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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래를 좌지우지 할 수도 있을 國運風水--김두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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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027회 작성일 2012-04-11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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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말많은 청와대 터… 좋은 땅도 역사가 길면

 

험한 꼴 당할 수밖에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 2012.02.25 03:07 | 수정 : 2012.02.25 18:26

icon_img_caption.jpg 경복궁 바로 뒤에 자리잡은 청와대./조선일보DB
 
 
 
 
 
 
 
 
 
 
 
 
 
 
 
 
 
 
 
 
 
 
 
 
 
 
 
 
 
 
 
 
 
 
 
 
 
 
 유언비어는 더러 시대의 진실을 표현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측근 비리가 터질 때마다 "청와대 터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오죽하면 집권 초기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사 간부 초청 간담회에서 뜻하지 않은 '청와대 풍수 논쟁'이 붙었을까. 내용은 이렇다. '청와대 터가 나쁘다. 그래서 일제 총독들은 하나같이 말로가 불행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쫓겨났고, 박정희 대통령은 시해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IMF로 나라를 거덜냈고, 김대중 대통령 아들은 감옥에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높은 지지율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과연 그러한가?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으면서 우리나라는 절대 빈곤을 해결했다. 우리 생활수준도 이때 북한을 추월했다. 노태우 대통령 때는 올림픽을 치러 국력을 과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아 우리의 '국격'을 높였고,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으로서 대통령이 '제왕'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탄생시켰다. 근대화에서 민주화로 그리고 세계화로 우리나라는 진보해왔다. 대통령 개인의 불행이었으나 국가의 불행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왜 풍수 타령인가? 풍수지리 없이 우리 역사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국시대부터 터 잡기에 풍수지리가 활용되었다. 지금의 청와대 터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고려 문종 때다. 1000년 전이다. 이후 풍수에 최고의 실력과 경험을 갖춘 장군, 승려, 술사(일관·日官)들이 앞다투어 이곳을 새로운 도읍지나 신궁(新宮)터로 추천했다. 당시 풍수지리는 군사지리면서 정치지리였다. 지기(地氣)가 다했으니 도읍지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의 뒤에는 권력 강화나 권력 쟁탈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사람도 오래 살다 보면 별 험한 꼴 다 보듯 좋은 땅도 역사가 길다 보면 험한 꼴을 당할 수밖에 없다. 경복궁(청와대 터 포함)에는 불행도 많았다. 단종은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 연산군의 패륜도 있었고,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불타 270여년 동안 잡초에 묻힌 적도 있었다. 이와 같은 것들만 보면 태종의 발언이 옳아 보인다. 서기 1404년 당시 임금 태종은 조준, 하륜 등 대신들과 당대 최고의 풍수사 이양달, 윤신달 등을 불러 이곳 터를 잘못 잡았음을 질책한다.

"내가 풍수책을 보니 '먼저 물을 보고 다음에 산을 보라'고 하였더라. 만약 풍수책을 참고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참고한다면 이곳은 물이 없는 땅이니 도읍이 불가함이 분명하다. 너희가 모두 풍수지리를 아는데, 처음 태상왕(이성계)을 따라 도읍을 정할 때 어찌 이 까닭을 말하지 않았는가."

맞는 말이다. 경복궁(청와대) 터에 물이 없는 것, 험한 바위가 보이는 것, 북서쪽(자하문)에 황천살(함몰처)이 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작 태종 본인은 이곳에 터를 잡고 나라를 다스렸다. 그의 재위 시절에 국방과 중앙집권제도의 틀이 잡혔다. 세종은 우리 영토를 백두산까지 확장시켰다. 지금의 한반도 모습이 갖추어진 것도 이때였다. 또한 한글이 만들어졌다. 우리 문자를 만듦으로써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자기의식'을 갖게 했다. 우리 민족사에 이보다 더 큰 업적이 또 있을까. 청와대 터가 좋다는 말인가 나쁘다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청와대 터는 이미 그 용도가 다했다. 다음에 계속하기로 한다.
 
