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美 페루 女子 배구의 한국인 영웅*박만복 그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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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1,660회 작성일 2012-01-30 23:36본문
등록 : 20120129 13:50 | 수정 : 20120129 1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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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女子배구 국가대표 박만복 총감독
‘맘보 박’, 공로상 수상차 방한 78년 진출해 첫 올림픽은 일궈 가난한 선수들 취업에도 앞장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그를 ‘페루의 히딩크’라 불렀다. 페루 여자배구를 이끌고 첫 올림픽 은메달을 일궈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1974년 진출해 38년이 흐른 지금까지 페루 여자배구의 총감독이다.
페루에선 ‘맘보 박’으로 더 유명한 박만복(76·사진) 감독이 지난 27일 서울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배구의 밤 행사에서 특별공로상을 받기 위해 방한했다. “대한항공 창단 감독으로 4년째를 맞던 1974년 당시 이낙선 배구협회장의 추천으로 페루 여자배구 감독직을 맡았습니다.
페루가 어떤 나라인지 알지도 못하고 떠났지요. 3~4개월 뒤 가족들이 이주했는데, 언어 적응 등 현지 정착 초기 1~2년이 참 힘들었어요.” 1년 계약으로 갔지만 그의 지도력 아래 페루 여자배구는 1982년 세계대회 준우승,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4위, 1987년 세계대회 전승 우승의 위업을 이뤄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소련과의 결승에서 아쉽게 분패해 은메달에 그쳤지만 페루에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내 훈련방식이 가혹하다고 해서 처음엔 비난도 많이 받았지요. 그런데 성적이 나오자 여론도 바뀌었죠.”
진출 당시 1800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도 2500달러 수준일 정도로 페루는 경제환경이 어려운 나라다. 돈을 벌지 못하면 대표 선수가 되어도 운동을 계속하기 어렵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취업도 도왔고, 훈련도 퇴근을 하고 난 뒤 오후 4시부터 했다.
박 감독은 유연성, 체격과 체력, 탄력을 갖춘 선수들한테 한국식 기술 배구의 훈련법을 결합시키면서 성적을 냈다. 또 오랜 기간 감독직을 맡은 힘도 컸다. “대표팀 감독은 최소한 5년은 보장해야 자기의 색깔이 온전히 나오게 됩니다. 한두 해 성적이 좋거나 나쁜 것으로 감독을 평가하는 그런 방식으론 절대 대표팀 경쟁력을 향상시키거나 유지할 수 없지요.”
동양의대(경희대 의대 전신) 약학과 출신인 박 감독은 대학 시절 9인제 배구의 하프라이트를 맡아 동국대, 원광대와 국내 3파전 시대를 열었다. 이화여고와 숭의여고 코치를 거쳐 국세청과 대한항공 창단 감독을 지낸 뒤 페루로 진출했다. “해가 거듭할수록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집니다.
고향인 속초로 돌아와 살고 싶지요. 그런데 명절 때면 자식들은 페루를 고향으로 알고 찾아오고, 아내도 이젠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많아진 페루가 더 좋다고 하네요. 이러다 페루에서 여생을 마칠 것 같네요.”
페루는 박 감독에게는 물론 홍콩과 미국, 캐나다, 페루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4남매의 자식들에게도 제2의 조국이 됐다.
“자식들도 4명이 각자의 방향에서 노력하면 잘 되겠지요. 내겐 약사를 버리고 배구라는 나만의 길을 택했던 게 행운으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좋아한 길을 갔기에 이룰 수 있었던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글·사진 권오상 기자 ko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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