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코찔찔이 지금은 멋장이-막가파 발언의 진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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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114회 작성일 2012-05-11 21:36본문
정몽준은 초등학교 저학년 및 중학년 시절 고모들로 부터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기 시작하면
너무 코를 훌쩍거린다고 별명을 코찔찔이로 붙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후일 미녀 김영미(김동조 주미 대사 따님)과 결혼이후 한국의 멋장이로 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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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균 칼럼] 조선산업 누가 키웠나?..아버지 정주영 욕하는 셈
재벌 세습 정몽준의 막가는
박정희 비판..왜?
김문수 “부모 잘 만나”..노무현 좌파정권
산파 노릇은 정치 후진성의 대표 사례
- 최종편집 2012.05.10 23:13:18
- 오창균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대권 야욕을 불태우고 있는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박근혜 때리기’가 금도(襟度)를 넘어섰다.
정 의원은 작심한 듯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 위원장을 깎아내려 자신의 한자릿수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라는 것.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서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의원은 최근 박근혜 위원장의 선친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박 위원장의 측근인 이정현 의원은 정몽준 의원의 잇단 비판에 대해 “아무리 시시비비가 헷갈리는 세상이라고 해도 이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말했다.
#1. 현대重 정몽준, 박정희 향해 “유신-비극”
- 2012년 5월8일 TV조선 -
정몽준 의원은 지난 8일 TV조선 ‘최-박의 시사토크 판’에 출연,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당이 어려웠는데 살려줬으니 입 닥치고 엎드려 있으라고 하는데 당이 어려워진 책임의 절반은 박 위원장에게 있다”고 비판을 가했다.
정 의원은 “2010년 지방선거 때 다들 열심히 뛰었는데 현역 의원인 박근혜 위원장은 강 건너 불보듯 하지 않았느냐. 그건 책임이 없느냐”고 했다.
박 위원장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칼끝을 겨누기도 했다. 정 의원은 “독재자, 군사독재, 유신이란 제체를 만들어 비극을 준 분이 박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젊었을 때 만주 군관학교를 다녔고, 여순반란사건 이전에 남로당 비밀당원이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정몽준 의원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말했다.
재벌2세의 한계를 묻는 질문에는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조선, 자동차를 성공시킨 재벌이고, 수십만개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하지 않느냐. 제가 대통령이 되면 부정한 돈 없이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2. ‘정몽준의 현대重’ 성공 뒤에는 그가 있었다
- 아주경제 2012년 3월18일자 -
1972년 3월23일 오후 2시. 울산 마포만 백사장. 정주영 명예회장과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조선소 기공식을 연다. 자본도 기술력도 없는 일천한 가운데 정부 관계자도 반신반의하던 불안한 출발이었다.
이곳이 지금의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다. 이 회사는 1983년부터 30년째 세계 1위 조선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세계 최초로 선박 인도량 1억t을 돌파했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의 제3차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 사업은 시작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정부에서도 회의론이 많았다. 조선소를 지을 돈도 없었을 뿐더러 경험이 전무한 조선사에 수주를 요청할 선주도 없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조선소를 짓기도 전에 스위스 해운업자 리바노스로부터 26만t급 배 2척을 주문받았다. 유래없이 조선소 건립과 함께 선박을 건조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또 영국 버클레이 은행으로부터 차관을 제공받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른바 ‘봉이 정선달’ 일화다.
#3. 박정희-정주영, 현대家 6남 정몽준
- 매일경제 2008년 8월13일자 -
박정희 대통령이 오일쇼크로 경제가 휘청거리던 1970년대 중반 어느 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원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하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공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시오.”
정주영은 즉시 오일달러를 캘 수 있는 사업구상에 착수했다. 현대 안에서는 물론 정부 측에서도 “무모하다”는 비관론이 나왔지만 정주영은 1975년을 사내에 ‘중동 진출의 해’로 선포했다.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 동원훈련 조선소를 8천만달러에 따낸 것을 시작으로 바레인의 아스리조선소까지 중동사업은 첫해부터 순항하더니 당시 세계 최대 규모 역사(役事)로 꼽히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항만공사를 수주하기에 이른다. 50만t급 유조선 네 척을 접안할 수 있는 해상터미널로 공사금액만 9억달러였다.
