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銀ㄱ,재무부^남대문출장소 ㄴ.지금 총재-기재부^통화국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067회 작성일 2016-05-22 06:19본문
한국은행은 과거 재무부 시절-남대문 출장소 라는 오명이 있었습니다.
조순 한국은행 총재시절에는 중앙은행 독립을 위해 그는 진력을 다햇고
그가 총재를 물러날 적에 아쉬움을 표한 직원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양적 완화를 박근혜 대통령이 갑자기 외치는 바람에
최근 몇주 동안 한국은행은 기획재정부 통화국 총재는 통화국장이란 오명을 본의아니게
뒤집어 쓰고 있는 판국입니다.
다음 내용이 앞으로의 한국은행의 독립성 및 위상 제고 차원에서 다소나마 참고가 되리라 봅니다.
한국은행-출신-선후배 동문들은 필독바랍니다.
53회 한준구 올림
***************************************
[원희복의 인물탐구]
이주열 한국은행**총재
‘기획재정부-^^통화국장’ 誤名 벗을까
지난 4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가진 오찬에서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 정작 한국은행(한은) 분위기는 ‘황당하다’였다. 일부 기자들은 “대통령이 뭐 자세히 알고나 얘기하겠나”라고 말하는 등 냉소적 반응이 주류였다. 왜냐하면 아직 금리인하 여지도 있을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의 발언은 부실해진 해운·조선업에 대한 구제금융이지 일반적인 양적완화와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양적완화가 뭔지 모를 것 같은데요?”라며 “경제도 모르는 사람이 청와대에 앉아… 고집만 세고”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안 대표의 이 발언은 대통령 비하 논란으로 번졌지만 사실 한은 내 분위기도 이와 비슷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같이 언급한 사흘 뒤 한은에 문제의 그 ‘한국판 양적완화’가 들이닥쳤다. 한은은 4월 29일 윤면식 부총재보의 기자간담회를 통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재정 역할을 하려면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하다”고 완곡하게 양적완화 거부의사를 밝혔다. ‘한은 대통령에 반기-대통령 레임덕’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이에 한은은 다시 “기업 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주열 총재는 “(양적완화는) 은행 자본확충펀드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가 다시 “자본확충펀드가 한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며 오락가락했다. 이후 이주열 총재의 한은이 벌인 ‘곡예’는 시장에 신뢰를 주기는커녕 안쓰러울 정도였다. 한은은 정부 요구가 강력하면 협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한은 내부와 시민단체·학계의 비난여론이 급등하면 원칙을 고수하는 척하기를 반복했다. 한은은 원칙보다 정부의 압박과 정치권 주장, 내·외부 여론의 향배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 한은 내부 인사조차 “정부에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으로 매도돼서도 안 되고, 정부와 완전히 등 돌린 것처럼 보여져서도 안 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총재의 워딩에 저희도 헷갈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실 정부의 양적완화 요구는 ‘정부는 면피하고, 한은에 수습을 미루자’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는 증세를 안 하겠다는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고, 정부는 장부상 국가채무를 늘리지 않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추경을 피하고, 금융위원회는 국책은행과 대주주의 책임을 대충 넘길 수 있는 묘안이기 때문이다. 한은에 ‘독박’을 씌우면 다른 기관이 모두 편했다. 대신 한은은 나중에 논란이 될 소득격차 심화 문제, 외환시장 왜곡 문제, 통화환수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책임져야 할 판이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전체에게 돌아오는 경제 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은 내부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은노조 한창우 수석부위원장은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정부 요구에 이주열 총재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겠지만, 한은이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현 시스템에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프레임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 한은은 명목상 독립돼 있지만, 예산(급여성)은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조직 관리자로서 완전히 정부와 무관할 수 없는 처지다. 한 수석부위원장도 “특히 이 총재는 자신을 임명한 사람이 바로 현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부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원칙을 지키자니 청와대와 정부가 눈치 보이고, 정부와 각을 세우자니 훗날이 두려운 어정쩡한 형국에 놓인 것이다. 이는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경제정책의 수장으로서 매우 우려스러운 행동이다. 무엇보다 경제정책은 시장의 신뢰 여부가 곧 정책의 승패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야당 출신이지만 유능한 경제정책가로 지난 4·26 총선에서 여당에 영입까지 됐던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은 “장관은 의사결정이 빨라야 한다. 합리적으로 결정한 정책을 어물어물 미뤄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다.(원희복, <국가가 알려주지 않는 공무원 승진의 비밀>, 2011)
