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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學者-백승종씨가 보는-도참서 *정감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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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4,001회 작성일 2012-08-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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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조선후기 조정 흔든 정감록,
 
 
         대항이념이자 우리 역사·문화의 나이테”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ㆍ‘정감록 미스터리’ 펴낸
 
  
    백승종씨
 
 


조선 후기에 유행한 예언서 <정감록>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바로 ‘정도령’이다. 계룡산 밑에 나라를 세워 왕이 된다는 정도령은,
 
막상 <정감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정씨 성(鄭姓)’ 혹은 ‘진인(眞人)’이 언급되곤 하지만 정씨 성의 인물이 곧 진인이며 다음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말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느 샌가 사람들은 최초로 국내에 잠입해 선교 활동을 펼쳤던 청국인 신부 주문모를 진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진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트루(ture)는 ‘참 진(眞)’, ‘먼(man)’은 ‘사람 인(人)’이라는 것이다. 여러 해 전에는 대선에 출마한 모 대기업 총수를 가리켜 ‘정도령’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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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이고 무질서한 <정감록>의 알쏭달쏭한 문구는 다채로운, 때로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사이비종교에까지 쓰였다. 삼류 예언서 취급을 받은 이유다. 지난 20년 동안 <정감록>을 연구해 온 역사학자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55·사진)는 다르게 본다. “<정감록>은 수천년 동안 만들어진 우리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라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정감록 미스터리>(푸른역사)는 백 대표가 다섯 번째로 내놓은 정감록 연구서이자 그간의 연구를 일단락 짓는 책이다. 그는 지난 8일 인터뷰에서 “조선사회의 통치이념인 성리학에 대항하는 ‘대항이데올로기’ 또는 ‘대안적 사고방식’의 존재방식을 알고 싶었다”며 연구 계기를 설명했다. “<정감록>은 조선후기에 등장한 ‘불온한 예언서’로 조정을 크게 긴장시켰습니다. 조정의 계속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어요. ‘정감록 현상’에 주목하게 된 이유입니다.”

 
 
백 대표는 <정감록>의 예언이 그저 어느 한 사람의 무책임한 말장난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컨대 이 같은 끔찍한 대목을 보자. “원숭이해 봄 3월과 성스러운 임금이 다스리는 가을 8월, 인천과 부평에는 밤중에 배 1000척이 들어와 안성과 죽산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다. 여주와 광주에는 인적이 영영 끊어져버리고, 수원과 남양에는 피가 흘러 냇물을 이루리라.”
 
 
그는 이것을 민중의 전쟁공포증으로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안성을 비롯한 경기도 일대에서 육상과 해상 전투가 벌어진 것은 19세기 말 청일전쟁 때였다. 근대식 무기가 동원된 청일 양국 간의 살벌한 전투 장면을 지켜본 민중들은 공포에 떨었고 이런 심정이 과장된 형태로 기록된 것이라는 추정이다.
 
 
 


마찬가지로 자연재해와 전염병, 흉년이 일어나는 말세를 예언한 것도 조선후기에 허다하게 찾아온 홍수와 가뭄, 전염병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난세를 살아간 민중들은 희망 심기를 잊지 않았다. 비록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에게 익숙한 용어와 개념을 빌려 현실을 예언했다. 미륵신앙은 머지않은 장래에 진인이 출현해 태평성세를 이루리라는 기대로 이어졌다.
 
 
18세기 이후 들어온 천주교의 예언적 전통은 현재의 재난이 곧 새 세상이 밝아오기 전 마지막 고난이라는 생각을 가미시켰다. 흔히 <정감록>이 고대의 예언을 그대로 전하는 책이라 생각하지만 다양한 역사적 경험으로 덧칠된 셈이다.

그래서 백 대표는 <정감록>이 다양한 판본으로 존재하지만 ‘진본’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텍스트의 형성과 변형은 그 무엇보다도 수요계층의 사회문화적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모든 텍스트는 그 나름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어요. 하나의 올바른 텍스트와 여러 개의 잘못된 텍스트라는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백 대표는 “<정감록>의 집단적 저자이자 독자였던 ‘평민지식인’의 발견이야말로 그간의 ‘정감록 연구’가 나에게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들이야말로 ‘정감록운동’이라고 하는 일종의 정치·종교문화운동을 전개한 주체였습니다. <정감록>으로 무장된 그들이 19세기 말에 이르러 동학을 비롯한 신종교운동으로 질적 비약을 이룩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정감록>은 곧 평민지식인들이 공동으로 창출한 신종교의 누룩이었습니다.”
 
]

백 대표는 동학·증산도·원불교 등 근현대 한국의 신흥종교가 성리학에 대항해 평민지식인이 만들어낸 대항 이데올로기일 뿐만 아니라 주체적 근대화운동을 가능케 할 대안의 역할도 수행할 만했다고 본다. 일제가 이 같은 신흥종교의 원류이자 심심찮게 조선의 독립을 점치는 데도 사용된 <정감록>의 정본을 출간한다고 나서면서 상당부분 불온한 사항들을 들어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애써 창안한 대항 이데올로기를 외면한 채 기독교,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을 수입해 쓰는 처지가 됐다.
 
 


백 대표는 “<정감록>의 예언적 기능은 이미 사라졌다고 볼 수 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오래된 민중의 고유한 화법이 담겨 있어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는 평민문화의 저력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에게도 소중한 문화 콘텐츠입니다.” 그는 김지하 등의 지식인이 <정감록>의 일부를 빌려 쓴 것도 “민중의 편에 서서 실의에 빠진 그들을 고무하고 싶었기에 민중이 희망을 말하는 법을 <정감록>에서 찾은 것”이라고 본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난세를 이끌어갈 ‘진인’이나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인’은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봐야 옳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불평등과 불의로 가득한 질곡의 역사를 청산하고,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새 역사의 흐름이 곧 도래하고야 말리라는 일종의 집단적 자기예언이라는 생각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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