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국제부장“2050년 11월 핵보유국
일본이 우주기지에서 대미(對美) 미사일 기습공격을 감행, 전쟁이 시작되지만
미국은 일본을 물리치고 우주패권 시대를 열게 된다.”
공상과학 소설의 한 대목이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안보예측가로 꼽히는 조지 프리드먼이 ‘100년후(The Next 100 Years)’에서 기술한 미일관계 장기전망의 한 부분이다.
최근 일본의회의 원자력기본법 기습 개정을 보면서 핵무장을 꿈꾸는 일본에 대한 프리드먼의 경고가 떠올랐다. 미국의
국가정보 관련
싱크탱크인 ‘스트랫포’의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
CEO)인 프리드먼이 2009년 저서에서 “일본의 제2 진주만 공격에 대비하라”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비현실적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의회가 지난 6월20일 ‘원자력의 이용은
국가안보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을 비밀리에 삽입한 원자력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이 법은 여당인 민주당이 소비세법 통과를 위해 자민당의 극우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눈감아준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원자력기본법 개정협상 막판에 이 문구가 들어간 것에 대해 “밀실에서 이뤄진 의회 쿠데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나 의회는 침묵하고있다. “민의가 무시된 개정인 만큼 재검토하겠다”는 의견은 어디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정부가 공공연하게 핵무장으로 가는 길을 닦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화헌법을 바꿔야 하고,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이 그런 선택을 하기는 어렵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러나 허약한 일본 여당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극우파들과 야합하다 보면 그게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소비세법 합의 조건으로 원자력기본법을 극우파의 입맛에 맞게 개정한 것과 같은 일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일본을 옥죄어온 안보의 빗장이 하나둘 풀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2050년에 즈음해선 프리드먼의 예측대로 핵보유국이 돼 미국 공격에 나서는 일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정부 고위당국자는 대뜸 “일본의 원자력기본법 개정에 대한 국내의 우려가
과도하다”고 말했다. 일본이 여기에 국가안보 조항을 넣은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원전에 대한
국민적 공포 때문에 원전가동이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비한 것일 뿐 핵무장과는 무관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국가의 일이 모두 그렇게 선의에 기초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운영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게 기본이다.
일본의 원자력기본법 밀실 기습개정은 누가 뭐래도 법적인 차원에서 꽁꽁 묶였던 핵 빗장을 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엄연한 ‘미래 도발’이다. 이중 삼중으로 일본의 재무장에 재갈을 물린 미일동맹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궁극적으로 일본의 공격본능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하는
마당에, 우리 당국자들의
대일접근법은 지나치게 어수룩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일본에서 원자력기본법 개정이 진행된 상황에서도 정부는 일본측에 아무런 해명을 요구하지 않은 채 ‘정보보호협정’ 프로세스를 은밀히 진행시켰다. 정보보호협정이 나쁘다는게 아니다. 정말 한반도 안보의 장기비전 속에서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론의 장에 붙여 국민의 공감을 구했어야 했다. 더구나 상대가 일본이다. 역사·외교 현안을 둘러싼 갈등이 계절병처럼 반복되는 상대와의 합의는 더더욱 단호하고 투명하게 처리돼야 한다. 그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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