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논설위원최근의 동북아 상황을 보면
일본과 북한이 마치 흡사한 수준의 신정(神政)체제가 아닌가 헷갈릴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이어 ‘일왕(日王·천황) 사죄 필요’ 발언이 나오자 일왕의 대신(大臣)임을 자처하는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궐기했다.
신성모독을 당한 듯 초강경 보복조치를 거론하고 있다. 천손(天孫) 후예를 자처해온 신정왕국 백성임을 자처하는 데서 사무라이정신인 ‘무사도(武士道)’ 부활의
불안한 징후까지 목격하게 된다.
천황제는 백두 혈통 김일성민족을 창출한 북한 김씨 세습 신정왕조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천손강림
신화에 의해 만세일계(萬世一系)·신성불가침의 숭배 대상으로 삼던 근대 천황제를 부정하고 새로 마련된 일본국 헌법에 따라 일본국민 통합을 상징하는 천황제로 변모하긴 하지만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독도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사태에서 보듯 동북아
민족주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외교는 실종되고 감정싸움으로 비화돼 한·중·일 신(新) 냉전시대가 찾아왔다. 아즈미 준 일본 재무상은 “천황폐하(天皇陛下) 발언은 너무나 예의를 잃은 것이며 일본
국민의 감정을 자극한 것으로 간과할 수 없다”고 우리를 협박하고 있다.
동북아 영토분쟁에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문제만 하더라도 일본의 이중 삼중 잣대는 자가당착적이다. 우리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서는 제소해 재판에 가자고 하고선 자신들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센카쿠열도에 대해서는 “영토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재판에 갈 수 없다고 우긴다. 러시아가 매년 상륙함을 파견해 실효 지배를 강화하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재판 문제는 러시아가 오히려 적극적이고 일본은 거부한다. ICJ에 재판관이 없는 한국을 얕잡아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강한 나라에는 저자세로 굽실거리고 약한 민족은 무참히 짓밟는 군국주의 근성이 꿈틀거린다.
전후 일본의 안보정책을 분석한 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
교수는 일본이 2차세계대전 패배 후 소위 ‘평화헌법’에 전쟁포기 조항을 삽입하게 된 동기가 일왕을 전범(戰犯)으로 하지 않고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고백한다. 현 아키히토 일왕의 부친 히로히토는 당시 대일본제국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원수이자 군통수권자였음에도 전범 행위의 면죄부를 받았다. ‘히로히토 평전’을 저술한 허버트 빅스
미국 빙햄튼대 교수는 히로히토는 겁 많고
수동적인 허울뿐인 꼭두각시가 아니라 중국 침략과 진주만 공습에 깊이 관여한, 2차세계대전 비극을 이끈 중심 인물이었다는 증거를 수없이 제시한다.
일본이 과거사 청산에 소극적인 비정상국가로 남게 된 것은 일왕의 전쟁 책임 회피가 결정적이었다. 그 결과 일본 국내 후유증도 심각했다. 1988년 나가사키시 의회에서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는 소신 발언을 한 혼마 시장이 1990년 테러로 사살당한 뒤 과거사 청산과 관련된 비판적 발언이나 보도는 일본에서 금기시된다. 정치적 보복 때문이다. 전쟁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인 일왕이 면죄부를 얻게 돼 일본 국민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주변국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고도 또다시 주변국 영토를 넘볼 정도로 일본을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만든 주범은 천황제의 존속이다. 과거사 부정, 영토 침탈을 버젓이 자행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갖게 된 것은 천황제 유지의 핵심인 ‘무사도’ 때문이다. 일본 주변의 잇따른 영토분쟁은 ‘특급 전범’ 일왕의 단죄(斷罪) 등 일본의 전범 행위를 철저히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 탓이라는 주변국의 탄식이 일본엔 들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