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史의 미스테리?--이광구 바둑 전문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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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927회 작성일 2012-04-02 20:10본문
한국 바둑사의 미스터리 | ||||||||||||||||||
‘순장바둑’이 우리 바둑의 뿌리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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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수술이었고 경과가 좋아 별 문제는 없습니다. 나이 들면 누구나 하는 그런 수술이에요. 아무튼 경향의 기우들이 염려해 주신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소개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순장바둑 말이에요. 지금까지는 순장바둑이 우리 고유의 바둑이다, 그러니까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순장바둑을 두었고, 구한말에 이른바 일본식 현대바둑이 들어오면서 순장바둑이 사라졌다, 그렇게들 얘기들 해왔는데, 이것 참,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더 조사-연구해봐야 할 일이지만, 만일 그게 아니라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지 않겠어요. 우리 바둑사를 근본부터 다시 써야 하는 거잖아요.”
선생은 편지에 자료를 동봉했다. 문화-예술 분야 전문출판으로 잘 알려진 ‘열화당’에서 2003년에 펴낸 <한국의 놀이(Koeran Games)>라는 책의 내용 일부를 복사한 것과 사진이었다. 저자 스튜어트 컬린(Stewart Culin, 1858~1929), 번역자는 현재 일본 히로시마대학 한국학과의 윤광봉 교수(65). 컬린은 민속학, 비교문화학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고, 책은 ‘유사한 중국-일본의 놀이와 비교한(with notes on the corresponding games of China and Japn)’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대학교(보통 u-penn이라고 부른다) 출판부 1895년 발간이다. 번역본의 표지는 하드커버이고, 표지 전체가 한 장의 태극기. 하드커버를 다시 비닐커버로 감쌌는데, 책의 제목은 하드커버에는 없고, 비닐커버에 있다.
<한국의 놀이>에서 컬린 교수는 한국의 민속놀이를 무려(?) 95가지나 소개하고 있는데, 73번째가 바둑이었다. 그리고 70번째가 주사위, 71이 쌍륙(雙六), 72가 장기, 74~78이 (여러 형태의) 고누였다. 이것들을 모두 비슷한 속성의 게임, 요즘 말로 하면 ‘보드 게임’으로 분류했던 모양이다. 바둑 두는 그림, 장기 두는 그림도 곁들여 있다. 컬린은 바둑을 ‘페블(pebble, 조약돌, 자갈돌) 게임’이라고 불렀다.
컬린은 “한국의 바둑판은 일본의 것과 다르다. 한국 바둑판은 속이 빈 테이블 형태로 만드는 반면, 일본 것은 속이 꽉 찬 통나무로 만든다. 한국의 바둑판은 소리가 울린다. 안에는 철사를 쭉 반듯하게 배열함으로써 바둑알을 놓을 때 음계 소리가 나게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둑판에 점들이 찍혀 있는 점들도 눈길도 끈다. 요즘 바둑판에는 화점이 9개 있다. 자료의 바둑판에는 화점 자리에 점이 하나씩 찍혀 있는 게 아니라, 네 귀의 화점 자리에는, 화점 자리 교차점을 중심으로 점 3개가 찍혀있다. 중앙 쪽이 비어 있다. 네 변과 천원의 화점 자리에는, 교차점을 중심으로 점이 4개씩 찍혀 있다. 그리고 자료의 바둑판에는 화점 자리에만 점이 찍혀 있는 게 아니라 네 변을 빙 돌아가면서 화점과 화점 사이, 중간 자리에도 점 2개씩이 변을 향해, 즉 바둑판의 제4선 아래 찍혀 있다. 이른바 ‘순장점’이다. 순장바둑은 흑백이 미리 돌을 8개씩 16개, 혹은 천원 자리까지 17개를 놓고 두는데, 바로 그 돌을 놓는 점이 순장점이다.
“한번 비교해 보세요. 화점에 점이 4개씩 찍혀 있지요? 공이동계곡 바둑판에는 변의 화점에도 점이 4개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변의 화점이 펜실베이니아대학 바둑판에는 4선 아래 찍혀 있는데 충북대학 바둑판이나 공이동 바둑판에는 4선 바깥에 찍혀 있어요…^^.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더 궁금한 것은 순장바둑이 과연 우리가 옛날부터 두던 바둑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1913년 ‘방원사(方圓社, 일본의 현대바둑 여명기, 20세기 초에 일본 바둑계의 주도권을 놓고 각축하던 바둑 단체의 하나. 방원은 네모난 대지와 둥근 하늘, 곧 우주를 뜻하는데, 바둑판은 네모나고 바둑알은 둥그니, 바둑의 별칭이기도 하다)’ 발행의 월간 바둑잡지 <기도(棋道)>에 ‘조선의 변기(變棋, 조선 바둑의 변화)’라는 기사가 게재되었어요. 구한말의 풍운아 김옥균 선생이 바둑에 대해 설파한 내용을 일본 작가가 정리한 것인데, 여러 가지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조선 바둑은 본래 중국처럼 흑백이 서로 두 점씩 네 귀를 차지하고 두는 것이었으나 18세기 후반, 김옥균 선생 당시로부터 120~130년 전인 영조 대에 내기바둑이 크게 유행하면서 대국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에요. 두 점씩 놓고 두는 식으로는 반면이 너무 넓어 승부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폐단이 있어, 반면을 줄이고 짧은 시간에 승부를 보자는 취지에서 말입니다. 김옥균 하면 당대 명문 사대부 출신의 엘리트였고 일본 망명 시절에는, 요즘 말로 하면 프로 최고수들과 교류할 정도로 바둑에 조예가 있던 애기가였으니 허튼 얘기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영조대왕 시대에 내기바둑이 성했다? 내기바둑 때문에 순장바둑이 생겼다? 과연 그랬을까.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옛날에 순장바둑만 둔 것은 아니고, 중국식 바둑도 두었고 순장바둑도 두었고, 그랬을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바둑학이란 게 성립한다면 문화사의 한 갈래로서의 바둑사가 그 본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우 선생, 추억의 현현각 주인 안영이 선생, 국내 최초, 아니 세계 최초로 바둑학 박사 코스를 밟고 있는 김달수 씨(61), <바둑의 발견>(1-2) <수법의 발견> <주역의 발견> 등 주목에 값하고도 남는 저서를 펴낸, 은퇴한 프로기사 문용직 씨(54) 등이 얼른 생각난다. 염치없지만, 이들의 수고와 결실을 기대한다.
이광구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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