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위대한 모창 가수 나운하 및 몇 연예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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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541회 작성일 2012-01-24 18:20본문
***'가요계의 지존'이라 불리던 나훈아가 최근 2년간 은둔자적하는 바람에 나훈아의 모창가수-이미테이션 가수-나운하가 요즘 잘 뜨고 있다고 합니다.
@@@ 한마디로 '호랑이없는 산중에 여우가 왕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데 --한자 성어로는 '무호동중 이작호'라고 합니다.
1.나운하의 본명은 박승창!- 나훈아의 본명은 최홍기임!
"내 무슨 팔자가 기구하여 내 자식이 대학갈 나이가 되었어도 남의 노래만 흉내내고 있느니 말이야!"
라고 푸념한 기억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2.최근 나운하는 모창가수 35년만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첫 앨범을 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추석을 전후해 미국등지의 순회공연을 하였으며 일본 공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3.나운하는 얼마전 인터뷰에서
"원조 나훈아는 자신이 지난 40년간 부른 자신의 곡 2300곡을 다 못 외워 부르겠지만
짝퉁가수인 저 나운하는 나훈아와 맞붙어 나훈아 노래 부르기 시합을 하여도 자신이 있고 자신은 2300곡 모두를 외어부를 수 있습니다."라고 하여 방송을 듣던 저 한준구도 깜짝 놀란 기억이 납니다.
4.짝퉁 나운하 즉 박승창은 어린시절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교 졸업시 까지 미술 공부를 열심히 하여 그당시 명문이던 홍익대 미대를 지원하였으나
미역국을 먹어 재수하던 중 그당시 서울등지에서는 극장 쇼가 성행하였던 시절이라
어느 친구가 한번 쇼 운영 사장님을 소개시켜 주어 나훈아와 외모가 아주 비슷한 박군을 무대에 올렸는 데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하며 --이 때 받은 개런티는 하루 1,000원이었는 데 그당시에서 재수생이 만져보기 쉽지않은 액수였다고 11월24일자 어는 방송에서 말한 것이 기억에 오래 남을 성 싶습니다.(재수할 당시 서울시내 버스비는 15원 이거나 20원이었다고 합니다.)
5.그 이후 그는 35년동안 짝퉁 나훈아 즉 나운하로서의 인생을 영위해 왔으며 수많은 나훈아 펑크에 땜빵으로도 많이 출연하여 수많은 애피소드를 낳았으리라 보는 데
그는 1년전 어느 방송에서 만일 실력도 갖추지 않고 부르면 당장 객석에서 술취한 고객의 맥주잔이 날아오기에 그는 사전에 충분히 연습을 늘 충분히 하여 다수의 모창가수와는 달리 원조 나훈아 보다 더 낫다는 얘기도 다수 들었다는 후문입니다.
6.그는 특히 어느 노인 복지회 무료 위문 공연에서 공연을 마치자 마자 어느 할머니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내 평생에 나훈아 손 잡아 볼 줄 꿈에도 몰랐다." 면서 진짜 나훈아인줄 알고 그랬는 데 차마 저는 짝퉁 가수 나운하 라고 말을 건네지 못했다고 하는 후문도 있습니다--공연히 실망을 안겨줄 필요는 없었기에--대다수의 짝퉁 연예인이 겪는 애피소드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 데뷔 35년만에 첫 앨범 낸 모창가수 나운하
박경은기자
“짝퉁이지만 요즘 바빠서 좋아”
ㆍ나훈아의 2년여 공백 속 해외무대 등 찾는 곳 많아
ㆍ“그분 덕에 먹고살아 감사”
‘호랑이 없는 산중에선 여우가 왕?’
‘가요계 지존’ 나훈아의 부재 속에서 ‘이미테이션 가수’ 나운하가 인기를 얻고 있다. 나운하(본명 박승창)는 최근 가수생활 35년 만에 첫 앨범을 내고, 추석을 전후해 미주 순회 공연과 일본 공연까지 끝냈다. 뿐만 아니라 DMB 등에 방영되는 CF도 촬영했고, 영화 <정승필 실종사건>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2년간 나훈아의 부재가 그에게는 ‘호재’로 작용한 셈이다.
