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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춘-파워 라이터-이이화 선생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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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745회 작성일 2012-04-0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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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파워라이터]‘한국사 이야기’ 저자 이이화
글 주영재 기자·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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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고행하듯 도서관과 들판을 누비며 역사를 쓰는 이야기꾼

역사학자 이이화씨(75)는 고졸 학력에 제대로 된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웃사이더이다. 그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고 역사대중화에 앞장서온 역사저술가이자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친일인명사전편찬 등에 참여해온 역사운동가로서 학계와 시민사회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린 지난 2일 오후 경기 파주시 헤이리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25년간 살았던 구리시
아치울을 떠나 6년 전부터 살고 있는 곳이다. 집안의 벽은 대부분 책장으로 채워졌다. 현관에서 서재로 이어지는 계단 옆에도 책장이 놓여 있었다. 책장과 창고에 있는 것을 합쳐 대략 1만권의 책들이 그의 집에 있다.

이씨의 이력은 남다르다. 대구 태생인 그는 주역의 대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논산 대둔산에서 한문공부를 하다 15살에 가출한다. 학교에 다니는 또래들이 부러워 학교에 가기 위해서였다. 전쟁통이던 1951년 부산에 당도한 뒤 고아원을 전전하며 공부를 계속한다. 가짜 중학교 졸업장을 만들어 입학한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적을 두지만 생활고로 곧 그만둔다. 가정교사, 군밤장수, 보험회사 판매원, 맥줏집 웨이터 등을 하며 돈을 버는 틈틈이 도서관에서 ‘난독잡학’의 독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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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후반 무렵 본격적으로 역사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동아일보 출판부와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에서 일하며 나름의 ‘학사’와 ‘석사’과정을 이수한다. 학자들이 번역한 고전들을 검토하고 교정하며 자연스레 당대의 대가들을 접촉하며 배움의 기회로 삼았다. 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 서적들의 편찬경위와 내용요약, 책의 가치를 밝히는 해제 작업을 한 것은 ‘박사과정’이라고 했다. 수백년 손때가 묻은 국보급의 책들을 꺼내 보며 역사 공부의 깊이를 더했고 자료 수집법도 배웠다. 정규 학위는 얻지 못했지만 그 부족함을 책을 통해 얻었다. 그는 “신영복 선생이 ‘나의 대학은 감옥’이라고 했는데 나의 대학은 책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등을 강조한 인간주의자이자 현실개혁론자로서의 허균을 다룬 논문 <허균과 개혁사상>을 1973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며 ‘학계’에 데뷔한다. 유신체제에 대한 나름의 저항의식을 표현한 글이기도 했다. 논문으로 이름을 얻은 그는 본격적으로 역사대중화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한다. ‘프리랜서’로 원고료나 인세가 없으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의 첫 데뷔작은 1981년에 펴낸 <허균의 생각-그 개혁과 저항의 이론>이다. 나중에 신군부에 의해 금서가 되긴 했지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자 저술로만 먹고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1982년 아치울에 정착한 이후 전업 글쟁이로 살면서 대중을 상대로 한 역사강좌와 역사기행을 꾸준히 해왔다. 독자들이 그의 역사책을 ‘옛날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것처럼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데는 독서 대중과 호흡을 맞춰온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 100돌을 준비하기 위한 ‘동학농민전쟁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6년간 일을 하느라 저술에 몰두할 수 없었던 그는 그즈음 “마지막으로 ‘한국통사’를 쓰고 죽는 게 소원이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그런 그에게 때마침 ‘대중이 읽을 수 있는 한국통사’를 쓰자는 제안이 들어온다. 1994년 초겨울이었다. <로마인 이야기>처럼 대중성을 갖춘 <한국사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과 의기투합했다.

고대부터 1945년까지 민족사·민중사·생활사 중심으로 기술하기로 결정하고 대학생 아들에게 워드를 배워 1995년 7월 전라북도 장수군의 한 폐교에 들어가 집필을 시작했다. “벌레가 나오고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곳이라 하루이틀 자면 다 도망갔다”는 그곳에서 2년여를 보내며 1차분 4권을 완성한다.

지인들이 자주 찾아와 집필에 방해를 받자 김제 월명암과 아치울 자택 지하실로 옮겨가며 글을 이어가 마침내 2004년 5월 전 22권을 완결한다. 개인이 쓴 통사로는 가장 방대하고 지금까지의 한국사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었다. 그는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면 쉬운데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읽도록 민족사와 민중사, 생활사를 어우러지게 서술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평생의 과업을 마무리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흐트러짐 없이 저술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술을 좋아하고 술 마시면 말이 많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말한 그는 요즘 강연을 빼곤 거의 약속을 잡지 않는다. 글쓰기에 쓸 시간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다.

매달 300장 정도의 원고를 쓴다는 그는 지금 한국 인권사를 주제로 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그의 관심은 전통사회에서 유교에 의한 인권 유린이다. “유교의 인을 거론하면서 유교가 인권을 존중했다고 말하는 것은 유교 공부를 제대로 안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조선시대에 충효와 정절을 강조하면서 열녀, 효자를 조작하기 위한 갖은 희생이 따랐음을 예로 들었다. “사주단자만 왔다갔다하고 얼굴 한번 안 보고 손 한번 안 잡았는데 평생 과부가 되어야 한다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인권유린인가.” 그는 어릴 적 그의 주변에서 이런 일을 흔히 봐왔다고 한다. 그는 “역사책은 아무리 쉽게 쓴다 해도 소설과 같은 대중성을 갖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지만 그의 <한국사 이야기>는 4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이다. 그는 자신의 책이 꾸준히 나가고 있고 한 일간지에서 뽑은 해방 후 명저 50권 중 맨 앞에 들어간 것에 만족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꺼내 보여준 것은 1957년에 발행된 <전국남녀고교 문예작품집>이었다. 249쪽엔 그가 고3 때 쓴 ‘자학의 변’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교내 문예반장을 지냈던 문학청년 시절이었다. “도시(都是) 인생의 생리가 무어냐고 이 소년에게 묻는다면 그건 아마 낙엽의 생리와 꼭 같은 걸 꺼라고 말하겠읍니다”란 대목이 눈에 띈다. 그로부터 50여년. “인생이 무어냐”고 묻자 그는 “인생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인간존중의 역사를 쓰면서 보람있게 사는 데 인생의 가치를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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