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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300점-朴三龍 풀스토리 및 수퍼땅콩 여오현및 신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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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619회 작성일 2012-04-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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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수요 초대석 게재 일자 : 2012년 04월 18일(水)
“대학·실업팀 선택때 ‘돈보다 사람’… 그 덕분에 오늘의 나 있어”
인삼공사 프로배구 통합우승 이끈 박삼용 감독 요즘미투데이공감페이스북트위터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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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증권 시절 은사인 진준택 감독과 같은 넉넉함을 지닌 감독이 되고 싶다”는 박삼용 감독은 “여건이 된다면 빠르고 조직력이 있는 배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감독’ 박삼용(44)의 배구는 선이 굵다. 그의 화려했던 현역 생활 뒤에는 남모를 비애가 숨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려서는 키가 작아 한동안 배구를 떠나 있었고 팀(고려증권)의 고참으로 화려한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시점에는 외환위기 때문에 자신보다는 후배들의 처지를 걱정해야 했다. 치킨집과 호프집 사장도 해봤다. 일찍 지도자로 나서 30대 중반에 실업팀 감독을 맡았다. 한때 최정상에 있던 팀이었지만 무너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을 다 놓아버린 선수들의 정신 자세를 잡으려 계약기간이 한참 남았지만 잔여기간의 연봉을 고사하고 스스로 감독직을 내놓았다. 토속적인 이름에 걸맞은 얼굴을 갖고 있는 박삼용의 배구 인생은 이렇게 고난은 많았지만 구차하지 않았다. 프로배구 2011∼2012시즌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챔피언결정전까지, KGC 인삼공사 여자 프로배구팀을 맡은 지 3시즌 만에 통합우승을 일궈내 박삼용의 선 굵은 배구는 드디어 보상을 받은 것 같다. 지난 12일 대전 신탄진의 인삼공사체육관에서 박삼용 감독을 만났다.

친숙한 이름, 삼용(三龍). 셋째 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들로는 장남. 위에 누님 한 분, 그리고 남동생이 있단다. 동생 이름은 오룡. “아버님이 화투 좀 치셨나 보네?”하는 질문에 껄껄 웃는다. 박 감독은 “이름 덕 좀 봤죠”라고 한다. 한번 들으면 누구나 잊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 좀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작명소에 갔었다. “‘최고의 이름이다. 절대 바꾸지 말라’고 합디다.”

부산에서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졸업했지만 부산 사투리는 거의 쓰지 않는다. ‘팔음산 포도’로 유명한 경북 상주시 화동면 보미리에서 출생했지만 세 살 때 서울로 올라와 살다 일곱 살 때 부산으로 와서 그렇단다. 물론 고향 친구들과 만나면 사투리를 사용한다.

육상과 공놀이라면 못하는 게 없었던 그는 초등학교 4년 때 본격적으로 배구를 했다. “원래는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후 학교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던 형편 때문에 돈이 많이 드는 야구를 하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지요.” 시작부터 포지션은 레프트. 소질이 있었던지 대회에 나갈 때마다 두각을 나타내 3번이나 스카우트 됐다. 금강초교-운봉초교를 거쳐 졸업은 보수초교에서 했다.

그러나 동아중 1년 때 배구를 그만두게 된다. “161㎝이던 키가 거기서 딱 멈췄어요. 공부나 하자고 학교를 집 근처인 거성중으로 옮기고 신나게 놀기만 했지요. 그 덕인지 중3 때 186㎝로 자랐는데 배구를 함께 했던 친구 어머니가 부쩍 큰 것을 보고 배구를 다시 하라고 합디다. 동성고에 진학하기로 했지만 특기자 원서 접수 기간을 놓쳐 동성고에서 배구를 하면서 학원을 다녔지요. 이듬해 부산사대부고로 입학해 두 달 만에 특기생으로 동성고로 전학했습니다.”