현대는 이 공사로 수송, 토목, 건설, 수중공사, 플랜트, 중공업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 이때 벌어들인 오일 달러는 우리 경제가 석유파동을 극복하는 데 든든한 밑천이 됐다.
#4. 박근혜 ‘박정희-정주영 造船신화’ 언급
- 서울경제 2011년 5월5일자 -
대통령 특사로 그리스를 방문 중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970년대부터 이어진 현대가(家)와 그리스 조선 협력의 일화를 여러 번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조선신화를 통해 양국의 혈맹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자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2011년 5월4일(이하 현지시간)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과 디미트리스 드루트사스 외교 장관을 잇따라 만난 자리에서 “1970년대 (한국이) 조선산업을 육성할 당시 영국에서 자금을 빌리려고 했는데 은행들이 조선소도 없고 수주실적도 없다면서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가 배 두 척을 흔쾌히 발주해줘 오늘날 한국이 조선강국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는 해운대국이고 한국은 조선강국인데 한국이 지금과 같이 (조선강국으로) 크기까지는 그리스가 파운딩파더(founding fatherㆍ창시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에 큰 도움을 주셨다”고 칭송했다.
#5. 김문수 “부모 잘 만나서 잘 나가는 ‘세습 리더십’”
- 2012년 5월4일 경기도청 월례조회 -
새누리당 내 대권주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4일 ‘세습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김 지사는 이날 경기도청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가진 월례조회에서 북한 김정은을 거론, “지금 북한 김정은을 우리가 왜 비판하느냐. 할아버지, 아버지 잘 만나서 나이 20대에 독재하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 때도 꼭 부모를 잘 만나서 잘 나가는 ‘세습 리더십’보단 역경을 딛고 헤쳐 나가면서 서민의 삶 구석구석을 이해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서민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표면적으로 ‘김정은’을 언급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국내 굴지의 재벌 정주영 고(故)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준 의원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6. “누구 덕분에 현대가 성장했는데”
- 트위터 아이디 ‘b0231’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몽준 만큼은 현대중공업을 사회에 환원할 각오하지 않고선 정수장학회와 유신으로 박근혜를 비방하면 안 되죠.”
“현대가 누구의 비호를 받고 그만큼 성장했는데요. 정주영 회장도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비호가 없었으면 오늘날의 현대도 없었습니다.”
#7. 좌파 정권 재집권의 혁혁한 공신 ‘정몽준’
- 이정현 “노무현 정권 탄생을 당원들은 기억하고 있다” -
정몽준 의원은 자신의 10년 전 과오와 업보를 잊은 것일까.
친박 진영은 “정몽준 의원이 ‘지금과 같은 주장을 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지난 1일 대선후보 등록을 한 정몽준 의원을 맹비난했다. 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원투수로 나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 사사건건 비방하고 공격하고 있어서라는 게 이유다.
이 의원은 특히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정권이 탄생하는데 정몽준 전 대표의 역할과 기여를 당원들은 다 기억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누가 우리 새누리당에 가장 큰 피해를 입혔는지 누가 우리 새누리당이 위기 때마다 당을 구했는지 천하가 다 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어떻게 위기를 초래한 측이 위기를 구한 측에 대고 말도 안 되는 인신공격을 계속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좌파 성향의 이상돈 비상대책위원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당선시킨 결정적 계기는 정몽준 의원의 유명한 러브 샷과 단일화 여론조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몽준 측이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동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노무현 측과 진보성향 시민단체 그리고 진보언론은 너무 좋아서 만세를 불렀다는 후문도 있다”고 했다.
지난 2002년 당시 대선을 눈앞에 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다.
이 총재는 40%를 웃도는 선호도를 기록하면서 나머지 대선 후보들을 가볍게 제치고 있었다.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거칠 것 없어 보였던 ‘이회창 대세론’은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단일화 선언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비록 선거 하루 전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 파기를 선언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통해 재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정권 탄생의 1등 공신이 이인제 의원이라면, 노무현 정권 탄생의 1등 공신은 누가 무어라해도 정몽준 의원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인제 의원은 현재 자유선진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스스로 보수임을 자임하고 있고, 정몽준 의원도 보수를 자신의 색깔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결국 좌파 정권의 ‘산파 노릇’을 했으니,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케이스라는 날선 비판이 이젠 중론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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