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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韓 뉴리더 김정은-애도기간에 웃고다닌 이유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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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546회 작성일 2012-04-08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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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北 김정은, 애도기간 중에도 웃고 다닌 이유는?

[중앙선데이] 입력 2012.04.08 02:20 / 수정 2012.04.08 04:00

3대 세습 실험 ‘김정은 집권 100일’ 집중 분석


신세대 권력의 감성 차별화인가 불안한 정권의 눈가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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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김정은 체제가 7일로 100일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29일 김정일 사망 애도 기간이 끝난 시점부터 계산해서다. 중앙SUNDAY는 북한 권력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노동신문으로 ‘김정일 사후 김정은 통치 100일’을 집중 분석했다. ▶김정일 애도 기간이 끝난 지난해 12월 30일부터 100일 ▶18년 전 김일성 애도 기간이 끝난 1994년 7월 18일부터 100일을 비교했다. 약 700일치 노동신문 1면과 2·3면 등에 나타난 주요 보도, 사설·정론, 특이 요소가 대상이었다.

 
분석 결과 신세대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세습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취약한 권력을 강화하고 장악하기 위해 노래·친필·시·음악회 관람 같은 감성적 수단을 집중 동원했다. 선전·선동전을 압축적으로 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불완전성을 반영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이같은 모습은 신세대 권력의 차별화인가 아니면 불안한 정권의 눈가림인가.

 
2012년 1월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식 장례가 끝난 3일 뒤. 북한 최고 통치자가 된 김정은이 맞는 첫해 첫날이다. 북한 주민뿐 아니라 세계의 눈길이 쏠린 이날 노동신문 1면은 특이했다. 장례 분위기가 여전히 무거운 가운데 뜻밖에 ‘조선의 힘’이란 노래를 전면에 실은 것이다. ‘폭풍 안고 비약하는 조국 땅 어데서나… 김정일 장군 그이는 조선의 힘이다’라는 내용의 김정일 예찬송(頌)이다.

 
수십 년간 새해 첫날 1면에서 북한의 방향을 제시했던 공동 사설은 2면으로 옮겼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듬해인 1995년 1월 1일에도 공동사설은 1면에 실렸다. 그런 시도가 2011년 1월 1일 한 차례로 그치긴 했지만 이번엔 양상이 달랐다. 이날 노래는 김정일 사망 100일 동안 거듭되는 노래 정치의 시작이었다. 노래는 이후 여러 차례 1면에 등장했으며 각종 매체에서 되풀이되고 교육됐다.

 
전문가들은 ‘준비된 지도자 김정일과 달리 카리스마도 없고 준비도 덜 된 김정은은 권력·권위 강화를 위해 대대적·압축적 선동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탈북자 김진하씨는 “김정일은 군내 정치간부 회의에서 ‘한 편의 시, 한 가락의 노래는 수천·수만 문의 포보다 더 위력하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김일성 사망 때 후계 20년이 지난 김정일은 권력을 장악했고 리더십이 있었지만 김정은은 후계 과정이 짧아 그럴 기회가 없어 짧고 신속하게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탈북자들은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김정은의 다지기 사업이라고 했다.

김정일이 ‘음악 정치’라는 용어를 만들 만큼 대표적 선동 수단인 노래는 2012년 초부터 강하게 시동 걸린다. 1월 1일 3분 길이의 노래 ‘조선의 힘’은 북한의 조선중앙TV 중요 시간에 미사일 발사, 방사포 발사, 전투기 비행 같은 무력을 과시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전파를 탔다. 평양3방송 같은 유선라디오의 전파도 탔다.
 
이어 1월 16일엔 1면 전면에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가 나왔다. 서정풍의 노래는 깊은 산, 꽃 등을 배경으로 시작해 궤도를 도는 북한 인공위성과 미사일을 보여주다 주체탑 불꽃으로 마무리한다. 1월 27일엔 ‘그리움은 끝이 없네’가, 2월 13일 1면엔 ‘흰 눈 덮인 고향집’이, 3월 6일엔 ‘내 조국이 장군님 품인 줄 알았다’는 내용의 ‘나는 알았네’가 실렸고, 김정일 사망 100일이 지난 3월 25일자엔 1월 16일 실린 ‘장군님은 태양으로 영생하신다’가 반복된다.
 
