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가족의 교회 사유화에 반발해온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들이 지난해 7월2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최자실 금식기도원 대성전 앞에서 팻말시위를 벌이자 조용기 목사(왼쪽) 일행이 기도원을 떠나기 위해 안전요원의 호위를 받으며 차로 향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ai.co.kr |
[토요판] 커버스토리/ 저물지 않는 조용기 시대
국민일보 노조도 결국…그에게 졌다
순복음교회 조사특위에선“조용기 일가 355억 손해 끼쳐”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선
“2000억가량 손해 끼쳐”
3년 전 국민일보 경영권 놓고
조희준-민제 ‘형제의 난’
일가 비리 줄줄이 밝혀져도
교회에선 조사특위 해체
노조 파업도 별 성과 없이 끝나
▶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명동 청어람 빌딩에서 연 ‘조용기 원로목사 일가의 여의도순복음교회 재산 사유화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는 20개 안팎의 언론사 기자가 몰려들었다.
기자회견은 언론의 높은 관심 속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됐지만 이를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14일 만난 여의도순복음교회 관계자는 “<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언론에는 우리가 조 목사 일가의 비리 의혹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만큼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교회 가운데 하나인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순복음교회) 54년의 역사는 조용기 원로목사의 가족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최대 신도 수 80만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단일교회로 불리는 순복음교회의 시작은 초라했다. 1958년 5월18일 서울 서대문구(지금의 은평구) 대조동의 허름한 집에서 5명의 개신교인이 올린 첫 예배가 순복음교회의 출발이었다.
당시 예배를 이끌어갔던 두명은 조용기 목사와 훗날 그의 장모가 되는 최자실 전도사였다. 나머지 3명의 교인은 최 전도사의 세 자녀인 김성혜·성수·성광 등이었다. 2008년 5월 순복음교회가 펴낸 <여의도순복음교회 50년사>는 1956년 11월 조 목사와 최 전도사의 첫 만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조용기를 돌봐달라는 (순복음신학교) 학감의 부름을 받은 최자실이 조용기의 방문을 여는 순간 ‘네 사윗감이니 잘 기도해 주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당시 조용기는 21살, 딸 성혜는 15살의 중학교 3학년이었다.
최자실은 설마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젓고는 예전 간호사 실력을 발휘해 조용기를 정성으로 보살폈다. 며칠 뒤 자리에서 일어난 조용기는 최자실에게 믿음의 아들이 되었다.”
조 목사와 최 전도사는 1961년 10월 서대문 교회 시절을 거쳐 1973년 8월 지금의 자리, 곧 서울 여의도로 교회를 옮기며 교회를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여의도에 교회를 세워 옮겨올 때만 해도 8000명 수준이었던 순복음교회의 신도 수는 1979년 10월 처음 10만명을 돌파했다. 순복음교회가 본격적인 급성장을 거듭한 것은 1980년대였다. 순복음교회는 1982년 20만 신도를 돌파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로 주목받았고, 2년 만인 1984년 10월1일 40만, 1985년 12월31일 50만명으로 신도 수를 늘렸다.
순복음교회가 이처럼 짧은 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3박자 구원론’ 등을 내세워 대중을 사로잡은 조용기 목사의 카리스마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방인성 ‘함께 여는 교회’ 목사는 “조 목사는 순복음교회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예수를 잘 믿으면 영혼은 구원을 받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건강도 지켜낼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며
“옳고 그름을 떠나 종교를 통해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질병을 다스리고자 하는 대중의 요구를 잘 포착해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순복음교회에서는 이를
△영혼이 잘되는 축복
△범사에 잘되는 축복
△강건하게 되는 축복의 ‘삼중 축복’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순복음교회 성장의 또다른 배경에는 조 목사의 장모인 최자실 전도사의 헌신적 노력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순복음교회 50년사는 “최자실은 신학교 졸업 후 ‘믿음의 어머니’로서 조용기가 목회를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주고, 평생을 다 바쳐 조용기 목사의 목회사역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 목사가 순복음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장모 등 가족의 든든한 후원 속에서 교회사업을 시작했지만, 최근 조 목사와 순복음교회가 맞닥뜨린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가족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2010년 7월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은 동생 조민제씨가 사장을 맡고 있던 국민일보를 되찾기 위해 조민제씨의 장인인 노승숙 당시 국민일보 회장에게 사퇴를 종용하면서 ‘형제의 난’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기 위해 조민제 사장은 국민일보 노조와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 국민일보 기자들은 조희준 전 회장과 그의 편에 섰던 조용기 목사의 부인 김성혜씨의 비리를 캐내 폭로했다.
이때 드러난 의혹을 지난해 9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29명이 서울중앙지검에 횡령 혐의로 고소해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다. 이 의혹 가운데 일부를 지난달 27일 이영훈 담임목사가 중립적인 장로들로 직접 구성한 ‘교회 의혹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조사특위)가 사실로 확인해 “조 목사와 조 전 회장이 교회에 335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교회 장로회에 보고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특위에서 조 목사의 비리를 확인하는 발표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 목사의 친목모임인 ‘영목회’ 회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조 목사는 지난 4일 영목회 회원 24명과 함께 골프 모임을 한 자리에서 “(순복음교회) 안팎으로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데, 장로들까지 너무 괴롭힌다. 내가 기하성(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을 떠나야 되겠다. 내가 떠나서 다시 교회를 세운다면 5년 이내에 여의도교회보다 더 큰 교회를 세울수 있다”고 말했다.
