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주의자여!-이젠 커밍아웃하라!-역사학자 김기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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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609회 작성일 2012-05-22 20:07본문
기사입력 2012-05-22
1. 천안함 침몰 원인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
지난 주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 교수가 이런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은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핵 개발도 좋고 3대 세습도 괜찮다고까지 하는 건 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여기 화답하는데, 말도 안 되는 행태의 사례를 하나 더 붙인다. 천안함 북한 격침 설을 부정하는 것.
김진에게는 북한의 천안함 격침이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인 모양이다.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 자격도 지성인의 자격도 의심스럽다고 보는 것 같다. 정부 발표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에게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고 나처럼 그 발표에 반대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김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천안함 관계 정부 주장을 맹신하는 김진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공개된 그 숱한 반증을 보고도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김진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한국 반공주의의 역사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무조건 최악의 생각만 하라는 교육과 선전에 수십 년 동안 세뇌당해 오지 않았는가. 지금 정부의 천안함 주장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국민이 60퍼센트가 넘는 것은 이 사회가 세뇌 상태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상당수 있고, 그 사람들 입맛에 맞추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계속 줄어들고 있는 현상이니까. 그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을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여기는 진중권의 관점이다. 이 관점에는 이 사회에서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많이 동조하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것이다.
핵 개발은 평화를 위협하는 짓이고 3대 세습은 민주주의 원리에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으로 보인다. 그래서 남북 관계의 발전을 바라는 사람들도 그 두 가지만은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2.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거란다."
연변의 어느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조선족 작가 L씨의 북한 친척 중 연변에 자주 출장 온 분이 있다고 했다. 상당 수준의 관직이나 당직에 있었던 모양이다.
1956년생의 L씨가 어렸을 때는 이 아저씨가 우리 관념으로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먹을 것, 입을 것, 아이들 위한 것, 어른들 위한 것, 늘 뭔가 잔뜩 가져오는 사람이었다. 1970년대까지, 북한이 중국보다 사정이 좋았을 때의 기억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이 아저씨가 가져오는 사람으로부터 가져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출장 오면 L씨 집에 묵는데, 우선 가져오는 것이 차츰 없어졌다고 한다. 뭔가 나름대로 선물을 가져오기야 하겠지만 풍족해지는 중국 형편에 비추어 눈에 띄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문제는 이 아저씨 다녀가고 나면 값나가는 물건이 하나씩 둘씩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이 사실이 의문의 여지없이 분명해졌을 때 화를 내는 L씨에게 그 어머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거란다. 걔가 착한 사람이란 건 오래 겪어봐서 알지 않냐? 우리가 참아줄 수 있는 건 참아줘야 한다."
3. 이웃의 행동을 바꾸는 외과적 방법과 내과적 방법
그렇다. 사람 행동에는 형편을 따라가는 면이 있다. 누구나 형편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의로운 사람이라면 어느 범위의 나쁜 짓은 어떤 형편에서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다. 공자가 말한 불인지심(不忍之心), 즉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이 의지가 사람의 도덕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높은 도덕성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너무 높은 도덕성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고 실패할 위험이 크다. 더군다나 자기 기준을 남에게까지 요구했다가 실패할 경우 악인보다도 더 추한 위선자로 전락할 수 있다. 형편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내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일은 극히 조심해야 한다.
북한이 핵 개발을 그만두고 국가 권력 세습 체제에서 벗어나기 바랄 때 그 행위를 금지시키는 외과적 방법과 그런 행위를 해야만 하는 형편을 바꿔주는 내과적 방법이 있다. 형편이 괜찮은데도 우리가 싫어하는 짓을 굳이 하려 든다면 외과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한의 형편이 대단히 나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형편을 나쁘게 만드는 데 남한 정부도 한 몫 해 왔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연평도 포격 같은 짓은 하면 안 된다. 대차대조표가 단순한 그런 행위의 비판에는 조심스럽게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다. 핵 개발은 훨씬 복잡한 함의를 품는 일이다. 그리고 국가 권력 세습은 그보다도 더 의미가 복잡한 일이다.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채 우리 기준만으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4. 되살아나고 있는 민족 정체성의 중요성
북한을 배려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은 괜찮지만, 그런 사람들도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진중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생각을 달리한다.