짙은 눈썹과 당당한 체격, 선글라스와 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특유의 꺾기창법을 구사하는 나운하가 무대에 서면 진짜 나훈아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스스로 “싼티나는 나훈아쯤 된다”면서 “그분 덕분에 평생 먹고 살면서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추석을 전후해서 미국 아틀랜타, 휴스턴, 시카고, 뉴욕 등지에서 교민 초청으로 콘서트와 디너쇼를 했다. 그는 “처음엔 짝퉁 공연이라며 시큰둥하던 교민들이 공연을 보고 나서 눈물을 보이셨다”고 말했다. 그는 “나훈아씨의 노래는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위안이 되는 노래”라면서 “많은 팬이 빨리 가요계에 복귀하기를 염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운하는 “가끔 나훈아씨를 지나치게 희화화하는 광고 제안이 들어오지만 모두 거절한다”면서 “비록 이미테이션 가수지만 그분의 철학과 자존심을 허무는 건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7.원조 나훈아 와 비견되는 미남가수 남진-본명은 김남진-목포 부자중의 부자 아들-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그는 영화에도 무려 27편이 아니라-최근 까지 통계-그러나 한국영화 최고 전문가이신 정종화(70세)님이 발굴한 자료에 의하면 무려 57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남진은 수많은 미모의 여배우들과 연기력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적지않은 '설왕설래--씬'에서 엔지를 일부러 내는 등 호사가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안은 미남 가수 남진도 생각난 김에 적어 봅니다.
8.원조 나훈아도 저 한준구의 기억으로는 11편 안팎 영화에 출연하였는 데 10여년전 인터뷰에서 주연으로 함께 출연한 문희-문숙이 아님-60년대 후반 트로이카 문희,윤정희,남정임의 그 문희임!-이 문희와의 키스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는 주간지 인터뷰내용을 상기해 봅니다-부러움에서!
9.속칭 별명이 '가왕(歌王)'인 조용필도 주연배우 유지인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초까지 활약한 영화 스타 여자 트로이카였던 장미희-정윤희-유지인의 바로 그 유지인임-과 함께 출연한 영화가 딱 한편있었는 데 --그당시 그는 1급 영화배우와 거의 비슷한 3,000만원의 어마어마한 거금을 개런티-당시 집 한채값에 해당함-로 받고 유지인과 출연한 그 영화도 비교적 성공을 거두어 다수의 영화 감독들이 다른 영화에도 거액을 줄 터이니 출연하라고 종용을 하여도
가왕 조용필은 " 한번이면 족하다. 나는 가수이지 영화배우가 아니지 않은 가?"하며 수많은 여배우의 입술을 훔칠 수 있는 기회-입술만 훔치냐?--와 엄청난 거액을 또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본인 자청으로 놓친 바보라고 아마도 남진은 속으로 비웃었을 것임에 틀림없다-당시 다수의 영화제작자및 감독들이 삼고초려까지 하였다는 데 일체 거절한 조용필이야 말로 위대한 가수임에 틀림없지 않은가?-필자주! 가왕 조용필은 두번째 부인-안진현씨와 사별한 후 부인 재산 명의의 24억을 모두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조용필은 짧은 두번째 결혼 생활이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였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답니다.
10.조금 빗나간 얘기지만 1963년경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 최고의 미남배우로 많은 팬들의 부러움을 샀던 신성일--강신성일-본명은 강신영!--
그는 고교 명문 경북고교에서도 공부를 잘하여 서울대 법대를 지망하였는 데 어떻게 잘 안되어-하필 그당시 신성일 집안의 가세가 기운듯!- 영화배우로 나서게 되었다는 데-
신성일은 전세계 영화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600편 안팎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는 그 수많은 여배우들과 설왕설래를 하였는 데 그는 한 인터뷰에서 고교 하이틴 영화로 이덕화와 가장 많은 연기를 하였던 임예진-별명이 마빡이-약간 튀어나온 이마!-의 전성기 풋내기를 갓 벗어낫을 때의 벗은 몸매가 가장 인상적 이었다고 실토한 바도 저는 기억이 납니다
11. 그리하여, 지난 30년간 어느 잘생긴 남자배우가 나타났다가 몇편 안찌고 사라지면 필시 어느 부잣집 딸이 결혼하자고 진심으로 구애하여 사위로 들어간 경우도 다수 있었다고 봅니다-필자주
12. 1964년 신성일의 출세작 '맨발의 청춘'-당시 조연은 그 유명한 트위스트 김-그 영화를 두번 보았는 데-거기에서도 술집 여급들과 트위스트를 잘 추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답니다-으로 스타덤에 오른 신성일은 수많은 여우들과 잘 지내고 영화제작자로 나서다 괜히 엄청 벌어 놓은 것 한입에 톡 털어 먹고 엄앵란이 죽을 고생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고-나중에 국회의원하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휘장 관련 업체로 부터 물경 5억여원을 받아 챙기다
누군가 나중에 불어대는 바람에 가막소에 1년여를 지내다 할일많다(?)는 국회의원 147명 이상의 청원등으로 인해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다음
고향 대구 인근의 시골에 멋진 한옥 기와집을 짓고 혼자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빨래 널고 빨래 개고하다가
담옆 고샅길을 지나가던 60세 이상의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빨래 널고 개고 하는 모습의 신성일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쯧 쯧---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지?"