복수의 모임 참석자들은 조 목사의 발언 뒤 이영훈 담임목사가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 목사의 대답은 빈말이 아니었다. <한겨레>의 취재 결과, 이영훈 목사는 지난 10일 조 목사 일가의 혐의를 확인했다고 발표한 특위를 전격 해체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복수의 특위 소속 장로는 “일요일 오전 장로회실에 이 목사가 직접 찾아와 ‘특위를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조 목사 일가의 의혹을 계속 조사하려고 했지만, 위에서 결재권자가 중단하라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며 특위 해체 사실을 전했다.
특위는 지난달 27일 장로들에게 중간 보고를 할 당시까지만 해도 “어떤 가시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의혹사건 조사는 계속될 것”이라며 조 목사 일가의 의혹을 끝까지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었다.
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는 “이 담임목사가 위원회를 해체시킨 것은 위원회가 자신의 비리를 더 캐내는 것을 막으려는 조용기 목사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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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어린이 부흥회에서 기도하는 최자실 전도사(왼쪽부터), 조용기 목사, 김성혜씨. <위대한 여정-선교열정 50년> |
조용기 원로목사 일가의 배임 의혹 등을 조사하고 확인한 순복음교회 교회의혹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순복음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차리겠다”는 조 목사의 ‘폭탄선언’이 있은 직후 전격 해체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은 2004년 북미 선교집회에서 설교하던 조용기 목사. |
조용기 목사의 교회 내 영향력은 국민일보 파업 과정에서도 일부 드러났다. 지난해 12월23일 국민일보 노동조합은 임금 및 단체협상 결렬에 따른 파업을 시작하며 조용기-조민제 부자의 신문 사유화 저지와 편집권 독립 등을 함께 요구했다.
지난 14일 약 6개월간의 파업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국민일보 파업 기자들이 실질적으로 얻어낸 것은 ‘공정보도를 위한 지면평가위원회 가동’이 유일했다. 이 합의라도 의미가 있으려면 사쪽의 실천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국민일보 사쪽은 지난해 10월 노조가 편집국 구성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편집국장 평가투표 결과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시 김윤호 편집국장은 전체 투표자 151명(투표율 89.35%) 가운데 85명(75.22%)에게 ‘불신임’ 표를 받고 사표를 제출했으나, 사쪽이 그의 사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일보 노사는 2009년 공정보도 보장 장치로 편집국장 불신임제도를 단체협약에 도입한 바 있다.
파업이 패배의 흔적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국민일보 노동조합은 오히려 패배를 통해 조용기-조민제 부자가 저질러온 국민일보 사유화의 폐해를 극명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장면은 ‘조민제 사장의 회장 승진 사건’이었다. 파업 과정에서 노조는 국민일보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던 조민제 사장이 미국 국적자라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노조는 또 국민일보 법인의 이사진 4명 가운데 조용기 목사와 아들 조민제 사장이 모두 포함된 것은 법인의 이사 중 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3분의 1을 넘지 못한다는 신문법 제18조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국민일보의 이사진은 조용기 목사와 조민제 사장, 김성기 편집인, 김규식 사외이사 등 4명이었다.
조 사장의 대표이사 자격 문제와 친족 중심의 이사진 구성이 문제가 되자 국민일보의 유일주주인 국민문화재단은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이사였던 김성기 편집인을 국민일보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으로 선임하고 조 사장은 대신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조용기 목사도 이사직을 내놓고 명예회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조상운 노조위원장은 “이번 결정을 통해 국민문화재단은 조용기 목사 일가의 국민일보 사유화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라며 반발했지만 조용기-조민제 부자는 국민일보 안팎의 따가운 시선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국민일보 내부와 교계 안팎의 비판에도 조용기 목사가 교회 재산 사유화 논란에 대한 뚜렷한 태도를 밝히지 않자 교회개혁실천연대는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조용기 원로목사 일가는 (순복음교회의) 교회 의혹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발표 결과를 포함해 교회에 2000억원가량의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고, 교회, 재단, <국민일보>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지난 13일 교회 재산 사유화 관련 의혹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조 목사와 조희준씨가 사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찾아갔으나 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자택 주차장에서 만난 60대 관리인은 “조 목사는 평소에도 8명의 경호원과 함께 차 2대에 나눠 타고 다녀 모르는 사람은 가까이 가기도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이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난다”고 말했다.
이 관리인은 현재 조 목사가 소유한 4층짜리 빌라에는 아내 김 총장과 조희준씨, 신원을 알 수 없는 세입자가 살고 있으며 “조민제씨는 거의 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형효 순복음교회 홍보부장(목사)도 “조 원로목사 친인척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최성진 김지훈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