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본선 최다골-꽃미남 안정환-인생 3大 사건은?
페이지 정보
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096회 작성일 2012-01-31 23:28본문
눈물 흘리는 '반지의 제왕'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31일 오전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2.1.31 utzza@yna.co.kr |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반지의 제왕' 안정환(36)의 축구 인생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안정환은 31일 눈물의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1998년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고 2012년 은퇴할 때까지 14년 동안 안정환의 여정에는 기막힌 사건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사건들을 모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 골든골 = 2002년 6월18일 대전월드컵 경기장. 한국 축구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행을 결정지은 지 단 4일 만에 '강호' 이탈리아와 8강행을 놓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었다.
안정환은 전반 5분 설기현이 얻어낸 페널티 킥을 실축해 선취골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끌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을 벤치로 불러들이는 대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 등 공격수를 추가로 투입해 이탈리아의 골문을 노렸다.
히딩크 감독의 초강수가 빛을 발한 것은 경기가 시작된 지 116분이 지나서였다.
경기 종료를 4분여 앞두고 이탈리아의 수비수 사이에서 솟구쳐 오른 안정환은 이영표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으로 이탈리아의 골문을 흔들었다.
한국의 8강행을 결정짓는 골이었으며 한국이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서는 순간이었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 모인 4만여 명의 '붉은악마'가 흥분에 들떠 '대~한민국'을 외칠 때 안정환은 그라운드를 뛰면서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에 키스했다.
안정환 은퇴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31일 오전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팬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있다. 2012.1.31 utzza@yna.co.kr |
'반지의 제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전에서 골 넣고 페루자에서 방출 = 이탈리아를 월드컵 16강에서 탈락시킨 대가는 혹독했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콘스에서 뛰다 임대선수로 2000년 7월부터 페루자에 입단한 안정환은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에 진출한 선수였다.
그는 2002년 6월로 임대기간이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16강 탈락에 충격을 받은 당시 페루자의 구단주 루치아노 가우치는 한 라디오방송에서 안정환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축구를 망쳤다는 비상식적인 비난을 퍼부으며 재계약 불가 방침을 통보해 버렸다.
히딩크 감독은 "가우치 구단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유치한(childish) 발상"이라며 안정환을 두둔했다.
페루자 구단주는 언론의 왜곡 보도 때문에 발언이 잘못 전달됐다는 해명을 내놨지만 결국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진출 좌절 = 안정환은 페루자와의 기나긴 이적 협상 끝에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노렸다.
협상 마무리단계까지 갔지만 취업허가서가 발목을 잡았다.
안정환은 블랙번과 계약기간 3년 이상에 이적료 350만달러, 연봉 100만달러로 이적을 위한 가계약까지 협의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영국 교육노동부(DEE)는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구단이 안정환 영입을 위해 제출한 취업허가서 발급 신청에 대해 최종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영국 당국은 안정환이 외국인 선수의 취업비자 발급에 필요한 '최근 2년간의 A매치 중 75% 출전'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데다 전 소속팀인 페루자에서의 출전 횟수가 적은 것을 문제로 삼았다.
눈물 흘리는 '반지의 제왕'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31일 오전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2.1.31 utzza@yna.co.kr |
안정환은 "계약서에 서명을 다 하고 비행기 표까지 사 짐을 꾸려놨는데 입단을 못 하게 돼 당시 정말 힘들었다"며 지금도 당시 계약서를 가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만약에 블랙번에 갔으면 인생이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결국 안정환은 그 이후로 수많은 구단을 옮겨다니며 '저니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블랙번 진출 좌절 이후 일본 J리그에서 4년을 보낸 안정환은 프랑스 리그앙(FC메스), 독일 분데스리가(MSV뒤스부르크) 등에서 뛰었다.
분데스리가에서는 팀이 2부리그로 강등돼 새 팀을 찾았지만 결국 새 거처를 찾지 못하고 무적 신세가 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수원에 입단해 K리그로 복귀한 안정환은 2008년 부산으로 이적했지만 전성기 때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안정환은 2009년 3월 중국 프로축구의 다롄에 입단해 팀의 주요 득점원이 됐지만 중국 프로리그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비단 그의 외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의 외모는 이견의 여지없이 '비현실적'이다. '저 얼굴이면 축구선수 그만두고 연예인을 해도 되겠다'는 세간의 바람은 꽃을 든 그의 '미모'가 정점을 찍던 시절,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었다.