모두 사상성이 강한 노래다. 김정일 사망 100일 전 노동신문에도 10개의 노래가 나오지만 대형 보도는 없고 3·4면에 작게, 내용도 ‘내가 반한 그 총각’ ‘사과꽃 만발할 때’와 같은 서정적 내용이 주종이다. 김진하씨는 “당 차원에서 하부로 노래 암기 과업이 내려와 학습을 하는데 이를 못 따라가면 큰일 난다”고 했다.

 
탈북자 이금룡씨도 “노동신문에 나오는 노래는 무조건 배워야 한다. 의무적으로 학습하며 라디오·TV와 각종 공연 등에서 반복된다”고 말했다.

친필을 활용한 김정은의 ‘사인 정치’도 독특하다. 1월 3일자 신문에는 애도 기간 직후인 2011년 12월 30일 김정은이 일괄 서명한 친필 서명 사진 11개가 실렸다. 집권 첫날 대민 이벤트가 서명 정치였던 셈이다.
 
대상은 김일성종합대, 희천 발전소, 하나전자합영회사 하나음악정보센터, 국가과학원 413 연구소, 인민보안부 대동강총국 등 다양하다. 김정일 시기에는 대개 ‘친필을 보냈다’는 기사가 소개되거나 드물게 친필 서명 하나만 1면에 실었다. 탈북자 이금룡씨는 “지도자 친필을 받는 것은 비할 데 없는 영광으로 간주돼 이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1월 30일자엔 김정은이 1월 25, 26일 이틀에 걸쳐 서명한 9개의 사진이 실렸다. 그중 하나는 ‘청년들의 힘찬 발걸음에 의해 강성한 내일은 더욱 앞당겨지게 될 것이다. 언제나 곧바로 당을 따라 앞으로’라고 돼 있다.
 
 
2월 14일자 서명 7개 가운데는 ‘민흥단, 이축복, 이경연, 유소금, 고후회가 보낸 경애하는 김정은 선생님께 삼가 올립니다’ 서한에 ‘훌륭히 자라 미래의 주인공들이 되거라’라고 써 자상함을 과시했다. 2월 16일자엔 만포 시민들이 흰쌀 100t을 김정일 동상 작업에 동원된 군인에게 보내겠다고 한 데 대해 ‘성의만 받겠다’고 한 뒤 “흰쌀을 시 안의 인민들, 어린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답했다.

 
2월 25일에는 모판 씨 뿌리기를 하다 흙더미에 덮여 2월 1일 사망한 연안군 오현 협동농장 분조장 이창선에게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치는 것은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키우신…미덕이다…’라는 긴 내용을 썼다. 친필 내용은 자상하거나, 단호하거나, 칭찬하는 등 다양하다.
 
친필을 보낸 사람의 수로 김정일 사망 전후 100일을 비교하면 30대2의 압도적 차이를 보인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전후 100일엔 그런 게 일절 없다. 탈북자 이금룡씨는 “김일성·김정일 시절에도 친필은 활용됐지만 이처럼 무더기로 내보내진 않았다”며 “기반이 없는 김정은이 서두르기도 하고 ‘인민에게 따스함을 보여준다’는 김정일식 광폭정치도 반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음악회 관람도 주요 수단이다. 김정은은 애도 연장 기간으로 간주되는 100일 동안 꾸준히 음악회를 갔다. 94년 김정일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김정은은 1월 3일엔 은하수 신년음악회 ‘태양의 위업 영원하리라’에서 ‘김정일 동지께 드리는 노래’ ‘그이의 한 생’ ‘장군님이 그리워’ 같은 것들을 들었다.
 
 
1월 15일에는 4·25문화회관의 ‘영원토록 받들리 우리 최고사령관’ 공연, 1월 29일엔 조선 인민군 군악단 연주회, 2월 18일엔 은하수 광명성절 음악회, 3월 9일엔 ‘여성은 꽃이라네’ 공연을 관람했다. 모두 5회였다.
 