 
 
[국운풍수)] 北 미사일·핵기지인 동창리·영변이 '철옹성'인 이유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 2012.04.07 07:22 | 수정 : 2012.04.07 11:44

icon_img_caption.jpg 2008년 6월 22일 위성으로 촬영한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기지 사진. / AP 연합뉴스
 
 
 
 
 
 
 
 
 
 
 
 
 
 
 
 

 

 

 

 

 

 

 

 

 

 
 
 
 
 
 
 
 
 
 
 
 
 
 
 
 
 
 
"땅의 좋고 나쁨을 알려거든 '먼저 3대의 주인을 보라(선간삼대주·先看三代主)'고 하였습니다."

1477년 임원준이 성종 임금에게 올린 글 가운데 한 문장이다. 임원준은 간신의 대명사로 알려진 임사홍의 아버지이다. 그는 예종 임금의 딸을 손자며느리로 맞이할 만큼 세력가였다. 풍수에도 능하여 연산군이 부왕 성종의 능자리를 구할 때 그에게 자문할 정도였다. 훗날 풍수사들이 터를 볼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이 바로 '선간삼대주'라는 문장이다. 옛사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풍수에 조예가 깊은 시인 김지하 선생도 "역사가 아무리 바뀌어도 땅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종종 말한다. 흔히 사람의 별명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생김새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듯, 땅의 성격이나 특징은 땅이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북한이 미사일 '광명성 3호'를 발사예고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목이 쏠리고 있는 철산군 동창리는 갑자기 불거져 나온 이름이 아니다. '풍천유향'이란 책이 있다. 영·정조 때의 인물 송규빈이 국방강화를 주장한 책이다. 송규빈은 서북지역 방어의 주요 통로로 '철산극우동창지로(鐵山棘隅東�W之路)'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즘식으로 하자면 '철산군 극우면 동창리 길' 정도가 될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지점으로 삼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동창리이다. 그런데 동창리가 속한 철산의 옛 지명을 보면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래 편안하다는 뜻의 '장녕(長寧)', 구리가 나온다는 뜻의 '동산(銅山)', 철의 내인 '철천(鐵川)', 철의 고장인 '철주(鐵州)' 등을 거쳐 지금의 철산(鐵山)이 된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기지를 고를 때 그 땅의 역사나 성격을 파악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시설의 중심지인 영변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국경(邊)을 편안하게 한다(寧)'는 뜻의 영변(寧邊)은 고구려 때부터 산성이 있어 외적을 방어하던 곳이다. 11세기 초 거란의 공격을, 13세기와 14세기에는 몽골과 홍건적을,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 군대를 막아낸 곳이다. 그 결과 영변읍성의 이름이 '철옹산성'이란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철옹성이란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성을 뜻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청북정맥의 중심 지맥이 서쪽으로 뻗어가다가 매화령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런데 이 지맥은 청천강이 3면으로 감싸 막아 세우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고을이 영변이다.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곳 형국을 '철옹' '하늘이 만든 성' '뭇 병사들이 모이는 곳' 등으로 표현했다. 옛 지도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철옹산성(영변)은 북성, 본성, 신성 그리고 약산성 등 네 개의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약산성은 철옹성 중에서도 철옹성이다. 김소월 시인의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으로 더 유명한 바로 그 약산이다. 철옹산성은 전체적으로 산세가 높고 험한데 그 가운데서도 동쪽 약산은 기암절벽으로 이뤄져 있고, 그 남쪽은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핵 재처리 시설물과 원자로가 위치한 곳은 바로 약산을 등지고 그 아래 펼쳐진 들판에 자리한다. 약산이 주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하 시설물은 당연히 웬만한 폭격에도 끄떡없을 약산 땅 밑이 될 것이다.

김소월이 노래한 약산의 진달래가 유명한 것은 이 기암절벽에 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핵폭탄과 진달래꽃이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북한이 옛 소련의 도움을 받아 핵 연구를 시작하던 1960년대 초, 이곳에 터를 잡았던 것도 바로 그러한 땅의 성격을 바탕으로 한 것이리라. 과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 풍수 차원에서 잘 잡은 것일까? 그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한다.
 

 

[Why] [김두규 교수의 國運風水(국운풍수)] 대통령 氣 북돋우려면... 청와대서 내려와 경복궁으로 이사를
2012. 3. 24 (토)
풍수학계 선배이자 필자의 의형(義兄)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청와대 터의 풍수적 상징성은 그곳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고 요약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들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조선일보 > 사회 |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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