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27 17:43 수정 : 2012.04.2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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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8월 아들 진을 얻은 이은 부부. 이들 셋은 이듬해 4월 조선을 방문했다가 부부만 일본으로 돌아갔다. <선원보감>은 아들이 진이 독살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푸른역사 제공 |
송우혜 다큐소설 완결편
일본 패망하며 평민으로
결혼 이후의 삶에 초점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
송우혜 지음/푸른역사·1만5800원
“별 볼 일 없는 분 맞아요. 그분을 소재로 한 것은 사람의 됨됨이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대한제국의 실체와 몰락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창문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1897~1970)이 결혼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초점을 맞춘 <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를 출간한 소설가 송우혜씨는 집필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2010년에 낸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 <왕세자 혼혈결혼의 비밀> 등에 이어 이번 책을 냄으로써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 네 권을 완결했다.
그는 “이은의 궤적을 살피면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멀쩡한 조선인이 그 정체성을 상실하고 일본인으로 변화해간 과정을 알 수 있다”며 “이은의 삶은 시대가 낳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십여년 전에 만난 <순종실록부록>이 계기였다. 1911년 7월5일, 10일 일본에 간 왕세자 이은이 학습원 시험에서 우등상장을 받았고 닷새 뒤 순종이 “본토어(일본어)를 써야 하고 동급생보다 어린데도 좋은 성적을 올린 게 가상하다. 앞으로 더 분발하라”는 전보를 쳤다는 기록이었다.
“막연하게만 알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실체와 구체적으로 대면한 계기였어요. 어린 나이에 나라를 떠나 일본에서 인질로 살아가던 외로운 소년의 삶이 떠오른 거죠.”
이은의 이야기는 가까운 시기인데도 멀게 느껴진다. 지은이는 패전한 병자호란이 학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임진왜란보다 후대의 일인데도 임진왜란보다 멀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역사학자들이 한국사의 어두운 시대를 방치하면서 빚어진 착시라는 것이다.
책은 ‘다큐소설’을 표방해 술술 읽힌다. 대한제국 말기는 한 나라의 소멸을 배경으로 군상들의 운명을 건 행동이 펼쳐지는 탓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잘 꿰기만 하면 소설보다 더 극적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등장인물의 대화나 상황의 묘사를 사이사이에 끼워넣는 기법을 쓴 덕분이기도 하다. 궁 안팎의 내밀한 장면이나 복잡미묘한 사건의 전개를 설명하려면 소설이 적절하고, 수없이 되풀이돼온 오류를 바로잡기에는 논문 형식이 버겁기에 택한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역사를 전공한 소설가인 지은이한테 제격인 셈이다.
이은을 중심 축으로 재구성해낸 대한제국 몰락기의 풍경은 음울하다. 고종(1852~1919)과 엄귀비(1854~1911) 사이에서 이은이 태어난 1897년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한 해다. 이태 전인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깡패들한테 살해당하고, 고종은 1896년 일본인들의 등쌀을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해 한 해 동안 머물렀다.
이은은 열살 때인 1907년 황태자로 책봉되지만 그해 12월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가게 된다. 1910년 한일합병으로 순종이 폐위되고 이은은 황태자에서 왕세제로 격하된다. 그는 학습원, 육군유년학교,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중위로 복무하던 중 1920년 일본 황실의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 왕족 나시모토의 맏딸 마사코(이방자)와 결혼하였다. 이은은 특별대접을 받아 중장으로까지 진급한다. 그는 부하와 상관들에게 후했지만 조선인을 위해서는 인색했다. 간토(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집단살해되었을 때 한마디 말도 없었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세비와 일자리가 끊기고 신분 또한 평민으로 바뀐다. 당시 함께 일본에 머물던 의친왕의 아들 이건은 팥죽장사를 하며 돈벌이에 나선 반면 이은은 부동산을 팔아 연명하면서 게이샤 누드화를 그리며 소일했다. 그는 1957년 일본에 귀화를 하는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에 유학중인 아들 이구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한 비자 발급이 필요해서였다. 노년에 귀국을 원하지만 이승만 정권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5·16 군사정부의 정치적 계산과 맞물려 1963년 식물인간 상태로 귀국한다.
지은이는 이은의 모친 엄귀비가 제갈량 못잖은 책사였음을 밝혔다. 명성황후의 감시를 뚫고 서른두살에 고종과 동침을 하고, 10년의 추방생활을 한 뒤 명성황후 사후 재입궁했고, 새 황후 간택 움직임이 일자 아관파천에 적극 개입해 고종을 빼돌려 마흔세살에 황태자 임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 이은이 인질이기는 하지만 해마다 40만엔을 받는 부자였음을 실증했다. 당시 일본 총리 연봉이 8000~1만엔, 왕족이 3만8000~11만엔이었다. 이은과 결혼한 마사코 역시 일본 황실의 일방적인 조처에 따른 희생양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의 모친이 이은의 재산을 보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결과였다고 설명한다. 덕혜옹주의 정신병은 거듭된 결혼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등을 새롭게 조명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