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6월26일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의결한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확산세다. 정부의 ‘밀실 처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협정 서명이 연기된 데 이어, 최근에는 관련자 문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독도·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의 민감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일본과의 군사정보 교류를 너무 서둘렀다는 비판과 함께 군사비밀 유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우경화 움직임과 맞물려 반일(反日) 정서가 어느 때보다 한껏 고조되는 상황은 협정 체결의 불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정부는 “국가안보상 꼭 필요하다”며 국회 상임위 등에서의 협의를 거쳐 협정 체결을 설득한다는 방침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사과까지 요구하면서 이 문제를 쟁점화하려는 시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1. 한일 정보보호협정이란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이다. 여기에서 정보는 ‘군사비밀정보’를 의미한다.
때문에 본래 명칭은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이었으나,
정부가 국민 반발을 우려해 추진과정에서 ‘군사’ 표현을 뺀 ‘정보보호협정’으로 이름을 바꿨다.
정보보호협정이란
통상적으로 양국 간 정보를 교환하는 방법과 교환된 정보를 보호·관리하는
절차를 규정한 일종의 ‘틀’이다.
양국 간 논의가 시작된 것은 노태우 정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2010년 ‘3·26 천안함 침몰 사건’ ‘11·23 연평도 포격’ 등 북한 도발이 이어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지난해 1월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조 등을 이유로 체결을 추진하기로 했고, 양국은 1년6개월 정도의 논의를 거쳐 올해 상반기 내에 체결하는 데 합의했다.
2. 양국 정부 추진 경과
이후 양국은 실무협의를 거쳐 지난 4월23일 신경수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육군 준장)과 오노 게이이치(小野啓一) 일본 외무성 북동아과장 명의로 협정에 가서명했다. 정부는 이어 5월14일 법제처에 심사를 의뢰한 뒤 5월 말 김관진 국방장관의 일본 방문을 계획했다가 민주통합당(민주당) 등 야당 반발에 밀려 ‘보류’했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잠정 중단됐지만, 정부는 내부적으로 5월31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주재한 청와대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6월 말까지 절차를 마무리해 결정하고 방법은 외교부에 일임했다.
외교부는 6월22일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법제처의 심사 결과를 통보받은 뒤 6월29일 서명 예정일까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6월26일 국무회의에 즉석안건으로 올린 뒤 ‘비공개’ 의결했다.
하지만 다음 날 언론에 ‘비공개’ 처리가 알려지면서 반대여론이 높아졌고, 결국 6월29일 서명 예정 1시간여를 앞두고 서명 자체를 연기했다.
3. 정보협정 주요 내용
외교부는 ‘비공개 처리’ 논란에 대해서는 “절차상 매끄럽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있지만 협정 내용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 안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협정이라는 주장이다. 이미 미국·캐나다·러시아 등 총 24개국과 유사한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 상태로, 이번 한일 협정도 큰 차이가 없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정부가 공개한 협정문에 따르면 협정에는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지 여부는 포함돼 있지 않다. 보안분류·보호원칙·인원접근·정보전달·시설보안·보안요건·파기·분쟁해결 등과 같이 주로 ‘절차’에 관한 규정이다. 제공하는 정보의 비밀등급도 한국은 군사II·III급, 일본은 극비·방위극비 수준이다.
4. 정치권, 한목소리로 반대
민주당 등 야당은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 폐기를 주장한다. 절차적 측면에서는 김관진 국방장관이 5월17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졸속 처리하지 않고 국회 차원의 논의를 거치겠다”고 밝혀 놓고도 ‘밀실처리’했다고 지적한다.