지난해 10월 <블룸버그통신>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이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다. 우리의 한은 총재 격인 옐런은 2위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물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6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9위),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31위)을 누르고 1위로 선정됐다. 그만큼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세계 경제가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이 총재의 판단은 중앙은행 차원을 넘어 한국 경제의 흥망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하다. 이 총재가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총재의 ‘과거’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총재는 1952년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5남매 중 장남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조사국장, 부총재를 지내다 2012년 퇴임했다. 이후 2년 가까이 민간금융연구소 고문과 대학 특임교수를 지내다 2014년 4월 제25대 한국은행 총재로 금의환향했다. 한은 내부 출신으로 총재가 된 것은 제23대 이성태 총재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한은에서 37년을 근무하며 많은 보직을 거쳤다. 한은의 한 간부는 “업무에 관해서는 초임 시절부터 일 중독일 정도로 부지런해 밑에서 모시기 굉장히 까다로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한은 출입기자들은 “기본적으로 온화하고 합리적인 데다 언행도 신중한 스타일”이라며 “한 번 만난 사람도 잘 기억하고 나름 소통하려는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총재가 임명될 당시에도 우호적 평가가 많았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독단은 없지만 강단이 있는 인물”이라며 “전문가적인 식견이 돋보였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금통위 회의에 같이 참석했던 김대식 중앙대 명예교수도 “통화정책의 전문성과 경험, 조직 경영능력, 금통위 운영의 노하우 등으로 미뤄 굉장히 잘된 인사”라고 말했다.(<연합뉴스>, 2014. 3. 3)
그러나 한은 밖에서 보는 이 총재의 성적표는 그리 높지 않다. 2012년 그의 인사청문회 회의록을 보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당시 한은 조사1부 부부장으로 외환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이 총재는 “결과적으로 IMF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에 지금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자인하고 있다. 또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으로부터 ‘2003년 한은 조사국장 재직 시 성장률 전망 오차가 컸다’는 지적도 받았다.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에게는 통화·신용정책을 총괄하는 정책기획국장으로 고금리·고환율 정책을 펴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결국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 큰 타격을 입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에 이 총재는 “미흡했다, 송구스럽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섭 의원으로부터는 2010년~2011년 중반까지 물가가 많이 오르는 상황에서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 총재는 ‘친정부적’이고 ‘친기업적’인 경제관을 가졌다. 바로 이 점이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총재로 금의환향할 수 있던 결정적 요소였을 것이다. 이 총재는 퇴임 후 언론 기고나 강연을 통해 ‘성장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다’ ‘성장의 주체는 기업이다’ ‘한국 경제의 어려운 원인은 노사분규, 노동시장 경직이다’ 등의 소신을 밝혔다. 또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이라는 표현으로 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딱 박근혜 정부의 입맛에 맞는 말인 것이다.
