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논설위원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북한은 핵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1998년), “내가 책임지고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겠다”(1999년)고 했다. 뒤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11월12일
미국 LA
국제문제협의회(WAC)에서 가진 연설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두 정권은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내면서 햇볕정책과 평화
번영정책이라는 미명의 대북 정책을 10년 동안 펼쳤다.
그러나 2010년 11월 김정일은 우라늄 원폭 대량생산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도쿄신문이 입수해 지난 2일 보도한 조선노동당 내부 문건을 통해서다. 사정이 이런데도 틈만 나면 6자회담 협상 테이블에서 “조선반도 비핵화(非核化)는 위대한 김일성 수령의 유훈” 이라며 김일성 이름까지 팔아가며 ‘국제 핵 위장극(僞裝劇)’을 벌였다니 말문이 막힌다.
오는 9월 조기 총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일본 정부와 정치권은 북핵 위기를 빌미로 핵무장, 재(再)무장 카드를 꺼내들고, 극우 정당은 평화헌법 폐기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북핵 위기로 동북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 정치권은 권력 창출에 정신이 팔려서인지 강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은 핵 위기 해법 공약을 내놓기는커녕
문제의식마저 실종된 느낌이다. 그나마 핵위기 해법 필요성을 강조한 주자로는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가 거의 유일하지만 출마를 접었다.
대선주자들의 침묵과 달리 햇볕정책 추종론자들은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6월26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 김대중·노무현 정권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한 인사들로 구성된 한반도평화포럼이 2013년 출범할 새 정부는 햇볕정책을 다시 펴야 한다며 불씨를 지피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햇볕정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며 수정론인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제시하자 당내 친북(親北)론자들이 반발하면서 햇볕정책 무오류(無誤謬)를 주장해 큰 파문이 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좌파정권 10년간 햇볕정책은 실패작으로 판정났음에도 친북론자들은 ‘북한 정권 탓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탓’이라고 우긴다. 엄청난 대북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 핵개발 저지도, 개혁·개방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10년간 현금 약 2조7500억 원을 북에 송금해 결과적으로 핵·미사일 개발 시기를 앞당기는 데 기여한 것은 악수(惡手) 중의 악수다.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핵참화·핵성전(聖戰) 등 ‘핵 공갈’과 협박이다. 이런 판국에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할 경우, 한국에 대놓고 ‘핵 조공(朝貢)’을 요구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지난 4월13일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새 헌법’에 핵 보유국임을 명시해 핵무기에 대한 ‘대(代)를 이은’ 집착을 드러냈다. 김정일 발언대로라면, 북한은 초보적인 핵무기 체계 완성에 이어
소형 우라늄 핵탄두 개발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양질의 채굴가능 우라늄
매장량만 400만t, 비공식적으로
세계 최대 우라늄 매장지를 보유한 북한이 핵무기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동아시아 핵도미노 확산에 이어 1968년 핵확산금지(NPT) 체제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게 분명하다. 더 늦기 전에 대선후보 토론회와 국회 청문회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북핵 위기의 근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정 최고운영자의
그릇된 인식과 오판은 국가를 돌이키기 힘든
사지(死地)로 몰고갈 수 있음을 대선후보들은 명심해야 한다. 10여 년에 걸친 북한의 국제 핵 위장극이 주는 생생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