김정은의 동정은 노동신문 1면 대형 톱 기사였다. 김정일은 사망 전 100일 동안 세 번의 음악회를 간 정도다. 김진하씨는 “노래 정치를 더 힘 있게 독려하는 것”이라며 “각종 단체들은 김정은이 관람한 내용의 공연을 반복하는 준비를 하게 된다”고 했다.

김정일 관련 대형 시를 싣는 것도 눈길을 끈다. 노동신문은 1월 1일자에 ‘조선의 새해’라는 장시를 소개했다. 1월 14일엔 ‘사랑을 바치자 장군님 조국에’라는 제목 아래 5개의 시를, 2월 13일엔 ‘영원한 선군의 태양 김정일 동지’(조선작가동맹 시문학분과위원회 명의)를, 3월 25일엔 ‘백일 낮, 백일 밤’이라는 대형 시를 실었다.
 
 
김정일 사망 전에도 김정일 예찬 시가 4회 등장하지만 뒷면 작게 배치됐다. 요컨대 2011년 12월 30일 이후 100일 못 미치는 사이 20회에 걸쳐 5일에 한 번꼴로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압박하는 감성 선동 이벤트를 편 것이다. 김일성 시대, 김정일 시대에 없던 현상이다.

 
그사이 공백은 기념사업으로 포장한 다양한 김정일 우상화가 채운다.
 
김정은
 
▶2011년 12월 31일 김정일 기념우표를 발행한 데 이어
 
▶1월 5일 대사면을 했고
 
▶김정일 생일(2월 16일)을 광명성절로 만들고
 
▶김정일 동상(태양상)을 만들고, 영생탑 건설 결정을 내린다
 
▶대원수 호칭을 부여하고
 
▶2월 5일엔 김정일 훈장, 김정일 청년 영예상, 김정일 소년 영예상을 제정하고
2월 14일 각 메달의 휘장에 대한 그림 풀이와 더불어 136명에게 김정일 훈장을 수여를 발표한다
 
▶2월 9일자에는 금·은 두 종류 기념주화를 발행키로 한다.
 
김일성 사망 뒤 김정일 100일엔 없었고 이후 서서히 해왔던 것들이다.
 
 
 
한 관측통은 “앞으론 김정일을 부각시키면서 김정은이 그를 계승한 인물이라고 집중하게 만드는 상징조작”이라고 지적한다.

선동성이 강한 노동신문 정론이 김정은 집권 이후 이전 동기보다 두 배 늘은 것(8회)도 감성정치와 관련 있다.
 
사망 전엔 ‘따듯한 보금자리’ ‘함남의 불길’ ‘10월의 축하연’같이 여러 주제를 다루는데, 사망 후에는 ‘발이 닳도록 인민군 속으로’ ‘부글부글 끓자’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불바람 휘몰아쳐와도’같이 김정은을 모신다는 내용이 주류다. 김일성 사망 뒤엔 정론은 줄었었다. 김정일을 선전할 특별한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국립외교원 윤덕민 안보통일연구부장은
 
“94년 김정일은 100일간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3년상 때도 드러내거나 연설한 적이 없는데, 김정은은 웃고 다니고 음악회도 다닌다”며
 
“젊은 감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신은 내놓고 다니지 않으면 모르는 존재가 되니 그러는 것이며 지도자가 되기 위한 상징조작·우상조작 단계”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북한 리더십이 김일성·김정은의 폐쇄적 형태에서 개방화되고 있는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감성에 비중을 두는 것과 비교해 김정은 체제의 사상 강조는 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노동당의 사상, 정책 노선, 당면 과제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설이 노동신문엔 100일 중 14건이 나왔는데 사망 전과 비슷하며 내용에도 큰 차이가 없다.
 
 
이는 김일성 사망 뒤 김정일 정권 초기에 ‘김일성의 유훈 실현’을 사설 19회, ‘지상연단’ 9회, ‘위대한 향도 시리즈’ 17회 같은 것으로 강조한 것과 비교된다.
 
노동신문 비교는 준비된 지도자 김정일과 준비가 덜 된 지도자 김정은의 차이와 이를 극복하려 김정은이 속도를 내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012년 4월7일자 중앙일보-안성규·홍상지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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