이에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은 “상당히 편향되고 보수적인 인식이 코드인사에 반영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정치권 불신, 정부 편향성 냄새가 물씬 난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의 첫 ‘파트너’는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연세대 상경대 선후배 사이다. 이 총재는 연세대 출신 첫 한은 총재다. 두 사람의 경제 운영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갑자기 한은 양적완화 요구가 튀어나왔다. 이것은 우리 경제환경이 급박했다는 것인데, 낙관적이던 우리 경제가 총선이 끝나자마자 나빠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앞서 경제전문가의 지적대로 선거를 앞두고 우리 경제 실상을 왜곡했다는 의혹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 정부 눈치를 봤던 한은은 ‘재무부 남대문출장소’혹은 ‘기획재정부 통화국’이라는 ‘오명’을 들었다. 한은 주변에서는 역대 총재에 대한 신화가 몇 개 내려온다. 모두 한은 ‘독립운동가’들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조순 총재는 한은 독립을 위해 ‘싸우다’ 장렬히 사표를 내던졌다. 조순 총재가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려는 순간, 한 직원이 그 앞에서 넙죽 큰절을 올렸다. 한은 독립운동가 조순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취임한 제22대 박승 총재에 이르러 그나마 한은 독립은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도 한은 직원들은 가장 훌륭한 총재로 단연 박승 총재를 꼽는다. 한상우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박승 총재가 중앙은행 총재로서의 자격과 본인의 결단, 조직의 수장으로서 능력, 직원에 대한 애정 등에서 단연 최고”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노무현 정부 시절 내부 출신으로 첫 총재가 된 이성태 총재를 꼽는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한은 총재, 재경부, 산업자원부 장관 등이 참석한다. 이때 재경부 장관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낮춰달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수출이 늘게 환율을 올려달라’는 등 각종 요구가 이어진다. 이때 이성태 총재는 “그런 얘기 듣자고 여기 온 것 아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정부 측이 하도 집요하게 굴면 아예 서별관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금도 한은 내부에서는 ‘이성태 총재처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렵게 이뤄놓은 한은 독립은 이명박 정부 들어 급속히 무너졌다는 평가가 많다. 한은의 한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금리를 내렸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면서 “이성태 총재가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으니 열석발언권까지 동원해 한은을 압박했다”고 말했다. 열석발언권이란 기획재정부 차관이 한은 금통위원으로 참석해 발언하는 권한이다. 이는 1997년 한은법에 명시됐지만, 그동안 한 번도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사문화된 이 법조항으로 한은을 압박했다.
현 이주열 총재에게 가해지는 압박이나 부담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과거 해보지 않은 양적완화 요구인 데다, 공개적으로 ‘피박’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와 금융위원회, 한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정부와 금융위도 일정 부분 책임을 분배하는 것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부가 요구하는 양적완화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총재가 현 대통령에 의해 임명돼 정부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는 노조의 지적이 맞다면 중앙은행 총재가 개인적 인연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또 조직관리자로서의 고뇌는 조직 이기주의의 단면일 뿐이다. 사실 이 총재도 그렇지만 한은맨들은 남다른 엘리트 의식이 있다. 문제는 그 엘리트 의식이 외부에 맞서 원칙을 지키는 용기와 상응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총재는 ‘한은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되고, ‘한국경제사’에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양적완화가 뭔지 모를 것 같은데요?”라며 “경제도 모르는 사람이 청와대에 앉아… 고집만 세고”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안 대표의 이 발언은 대통령 비하 논란으로 번졌지만 사실 한은 내 분위기도 이와 비슷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김창길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대통령이 이같이 언급한 사흘 뒤 한은에 문제의 그 ‘한국판 양적완화’가 들이닥쳤다. 한은은 4월 29일 윤면식 부총재보의 기자간담회를 통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재정 역할을 하려면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하다”고 완곡하게 양적완화 거부의사를 밝혔다. ‘한은 대통령에 반기-대통령 레임덕’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이에 한은은 다시 “기업 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주열 총재는 “(양적완화는) 은행 자본확충펀드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가 다시 “자본확충펀드가 한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며 오락가락했다. 이후 이주열 총재의 한은이 벌인 ‘곡예’는 시장에 신뢰를 주기는커녕 안쓰러울 정도였다. 한은은 정부 요구가 강력하면 협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한은 내부와 시민단체·학계의 비난여론이 급등하면 원칙을 고수하는 척하기를 반복했다. 한은은 원칙보다 정부의 압박과 정치권 주장, 내·외부 여론의 향배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 한은 내부 인사조차 “정부에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으로 매도돼서도 안 되고, 정부와 완전히 등 돌린 것처럼 보여져서도 안 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총재의 워딩에 저희도 헷갈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실 정부의 양적완화 요구는 ‘정부는 면피하고, 한은에 수습을 미루자’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는 증세를 안 하겠다는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고, 정부는 장부상 국가채무를 늘리지 않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추경을 피하고, 금융위원회는 국책은행과 대주주의 책임을 대충 넘길 수 있는 묘안이기 때문이다. 