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싸이 스타일의 완성
위기에 쫄지 않고, 12년을 기막히게 놀았다
올백 머리와 괴상한 몸짓욕망에 솔직한 가사
난 싸이코! 라는 선언과 함께
‘새’ 하나로 세상에 떴다 대마초사건 와중에 2집 발매
병역 논란엔 재입대
두번의 위기를 정면돌파하며
그의 놀이는 더 대담해졌고
음악은 더 다듬어졌다 데뷔하던 순간부터 그는 보통 가수들과는 달랐다. 또래 가수들이 힙합바지를 입고 무대를 누빌 때, 주먹들이나 입을 법한 통 넓은 양복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그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2001년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지만, 올백으로 넘긴 머리와 동네 뒷골목에서 본 듯한 얼굴, 관록이 묻어나는 몸짓은 서른다섯이라 해도 믿을 만했고, 온몸을 더듬으며 골반을 실룩거리는 춤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예사롭게 볼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어디서 좀 놀아본 사내, 항간에는 그가 “나이트클럽 사장 아들이라더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아슬아슬 입담, 토크쇼까지 평정하다
노래는 더 당혹스러웠다. 여자에게 단물만 빨리고 버려진 남자의 심경을 담아낸 데뷔곡 ‘새’는 적나라한 가사만으로도 충격적이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랩은 알아듣기도 쉬웠다. 낭패스러운 상황을 남자의 특정 신체기관으로 비유하는 게 자명해 보이는 제목이었지만, 인터뷰에서 천연덕스럽게 “나는 전생에 새였다”고 말하는 가수에게 “그거 욕이지?”라고 따져 묻기도 뭐하지 않은가. “나 완전히 새 됐어”도, “이 십원짜리야”도 욕처럼 들렸지만 욕은 아니었으므로, 멀쩡하게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이게 뭐지 싶었던 사람들에게 영어 단어 ‘싸이코’에서 따왔다는 그의 예명은 화룡점정이었다. 제 입으로 미친놈이라는데 말해 뭐해. 하지만 그냥 미친놈 취급을 하고 말기에는 귓전에 달라붙는 후렴과 괴상한 춤사위의 중독성이 강했다. 때마침 빠른 속도로 보급되던 초고속 인터넷을 타고 그의 무대 동영상이 역병처럼 퍼져 나갔고, 인기에 힘입어 나온 티브이 토크쇼에서도 태연하게 나이트에서 부킹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과연 세기말”이라고 뇌까렸다. ‘엽기’ 열풍이 불었던 그해, 다른 말로 그를 수식할 방법을 알지 못했던 세상은 그에게 ‘엽기 가수’라는 호칭을 붙여줬다. 세상에 없던 가수, 싸이는 그렇게 데뷔했다. 돌이켜보면 ‘새’의 성공에는 엽기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싸이 이전에도 저잣거리의 언어로 노래하는 가수는 있었지만, 싸이만큼 욕망에 충실한 가수는 드물었다. 아이돌 가수들조차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부르던 시절, 자신을 버린 여자를 “진짜 밉상, 진상, 꼴 보기 싫다”고 말하며 “뒤통수 조심”하라고 엄포를 놓는 솔직함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맛이 있었고, “속으론 좋아도 겉으론 삿대질”하는 성에 대한 이중 잣대를 향해 “누가 뭐래도 아이 러브 섹스”라 외치는 과감함에는 통쾌한 구석이 있었다. 점잖음을 강권하는 한국 사회에선 욕먹기 딱 좋은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싸이는 욕망을 밉지 않게 드러낼 줄 알았다. 공중파 티브이에 나와 나이트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가수는 낯선 존재였지만, 나이트에 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는 보편적이었다. 오히려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을 법한 잘 노는 친구에 가까웠던 싸이는, 자신의 무용담을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만 발칙한 수위로 조절하는 영민함으로 토크쇼를 휩쓸었다. 한심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싸이는 빠른 속도로 대중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무엇보다 ‘새’는 관객과 함께 놀 수 있는 곡이었다. 영국의 여성그룹 바나나라마의 ‘비너스’에서 샘플링해 온 익숙한 멜로디는 초반부터 귀를 잡아끌었고, “뭐 달라고 뭐, 혼날라고 혼, 힘내자고 힘, 어쩌라고 어?”로 진행되는 후렴구는 따라 부르기 좋은 ‘떼창’ 친화적 구조로 설계됐다. 단순한 플로(흐름)의 랩은 두어번 들으면 외울 수 있었고, 거기에 춤이 더해지자 ‘새’는 무적이 되었다. 