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외모-마음씨-신앙심-모두 너무 이쁜 女子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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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515회 작성일 2012-03-12 00:02본문
[단독]탁구여왕 양영자 씨 “탁구로 받은 은혜, 갚을 수 있어 행복해요”
기사입력 2012-03-09 03:00:00 기사수정 2012-03-09 14:49:02
■ 15년간 몽골 선교활동 마치고 돌아온 탁구여왕 양영자 씨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에서 우승한 양영자 씨(오른쪽)가 파트너인 현정화 씨와 나란히 시상대 맨 위에 올라 꽃다발을 들어올리며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왼쪽 사진). 몽골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2003년 몽골 대표 및 어린이 탁구 선수들과 함께 있는 양 씨(뒷줄 가운데). 동아일보DB·양영자 씨 제공
15년 동안의 몽골 선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탁구 여왕’ 양영자 씨는 “탁구로 받은 은혜를 소외된 이웃에게 베풀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복식 금메달 등 ‘탁구 여왕’으로 불렸던 양영자 씨(48·한국WEC국제선교회 선교사)가 그랬다. 그가 15년간 몽골에서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2월 말 귀국했다. 7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 씨는 “탁구로 받은 은혜를 소외된 이웃에게 베풀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 [채널A 영상] ‘女탁구 최고봉’ 양영자 선수 인터뷰
○ 몽골에서 탁구로 사랑을 나누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 힘들었죠. 하지만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내가 얼마나 풍요롭게만 살았는지 반성한 시간이었어요.” 양 씨는 몽골 생활을 이렇게 기억했다. 양 씨는 1992년 한 통신사 기자였던 이영철 씨(선교사)와 결혼한 뒤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1997년부터 몽골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몽골을 선택한 건 개신교를 부흥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탁구를 매개로 몽골 사람들이 신앙을 갖도록 이끌었다.
양 씨는 최근 몽골 여자 탁구 유망주 2명을 국내로 데려왔다.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준우승한 이은혜(안산 단원고)와 이시은(귀화 예정)이 그 주인공이다. 이 둘을 한국 국가대표로 키울 생각이다.
○ 탁구는 나의 힘
양 씨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탁구 스타였다. 1983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도쿄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식에서 중국을 연파하며 준우승했다. 1987년 뉴델리대회에선 단식 준우승에 이어 현정화(대한탁구협회 전무)와 짝을 이뤄 복식에서 우승했다. 양영자-현정화 조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도 자오즈민-천칭 조(중국)를 2-1로 꺾고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양 씨는 “다섯 살 아래인 정화와는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파트너였다”고 했다. 현 전무는 그런 양 씨에 대해 “화려한 기술을 갖춘 대선배였다. 대표팀 시절 같은 방을 쓰면서 기도를 함께하는 등 여러 가지를 배웠다”고 회상했다.
둘 사이에 라이벌 의식은 없었을까. 양 씨는 “첫딸을 낳던 19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에서 정화가 단식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를 해주면서도 은근히 질투가 났어요. 저는 세계선수권에서 2번 준우승에 그쳤거든요.(웃음) 그때 ‘내가 아직도 탁구에 애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 고통 속에서 믿음을 얻다
양 씨는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냈지만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중학교 때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했다. 병원에서는 휴식을 권했지만 국가대표를 포기할 순 없었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 몇 년이 지나자 진통제 주사도 통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1984년 한 기도원에서 기적을 경험했다. 안수기도를 받고 팔꿈치 부상이 완쾌된 거였다. 그는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받아주셨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 후 간염으로 쓰러졌을 때도 간절한 기도로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와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선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올해 안식년을 얻은 양 씨는 “기회가 된다면 탁구로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정현숙 대한체육회 이사의 추천으로 4월부터 중학교 선수들을 지도할 예정이다.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내 인생의 15년은 탁구 선수로, 15년은 선교사로 뛰었어요. 앞으로의 15년은 곧 귀국하는 남편과 구상할 생각이에요. 분명한 건 탁구를 매개로 믿음을 전하고 있겠죠.”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정지원 채널A 기자 jcaster@donga.com
:: 양영자는? ::
△생년월일=1964년 7월 6일 전북 익산 출생
△학력=명지대 영문학과 졸업
△주요 경력=1983년 도쿄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식 준우승,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단체전 우승,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 여자 복식 우승, 단식 준우승,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복식 우승
△1992년 결혼 후 선교사로 제2 인생. 현 한국WEC국제선교회 선교사
양 씨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탁구 스타였다. 1983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도쿄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식에서 중국을 연파하며 준우승했다. 1987년 뉴델리대회에선 단식 준우승에 이어 현정화(대한탁구협회 전무)와 짝을 이뤄 복식에서 우승했다. 양영자-현정화 조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도 자오즈민-천칭 조(중국)를 2-1로 꺾고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양 씨는 “다섯 살 아래인 정화와는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파트너였다”고 했다. 현 전무는 그런 양 씨에 대해 “화려한 기술을 갖춘 대선배였다. 대표팀 시절 같은 방을 쓰면서 기도를 함께하는 등 여러 가지를 배웠다”고 회상했다.
둘 사이에 라이벌 의식은 없었을까. 양 씨는 “첫딸을 낳던 19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에서 정화가 단식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를 해주면서도 은근히 질투가 났어요. 저는 세계선수권에서 2번 준우승에 그쳤거든요.(웃음) 그때 ‘내가 아직도 탁구에 애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 고통 속에서 믿음을 얻다
양 씨는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냈지만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중학교 때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했다. 병원에서는 휴식을 권했지만 국가대표를 포기할 순 없었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 몇 년이 지나자 진통제 주사도 통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1984년 한 기도원에서 기적을 경험했다. 안수기도를 받고 팔꿈치 부상이 완쾌된 거였다. 그는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받아주셨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 후 간염으로 쓰러졌을 때도 간절한 기도로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와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선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올해 안식년을 얻은 양 씨는 “기회가 된다면 탁구로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정현숙 대한체육회 이사의 추천으로 4월부터 중학교 선수들을 지도할 예정이다.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내 인생의 15년은 탁구 선수로, 15년은 선교사로 뛰었어요. 앞으로의 15년은 곧 귀국하는 남편과 구상할 생각이에요. 분명한 건 탁구를 매개로 믿음을 전하고 있겠죠.”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정지원 채널A 기자 jcaster@donga.com
:: 양영자는? ::
△생년월일=1964년 7월 6일 전북 익산 출생
△학력=명지대 영문학과 졸업
△주요 경력=1983년 도쿄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식 준우승,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단체전 우승,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 여자 복식 우승, 단식 준우승,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복식 우승
△1992년 결혼 후 선교사로 제2 인생. 현 한국WEC국제선교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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