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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사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 출범이 무산된 다음 날인 18일 오전 정진석(뒷자리) 원내대표와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KTX를 타고 광주로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은 2시간 동안 앞뒤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으나 대화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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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朴 등진 이후 밀려나
18대 친박연대부터 계파
20대 당선 70여명 달해
새누리당을 분당 위기 상황으로 몰아간 상임전국위원회 무산 사건의 배후로 친박(친박근혜)계가 지목되면서 친박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당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친박계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되면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계가 등장했다.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뒤 친이계가 당권을 잡았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위 ‘친박계 공천 학살’이 일어나면서 친박계는 내부 결속력이 더욱 강화됐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 친박계는 122명의 20대 총선 당선인 중 과반수인 70여 명이다. 당 내부에서는 친박계를 친박연대를 이끌었던 서청원 의원 그룹과 대구·경북지역 좌장인 최경환 의원 그룹, 박근혜정부 청와대나 내각 출신 인사 그룹 등으로 나누고 있다.
이들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친박계에 찍히면 당을 떠나게 만드는 등 패권주의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첫 케이스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대변인을 맡았던 전여옥 전 의원이다.
그는 2007년 이명박 후보 캠프에 가담하면서 “박근혜 대표 주변 사람들은 무슨 종교집단 같다”는 등의 말을 했다. 전 전 의원은 2008년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박근혜 팬클럽 등이 그의 지역구를 찾아가 낙선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다음 피해자는 김무성 전 대표다. 김 전 대표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대통령을 지원했지만 세종시 문제 등으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헤어져 비박계의 대표 주자가 돼 있다.
박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내고 박근혜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영 의원도 20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되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당선되기도 했다.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 의원도 박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비서실장 등을 지냈지만 2015년 박 대통령이 하차를 사실상 종용해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고 탈당까지 했다. 친박 패권주의의 절정은 역시 4·13 총선 참패의 주요 원인이 된 공천 파동이다.
신선종 기자 hanul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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