아이돌 그룹의 ‘칼 군무’나 비보잉은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관람용이었지만, 싸이의 춤은 누구든 출 수 있을 만큼 쉬웠다. 1집 수록곡 중 히트곡은 ‘새’ 하나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싸이는 저 멀리 있는 ‘멋진 스타’가 아니라, 발칙한 매력이 있는 ‘잘 노는 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같은 해 11월 대마초 사건이 터졌을 때, “내 저놈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많아도 놀라거나 분노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김장훈의 말처럼 대중은 모범생인 적 없었던 싸이에게 “도덕적 기대치”가 없었고, 벌금형 선고를 받은 지 6일 만에 2집을 발매한 행보도 “원래 저런 놈”이라는 냉소 속에 잊혀져 갔다. 2집 <싸2>는 발매 한달 만에 10만장을 판매했지만, 1집보다 더 공격적인 가사로 날을 세운 트랙들은 편하게 듣기 어려웠고, 방송금지 상태여서 대중을 만날 수도 없었다. 싸이는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이 없었다면 정말 그랬을지 모른다. 2002년 여름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모두가 흥분상태였는데, 이탈리아를 꺾고 8강까지 올라간 시점쯤엔 열기가 도덕률을 압도했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이들은 도로에 세워진 자동차 위에 올라가 뛰어다녔고, 당연히 크고 작은 기물파손이 있었지만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8강에 올랐는데 지금 차가 대수요? 아,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올라가자 열기는 최고조에 올랐고, 파도타기와 ‘오 필승 코리아’로도 흥분을 다 잠재울 수 없었던 이들은 흥분을 완전연소 시켜 줄 사람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때, ‘어쨌거나 노는 거는 기가 막히게 잘 노는 놈’ 싸이가 있었다. 불과 반년 전 자숙에 들어간 ‘마약사범’ 싸이는, 응원단을 열광과 흥분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선지자의 자격으로 돌아왔다. 월드컵의 흥분이 가시기 전에 발매된 3집 <3마이>는 전작과는 달랐다. 타이틀 ‘챔피언’에는 욕망의 대상 대신, 오로지 다 같이 놀자는 메시지만 존재했다. “전경과 학생, 서로 대립했었지만 나이는 같아, 고로 열광하고 싶은 마음 같아”라는 가사는 여러 생각 말고 무조건 같이 놀자는 선동의 극한이었고, 싸이의 음악적 시공간은 나이트클럽에서 남녀노소 모두를 품을 수 있는 광장으로 뻗어나갔다. 달라진 것은 태도만이 아니었다. 음악적 동반자 유건형과의 공동작업은 거칠었던 사운드를 매끈하게 다듬어줬고, 신해철·남궁연과의 교류는 록 사운드를 활용하는 법과 박자를 더 조밀하게 쪼개는 법을 알려줬다. 싸이는 더 거하게 노는 법과 음악을 더 잘 만드는 법을 동시에 익혔다.
집단의 열기에 복무하는 곡을 쓰는 동시에, 싸이는 남들에게 준 곡들을 통해 여전히 자기 욕망에 솔직한 화자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렉시의 ‘애송이’와 서인영의 ‘신데렐라’는 욕망의 대상이 아닌 주체임을 선언하는 여성 화자를,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는 연상의 여인 앞에 남자이고 싶은 소년의 허세를 노래했다. 광장의 열기와 개인의 욕망을 모두 논할 수 있게 된 싸이는 가수로도 작곡가로도 완전히 성공가도에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다시 일이 터진다. 이번엔 한국 남자들의 아킬레스건인 군대 문제였기에, 싸이는 이번에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만 같았다. 행정소송은 지루하게 이어졌고, 결혼과 쌍둥이 득녀로 부양가족만 셋이 된 싸이를 향한 세간의 시선은 차가웠다. 대충 시간 끌다가 공익근무요원으로 가겠지. 하지만 1심에서 패소한 싸이는 “저답지 못하게 구질구질하게 굴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서른의 나이로 현역 입대를 택했다. 한국 남자들의 최고의 악몽인 ‘재입대’는 애초에 왜 재입대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시키는 위력이 있었고, 육군참모총장상 수상과 ‘군복무’ 기간 총 55개월이라는 숫자 앞에서 여전히 그를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마침내 싸이는 더이상 트집잡을 거리가 없는 가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는 모두가 익히 아는 이야기다. 마약과 군대 같은 가십이 모두 사라진 그 자리에,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제대로 놀 줄 아는 싸이만 남았다. 그래서 ‘강남스타일’의 범세계적 히트는 새롭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말춤과 허리돌림을 무기로 탑재한 싸이가 한강 둔치나 횡단보도, 지하철역과 같은 일상의 공간을 광기로 물들이는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그 어떤 언어적 번역 없이도 싸이의 진면모를 고스란히 전달하기 때문이다. ‘새’를 부르던 스물다섯처럼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챔피언’을 부르던 스물여섯처럼 아무 생각 말고 다 같이 놀자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싸이는 여전히 ‘국가대표 노는 남자’다. 세계가 이제야 그를 발견한 올해 그의 나이 서른여섯, 그의 놀이는 이제부터인지도 모른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