첫째, 북한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사람(종북주의자?)이 우리 사회에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진중권의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남북 관계에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가 걸려 있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나와 남의 관계라면 남북 관계는 잃어버린 반쪽끼리의 관계요, 대아(大我)와 소아(小我)의 관계다. 전문가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 일이요, 민족을 아끼는 마음 가진 사람 모두에게 직접적인 자기 일이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도 나와 남의 관계를 넘어서는 층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비교해서 하는 얘기다.)
민족과 국가의 힘과 뜻이 줄어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한 노력이 민족 정체성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근년 내 글쓰기의 주된 목적이 이 주장의 반박에 있다. 원자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개인의 파편화가 현대인, 특히 한국인의 대다수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 원인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세계화의 주된 흐름이 개인의 파편화를 더욱 심화하는 경제적 세계화에 쏠려 있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다. 세계화 자체는 시대의 흐름인데, 경제적 세계화보다 정치적 세계화에 비중을 두어야 현대인의 불행을 줄이고 인류 문명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을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것이 정치적 세계화다.
정치적 세계화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정체성이 확실해야 한다. 파편화된 개인이 강자의 횡포 앞에 방치되는 일을 막는 전 세계적 네트워크, 즉 세계 정부의 기반이 그 위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불화와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민족은 정치적 세계화에 공헌할 수도 없고 그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민족 문제 해결이 경제 성장이나 민주주의 발전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다.
5. 남한이 북한을 흉보고 동정할 주제가 되나?
둘째, 핵 개발과 3대 세습 같은 일은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진중권의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사정을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공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북한 사정을 잘 모르더라도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이 나쁜 짓임은 분명한 것 아니냐고 진중권은 생각하는 것 같다. 역사를 공부한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일 수는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나쁜 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핵무기는 20세기 중엽에야 나타난 것이니 역사학도가 특별히 뭐라고 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혈연 세습은 인류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민주공화제가 군주제를 널리 대치한 것은 20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민주 정치다운 민주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곳은 지금도 많지 않다.
남한에서도 핵 개발과 1인 종신 독재를 시도한 일이 있었다. 1970년대의 일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남한 형편에서는 그런 일이 '말도 안 되는 짓'이 되어 있다. 지금 북한 형편은 어떤 것일까? 지금의 남한 형편보다는 40년 전 남한 형편에 가까운 것 같다.
남한의 민주 정치 역시 아직도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남한 사람이 북한 독재 정치를 흉보거나 동정할 주제가 되는지 생각할 점이 많다. 민주공화제가 혈연 세습보다 좋은 것이라고 우리가 진정 믿는다면 북한에서도 민주 정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도울 길을 찾아야지, 그런 짓 하면 안 된다고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오만은 악인만의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의 오만이 더 무섭다. 북한을 호의적으로 대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제국주의시대의 '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식민 지배를 확장하면서 '문명'을 전해준다고 자부한 것과 같은 마음으로 '민주주의'의 전파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6. 명분을 버리고 음모에만 매달리는 '종북주의자'들
통합진보당 사태 앞에 '당권파=NL=종북주의'의 등식을 그리며 종북주의를 척결하면 폭력과 혼란의 성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종북주의는 폭력과 혼란이 낳은 결과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북한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반공주의 관점도 긍정적으로만 보는 종북주의 관점도 똑같이 정보 차단의 결과다. '앎'이 없으니 '믿음'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종북주의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있다. 비현실적인 믿음이 일어나는 것은 정보 부족 때문이고, 비밀과 음모의 조직력이 득세하는 것은 불합리한 처벌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비밀과 음모를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밝은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큰 조직을 이룰 기회가 별로 없어서 각자 취미 생활 차원에서 성향을 드러낼 뿐이다. 그런데 억압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조직 활동을 벌일 명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작고 비밀스러운 조직에는 명분 자체를 아끼기보다 비밀과 음모를 좋아해서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이따금 180도 '전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명분보다 음모를 좋아하던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를 보며 우리 사회가 많이 밝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한 '종북'은 비밀 조직을 위한 강력한 명분으로 남아있다. '민족 대의'와 '사회 정의'를 포괄하는 당당한 명분이면서 제도적 억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권파'의 행태를 보면 명분은 간 데 없고 음모만 판을 친다. 원칙과 상식을 무시한 그 희한한 꼼수들은 '민족 대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런 비밀 조직을 통하지 않고도 '종북'의 길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만큼 사회가 밝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어두움을 좋아하는 자들만이 비밀 조직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내가 종북주의자임을 당당히 밝힌다. 잡혀갈 걱정 않으면서.