한은에 ‘독박’을 씌우면 다른 기관이 모두 편했다. 대신 한은은 나중에 논란이 될 소득격차 심화 문제, 외환시장 왜곡 문제, 통화환수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책임져야 할 판이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전체에게 돌아오는 경제 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은 내부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은노조 한창우 수석부위원장은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정부 요구에 이주열 총재도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겠지만, 한은이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현 시스템에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프레임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 한은은 명목상 독립돼 있지만, 예산(급여성)은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조직 관리자로서 완전히 정부와 무관할 수 없는 처지다. 한 수석부위원장도 “특히 이 총재는 자신을 임명한 사람이 바로 현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부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원칙을 지키자니 청와대와 정부가 눈치 보이고, 정부와 각을 세우자니 훗날이 두려운 어정쩡한 형국에 놓인 것이다. 이는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경제정책의 수장으로서 매우 우려스러운 행동이다. 무엇보다 경제정책은 시장의 신뢰 여부가 곧 정책의 승패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야당 출신이지만 유능한 경제정책가로 지난 4·26 총선에서 여당에 영입까지 됐던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은 “장관은 의사결정이 빨라야 한다. 합리적으로 결정한 정책을 어물어물 미뤄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있다.(원희복, <국가가 알려주지 않는 공무원 승진의 비밀>, 2011)
지난해 10월 <블룸버그통신>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이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다. 우리의 한은 총재 격인 옐런은 2위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물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6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9위),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31위)을 누르고 1위로 선정됐다. 그만큼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세계 경제가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이 총재의 판단은 중앙은행 차원을 넘어 한국 경제의 흥망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하다. 이 총재가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총재의 ‘과거’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총재는 1952년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5남매 중 장남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조사국장, 부총재를 지내다 2012년 퇴임했다. 이후 2년 가까이 민간금융연구소 고문과 대학 특임교수를 지내다 2014년 4월 제25대 한국은행 총재로 금의환향했다. 한은 내부 출신으로 총재가 된 것은 제23대 이성태 총재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한은에서 37년을 근무하며 많은 보직을 거쳤다. 한은의 한 간부는 “업무에 관해서는 초임 시절부터 일 중독일 정도로 부지런해 밑에서 모시기 굉장히 까다로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한은 출입기자들은 “기본적으로 온화하고 합리적인 데다 언행도 신중한 스타일”이라며 “한 번 만난 사람도 잘 기억하고 나름 소통하려는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총재가 임명될 당시에도 우호적 평가가 많았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독단은 없지만 강단이 있는 인물”이라며 “전문가적인 식견이 돋보였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금통위 회의에 같이 참석했던 김대식 중앙대 명예교수도 “통화정책의 전문성과 경험, 조직 경영능력, 금통위 운영의 노하우 등으로 미뤄 굉장히 잘된 인사”라고 말했다.(<연합뉴스>, 2014. 3. 3)
그러나 한은 밖에서 보는 이 총재의 성적표는 그리 높지 않다. 2012년 그의 인사청문회 회의록을 보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당시 한은 조사1부 부부장으로 외환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이 총재는 “결과적으로 IMF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에 지금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자인하고 있다. 또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으로부터 ‘2003년 한은 조사국장 재직 시 성장률 전망 오차가 컸다’는 지적도 받았다.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에게는 통화·신용정책을 총괄하는 정책기획국장으로 고금리·고환율 정책을 펴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결국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 큰 타격을 입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에 이 총재는 “미흡했다, 송구스럽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섭 의원으로부터는 2010년~2011년 중반까지 물가가 많이 오르는 상황에서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 총재는 ‘친정부적’이고 ‘친기업적’인 경제관을 가졌다. 바로 이 점이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총재로 금의환향할 수 있던 결정적 요소였을 것이다. 이 총재는 퇴임 후 언론 기고나 강연을 통해 ‘성장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다’ ‘성장의 주체는 기업이다’ ‘한국 경제의 어려운 원인은 노사분규, 노동시장 경직이다’ 등의 소신을 밝혔다. 또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이라는 표현으로 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딱 박근혜 정부의 입맛에 맞는 말인 것이다.