박삼용은 고2 때 부상을 당해 8일간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게 보약이 됐다. “병원 밥 세끼, 집에서 보낸 밥 3번, 밤에는 환자들과 야식. 덕분에 체격이 부쩍 좋아져 지금 이 체격(190㎝ 90㎏)이 됐어요.” 고2 때 이경석(현 LIG감독) 이후 8년 만에 동성고를 전국대회에서 우승시킨다. “1985년 대통령배대회 결승에서 성남 송림고와 만나 마지막 세트 6-13으로 뒤지고 있다가 역전시켜 우승했죠. 그 해 전국체전에서는 제천 광산공고에 예선에서 지고 결승에서 다시 만나 3-2로 이겼죠. 광산공고에는 세터 이성희와 레프트 마낙길이 있어 최강이었는데 풀세트까지 간 결승전은 지금도 고교배구 최고 명승부의 하나로 알려져 있죠. 1986년 춘계연맹전에서는 윤종일, 하종화가 있는 진주 동명고를 누르고 우승했어요.”

‘동성고에 산적같이 생겼고 힘이 장사인 레프트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그는 대학팀의 스카우트 표적이 된다. 경기대가 3000만원의 스카우트비를 제시했지만 그는 서울시립대를 선택한다. 당시 시청팀(시립대 선수들은 실업팀 서울시청으로 출전했다)의 송유진 감독이 고교선배인 이유도 있지만 스카우트를 위해 자주 부산에 내려온 신춘삼 코치(현 KEPCO감독)의 인상이 좋아 보여서 반밖에 주지 않는 팀을 골랐다 한다.

박삼용은 실업팀을 갈 때도 돈보다는 사람을 택했다. 사실상 대학팀인 서울시청은 박삼용, 서남원(대한항공 코치), 어창선(도로공사 감독), 이성희, 신만근 등 1, 2학년 멤버들이 좋아 실업 강호 현대차서비스, 고려증권, LG화재(현 LIG손보)를 괴롭히는 다크호스였다.

졸업할 때가 되자 LG가 1억6000만원을 제시했지만 박삼용은 결국 8000만원을 준다는 고려증권에 1991년 3월 입단했다. 호흡을 맞춰 온 1년 선배 이성희가 고려증권에 갔기 때문이다.” 1억6000만원은 당시 큰돈이었지만 이성희 선배와 호흡이 가장 잘 맞았기 때문에 길게 보고 고려증권을 택했죠. 그 덕분에 마인드도 더 좋아졌고 제 이름도 더 높아졌고, 아무튼 조금 손해보고 내린 그때의 결정이 오늘날의 박삼용이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LG에는 황현주(현대건설 감독), 최영준이 세터였는데 대표팀에서 해보면 이성희하고 가장 잘 맞았어요.”

박삼용의 배구 인생 주변에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이성희와 ‘명장’ 진준택 감독이다. 1년 선배 이성희와는 지금까지도 실과 바늘 같은 사이이고 고려증권 시절 사령탑이었던 진준택 감독은 박삼용에게 따르고 싶은 지도자상을 깊이 각인시켜준 진정한 스승이었다.

“진 감독은 뚝심 있게 선수들을 믿어주는 감독이셨어요. 그리고 포지션에 꼭 있어야 할 선수를 보는 안목도 있었죠. 현대건설과의 챔피언결정전 최종 5차전은 ‘진준택 스타일’로 했어요. 우리 팀이 나은 부분은 용병 1명밖에 없었지요. ‘힘들 때 서로가 믿지 못하면 절대 안 된다. 옆 선수가 못해도 표정에 나타내지 말고 다독거려서 해나가자’고 선수들을 독려했어요. 진준택 감독을 닮아 넉넉함을 지닌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도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용장, 맹장, 지장, 덕장으로 바뀐다고 하던데 저는 처음부터 덕장이 되고 싶었어요. 대한항공 감독을 맡아 오랜만에 복귀, 고려증권 제자들인 저나 이성희, 홍해천(송림고 감독)에게 코치로 와달라고 부탁하셨는데 다들 현직을 떠날 수 없는 형편이라 도와드리지 못했어요.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신 것이 꼭 내 탓 같아 죄송한 마음이었어요.”

팀의 이성희 수석코치는 대학 1년 선배로 GS칼텍스 감독까지 지냈다. 09∼10 V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박삼용의 인삼공사에 져 탈락, 감독직을 그만뒀는데 배구연맹(KOVO) 경기위원을 하다, 박삼용의 부탁을 받고 후배 밑에서 수석코치직을 기꺼이 맡았다. 이 코치는 “너니까 맡지”라고 했다고 한다. 박삼용의 품이 그만큼 넉넉하다는 의미로 들렸다.