7. 우리는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
꼭 '종북(從北)'이란 표현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친북(親北)'은 일반 국제 관계에 쓰이는 말이라서 그와 차원이 다른 남북 관계에 쓰기가 어색하다. 고르라면 '중북(重北)'이라 하고 싶지만 번거롭게 그럴 것 있나. 좋은 뜻으로는 아니더라도 '종북'이 많이 쓰여 온 말이고 글자의 뜻 자체가 맞는 것이니 내 주장을 '종북주의'로 표현해 둔다.
내 주장의 요점은 이렇다. (1) 분단 극복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제다. (2) 분단 극복은 당사자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 (3) 분단 극복과 아울러 해결할 과제들이 남한보다 북한에 많다. 고립 상태 때문이다. (4) 따라서 분단 극복의 구체적 방법은 남한보다 북한 사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강구되어야 한다.
(2), (3), (4)에 대해서는 독자 대부분이 쉽게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1)에 대해, 중요하다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종북주의'의 실질적 의미가 이 차이에 걸려있다.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매우 크고 강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 사치를 포기하는 경제적 양보만이 아니라 사회 보장의 약화와 자유의 축소 등 사회적 경제적 양보도 생각할 수 있다. 종래의 종북주의자들이 무조건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내 주장은 아무것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서 일단 벗어나자는 것이다.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제4절에서 민족문제 해결의 시대적 중요성을 내 나름대로 간략하게 제시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이유로 더 큰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청하는 것은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지금까지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을 이념의 문제 아닌 현실의 문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끝으로 '종북주의' 깃발을 지켜온 분들에게 한 마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깃발을 지켜 온 공로를 치하한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있을 수도 없는 '북한 지령'이 있는 척하면서 당신들은 명분을 등졌다. (지령이 있었다면 북한 한 모퉁이의 음모 집단이 보낸 것이겠지.) '종북'의 명분과 '진보'의 이름을 이용 대상으로만 여긴 당신들은 '국가'를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는 극우 세력과 적대적 공생관계로 야합했다. 이제 깃발을 내려놓으시라.
지난 주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 교수가 이런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은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핵 개발도 좋고 3대 세습도 괜찮다고까지 하는 건 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여기 화답하는데, 말도 안 되는 행태의 사례를 하나 더 붙인다. 천안함 북한 격침 설을 부정하는 것.
김진에게는 북한의 천안함 격침이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인 모양이다.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 자격도 지성인의 자격도 의심스럽다고 보는 것 같다. 정부 발표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에게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고 나처럼 그 발표에 반대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김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천안함 관계 정부 주장을 맹신하는 김진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공개된 그 숱한 반증을 보고도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김진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한국 반공주의의 역사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무조건 최악의 생각만 하라는 교육과 선전에 수십 년 동안 세뇌당해 오지 않았는가. 지금 정부의 천안함 주장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국민이 60퍼센트가 넘는 것은 이 사회가 세뇌 상태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상당수 있고, 그 사람들 입맛에 맞추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계속 줄어들고 있는 현상이니까. 그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을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여기는 진중권의 관점이다. 이 관점에는 이 사회에서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많이 동조하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것이다.
핵 개발은 평화를 위협하는 짓이고 3대 세습은 민주주의 원리에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짓으로 보인다. 그래서 남북 관계의 발전을 바라는 사람들도 그 두 가지만은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2.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거란다."
연변의 어느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조선족 작가 L씨의 북한 친척 중 연변에 자주 출장 온 분이 있다고 했다. 상당 수준의 관직이나 당직에 있었던 모양이다.
1956년생의 L씨가 어렸을 때는 이 아저씨가 우리 관념으로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먹을 것, 입을 것, 아이들 위한 것, 어른들 위한 것, 늘 뭔가 잔뜩 가져오는 사람이었다. 1970년대까지, 북한이 중국보다 사정이 좋았을 때의 기억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이 아저씨가 가져오는 사람으로부터 가져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출장 오면 L씨 집에 묵는데, 우선 가져오는 것이 차츰 없어졌다고 한다. 뭔가 나름대로 선물을 가져오기야 하겠지만 풍족해지는 중국 형편에 비추어 눈에 띄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문제는 이 아저씨 다녀가고 나면 값나가는 물건이 하나씩 둘씩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이 사실이 의문의 여지없이 분명해졌을 때 화를 내는 L씨에게 그 어머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람 행동은 형편 따라가는 거란다. 걔가 착한 사람이란 건 오래 겪어봐서 알지 않냐? 우리가 참아줄 수 있는 건 참아줘야 한다."