그러나, 그의 축구재능은 결코 스스로를 놓아주지 않았다. 모니터 너머의 그가 가장 섹시하게 보이는 순간은, 언제나 예외없이 그라운드 밖이 아니라 그라운드 안이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축구인생을 살았다는, 이 진부한 문장이 소름끼치도록 절절히 들어맞는 남자. '테리우스' 안정환이 2012년 1월 31일 현역서 은퇴했다.
2002년 월드컵이 신화를 남기고 마무리된 지 10주년 되는 해. 그 기억이 한국 축구의 역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 된 2012년, 영광의 한일 월드컵서 그라운드를 누비던 태극전사들이 하나둘씩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히딩크호의 심장이었던 박지성이 1년 앞서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것은 이제는 레전드가 된 2002 멤버들과의 이별을 시작하는 서전이었던 셈이다.
물론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필두로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 최진철 강원 FC 코치, 김태영 올림픽대표팀 코치, 최용수 FC 서울 감독, 유상철 대전 시티즌 감독처럼 지도자로 변신한 멤버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최후의 불꽃을 K리그에서 연소시키기 위해 인천 유나이티드행을 택한 설기현과 김남일, 제2의 인생을 꼼꼼히 설계한 뒤 최종 행선지로 미국 MLS를 택한 이영표는 끝을 향하고 있는 현역시절의 마지막 챕터를 아직 써 내려가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외모로나, 축구경력으로나 가장 '극적인' 행보를 보였던 안정환이 끝내 은퇴를 결정해 팬들에게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별장면까지 드라마틱했던 그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며 은퇴경기까지 거부한 굳은 결심을 전했다.
안정환이라는 축구선수가 만들어 낸 명장면들은 동료와 팬들 모두가 예외없이 '판타지 스타'라는 헌사에 동의하도록 만들었을 만큼 수 없이 많지만, 역시 그의 가장 드라마틱했던 장면들은 축구선수에게는 꿈의 무대인 월드컵이 아니었을까.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넣은 동점골과 일명 '오노 세레머니', FIFA가 2004년 골든골 제도를 폐지할 때 역사에 남을 8대 골든골 중 하나로 꼽은 8강 이탈리아전 역전골 그리고 2006 독일 월드컵서 기록한 토고전 결승골까지. 그 의미와 파장효과를 일일이 다 분석하지 않아도 웬만한 축구팬들 머리 속에 이제는 자동입력 되어있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장면들이다.
페널티킥을 실축한 선수가, 팀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을, 연장 후반전서, 우승후보였던 이탈리아를 상대로 넣었다는 설명은, 돌이켜 보면 '월드컵'이라는 영화의 각본을 담당하고 있는 누군가가 대회 전에 미리 써 놓은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영화는 그 선수가 소속되어있던 이탈리아 프로팀의 구단주가 '악역'으로 등장,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를 문전박대한다는 '속편'까지 제작됐다. 모두가 현실이다.
눈을 의심케 하는 완벽에 가까운 외모, 너무나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까지 얻은 그의 축구인생은 종종 축구종가가 배출한 현대 축구계 최대 아이콘 데이비드 베컴의 그것과 비교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이후에도 안정환 만큼 그 자체로 상품성이 높은 축구선수가 또 나올 수 있을까?
그의 은퇴 후 행보를 응원하는 것은 그래서다. "아내의 사업을 돕겠다"는 생활인으로서의 안정환과 "유소년들을 위해 힘을 보태고 싶다"는 축구선수로서의 안정환이 누구보다 성공적인 제 2의 인생을 살기를 기대한다. 이미 수 많은 유망주들의 롤 모델인 그가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안정환이 한국 축구에 남긴 위대한 기록들을 생각하면, 그는 그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선수다. 축구선수 안정환이 스스로 주연을 맡은 그의 축구인생은 한국 축구가 탄생시킨 최고의 흥행 블록버스터 중 하나였으니까. 안정환의 '끼'가 2%만 더 많았어도, 한국 축구의 역사가 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