하며 지나가더라는 신성일의 책 출간 기념 라디오 방송에서의 본인 인터뷰 내용을 기억해 내서 첨언해 봅니다.
@@@1970년대 초 가장 멋진 남자로 우상이었던 외국배우
007영화시리즈의 주연중의 하나였던 숀 코네리를 무척 부러워하였는 데--
-- 꼭 뇌쇄적인 여배우와 정사신이 있어서 --이 숀 코네리는 늙어서도 더 록등에서 인디아나 존스등에서 멋진 노인으로 나와서 다시금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이 분은 정말 멋지게 변모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여 우리의 명배우 신성일과 잠시 비교좀 해보았습니다.
*** 또 다른 생각 하나는?
숀 코네리는 늙어서 노역을 당연 하게 되었지만 우리의 시골 드라마중 백미로 꼽히는
'전원 일기'에 나오는 일용엄니 김수미는 데뷔한 지 얼마되지 않아 본인 이야기로는 27세 부터 할머니 역할을 하여 평생 할머니로 살아 멜로 드라마의 주연해보는 것이 팽생 원이었다고 합디다.
@@수많은 연예인 x-파일을 점차 열겠지만
우선 짝퉁가수이지만 정말 겸손하고 예의바른 나운하
이미테이션 가수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 원조 나훈아는 전성기 시절 아마도 삼성아니면 현대 재벌 가족 친목회인지 하여튼 어느 굴지의 재벌 뭔가의 기념일에서 나훈아를 무척좋아하는 분이 계셔서 나훈아에게 " 우리 모임에 3곡이나 4곡정도만 불러주면 3,000만원의 -20여년전 엄청난 액수임-캐라를 주겠다고 하였는 데 원조 나훈아는
"나는 대중을 상대로 하여 먹고 사는 가수이지 극소수
사사로운 모임의 가수가 아닙니다!"라고
대갈일성하고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다른 사람같으면 눈딱감고 불러주고 절반은 불우이웃돕기 성금내면 될 터인 데 하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나도 그랬을 것 같네요!
위의 조용필도 영화 출연 계속했으면 어떠했을 까하는 생각도 드는 이유는? --가수 김세환이나
하다못해(?)-배철수에게는 비밀임(ㅋㅋㅋ)--
가수 배철수까지도 영화출연 여러편 하였다는 데--전영록은 부모가 연예인이라서 이덕화 레벨로 보아야할 듯함!-도 다수 하였음!---
@@@다시 나운하로 정말 돌아옵시다!
잘나가는 짝퉁가수 나운하말고도 t.v에도 몇번 나온 또하나의 짝퉁가수 아니 모창가수 너훈아(지금 55세 안팎-나운하도 55세 안팎)-키는 약간 작으나 -
도 있습니다. 그의 텔레비젼 인간극장 같은 훈훈한 다큐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저 한준구도 우연히 보았는 데
이 너훈아도 얼굴 모습은 나운하 만큼 닮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옆모습은 영낙없이 나훈아를 닮았더군요!
그도 짝퉁가수로 밤무대를 이곳저곳 뛰면서 나운하의 경우와 마찬가지 이겠지만서도
밤무대 m.c 들이 일상적으로 뭐라고 하냐면:
"자!- 다음 가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한국에서 제일 비싼 가수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모시는 영광의 기회를 가지시게 되겠습니다." 라고 멘트를 하고는
이윽고 짝퉁이 나와 노래를 부르는 데 만일 취중 고객이 노래가 맘에 들지 않으면 맥주잔을 던지는 몰상식한 사례를 접하게 되는 경우도 아주 조금은 있다고 합니다.
***또다른 기억: 가왕 조용필의 모창가수는?
주용필과 조영필씨가 있는 데 .t.v 인간극장같은 다큐프로에서 저 한준구는 우연히 이 프로를 보았는 데 헤어스타일하며 얼굴 옆모습이 조용필하고 거의 흡사하게 보인 조영필을 보고 한순간 놀란 적이 있었는 데
그는 어디고 간에 연락만 미리 주면 시골 마트 개업식자 좁은 곳에 가서도 낮은 캐라에도 불구하고 쫓아다니고 있는 데 가장 인상적이고 감흥이 있던 장면은
짝퉁 조영필이 휴전선 인근의 전방 군부대 위문 공연에 가서 조용필 노래 15곡이상을 신나게 부르고 빠른 박자 노래에는 수많은 장병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하여 스트레스를 확 푸는 데 군인들이 감히 어디 전방에서 조용필을 만나 신나게 군대 막춤을 추고 스트레스를 한껏 풀기나 할까?