3년 만에 챔프전에서 두 번이나 우승, 성공한 지도자가 됐지만 박삼용의 지도자로서의 첫발은 대실패였다. 35세 때 LG정유(현 GS칼텍스) 감독을 맡았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92연승을 기록했던 정상의 팀이었지만 주전들의 노쇠화로 내리막길을 걸을 때 감독을 맡았다. “내 경험도 부족했지만 포지션에 필요한 선수도 없었어. 게다가 선수들이 의욕도 없었고. 결국 3년간 7승47패를 기록하고 단장에게 ‘제발 감독직을 떠나게 해 달라’고 사정했어요.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려면 그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잔여 계약기간의 연봉도 받지 않겠다고 했죠.”

인상은 여자팀과 잘 맞지 않을 것 같은데? “여자팀이 훨씬 어렵습니다. 남자와는 달리 선수하는 것을 직업으로 생각하는 개념이 약해요. 특기 20대 중반 선수들은요. LG정유 시절, 여자 선수를 다룰 줄 몰라 원칙에서 벗어나면 체벌을 가했죠. 인삼공사에 와서 달라졌어요. 선수들에게 ‘웬 썰렁한 농담’이라는 놀림을 당하면서도 농담도 하고 가급적 부드럽게 대하려 노력합니다. 눈꼬리가 올라간 것 때문에 덕을 좀 보죠. 편안하게 말해도 선수들이 긴장하니까요. 우리 집 아이들도 보면 내가 조용히 말하는데도 바짝 긴장한 기색이에요.”

박삼용 감독이 지향하는 배구는 빠르고 조직력이 있는 배구다. “하지만 팀 여건이 아직 못 미쳐요. 특히 토종 장신 공격수들의 능력이 스피드 배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제 스타일로 팀을 개조해 롱런해야죠.”

인터뷰 = 이동윤 선임기자(체육부) dylee@munhwa.com
 
 



1.신치용 삼성 감독의 20년 한 팀 감독 갱신을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2.지금까지 프로 감독으로서는 해태 타이거스 시절의 용장, 별명이 코끼리 였던 김응룡 감독이 ***~입니다.

3.신치용감독은 외국인 선수 뽑는 안목이 해외에서 세계적인 세터로 군림한 바 있던 김호철 보다 한 수 위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열성 배구팬 중에서는 거의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4.박지성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껌씹는 붉은 소년-30년 집권의 아성 알렉스 퍼거슨 감독처럼 신치용 감독도
장수하길 바랍니다.

5.여오현 선수는 기실 레프트 출신이었으나 키가 크지 않는 바람에 특히 리베로 제도가 전세계적으로 도입된 이후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선수라고 저는 봅니다.

6.만일, 리베로 제도가 없었더라면?

여오현 선수는 대학 졸업후 갈 곳도 거의 없었을 것이고 초등학교나 중학교 거의 무보수 코치로 생계가 막막했을 지도 모릅니다
겨우 120만에서 150만원 여건이 좋으면 월봉 220만원 안팎의 코치생활을 했을 지도 어쩌면 모를 일입니다.

***지금은 연봉이 2억 2천만원 플러스 알파를 상회하는 슈퍼스타 슈퍼 땅콩 여오현입니다.

7.그러나, 여오현은?

이호 리베로에 이어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리베로로 장기 집권하고 있으며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움켜쥔 노력-성실-행운이 3행이 겹친 멋진 사니이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삼성 실업포함 14회 우승의 거의 대부분의 주역이 된 석진욱과 함께 쌍두 마차가 되었지요!


8.다음 내용을 배구팬들은 흥미롭게 읽어보시옵고
배구인들 특히 선수 스카웃에 골몰하는 배구인들에게 좋은 사례중의 하나가 되리라 봅니다.




***********************

*********여오현때문에 감독 자리 자라목 날아간 감독 명단이 다수 나옵니다.




@@@제목: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12년전 ‘여오현 드래프트’




ㄱ.1983년 2월1일 창단한 현대자동차서비스 배구팀(현대캐피탈 전신) 초대 감독을 지낸 송만기(2007년 작고)씨는?