이에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은 “상당히 편향되고 보수적인 인식이 코드인사에 반영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정치권 불신, 정부 편향성 냄새가 물씬 난다”고 평가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14년 취임 직후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초상화 선물을 받고 있다. / 김창길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총재의 첫 ‘파트너’는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연세대 상경대 선후배 사이다. 이 총재는 연세대 출신 첫 한은 총재다. 두 사람의 경제 운영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갑자기 한은 양적완화 요구가 튀어나왔다. 이것은 우리 경제환경이 급박했다는 것인데, 낙관적이던 우리 경제가 총선이 끝나자마자 나빠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앞서 경제전문가의 지적대로 선거를 앞두고 우리 경제 실상을 왜곡했다는 의혹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 정부 눈치를 봤던 한은은 ‘재무부 남대문출장소’혹은 ‘기획재정부 통화국’이라는 ‘오명’을 들었다. 한은 주변에서는 역대 총재에 대한 신화가 몇 개 내려온다. 모두 한은 ‘독립운동가’들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조순 총재는 한은 독립을 위해 ‘싸우다’ 장렬히 사표를 내던졌다. 조순 총재가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려는 순간, 한 직원이 그 앞에서 넙죽 큰절을 올렸다. 한은 독립운동가 조순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취임한 제22대 박승 총재에 이르러 그나마 한은 독립은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도 한은 직원들은 가장 훌륭한 총재로 단연 박승 총재를 꼽는다. 한상우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박승 총재가 중앙은행 총재로서의 자격과 본인의 결단, 조직의 수장으로서 능력, 직원에 대한 애정 등에서 단연 최고”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노무현 정부 시절 내부 출신으로 첫 총재가 된 이성태 총재를 꼽는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한은 총재, 재경부, 산업자원부 장관 등이 참석한다. 이때 재경부 장관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낮춰달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수출이 늘게 환율을 올려달라’는 등 각종 요구가 이어진다. 이때 이성태 총재는 “그런 얘기 듣자고 여기 온 것 아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정부 측이 하도 집요하게 굴면 아예 서별관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금도 한은 내부에서는 ‘이성태 총재처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렵게 이뤄놓은 한은 독립은 이명박 정부 들어 급속히 무너졌다는 평가가 많다. 한은의 한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금리를 내렸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면서 “이성태 총재가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으니 열석발언권까지 동원해 한은을 압박했다”고 말했다. 열석발언권이란 기획재정부 차관이 한은 금통위원으로 참석해 발언하는 권한이다. 이는 1997년 한은법에 명시됐지만, 그동안 한 번도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사문화된 이 법조항으로 한은을 압박했다.
현 이주열 총재에게 가해지는 압박이나 부담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과거 해보지 않은 양적완화 요구인 데다, 공개적으로 ‘피박’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와 금융위원회, 한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정부와 금융위도 일정 부분 책임을 분배하는 것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부가 요구하는 양적완화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총재가 현 대통령에 의해 임명돼 정부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는 노조의 지적이 맞다면 중앙은행 총재가 개인적 인연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또 조직관리자로서의 고뇌는 조직 이기주의의 단면일 뿐이다. 사실 이 총재도 그렇지만 한은맨들은 남다른 엘리트 의식이 있다. 문제는 그 엘리트 의식이 외부에 맞서 원칙을 지키는 용기와 상응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총재는 ‘한은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되고, ‘한국경제사’에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