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아침에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요 며칠 마음이 산란하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지난해 이맘때 “5·18 기념식에서조차 ‘합창은 되지만 제창은 안 된다’는 상황에서 ‘그래도 부른다’ 식의 수준 낮은 드잡이를 한 지 8년째”인 상황을 개탄했는데, 그런 상황이 9년째로 접어들었다.
어제는 심지어 전두환이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가 진짜로 “총 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발포한 자들에게 훈장을 주었다. 왜 그랬겠는가? 그들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수인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그가 명령으로 해석하고 수용할 말을 하는 것, 이런 모호한 어법이야말로 아주 기초적이고 더러운 권력의 기법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점에서 전두환과 다르지 않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에서 제창할 수 있게 해달라는 두 야당 원내대표에게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차원에서 좋은 방안을 찾아보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승춘 보훈처장은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은 없다며 합창 방침을 고수했다. 그러자 하태경 의원은 “박승춘 보훈처장이 대통령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는데, 장담컨대 하태경 의원도 내심으로는 박승춘 보훈처장이 대통령의 지시를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원하는 것을 얻으면서도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 박 대통령의 이런 어법과 처신은 사안의 중요성과 규모가 다를 뿐 발포 명령을 내린 적 없다는 전두환과 동형적인 것이다. 한국의 수구·보수는 이렇게 무책임하다.
또 다른 기사도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5·18 현장의 여러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북한 특수부대원으로 왜곡하고 매도한 지만원씨에게 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사진 속의 실제 인물을 찾고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돌리고 그들의 증언을 전하는 기사를 보며, 왜 사건의 희생자들이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서 이토록 애써야 하는지 참담했다. 한국의 수구·보수는 이렇게 비열하다.
체기마저 느껴지는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이마를 스치는 말간 바람처럼 반가웠다. 폭력과 상처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감수성을 지닌 한강은 광주항쟁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의 작가이기도 한데, 내 생각이지만 <소년이 온다>가 <채식주의자>보다 먼저 영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면 이 작품이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것이다.
5·18이 여전히 방치와 고립과 왜곡과 매도에 갇혀 있는 지금,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왜 우리가 5·18을 생각하고 기념해야 하는지, 그래야 할 이유가 왜 새롭게 닥쳐오는지 말하고 있다. 그는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린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그러니 5·18이 용산참사이고 용산참사가 5·18이다. 5·18이 세월호이고 세월호가 5·18이다. 메르스 사태 속에서 애꿎게 죽은 이들과 1980년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총에 맞아 죽은 이들이 다르지 않으며, 가습기 살균제로 죽거나 치명적인 후유증을 앓고 있는 모든 이들 또한 다르지 않다. 광주는 이 모든 것의 다른 이름이며, 그것이 지금 우리가 광주를 기념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러야 하는 이유이다.
김종엽 한신大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