3. 이웃의 행동을 바꾸는 외과적 방법과 내과적 방법
그렇다. 사람 행동에는 형편을 따라가는 면이 있다. 누구나 형편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의로운 사람이라면 어느 범위의 나쁜 짓은 어떤 형편에서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다. 공자가 말한 불인지심(不忍之心), 즉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이 의지가 사람의 도덕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높은 도덕성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너무 높은 도덕성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고 실패할 위험이 크다. 더군다나 자기 기준을 남에게까지 요구했다가 실패할 경우 악인보다도 더 추한 위선자로 전락할 수 있다. 형편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내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일은 극히 조심해야 한다.
북한이 핵 개발을 그만두고 국가 권력 세습 체제에서 벗어나기 바랄 때 그 행위를 금지시키는 외과적 방법과 그런 행위를 해야만 하는 형편을 바꿔주는 내과적 방법이 있다. 형편이 괜찮은데도 우리가 싫어하는 짓을 굳이 하려 든다면 외과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한의 형편이 대단히 나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형편을 나쁘게 만드는 데 남한 정부도 한 몫 해 왔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연평도 포격 같은 짓은 하면 안 된다. 대차대조표가 단순한 그런 행위의 비판에는 조심스럽게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다. 핵 개발은 훨씬 복잡한 함의를 품는 일이다. 그리고 국가 권력 세습은 그보다도 더 의미가 복잡한 일이다.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채 우리 기준만으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4. 되살아나고 있는 민족 정체성의 중요성
북한을 배려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은 괜찮지만, 그런 사람들도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진중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생각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생각을 달리한다.
첫째, 북한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사람(종북주의자?)이 우리 사회에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진중권의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남북 관계에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가 걸려 있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나와 남의 관계라면 남북 관계는 잃어버린 반쪽끼리의 관계요, 대아(大我)와 소아(小我)의 관계다. 전문가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 일이요, 민족을 아끼는 마음 가진 사람 모두에게 직접적인 자기 일이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도 나와 남의 관계를 넘어서는 층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비교해서 하는 얘기다.)
민족과 국가의 힘과 뜻이 줄어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한 노력이 민족 정체성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근년 내 글쓰기의 주된 목적이 이 주장의 반박에 있다. 원자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개인의 파편화가 현대인, 특히 한국인의 대다수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 원인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세계화의 주된 흐름이 개인의 파편화를 더욱 심화하는 경제적 세계화에 쏠려 있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다. 세계화 자체는 시대의 흐름인데, 경제적 세계화보다 정치적 세계화에 비중을 두어야 현대인의 불행을 줄이고 인류 문명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을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실현하는 것이 정치적 세계화다.
정치적 세계화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정체성이 확실해야 한다. 파편화된 개인이 강자의 횡포 앞에 방치되는 일을 막는 전 세계적 네트워크, 즉 세계 정부의 기반이 그 위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불화와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민족은 정치적 세계화에 공헌할 수도 없고 그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민족 문제 해결이 경제 성장이나 민주주의 발전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다.
5. 남한이 북한을 흉보고 동정할 주제가 되나?
둘째, 핵 개발과 3대 세습 같은 일은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진중권의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사정을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공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북한 사정을 잘 모르더라도 핵 개발이나 3대 세습이 나쁜 짓임은 분명한 것 아니냐고 진중권은 생각하는 것 같다. 역사를 공부한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일 수는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나쁜 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핵무기는 20세기 중엽에야 나타난 것이니 역사학도가 특별히 뭐라고 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혈연 세습은 인류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민주공화제가 군주제를 널리 대치한 것은 20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민주 정치다운 민주 정치가 작동하고 있는 곳은 지금도 많지 않다.
남한에서도 핵 개발과 1인 종신 독재를 시도한 일이 있었다. 1970년대의 일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남한 형편에서는 그런 일이 '말도 안 되는 짓'이 되어 있다. 지금 북한 형편은 어떤 것일까? 지금의 남한 형편보다는 40년 전 남한 형편에 가까운 것 같다.
