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행복주었던 *안정환 선수 숨은 이야기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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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524회 작성일 2012-02-06 12:14본문
- 안정환 “인생 바꿀 뻔한 블랙번 계약서,
- 지금도 갖고 있다”
-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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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은퇴 회견… “돈보다 명예 따랐다”
처음에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다짐은 채 1분도 가지 않았다. “축구화를 신은 지(프로선수가 된 지) 14년…” 이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고별사가 적힌 종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진 “오늘이 축구선수로 불리는 마지막”이라는 한마디. 안정환(36)은 손수건으로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31일 서울 강남구 리츠칼튼 호텔에서 진행된 안정환의 은퇴 인터뷰는 그 자신조차 예상치 못한 눈물로 시작됐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안정환은 “막상 은퇴 기자회견을 하니 기쁜 일이 주로 생각나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동시에 아쉬움의 눈물이기도 했다. 안정환은 “뛰고 싶은 마음은 2002년인데 지금은 2012년”이라면서 “아쉬울 때 그만두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발자취보다는 우여곡절을 많이 남겼지만 나는 운이 좋은 선수였다”고 말한 안정환은 “앞으로 아내가 하는 일(화장품 등 패션)을 본격적으로 돕겠지만 한국축구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처음에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다짐은 채 1분도 가지 않았다. “축구화를 신은 지(프로선수가 된 지) 14년…” 이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고별사가 적힌 종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진 “오늘이 축구선수로 불리는 마지막”이라는 한마디. 안정환(36)은 손수건으로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31일 서울 강남구 리츠칼튼 호텔에서 진행된 안정환의 은퇴 인터뷰는 그 자신조차 예상치 못한 눈물로 시작됐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안정환은 “막상 은퇴 기자회견을 하니 기쁜 일이 주로 생각나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동시에 아쉬움의 눈물이기도 했다. 안정환은 “뛰고 싶은 마음은 2002년인데 지금은 2012년”이라면서 “아쉬울 때 그만두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발자취보다는 우여곡절을 많이 남겼지만 나는 운이 좋은 선수였다”고 말한 안정환은 “앞으로 아내가 하는 일(화장품 등 패션)을 본격적으로 돕겠지만 한국축구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안정환이 31일 서울 강남구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축구인생을 되돌아보다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있다. | 연합뉴스
■ “어릴 때 편하게 뛰었다면 안정환 이름을 알릴 수 없었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은 불우했다. 어머니는 일을 다녔고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근처 교회의 도움도 받았다. 그러면서 안정환은 축구에 모든 걸 걸었다. 서울공고에서도, 아주대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고 1998년 부산 대우에 입단, 이듬해 MVP에 뽑혔다. 당시 부산 단장이던 안종복 남북체육교류협회장은 “페루자에서 이탈리아 선수들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데도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넣지 않았나. 그 힘은 어린 시절 어려움을 이겨낸 데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안정환도 “학창 시절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게 오히려 나에게 강한 마음을 심어줬고 그게 안정환을 만든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블랙번 계약서, 지금도 갖고 있다.”
안정환은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터뜨린 뒤 기대에 부풀었다. 당시 안정환의 매니저 역할을 한 김상훈씨는 “당시 안정환은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며 기대했다”고 말했다. 월드컵 이후 페루자에서 쫓겨난 안정환에게 영입 제의를 한 곳은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당시 영국 노동청으로부터 취업비자를 받지 못한 게 치명타였다. 노동청은 최근 2년간 A매치 75% 이상 출전을 요구했고 그걸 채우지 못한 안정환은 “부상 때문에 대표팀에 뽑지 않았다”는 히딩크 감독의 문구와 서명까지 들어간 문서를 영국에 보냈지만 허사였다. 안정환은 “그때 이미 계약서에 사인도 했고 살 집도, 비행기표도 마련했다”며 아쉬워했다. 당시 안정환 에이전트사인 이플레이어에서 근무한 김석현 인천구단 부단장은 “한국 최고 테크니션 안정환이 블랙번으로 갔으면 엄청난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돈의 유혹을 이기는 게 가장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안정환은 이어 “금전적으로 유혹하는 팀이 많았다. 사람들은 왜 자꾸 팀을 옮기느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다른 리그에서 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안정환의 에이전트인 모로스포츠 정재훈 사장은 “안정환이 일본에, 중국에 있을 때 높은 연봉을 제시한 아시아 구단들이 많았던 걸로 안다”면서 “그러나 안정환은 유혹을 뿌리치고 일본에서 유럽으로 갔고 중국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고 설명했다. 안정환은 일본 시미스에서 뛸 때 1년에 25억원까지 벌었다. 그러나 빅리그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봉이 상대적으로 낮은 프랑스, 독일로 갔다. 정 사장은 “중국에서 활약할 때도 베트남의 한 구단이 연봉 15억원을 제시했다”면서 “그래도 안정환은 명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중국에 머물렀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은 불우했다. 어머니는 일을 다녔고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근처 교회의 도움도 받았다. 그러면서 안정환은 축구에 모든 걸 걸었다. 서울공고에서도, 아주대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고 1998년 부산 대우에 입단, 이듬해 MVP에 뽑혔다. 당시 부산 단장이던 안종복 남북체육교류협회장은 “페루자에서 이탈리아 선수들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데도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넣지 않았나. 그 힘은 어린 시절 어려움을 이겨낸 데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안정환도 “학창 시절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게 오히려 나에게 강한 마음을 심어줬고 그게 안정환을 만든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블랙번 계약서, 지금도 갖고 있다.”
안정환은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터뜨린 뒤 기대에 부풀었다. 당시 안정환의 매니저 역할을 한 김상훈씨는 “당시 안정환은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며 기대했다”고 말했다. 월드컵 이후 페루자에서 쫓겨난 안정환에게 영입 제의를 한 곳은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당시 영국 노동청으로부터 취업비자를 받지 못한 게 치명타였다. 노동청은 최근 2년간 A매치 75% 이상 출전을 요구했고 그걸 채우지 못한 안정환은 “부상 때문에 대표팀에 뽑지 않았다”는 히딩크 감독의 문구와 서명까지 들어간 문서를 영국에 보냈지만 허사였다. 안정환은 “그때 이미 계약서에 사인도 했고 살 집도, 비행기표도 마련했다”며 아쉬워했다. 당시 안정환 에이전트사인 이플레이어에서 근무한 김석현 인천구단 부단장은 “한국 최고 테크니션 안정환이 블랙번으로 갔으면 엄청난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돈의 유혹을 이기는 게 가장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안정환은 이어 “금전적으로 유혹하는 팀이 많았다. 사람들은 왜 자꾸 팀을 옮기느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다른 리그에서 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안정환의 에이전트인 모로스포츠 정재훈 사장은 “안정환이 일본에, 중국에 있을 때 높은 연봉을 제시한 아시아 구단들이 많았던 걸로 안다”면서 “그러나 안정환은 유혹을 뿌리치고 일본에서 유럽으로 갔고 중국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고 설명했다. 안정환은 일본 시미스에서 뛸 때 1년에 25억원까지 벌었다. 그러나 빅리그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봉이 상대적으로 낮은 프랑스, 독일로 갔다. 정 사장은 “중국에서 활약할 때도 베트남의 한 구단이 연봉 15억원을 제시했다”면서 “그래도 안정환은 명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중국에 머물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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