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논설실장4·11 총선이 새누리당의 승리, 민주통합당의 패배, 통합진보당의 전진, 자유
선진당의 몰락으로 귀결됨에 따라 각 정당·정파는 8개월 뒤 대선을 겨냥한 체제
정비에 돌입했다. 그러나 173석이던 새누리당이 152석을 얻은 것을 놓고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재 80석인 민주통합당이 127석이 됐는데 패배라고 할 수 있을까. 더욱이 정당투표 득표율, 개별 후보의 총득표수에서는 모두 ‘민주통합+통합진보’ 야권연대가 새누리당을 앞섰다.
이런 애매함은 정국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의 ‘승리’ 착각은 김형태·문대성 당선자 논란에 대한 뭉개기로 나타났다. 총선 전이라도 그랬을까. ‘박근혜당(黨)’ 가속화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은 중도 포용과 좌파 연대 사이의 정체성 혼란에 휩싸였다.
올바른 진단에서 올바른 해법이 나온다. 이번 총선에서 정작 민의(民意)가 무섭게 심판한 것은 ‘좌(左)클릭’경쟁이었다. 새누리당은 한나라당 간판까지 내리고 탈(脫)
보수로 신장개업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가능하게 한 것은 보수표의 결집이었다. 강원도, 충청도가 새누리당으로 완전히 돌아섰고,
영남지역도 강한 응집력을 보였다. 수도권의 중도성향 표들을 가져오는데는
실패했다. 새누리당의 좌클릭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던 셈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권 인기 추락의 주된 원인은 ‘보수’ 실패와 친이·친박 갈등이었다. 그럼에도 야권연대와 보수 분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투표에 의한 후보단일화를 이뤄낸 것이다. 이것은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돌아가라는 경고다.
민주통합당은 좌클릭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다. 급진좌파와 종북(從北)세력이 뒤섞인 통합진보당과 3월9일 ‘공동정책 합의문’을 만들었을 때 예고됐다. 한미 자유
무역협정(FTA) 폐기, 제주 해군기지 저지 주장만으로 민주통합당은 수권(授權)정당, 대안(代案)정당의 신뢰를 잃었다. 나꼼수 김용민 후보의 저질·막말 파문은 쐐기를 박았다.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을 좌측으로 끌어당겨 득표에 활용했다. 내부에서는 민주통합당을 이념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보수·자유주의 정당 정도로 보고 있지만 그 공신력과 신뢰성을 필요로 했다. 통합진보당
선거홍보물에는 민주통합당의 주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양당의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얼굴을 내걸어 항의를 받기도 했을 정도다.
좌클릭 경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통합진보당이고, 가장 큰 피해자는 민주통합당이다. 새누리당도
반사적 이익을 얻었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경제·사회적 양극화 등 좌클릭 유인(誘因)은 많지만 좌클릭을 주도했던 정당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왜 그럴까?
현대 정치사를 보더라도 자칭 ‘민주·진보 진영’이 좌클릭으로 정권을 잡은 경우는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7년, 1992년 대선에서 재야(在野)
운동권을 대대적으로 영입했지만 실패했다. 1997년 김 대통령의 당선은 정반대쪽의 김종필 당시 자유민주연합 총재와의 DJP연합으로 겨우 가능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역시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후보와의 단일화 효과 덕분이었다. 보수진영에서도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이 비판했던 군사정권과 손을 잡아 집권에
성공했으며, 이명박 대통령 역시 ‘747’등 강력한 보수 캠페인을 벌였다.
이처럼 그동안의 집권은 좌클릭이 아니라 오히려 우(右)클릭에 의해 이뤄졌다. 유권자들은 무책임·종북 세력에게 국정이 유린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현명하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투쟁 당시에도 운동권 주도세력이었던 민중민주(PD)계열은 민중정권 수립, 민족해방(NL)계열은 공산 혁명을 꿈꿨지만 국민은
제도적 민주주의 도입에서 딱 멈췄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좌익의 끝에는 ‘종북’이 있으며, ‘공짜 복지’나 ‘지상 낙원’같은 감언이설(甘言利說)의 끝은 망국이고 반역임을 체득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좌클릭이 저주로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