수가 출세가도를 달렸다.
 
 
 
대표적으로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는
 
14선 의원에 내무대신까지 지냈다.

 
14선 의원에 내무대신까지 지냈다.

 
직접 칼을 휘두른 자객들의 후손 2명이 2005년 5월 한국을 찾았다.
 
그들은 명성황후(민비)의 무덤·생가와 건청궁을 찾아 사죄의 절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일본 낭인 20여 명은 구마모토현 출신이다.
 
그곳에선 뜻 있는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어
 
주민에게 민비 살해라는 역사적 과오를 가르치고 있다.
 
이런 용기 있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일본이란 국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일왕이나 총리에서부터 정치인·관료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적이 있는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대부분 민비 사건을 다루지 않고 있다.
 
일본의 그 어느 국가지도자가 나서
 
“이웃나라의 왕비를 난자한 역천(逆天)의 죄를 자라나는 세대에 가르쳐야 한다”고 외친 적이 있는가.

 
 

1895년의 민비 살해는 韓·日의 차원을 넘어
 
 
어느 문명국가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세계史의 야만이다.
.
 
하토야마 총리눈(2009년당시)
 
(友愛)를 내세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본은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9일 한국에 온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민비 살해를 직시하고 사죄할 용기가 있는가.
 
이 대통령은 내년에 일왕의 방한이 이뤄질 것을 희망했다.
 
언젠가 온다면 나는 일왕이 경복궁에서 가까운 성북동 주한일본대사관저에 묵었으면 좋겠다.
 
 
민비의 비명이 들릴 수 있도록….
 
 
어느 문명국가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세계史의 야만이다.
 
하토야마 총리눈(2009년당시)
 
(友愛)를 내세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본은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9일 한국에 온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민비 살해를 직시하고 사죄할 용기가 있는가.
 
이 대통령은 내년에 일왕의 방한이 이뤄질 것을 희망했다.
 
언젠가 온다면 나는 일왕이 경복궁에서 가까운 성북동 주한일본대사관저에 묵었으면 좋겠다.
 
 
민비의 비명이 들릴 수 있도록….
 
 
*****
 

인물 정보

김진 신문기자
소속
중앙일보 (논설위원)
학력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신문학 석사
수상
2011년 제20회 대한언론상 논설논평부문
경력
2006.07~ 중앙일보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2004.01 중앙일보 정치전문 기자
2003.01 중앙일보 국제부 차장
2000.01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
위의 글은 명성황후 민비 시해 사건의
 
 
 
114주기를 맞이하여
 
2009년 10월초에 글을 올린
 
중앙일보 정치 전문 김진 기자의 글임을 참고로 알려 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 중앙일보 측 및 김진 기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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