사령탑에서 물러난 후 스카우트 역할을 했었습니다.

ㄴ.그는 스카우트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더군요.
“우리가 필요한 선수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라이벌 팀이 필요한 선수를 먼저 빼돌리는 것도 스카우트다.”

ㄷ.프로배구 삼성화재가 프로 통산 6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5년 11월 창단된 삼성은 아직도 초대 사령탑 신치용 감독이 건재합니다.

ㄹ.슈퍼리그 8연패에, 프로 전환 후 8시즌 연속 챔프전에 진출했고 이중 6번이나 우승을 일궈낸 것이죠.




ㅁ.신 감독이 끝나지 않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동안 라이벌 팀들은?

그야말로 ‘감독의 무덤(?)’이 됐습니다.


ㅂ.최대 라이벌이었던 현대는?
강만수-송만덕-김호철 감독을 거쳐 지난해 하종화 감독이 부임했고

ㅅ.LIG는?

삼성 창단 후

김갑제-김찬호-노진수-신영철-박기원-김상우 감독 자리의 자라목이 차례로 떨어집니다.


ㅇ.만약 2000년 실업배구 드래프트에서 라이벌 팀들이 송만기씨의 스카우트론을 알고 있었더라면?
삼성의 독주는 이렇게까지 이어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ㅈ.당시 삼성은?
신영철을 코치 겸 선수로 다소 무리하게 영입한 일 때문에-한전 당시 감독을 코치로 데리고 있던 신치용의 장래를 점지하고는-
1, 2라운드 지명권을 박탈당했습니다.

ㅊ,삼성의 유일한 희망은?
리베로였지요.

마침 그 해 걸출한 리베로 여오현과 최부식이 시장에 나왔지만 신 감독은?
“우리 차지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었습니다.



ㅋ.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가진 LIG(당시는 LG)의 김찬호 감독은?
그러나 예상을 깨고 모교(경희대) 후배인 이영수를 지명합니다.

ㅌ.이어 대한항공, 현대 역시 1, 2라운드에서 다들 공격수를 뽑습니다.

ㅍ.겨우 3라운드 1순위였던 신치용 감독은?

드디어 차례가 오자 드래프트 진행을 일시 중단하고 회사에 전화를 겁니다.

@@@@@@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습니다.”

**********

위 아래의 글은 배구 전문 보도 기자중의 최고봉이신 문화일보 이동윤 선임기자의 보도입니다.
흥미있게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자주자주 우리 배구 보도를 잘해주시는 이동윤기자님에게 연맹측에서는 공로패를 증정해야 합니다.


*************


삼성이 최부식도 아닌 여오현을 지명하자

그때서야 라이벌 팀 감독들은 정신을 차린 듯 했습니다.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며 “왜 여오현을 안 뽑았어?” 하며 서로 책망(?)합니다.
당시 언론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 이상한 드래프트”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ㅎ.신 감독에게 ‘V6’의 최고 수훈갑을 꼽으라면 주저않고 여오현을 듭니다.
빛나지는 않지만 상대의 득점이 될 공을 건져 올리는 여오현 덕분에 지금의 삼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박철우를 영입할 때 신 감독은?
보호선수 1순위로 175㎝에 불과한 ‘땅콩’ 여오현을 지명했습니다.
또다시 삼성에 별을 달아 준 다른 팀들, 12년 전 눈에 콩깍지를 씌운 듯 여오현의 삼성 행을 막지 못했던 것이 망령이 되어 두고두고 그들을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

@@@여오현 포에버!

@@@신치용 감독 적어도 삼성 20년 본방 사수하라!-신치용 포에버!

@@@신치용감독은?
삼성에서 선수로 활약하다 은퇴하게된 선수들에 대한 온 힘을 다한 배려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인간적인 무한 신뢰를 그 선수들에게 준다고 합니다.

*****************

@@@ 신치용 어록 제1호는?

정답: 삼성의 조직력은 나 신치용이도 두렵다!

※ 관련기사 ▶ 박삼용 감독은… 25세때 결혼·35세때 감독 ‘속전속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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