또 내용적 측면에서도 일본이 더 유리하며, ‘휴민트(HUMINT·인적정보)’ 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민주당 임내현·정성호 의원 등은 “국가안보상의 비밀정보에 대한 협정으로, 정보보호협정에 따라 일본 측에 제공되는 정보는 사후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조차 ‘비공개’ 처리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고, 결국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서명 예정일인 6월29일 오후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협정 서명 보류를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5. 체결하면 한국군에 유리한 점은
정부는 이미 말레이시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24개 국가 또는 국제기구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고 있다. 이번 일본과의 협정도 글로벌 안보체제 구축을 위한 세계적인 추세에 맞춘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정보 폐쇄 국가이자 핵보유국인 북한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은 일본이 갖고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사회 동향 등 다양한 대북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일본은 1983년 소련군이 대한항공 007기를 격추했을 때 전투기 조종사들 간, 그들과 사할린 지상 관제탑 간의 교신 내용까지 감청했고, 소련군 조종사의 이름까지 확인했다. 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면 이러한 일본의 뛰어난 신호정보(영상 및 통신)를 공유할 수 있다.
6. ‘함께 추진’ 군수지원협정은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은 한·일 간 모든 군사 관련 기밀정보를 교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한일 정보보호협정보다 더 진전된 군사교류 협정이다. 한국 군과 일본 자위대 간 포괄적인 상호 군수품과 서비스 제공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즉 양국 군의 공동 훈련, 작전은 물론 교류 협력과 친선 방문 등이 포함되며 양국 군 간 지원 품목도 유류와 급식을 비롯해 장비 수리부속, 정비, 수송 등으로까지 협력을 확대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은 일반 정보 교류협정보다는 더 직접적 군사교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상호군수지원협정이 해외에서의 평화유지활동(PKO) 또는 재난구조 등 인도적 분야에 한정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 군함 등이 한반도에 들어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7. 일본이 적극적인 이유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은 6월29일 “한국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가급적 조기에 서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위협, 중국의 패권 확대에 대응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겠다’고 규정한 헌법 제9조를 피해 다양한 방법으로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무기수출 3원칙 완화, 조기경보기 도입 계획, 북한 미사일에 대응한 이지스함 서해 배치 계획 등이 그것이다. 정보보호협정 역시 이 같은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공격은 물론 북한 난민 유입에 대응한 가상 시뮬레이션을 마련해 놓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유사시 정확한 판단과 빠른 대응을 위해 한국의 대북 관련 정보가 필요하다.
8. 중국 반응과 미국의 움직임
미국은 공식적으로 “양국 정부가 결정한 것으로 우리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미국의 대(對)중국 봉쇄 전략과 한·미·일 3각 동맹 강화의 맥락에서 추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외교 국방장관(2+2)회담에서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한국 측에 협정 체결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반면 한·미·일 군사동맹이 북한뿐 아니라 실제로는 중국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중국은 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3일 류웨이민(劉爲民)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협정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재차 피력했다.
또 이날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가 발행하는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잠재적 위협’으로 규정했다.
9. 日 우경화 움직임 영향 없나
정치적 혼란과 장기 불황에 따른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일본 정부와 정치권으로 하여금 이번 협정을 포함해 다양한 군사교류 및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이 같은 우경화가 국내 여론을 악화시켜 결과적으로 협정의 운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달 일본 의회가 원자력 기본법을 개정해 핵무장의 길을 열고, 4일에는 총리 직속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요구하면서 우경화와 군사 재무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7월 중 발표될 방위백서에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기존 입장이 되풀이될 경우 반일 감정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협정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협정의 무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10. 체결 전망은
정부는 6월29일 협정 서명을 전격 보류하고, 국무회의를 주재했던 김황식 국무총리가 “절차상의 문제로 국민에게 심려를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2일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 없이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면서 절차상 문제를 시인했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정부는 청와대와 외교부 간 ‘책임론’ 공방을 표면화한 조병제 외교부 대변인과 협정체결을 주도한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사의 표명 등을 통해 ‘절차적 잘못’과 관련한 책임자를 문책하고, 협정은 ‘국회 협의’를 거쳐 살리는 방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보보호협정 최종 체결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협정 체결에 비판적인 여론이 돌아설 기미가 없다. 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4일 대통령 사과와 함께 총리 해임, 협정 폐기를 요구하는 등 대대적 공세를 이어 가고 있다.
민주당은 진상규명 대책위도 구성했다. 때문에 장관급이 포함되지 않고 실무책임자 수준의 문책만으로는 민주당 등의 협조를 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12년7월6일 문화일보 신보영·최현미·한강우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