-정말 언감생심이지--50만원이나 100만원 캐라가지고 이렇게 어떻게 신나게 놀 것인가? 정말 위대한 짝퉁가수 조영필이 아니면 가능할 까? -조용필이 오겠느냐 말이다!
모창가수로는 가수 데뷔 50년이 작년에 지난 영원한 누나 패티김----그녀는 본명이 김혜자인 데 50여년전 키가 늘씬하고 몸매도 잘 빠져 주간지 모델로-당시 그 유명한 '선데이 서울'같은 데 원피스 수영복 차림으로 나오기도 하였고--이 당시 위에 언급한 일용엄니 김수미도 수영복입고 폭포수 옆에서 수영복 입고 요염하게 찍은 화보도 선데이 서울에 있다고 합니다.
---데뷔 직전 당시 세계적인 여자 가수
페티 페이지 를 닮고 싶어 예명을 김혜자에서 페티 김으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페티김 이야기는 나중에 시간나면 후술 가능합니다.
페티김의 눈두덩이가 거의 똑같은 페튀 김!(정말 예명임)
이미자와 나온 입과 볼이 비슷한 임희자
위의 주용필과 설운도와 비슷한 설운두
그리고 가수 현숙과 비슷하게 생긴 모창가수 '현수기'등 다수가 있다고 하여
이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미테이션 가수 클럽을 조직하여 모임을 이따금 가진다는 후문입니다.
***그 유명한 록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창가수는
10년전 기준으로 미국 전역에 약 4만8천명이 실재 존재하여 활동하고 있다고 하며 가끔 해외토픽에 보면
가장 엘비스프레슬리를 닮은 가수 경연대회가 열리곤 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한국인 들이 많으리라 사료됨!
***한국에는 나훈아 모창 가수가 사실 제일 많다고 하는 데 나운하와 너훈아를 차치해 놓고 라도 전국의 시나 군에 한명씩은 반드시 나훈아 모창가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답니다
***2년전 원숭이를 기르기도 하고 콧수염이 난 유명 가수인 박상민-항상 검은 선글래스를 끼고 나오는 가수-의 모창가수가 아니라 정말 똑같은 박상민이라 속이고 울산인가 포항어디 밤무대에서 한달에 물경 5,000만원씩 벌면서 진짜같은 사기 노래 행각을 벌었답니다.--그는 주변의 신고로 겨우 700만원의 벌금만 내고 풀려났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짜 박상민과 진짜 박상민이 대질 심문을 하는 데 수사검사가 진짜보고는 어이 가짜! 그리고 가짜 보고는 그냥 박상민씨! 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았을 정도로 똑 같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밝혀진 훈훈한 미담에 의하면
가수 김장훈은 기부와 왕으로 지난 10여년간 물경
50억을 좋은 데 기부하였고 지금도 그 기부는 최근 독도
는 우리땅 홍보에 반크의 서경덕 겸임교수에게 3억원을
기부하였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귀화한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에게도
선뜻 1억원을 드려 독도 연구에 전념하도록 배려하였다고 하니 정말 그의 불우이웃사랑및 독도 사랑은 정말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아주 최근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진짜 가수
박상민은 지난 10년간 남 모르게 약 40억을 기부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였답니다.--정말 훌륭한 미담사례임!
국민 여동생 문근영도 2년여전 8억5천만원을 기부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였는 데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저도 몇번 뵌적이 있는 육사22기 출신으로 월남전 참전군인이고 미국 해군대학원 경영학 박사임에도 연좌제를 걸어 문근영의 외조부가 좌익이었다고 여론에 언급하여 세인의 지탄을 받은 바 있고 이와 관련하여 문화평론가 진중권씨와 논전을 벌여 명예 훼손 여부로 법정까지 간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다시 나운하로 돌아갑니다.-하도 생각이 많이 떠올라서 아직 짝퉁가수 나운하는 본론 10분의 3도 안지나 갔네용!
@@ 모창 가수 나운하는 데뷔 초기 밤무대에서 어쩔 수
없이 가수 선배 나훈아와 조우하여 인생선배이기도하니
만큼 깍듯이 인사를 드렸는 데
진짜 나훈아는 흠찟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잘 지내보자라고 하였답니다. 그런 어색한 조우가 몇번 지나서는 나중에는 짝퉁 나운하가 자신의 부인도 인사시켜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짝퉁 나운하의 11월24일 라디오 인터뷰 내용을 잠시 인용해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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