남한의 민주 정치 역시 아직도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남한 사람이 북한 독재 정치를 흉보거나 동정할 주제가 되는지 생각할 점이 많다. 민주공화제가 혈연 세습보다 좋은 것이라고 우리가 진정 믿는다면 북한에서도 민주 정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도울 길을 찾아야지, 그런 짓 하면 안 된다고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오만은 악인만의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의 오만이 더 무섭다. 북한을 호의적으로 대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제국주의시대의 '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식민 지배를 확장하면서 '문명'을 전해준다고 자부한 것과 같은 마음으로 '민주주의'의 전파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연합뉴스 |
6. 명분을 버리고 음모에만 매달리는 '종북주의자'들
통합진보당 사태 앞에 '당권파=NL=종북주의'의 등식을 그리며 종북주의를 척결하면 폭력과 혼란의 성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종북주의는 폭력과 혼란이 낳은 결과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북한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반공주의 관점도 긍정적으로만 보는 종북주의 관점도 똑같이 정보 차단의 결과다. '앎'이 없으니 '믿음'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종북주의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있다. 비현실적인 믿음이 일어나는 것은 정보 부족 때문이고, 비밀과 음모의 조직력이 득세하는 것은 불합리한 처벌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비밀과 음모를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밝은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큰 조직을 이룰 기회가 별로 없어서 각자 취미 생활 차원에서 성향을 드러낼 뿐이다. 그런데 억압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조직 활동을 벌일 명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작고 비밀스러운 조직에는 명분 자체를 아끼기보다 비밀과 음모를 좋아해서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이따금 180도 '전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명분보다 음모를 좋아하던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를 보며 우리 사회가 많이 밝아졌다는 생각을 한다.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한 '종북'은 비밀 조직을 위한 강력한 명분으로 남아있다. '민족 대의'와 '사회 정의'를 포괄하는 당당한 명분이면서 제도적 억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권파'의 행태를 보면 명분은 간 데 없고 음모만 판을 친다. 원칙과 상식을 무시한 그 희한한 꼼수들은 '민족 대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런 비밀 조직을 통하지 않고도 '종북'의 길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만큼 사회가 밝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어두움을 좋아하는 자들만이 비밀 조직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내가 종북주의자임을 당당히 밝힌다. 잡혀갈 걱정 않으면서.
7. 우리는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
꼭 '종북(從北)'이란 표현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친북(親北)'은 일반 국제 관계에 쓰이는 말이라서 그와 차원이 다른 남북 관계에 쓰기가 어색하다. 고르라면 '중북(重北)'이라 하고 싶지만 번거롭게 그럴 것 있나. 좋은 뜻으로는 아니더라도 '종북'이 많이 쓰여 온 말이고 글자의 뜻 자체가 맞는 것이니 내 주장을 '종북주의'로 표현해 둔다.
내 주장의 요점은 이렇다. (1) 분단 극복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제다. (2) 분단 극복은 당사자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 (3) 분단 극복과 아울러 해결할 과제들이 남한보다 북한에 많다. 고립 상태 때문이다. (4) 따라서 분단 극복의 구체적 방법은 남한보다 북한 사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강구되어야 한다.
(2), (3), (4)에 대해서는 독자 대부분이 쉽게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1)에 대해, 중요하다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종북주의'의 실질적 의미가 이 차이에 걸려있다.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매우 크고 강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 사치를 포기하는 경제적 양보만이 아니라 사회 보장의 약화와 자유의 축소 등 사회적 경제적 양보도 생각할 수 있다. 종래의 종북주의자들이 무조건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내 주장은 아무것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서 일단 벗어나자는 것이다.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제4절에서 민족문제 해결의 시대적 중요성을 내 나름대로 간략하게 제시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이유로 더 큰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청하는 것은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지금까지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을 이념의 문제 아닌 현실의 문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끝으로 '종북주의' 깃발을 지켜온 분들에게 한 마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깃발을 지켜 온 공로를 치하한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있을 수도 없는 '북한 지령'이 있는 척하면서 당신들은 명분을 등졌다. (지령이 있었다면 북한 한 모퉁이의 음모 집단이 보낸 것이겠지.) '종북'의 명분과 '진보'의 이름을 이용 대상으로만 여긴 당신들은 '국가'를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는 극우 세력과 적대적 공생관계로 야합했다. 이제 깃발을 내려놓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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